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이야기
_만나고
(with. 황민현)
인생을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습니다.
이상하게 늦잠을 자고, 자기 전 꽂아두었던 충전기는 핸드폰과 안녕하여 침대 아래로 떨어져 있고, 급하게 뛰어나오다 지갑을 두고 나오고, 여러모로 도움이 참 안 되는 날 말입니다.
소개팅도 하나의 약속이고, 당사자는 늦으면 안 되는 규칙이 있죠.
겨우 문이 닫히기 직전에 탄 지하철은 또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정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서러울 지경입니다.
배터리도 없어서 노래도 못 듣고,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다 있나요.
그냥 멍하니 서서 유리 밖만 바라보던 중, 문득 서있는 쪽의 문이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내리기 편하게 한 쪽으로 붙어 서는데.
"어?"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에 팔이 들려집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놀라 쳐다보니 내리는 사람 가방에 팔찌가 제대로 걸린 것 같습니다.
얼떨결에 따라 내리니, 손이 들린 채로 졸졸 그 사람을 따라가는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저, 저기요! 제 팔찌 걸렸는데!"
역이 시끄러운 것도 한몫 하긴 하나, 혹여 남들이 보고 웃을까 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어떠한 대꾸도 없는 남자를 따라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걸린 팔찌를 제 쪽으로 당겨봅니다. 뒤에서 느껴지는 당김에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연약한 팔찌는 툭 끊어져 버렸습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 이어폰을 끼고 있던 탓에 목소리를 듣지 못했나 봅니다. 제법 차가운 느낌의 얼굴에 주춤하던 것도 잠시, 중간이 끊어져 남자의 가방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 팔찌를 가리키며 어색하게 웃자 남자가 그제서야 자신의 가방을 확인합니다.
"이 팔찌 주인이세요? 어떡해, 저 그냥 돌려세우지 그러셨어요. 완전 망가졌네... 손목은 안 다치셨어요?"
"네? 아, 네. 저는 괜찮은데, 가방 안 망가졌죠?"
"네, 가방 괜찮아요. 근데 이게 끊어져서."
"아, 괜찮아요. 그냥 길에서 산 거라 그렇게 값나가는 것도 아니고."
남자가 잔뜩 미안한 얼굴을 하곤 바라보는데, 꼭 저 때문에 그런 표정을 하는 것 같아 어찌나 마음에 걸리는지. 덩달아 미안해진 마음에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데.
"어!"
"네? 왜요? 문제 있어요?"
약속 시간이 10분 밖에 남지 않은 걸 눈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예의는 아니지만 남자에게 급히 인사를 하곤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저기! 이거 팔찌!"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만, 끊어진 팔찌는 아무래도 남자 가방에게 선물한 셈 쳐야겠네요.
부랴부랴 10분이나 늦게 도착한 소개팅 장소에는 역시나 상대방이 먼저 나와있었습니다.
최대한 미안한 얼굴을 하고 자리에 앉자, 상대방이 괜찮다는 듯이 웃어주네요. 뭐든 일단 다행입니다.
그런데.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저는 운동 좋아하는데."
"아, 저는 운동에는 소질이 없어서... 영화 좋아해요, 영화 좋아하세요?"
"그, 저는 하나 오래 보는 걸 잘 못해서요."
취미라거나,
"음악 좋아하세요?"
"아, 네. 가요 많이 들어요."
"아, 그렇구나. 저는 클래식을 주로 듣거든요."
취향이라거나.
"다른 부분이 많네요, 우리."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상대방과 맞는 부분이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할 주제도 점점 고갈되어 가고, 결국 예상보다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네요.
"데려다 드릴게요."
"아, 아니요. 저 집 근처라 괜찮아요."
"아, 네. 그럼,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오늘 감사했어요."
"네, 저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상대방이 멀어지는 걸 보니 그제서야 답답한 마음이 탁 풀리는 기분입니다. 주선자한테는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소개팅은 체질이 아닌 것 같네요.
"집까지는 또 언제 간담..."
낮부터 해가 지기 시작하는 지금까지 힘 빠지는 일밖에 없는 기분에 우울함이 몰려옵니다. 늦잠을 자지 않았다면, 핸드폰을 충전했었다면, 처음 나올 때 지갑을 챙겨 들고 나왔더라면, 지하철을 안 탔으면,
팔찌를 차고 나오지 않았다면.
오늘이 조금은 덜 힘들었을까요? 분명 그건 아닐 테지만, 괜히 이 생각 저 생각이 다 들어 터덜터덜 걷던 걸음을 멈추곤 버스정류장에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이거 말고 다른 거 신을걸."
전날 열심히 골라뒀던 신발도 지금은 미워 보이는 것 같네요.
"어?"
죄 없는 신발코만 땅에 콕콕 박는데, 문득 옆에서 귀를 깨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거 팔찌 주인분 맞으시죠?"
고개를 돌린 제 눈앞에 오늘 낮에 지하철의 그 남자 가방에게 선물한 팔찌가 보입니다. 마디가 끊어진 상태 그대로네요. 팔찌를 들고 있는 손을 따라 고개를 들자
낮에 봤던 남자의 얼굴이 보입니다. 시무룩했던 낮과는 다르게 생글생글 웃고 있는 얼굴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네요.
"네, 맞는데 여긴 어떻게..."
"아, 제가 따라왔다거나 그런 건 아니구요. 이 근처에서 일하는데, 지금 끝내고 가는 길이었거든요."
"아, 아까 출근 하는 중이셨구나"
"네, 이거 팔찌 보면서 어떻게 돌려드려야 하나 생각하는 와중에 딱 만난 거 있죠."
어느새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야기를 풀어내는 남자의 모습에 슬쩍 웃음이 터진 채 고개를 끄덕이는 저를 남자가 빤히 쳐다봅니다.
"영화 좋아하세요?"
"네? 네, 좋아해요. 근데 갑자기 영화는 왜요?"
"그거 영화에서 나온 팔찌잖아요, 소원팔찌."
"아, 맞아요. 이 영화 보셨나봐요?"
"그 영화,"
해는 점점 지면서 어둑해지는데, 아직은 제대로 된 목적지를 정하진 못 했습니다.
막연히 집이긴 하지만요, 뭔가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네요. 이유는 확실하진 않지만
"좋아해요. 저도 그 팔찌 있는데."
좋아한다며 웃는 그 입이, 마주친 그 눈이, 온통 붙잡는 느낌이라 그런 것 같네요.
"또 어떤 영화 좋아하세요?"
인연은 거창한 말로 시작하는 게 아니니까요. 아주 사소한 것이 우연을 만들고, 우연들이 모여 인연이 되고, 인연은 운명을 불러오게 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어쩌면 오늘 하루가 좋은 날로 남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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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잔
~요! 시리즈가 아닌 새로운 글로 와봤습니다.
전부터 써보고 싶었던 시리즈 글인데요!
제목이 뻔한 이야기인 이유는
'연애'라는 평범한 주제를 과정처럼 나눠서 글로 풀어낼 예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과정으로 나누었기 때문에 첫 편은 [만나고] 가 되는 거죠.
저의 부족한 설명이 도움이 되셨나요? 핳
민현이만이 남자주인공인 것이 아니라 매 화마다 멤버는 바뀔 거구요,
글이 짧기 때문에 한 편 속의 전개가 오늘처럼 약간 어이없게 빠를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정말 많이 부족한 글이니 가볍게 읽어주시되,
연애의 과정? 시간의 흐름에 따른 마음의 변화에 집중해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약간은 판타지 같은 글인데...ㅋㅋㅋㅋㅋㅋ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다음 과정을 함께하고 싶은 멤버는 누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