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또라이
글 ; 노랑의자
번호를 교환한 날 이후로, 황민현과 나는 아침에도 등교를 같이 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 덕에 매일 아침 부은 눈을 가라앉히느라 십분은 더 일찍 일어나야 했지만. 그래도 아침부터 황민현의 얼굴을 보는 건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고삼인데도 불구하고 학교가는 길이 즐거웠으면, 말 다 한거 아닌가?
현관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황민현의 뒷모습에 저절로 피어오르는 미소를 꾹 눌러넣고 태연한 척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아니 쟤는, 아침부터 저렇게 잘생겼냐.
이제 아침 바람도 쌀쌀하지 않고 적당한 온도다. 이 말은, 시험이 훅 가까워졌다는 소리다. 그와 함께 다가온 발표에, 잘 걷던 나는 심장 쪽에 손을 올려놓고 심각하게 말했다.
"나 너무 떨려.."
"발표 때문에?"
"응. 진심 대박."
"잘 하던데 무슨 걱정이야."
수학 시간의 발표는 어쩌다보니 나와 황민현이 하게 되었다. 첫 문제는 황민현, 두번째 문제는 나. 그래서 교실에 남아 발표연습도 해보고, 황민현이 이것 저것 조언을 해준 덕분에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다. 황민현은 공부도 잘하는데 발표도 잘하고. 완전 사기적이다.
물론 발표 연습을 함께 하는 건 좋았지만, 단 하나의 오점이 있다면 여우도 함께였었다는 사실이다.
"아니, 나 이해가 좀 안되는데 다시 해줄래?"
"이거? 여기부터?"
"아니, 처음부터 다~"
..딥빡.
기본적인 대입만 하면 풀리는 문제 해설부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여우의 태도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 뿐만 아니라 시도 때도 없이 태클을 걸어왔다. 그 날 시달린 걸 생각하면, 지금도 입에서 불을 뿜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과정들을 모두 거쳐, 드디어 발표 당일이 된 것이다. 여우의 신경긁기를 잘 버텨낸 나 스스로가 대견했다. 아, 장하다 내 자신.
"민현아~"
황민현과 함께 교실에 들어서니, 여우가 황민현에게 인사를 건넨다. 불필요한 팔 잡기는 오늘도 역시 뒤따라온다. 그 모습에 내 팔자주름이 깊게 패이려는 찰나, 그 손을 풀어내는 황민현의 행동에 다시 내 표정이 온화해졌다.
"오늘 발표 잘해!"
"아, 고마워."
저기, 황민현만 발표하니..?
여우는 오늘도 열심히 눈웃음을 치며 황민현에게 교태를 부린다. 그래도 같은 반이라고 좋게 좋게 생각하려 했는데, 이제 나도 여우에 대한 생각이 띠꺼워진다. 황민현한테 제발 안 붙어 있었으면 좋겠다. 웬만하면 여우에게 다가가 너! 민현이한테 손 대지 마! 라고 외치고 싶지만, 내가 뭐라고. 여자친구도 아닌데. 이럴 땐 은근 서럽다. 황민현과 제일 친한 여자애는 나라고 생각했는데, 남들이 보기엔 여우랑 제일 친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보이니.
"요, 짝꿍."
"아침부터 당 떨어진다.."
"왜?"
당 떨어진다는 내 말에 의아해하는 김재환에게 턱짓으로 여우를 가리켰다. 지치지도 않는지, 아직도 황민현에게 계속 말을 걸고 있다. 덕분에 교실 들어와서 황민현이랑 한 마디도 못했구요.. 내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본 김재환이 아,, 하는 작은 탄성을 뱉는다. 체념할 지경이다 이젠. 하루가 멀다하고 저러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가방을 풀고 일교시에 있는 발표를 위해 발표 대본을 꺼내 눈으로 훑었다.
"야 십분남음."
"아 알어!"
안그래도 초조해 죽겠는데, 김재환이 옆에서 굳이 알람을 해준다. 이게 지는 발표 안 한다 이거지. 발표 끝나면 한 소리 해야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긴장이 되어서 다리까지 살짝 떨며 대본에만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던 중, 책상에 뭐가 슥 올려진다. 뭔가 하고 보니 로아커 초콜릿과 작은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화이팅.]
야무지게 점까지 꾹 찍어서 아주 곱게 붙여놓았다. 이건 진짜 웃지 않고선 못 배긴다. 너무 귀여워.. 얼굴에 웃음을 덕지덕지 붙이고 준 사람을 쳐다봤다. 이젠 거의 트레이드 마크인 것 같다.
*
발표는 순탄하게 끝이 났다. 황민현은 말할 필요도 없이 잘했고, 나도 로아커 초콜릿 때문인지 조금은 긴장을 풀고 할 수 있었다. 발표 준비를 하고 발표 덕분에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지, 기가 다 빨린 기분이었다. 당장 보름 후가 중간고사인데, 야자시간이 되어도 책상에 무기력하게 뻗어 있었다.
"야 아프냐?"
"아니.."
"그럼 왜."
"피곤해.."
야자 시작 종이 울려도 내가 일어나질 않자, 김재환이 아프냐 물어온다. 얘는 저녁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뭘 또 오물거리냐. 저 볼살이 안 없어지는 이유가 있다. 피곤하면 좀 자고 하라는 김재환의 말에 고개를 흔들곤 펜을 잡았다. 너블대 가려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오늘, 너블대에 가야 할 이유가 또 한 가지 생겼다.
"너블대 화학공학과 가려고, 나."
"진짜? 약대 준비하게?"
"응."
황민현이 너블대를 가기로 결정했고,
"민현아~ 너 너블대 갈거야?"
"생각 중인데. 왜?"
"나 너블대 지원하려구!"
여우가 너블대를 가려고 하기 때문에..
나 없이 황민현이랑 여우 둘만 너블대에 가게 할 순 없다. 몰려오는 피로를 모른 척 하고 펜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무거운 눈에도 힘을 주었다. 그래도,
"야야. 자냐?"
졸음을 이겨내긴 무리였다.
#
결국 야자시간을 한 시간이 넘게 버리고, 집에 와서 책상에 또 앉았다. 오늘 할 분량을 다 채우지도 못해서. 한숨을 쉬고 문제를 풀어 나가는데, 마지막 문제에서 막혔다. 아, 이거 풀어야 잘 수 있는데.. 시간은 벌써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몸도 머리도 지쳐 푸는 방법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답이 없는 상태였다. 그 때, 딱 떠오른 한 사람이 있었다.
[민현아, 자?]
자고 있는데 깨는 건 아니겠지? 보낼까 말까 고민하다, 해설을 봐도 이해가 안 되는 문제에 인상을 쓰고 머리를 헝클었다. 결국 보내기를 터치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물이나 마시고 와야지. 혹여 부모님을 깨울까 살금살금 걸어 부엌에서 텀블러에 생수를 담아 방으로 들어왔다. 별 생각 없이 핸드폰 화면을 켜다가 마시던 물을 뿜을 뻔 했다.
[아니. 왜?]
생각지도 못한 답장이 와있었기 때문에. 막상 먼저 문자를 보낸 건 난데, 내가 더 난리였다. 어쩌지, 진짜 안 자고 있을 줄이야.. 겨우 의자에 앉아 쉼호흡을 몇 번 하고, 톡톡 화면을 터치해 답장을 보냈다. 이해가 안 되는 문제가 있어서, 물어보려고. 괜찮아?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는지. 상대가 친구가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런가. 문자로 답장이 올 줄 알았는데, 갑자기 전화가 온다. 헐, 대박.
"..여보세요?"
'아. 문제 설명하려면 전화가 더 나을 것 같아서.'
"고마워 진짜.. 너무 시간 늦었는데."
'아니야. 몇 번 문제야?'
원래도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너무 좋은데, 밤에 들으니 더 좋다. 낮보다는 조금 더 낮아진 듯 한 목소리에 괜히 설렌다. 이래가지고 설명은 어떻게 듣냐.. 내가 51페이지 25번. 하고 대답하니 핸드폰 건너에서 책을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뭔가, 연결되어 있는 기분이다. 우리는, 모두 잠이 든 밤에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아. 이거 좀 까다롭더라.'
"그치..진짜 이해가 안돼."
'이거는, 문제를 해석하는 게 제일 중요해.'
신기하게도 황민현의 설명을 듣고 나니, 머릿속에서 한참 엉켜있던 까만 실들이 한번에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속엔, 하기싫음과 스트레스도 함께 얽혀 있었지만. 그래서인지 아까부터 지끈대던 두통도 전부 사라져 있었다.
'이해 됐어?'
"응! 너 진짜 짱이다.. 완전 이해 됐어."
'니가 똑똑한거야.'
용건도 끝났으니 전화를 끊어야 할텐데, 끊기가 싫었다. 더 얘기하고 싶었다. 그런데도 쉽게 입이 열리진 않았다. 반대편에서 아무 말이 없는 황민현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궁금했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황민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소원 들어주기 할까?'
"응? 무슨 소원?"
'그건 각자 생각하고, 내기 하자.'
"오, 좋아!"
'넌 수학 95점 이상 맞기. 어때?'
"그럼 너는.. 전교 3등 안에 들기?"
'와, 너무하다.'
"그런가.. 근데 너 저번에 4등 했잖아!"
소원 들어주기라니. 연인들 사이에서나 하는 거 아닌가. 아까부터 주체할 수 없이 솟은 입꼬리는 내려올 줄을 모른다. 하여튼 주책이다, 진짜. 황민현도 조건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내기가 성사되었다. 콜? 하는 내 물음에, 작게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콜. 하는 경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너무 늦었다. 얼른 자야지.'
"응. 이제 자려구!"
'잘 자고, 내일 봐.'
"..응. 너두."
잘 자라는 소리는 처음 듣는 게 아니었는데, 유난히 두근거렸다.
오늘도 푹 자기는 글렀다.
# 그 날, 이름이는 모르는 야자시간 뒷 이야기
"야야. 자냐?"
재환은 옆에서 꾸벅 꾸벅 졸고 있는 이름이를 살짝 친다. 그럼에도 반응이 없는 이름이의 모습에, 재환은 어떻게 하지 고민에 빠진다. 깨우기엔 너무 피곤해 보이고, 안 깨우기엔 너블대 간다고 다짐하던 모습이 아른거리고. 어쩌지, 하고 머리를 긁적이는데 그 순간 이름이의 머리가 책상에 박을 듯 휘청인다.
"어우, 얘는.."
놀란 재환이 재빨리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천천히 책상 위로 내려놓는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이름이 입고 온 잠바를 꺼내 등 위로 덮어주고 나서야 시선을 뗀다. 마침 자신도 졸렸던 터라 허리를 좌우로 돌리며 스트레칭을 하는데, 키높이 책상에 서서 전부 보고 있던 민현과 눈이 마주쳤다.
(황민현.19세.질투 중)
재환은 냉한 눈빛에 흠칫 놀라 민현에게 카톡을 보낸다.
[야.. 너네 썸타는 거 알아.. 그렇게 안 노려봐도 됨.]
민현은 마치 몰랐다는 듯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그랬나..'
(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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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노랑의자입니다 ♡
오늘은 뭔가.. 쓰면서 집중이 잘 안 됐어요..
그래서 마음에 썩 들진 않는데,
그래도 조금만 이해해주세요 ㅠ
네 결국 여우는..
대학까지 따라 가시겠답니다^^..
우리 독자님들 저 응원해주고 걱정해줘서 너무너무 고마워요
독자님들두 미세먼지 조심 감기 조심 나쁜사람 조심!
오늘도 읽어줘서 고마워요 ♡
암호닉이에요!
정태풍 ♥
뷔밀병기 ♥
미녀나왜싫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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