“아이씨...”
아침부터 재수가 없었다. 깔끔하게 개어 둔 빨래에 커피를 엎지르질 않나, 분명 어제까지 쓴 이어폰이 나가기 전 챙기려니까 사라지질 않나, 걸어가는데 신발 끈이 계속 풀리질 않나. 완전 최악 그 자체였다. 마치 너와의 마지막을 암시하듯이.
“지민아.”
“응, 언주야.”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이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3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 우리는 지쳐있었고, 서로를 질려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설레는 감정이 사라졌다. 나는 그랬다. 언제부턴가 너의 연락이 귀찮아졌고, 너의 단점들만 보이기 시작했다. 너와의 만남을 피하려 했고, 새로운 사람들과 인연 맺는 것에 집중했다. 너 또한 그랬다. 언제부턴가 내가 후배와 둘이 있어도 그게 어때서- 라는 태도를 보였고, 내가 어딜 가든 신경쓰지 않았다. 평소의 너였으면 그 후배랑 있으니까 조금 질투가 나네? 어디 가는지 나한테 말해 줬으면 좋겠다. 걱정이 되니까 그렇지- 와 같은 반응을 보였을 텐데. 우리 관계는 둘 중 하나가 놓으면 끊어질 관계, 딱 그거였다.
“잘 자고, 먼저 들어가. 나는 너 들어가는 거 보고 갈게.”
“추운데 조심히 가.”
허무하게 끝났다. 3년이라는 긴 시간이 고작 30분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허무하게 끝났다.
연애 소설 ;farewel
너와 헤어졌을 땐 딱히 별생각이 안 들었다. 그냥 평소처럼 학교에 가서 같이 수업 듣고, 꾸벅꾸벅 조는 널 쳐다보다 깨우고, 가끔 밥도 같이 먹고. 우리는 연인 사이가 아닌 거지 인간관계가 깨진 것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이 정도는 해도 괜찮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또, 같은 학교, 같은 과여서 오히려 떨어져 다니는 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면 별 시답잖은 소문도 퍼질 수 있고.
“야, 나 정언주랑 헤어졌어.”
“뭔 헛소리야. 둘이 계속 붙어있었으면서.”
“헤어졌어. 믿기 싫으면 믿지 마. 강요 안 해.”
“... 진짜야?”
“이런 걸로 거짓말을 왜 하냐.”
김태형은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좋은 걸까, 나쁜 걸까. 김태형이 못 믿을 정도면 우리는 꽤 잘 어울리는 연인이었나 보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왜 헤어졌는데?”
“서로 식어서?”
“... 서로?”
“어, 서로.”
“... 그래. 야, 그러면 걔가 다른 사람 만나고 다녀도 괜찮겠네?”
“어? 어, 그렇겠지...”
“잘됐네. 정언주 아직도 애인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 꽤 있었는데. 소개나 해 주고 밥이나 얻어 먹어야겠다.”
“야, 언주가 니 밥줄이야? 그리고 언주가 다른 사람을 만나겠냐?”
“왜? 서로 식었다면서, 서로. 너네 헤어졌으면 만날 수도 있지, 벤츠 찾으러.”
“걔가? 절대 안 돼. 걔는 안 만나.”
“네가 어떻게 알아. 그리고 안 되긴 뭐가 안 돼. 네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돼? 자기도 전 남친이면서...”
“뭐?”
“식었다면서 화를 왜 이렇게 내냐?”
“... 나 화 안 냈는데?”
“진짜 가지가지다. 말을 말아야지...”
기분이 이상했다. 네가 다른 사람을 만난다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제 와서 질투라도 하는 건가. 순간 내가 너무 한심하고 어이없었다. 한심하고 어이없어도 싫은 건 싫었다. 일단 지금 당장은 싫었다. 나중에는 괜찮겠지. 아니, 사실 나중에도 안 괜찮을 것 같다. 그동안 네 옆에 붙어있는 건 김태형과 나뿐이었는데, 그 옆에 다른 사람이 붙는다니. 이기적인 마음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정말 싫었다. 네 입에서 헤어지자는 소리가 나왔을 땐 별 감정이 안 들었는데, 남의 입을 통해서 듣는 우리의 이별은 내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이 얼마나 웃긴 상황인가.
[나 집에 들어왔...]
네게 문자를 쓰던 손을 멈췄다. 아, 우리 헤어졌지. 이 습관은 또 언제쯤 사라지려나. 새삼 이별이 느껴져 코가 시큰거렸다. 너와 나는 헤어졌다. 너에게 때마다 연락할 이유가 사라졌다. 사랑한다는 말을 나눌 수 없어졌다. 알 수 없는 감정 때문에 마음이 너무 불편하고 아팠다. 네게 먼저 연락이 다시 오길 빌었다. 그러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새벽은 소름 끼치게 조용했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정언주, 언주야...”
단순히 마음이 허전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사실 마음이 식지 않아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나는 아직 정언주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