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 배진영, 연상 황민현 01
나는 늘 생각했었다.
내 인생에는 남자는 없구나. 남자복은 지지리도 없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24살인 내가 남자를 한 번도 못 사귀어본 게 말이 될까? 라고
무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분명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왜 지금 두 남자가 우리 회사 앞에서 나를 기다리겠다고 서있는지 모를 일이다.
"여주 누나!"
"여주씨"
두 남자는 회사 건물에서 나오는 여주를 보고 소리쳤다.
회사 밖에 서있으면서 서로에게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둘은 서로를 쳐다봤다.
서로를 쳐다보는 묘한 신경전에 여주는 회사 건물 문 앞에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누나, 나 배고프니까 빨리 밥 먹으러 가자"
먼저 말을 꺼낸 건 진영이었다.
여주의 어깨에 서슴지 않게 손을 올리는 진영의 모습에 민현의 눈썹을 꿈틀거리고는 본인도 여주에게 다가와 진영의 손을 잡아 내렸다.
"여주씨, 저녁 약속 없다고 했는데."
민현의 말에 진영이 민현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말을 하지 않아도 진영이 눈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 사람 뭔데 나한테 이런 소리를 하지?'
"날씨가 그래도 조금 풀린 거 같다"
"......"
"......"
고요한 차 안, 숨 막히는 어색함이 싫어 먼저 침묵을 깬 건 여주였다.
하지만 그런 여주의 노력을 무시하기라도 하는 듯 민현은 운전만, 조수석에 앉은 진영은 창문 밖만 볼 뿐이었다.
뒷자리에서 한숨을 푹 쉰 여주 또한 창문 밖을 쳐다봤다.
여주는 자기 걸어왔다며 찡찡거리는 진영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고,
오늘 저녁 야근을 해야 할 판인데 그냥 막무가내 여주가 보고 싶어서 왔다는 민현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여주는 자기랑 가자고 보채는 두 남자 때문에 한숨을 푹 쉬고 그럼 그냥 다 같이 가자고 했다.
여주의 말에 지금 민현의 차 안에 올라타 있는 상황이었다.
죽어도 민현의 옆자리에 앉는 여주의 모습을 못 보겠다는 진영의 말에 여주 본인이 뒷좌석에 앉고 진영이 조수석에 앉게 되었다.
'아씨, 그냥 혼자 갈걸'
여주는 본인의 선택을 후회하며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
"여주 누나 언제부터 좋아했어요?"
"아니, 진영아 나 지금 자리에 있는데"
저녁을 먹으러 같이 식당 안으로 들어온 3명이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둘의 기싸움에 여주는 두 명 다 손을 붙들고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는 것도 오고 가는 눈싸움에 여주가 회장님처럼 가운데 앉고 둘이 마주 보고 앉았다.
조용히 밥만 먹던 와중에 먼저 말을 꺼낸건 진영이었다.
진영의 말에 당황한 여주가 무슨 소리냐며 진영의 팔을 툭 쳤지만 민현은 아무렇지 않게 진영의 물음에 대답했다.
"저번 주 토요일에 봉사 갔다가 만나서 첫눈에 반했어요"
"그럼 이제 일주일 정도 됐네요? 저는 저 저번 주에 첫눈에 반했는데, 그럼 사적으로 몇 번 만났어요?"
"두 번이요, 그날 토요일 저녁에 같이 술 먹고, 화요일에 한번 더 만났어요"
"저는 세 번 만났는데, 이것도 제가 더 많네요"
진영의 말에 민현이 피식 웃었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건지' 말하지 않아도 민현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몇 살이에요?"
이번에 먼저 말을 꺼낸건 민현이었다.
"21살이요, 그 쪽은요?"
"26살이요. 설마 고딩일까 했는데, 성인이네요"
"감사합니다. 칭찬으로 들을게요"
"대학생?"
"아뇨, 제가 돈이 좀 많아서, 아니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안 해도 죽을 때까지 먹고살거든요"
"백수네요?"
"그렇죠 뭐, 자칭 금수저, 타칭 백수"
둘의 대화에 짜게 식어가는 건 여주였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판이었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밥을 다 먹고 나서도 서로 데려다주겠다고 싸우는 모습에 혼자 갈 거라고 따라오면 다시는 둘 다 안 본다는 여주의 큰소리에
둘 다 풀이 죽은 고양이 마냥 여주를 쳐다봤지만, 여주는 어림없다는 듯이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
"원장님, 날이 추운데 이제 들어 갈까요?"
"응. 그럴까? 날이 비가 오려나 우중충 하네"
"그러게요, 이런 날에는 더 아프실까봐 걱정이에요"
"고맙다 여주야, 항상 찾아와주고"
"에이, 섭섭하게 무슨 말씀이세요. 당연한거죠"
"우리 여주, 벌써 24살이네. 많이컸다"
"다 원장님 덕분이죠"
어릴 적 여주는 일찍 사고로 부모를 여의고 고아원에서 자랐다.
정말 좋은 고아원 원장님을 만나 여주는 부모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고 잘 자랄 수 있었다.
여주에게 원장님은 엄마 같은 존재였다.
어른이 되어도 항상 주말마다 고아원에 찾아가 아이들을 돌봐주고 원장님을 찾아뵙던 여주였다.
그런데 원장님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주말마다 고아원으로 가던 여주는 원장님이 계신 병원으로 가게되었다.
진영을 처음 만난 건 그 병원에서였다.
밖에서 산책을 하던 여주와 원장님은 날이 우중충 비 올 듯 어두워지자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뒤를 돌자 바로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진영의 모습에 여주가 인상을 한 번 찡그렸다.
'환자가 있는데 떡하니 담배라니'
원장님의 휠체어를 밀던 여주는 담요가 떨어진 줄도 모른 채 가고 있었는데 뒤에 누가 부르는 소리에 멈춰 뒤를 돌아봤다.
"저기요, 담요 떨어트렸는데"
그 말에 여주는 얼른 진영에게 갔다.
담배를 몸 뒤로 숨기고 담요를 건네주는 모습에 속으로 '오, 매너 있네' 생각한 여주였다.
담요를 받아 든 여주는 진영에게 고맙다고 꾸벅 인사를 하고는 얼른 원장님을 모시고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원장님에게 인사를 하고 건물 밖을 나오자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여주는 우산을 안 가져온 자신을 원망하며 택시를 부르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그때 진영이 여주에게 다가와 여주 손에 우산을 쥐여줬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우산을 손에 받아든 여주는 옆에 서있는 진영을 쳐다봤다.
"이런 느낌이구나"
"네?"
"첫눈에 반한다는 거, 죽을 때까지 못 느낄 줄 알았는데"
"......무슨"
"첫눈에 반했어요"
"......"
"분명 우중충한 날씨였는데,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처럼 어두웠는데, 갑자기 세상이 환해졌어요"
그게 진영과 여주의 첫 만남이었다.
진영은 여주에게 폭탄 같은 말을 남기고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여주는 진영이 가고 나서도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진영이 건네준 우산을 쳐다봤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롤스로이스????'
손잡이에 떡하니 있는 롤스로이스 마크에 여주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래도 줬으니 써야지' 싶은 마음에 우산을 펼친 여주는 대문짝만 하게 적힌 번호와 '우산 짱 비쌈, 돌려줘요' 적힌 메모에 아까보다 더 입이 벌어졌다.
'아니 이 비싼 우산에 왜 낙서를 한 거야? 미친 거 아니야?'
…
원장님 병원에 찾아 간 거 말고는 요새 너무 자기만 생각하고 산 거 같다고 생각이 든 여주는 주말에 연탄봉사를 하기 위해 나왔다.
봉사현장에 온 여주는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때 같이 현장에 있는 여자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주는 '왜 그러지?' 싶어서 여자들이 쳐다보는 쪽을 쳐다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었다.
"와"
세상에 저렇게 생긴 사람도 있구나.
민현의 첫인상은 딱 그 정도였다.
이 세상 사람 맞나?
'장갑 받아가세요!'
여주는 장갑을 착용하고 고개를 돌렸을때,
벽에 기대 쭈그리고 앉아있는 아까와는 많이 남자 모습에 본인도 모르게 피식웃었다.
여주가 본인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는지 민현이 여주를 쳐다보자 여주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이미 웃는 거 다 봤어요"
"아, 죄송합니다"
"꼴이 웃기죠?"
"아니요, 잘 어울리시네요"
"웃어놓고 그런 칭찬하니까 더 기분 안좋은 거 알아요?"
"아, 근데 진짜 잘 어울리세요. 귀여워요"
?
초면에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여주가 놀라 본인의 입을 때리자 이번에는 민현이 피식 웃었다.
"그쪽도요, 귀엽네요"
안녕하세요!
꿈에 나온 연하 배진영과 연상 황민현 모습에 얼른 글을 써봤습니다.
제발 내 인생에도 나타나줘ㅠㅠㅠㅠㅠㅠㅠ
암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ㅇ^
부끄럽군요.
반응없으면 바람처럼 사라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