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재, 향수.
피리부는 사나이.
Prelude.
"전정국. 또 이러고 있네. RM. 얘 또 뭐야?"
솜사탕 같이 부드러울 것 같은 포근한, 눈에 유난히 띄는 민트색 머리의 사내가 'RM'을 불렀다. 걔 냅둬, 지금 벌 받는 중이니까. RM의 한마디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정국에게 다가갔다. 너 언제까지 이럴래? 이래서 애새끼는 들이는게 아니라고 말했는데-. 그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정국이 벌떡 고개를 들었다. 있는 힘껏 째려보는 그에 남자가 큭큭대며 웃었다. 어유, 니가 그런다고 내가 무서워 하겠냐. 이렇게 기둥에 묶여서, 아무것도 못하고있는데. 과장스럽게 박장대소를 했다. 어유, 우리 정국이 어쩌냐.
"슈가형, 그만놀려. 우리 꾹이도, 다 정의심에 그랬던거니까."
"뭐야, 제이홉. 너도 거기 있었나봐?"
"응. 같은 조였어."
"볼만했겠네. 너나, 쟤나. 미친놈인데. 한명은 정의심에 불타오르고, 한명은 총질에 불타오르고."
"뭐래. 웃기는 소리 하지마"
"웃기는건 니 얼굴이고."
정국을 놀리던 시간은 순식간에 슈가와 제이홉의 싸움으로 번졌다. 둘은 서로를 노려보며 거친 말들을 내뱉었고, 정국은 고개를 저었다. 저 형들 또 시작이네-. 그러곤 언제 다 풀은건지, 기둥에 속박되어 밧줄러 묶였던 몸을 일으켰다.
"리더! 10분 지났으니까 가도 OK죠?"
* * *
"야, 조커. 너, 눈깔... 아니. 눈 두덩이 요 부근쯤에 장미 문신 새겨진애 못봤어? 대충 스무살쯤 됐을텐데."
"...왠일이예요, 여기까진?"
"용건이 있으니까. 아, 빨리."
"장미 문신?"
한 사내가 '조커'라 불리운 남자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씨끌벅적한 술집의 바텐더인 조커는 지금 일하는중이라며 쉿,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대었다. 제발 이렇게 바 안으로 좀 들어오지 말아요, 라는 말에 남자가 미안- 하며 돌아나와 조커의 앞에 앉았다.
"응. 장미 문신. 리퍼가 걔를 얼마나 찾고있는데. 완전 걸작이라면서."
"변태새끼. 도중에 도망친 놈 찾는거예요? 그 새끼 변하질 않네"
"아 씨발, 생각만 해도 열받아. 그때 블랙옵스 그 새끼들만 아니었음 완성이었는데, 색 못입혔다고! 라면서 얼마나 호들갑인지. 내가 죽는다 내가 죽어."
조커가 글라스를 닦으며 큭- 웃었다. 남자는 정말 진절머리 난다는 듯 한숨을 푹푹 쉬다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집어넣어요. 아 제발. 아 제발 꺼내지마아..."
"부탁 하나만 들어줘."
"하... 이 개..."
조커는 욕을 하면서도 그가 꺼내든 것을 받아들었다. 화려한 그림이 새겨져 있는 '티켓'이었다. 티켓에는 'Circus of The Hamelin' 라는 문구가 필기체로 적혀있었다. 조커는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제 앞주머니에 넣었다. 하멜른이라, 대놓고 웃기는구나 이사람들이- 하며 글라스를 빛에 비춰보았다. 오, 퍼펙트하다. 컵을 남자의 앞에 내려놓고 물었다. 골드 메달?
"아니, 잰틀맨 잭."
"지다운거 마시네"
"이 티켓. 그냥 좀 돈있어보이는 놈들한테 한장씩 줘. 다음달이야."
"...서커스... 아주 이젠 별 수를 다쓰네요?"
"뭐, 돈도 벌고. 취미 생활도 즐기고 그런거지."
"변태짓이 뭐가 취미 생활이라고."
조커는 혀를 내두르며 얼음과 위스키를 준비했다. 내가 돈 많은 사람들로 알아서 잘, 굴려줄게요. 새로 만든 하멜른인가 뭔가, 재밌어보이니까. 조커가 사악하게 웃었다. 남자는 역시 너도 변태새끼야, 하며 조커가 건내는 잔을 받아들었다.
* * *
정국은 몸을 풀었다. 어깨가 무겁다. 작전 실패의 대가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냥 단순히, Go or Stay의 지시만 내리는 역할뿐이었는데. 옆에 무전을 듣던 리더가 있었음에도 자신의 잘못된 타이밍 계산으로 작전이 망했다. 결론적으로 피바다를 봤으니, OK라던 리더의 말은 크게 위로되지 않았다. 그냥 기분이 우울했다. 첫 작전이었으니 괜찮다, 라는 제이홉의 위로에도 정국은 울적했다. 슈가형이 없어서 차라리 다행이었나- 중얼거렸다. 스트레칭을 마친 그가 달리기 시작했다. 설치된 몇몇의 장애물을 피하고, 넘으며. 생각을 지웠다. 다음 기회가 오면, 잘해야지. 그 뿐이다.
땀범벅이 될 때 까지 달리던 정국이 본관으로 돌아와 홀 쇼파에 드러누웠다. 한참 엎드려있다가, 어느새 잠들었을까. 눈을 떠보니 RM이 맞은편에 앉아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 리더. 언제왔어요?"
"음. 10분 전 쯤?"
정국의 물음에 RM이 시계를 들여다보며 답했다. 그리곤 다시 신문으로 눈을 돌렸다. 정국이 몸을 일으키려던 찰나, 주르륵 흐르는 담요를 보며 미소 지었다. RM은 '젠틀'이라는 단어가 제일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리더의 귀감을 보여주는, 그런사람. 정국은 저도 모르게 RM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럴 시간 있으면, 들어가서 잠이나 자지?"
"아... 아이, 그런게 아니구요. 리더, 새삼... 잘생기셨네요"
"입에 바른 소리하지 말랬다."
"에이, 사실인걸 어쩝니까."
정국이 넉살 좋게 웃었다. RM이 신문을 접어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정국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정국은 시선을 피해야하나 싶다가도, 한참 RM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 속의 비춰진 제 모습이 보일 때 까지, 깊게. 그런데, 그때. 작은 소리하나 없이 RM의 뒤로 한 남자가 까꿍! 소리를 치며 솟아났다. 어디서 나타난건지, 정국은 기겁하며 놀라 뒤로 자빠졌다.
"RM! 까꿍이라니까?"
"...놀랍지도 않다 정말."
"오랫만이야, 자기. 어? 저 뒤로 넘어간 친구는 처음보는 아인데?"
"... 정국아. 빨리 들어가서 자라."
낯선이의 등장에 RM은 정국에게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낮은 목소리의 그는 보기 드물었고, 그럴때 그 말에 거스르는 건 거의 자살행위나 다름 없었으니까. 정국은 그가 누군지 궁금했으나 빠르게 방으로 올라갔다. 남자는 아쉽다는 듯 RM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쟤는 누구냐니까? 하며 물었다.
"네가 알것 없어."
"아유, 매정해. 어머! 피부 까칠한거봐. 말을 까칠하게 하니까 피부도 까칠하잖아. 로션 하나 줄까?"
"됐어. 왠일이냐 니가?"
남자는 한껏 RM의 등에 기댔던 몸을 일으켜 그의 옆에 앉았다. RM. 내가 왜 왔겠어. 블랙 옵스의 정보상인 내가. 남자는 간사하게 웃었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한 뼘 크기의 종이를 꺼내들었다.
"이거 때문이야."
"왠 티켓... 서커스? 이게 뭔데."
"우리, 나라의. 충실한 암부인 블랙옵스는 이런걸 미리 알고 차단해야 하잖아"
"돌려 말하지 말고, 확실하게 말해 정보상."
"이름 불러주면, 말할게."
남자가 RM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RM은 대꾸없이 허벅지를 뺐고, 남자는 살짝 화가난 듯 웃다가 다시 그의 팔짱을 꼈다.
이름, 불러달라니까?
"싫어."
"그럼 얘기 안해"
"...급한건 네 쪽 아냐? 정보팔러 직접 왔으면서"
"이게다 당신이 보고싶어서 온거지. 정보는 뭐, 다른 쪽에 팔아도 돼"
가식적으로 웃는 남자를 보며 RM이 한숨을 쉬었다. 무슨일이냐고-.
"라텐."
* * *
"Tyer, Tyer. Bruning bright in the forests of the night, What immortal hand or eye could frame thy fearful symmertry?"
어둠속에서 한 남자가 중얼거렸다. 호랑아, 호랑아. 한밤 숲에서 이글이글 불타는 호랑아. 어떤 불멸의 손이, 혹은 눈이. 네 무서운 균형을 빚어냈지? 어떤 머나먼 심해나 하늘에서. 네 두눈의 불길이 타올랐지? 남자는 한참 중얼거리다가 미친듯이 웃었다. 어디있니, 어디에 숨은거야 내 장미? 소리를 한참 지르다가, 철제 침대에 묶인 소년에게 다가갔다.
"안녕, Babe. 오... 너는 여기... 윗 입술...라인이 참 아름답다."
소년은 퉁퉁 부어버린 눈으로 눈물을 계속해서 쏟아냈다. 재갈이 물렸을 뿐 더러, 소년에게선 노시라 나올 수 없었다. 잡혀오자마자, 목을 당했으니까. 이미 목 아래로는 어떤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소년은 발버둥 칠 수도 없었다. 오히려 죽고싶었다. 빨리. 하지만 남자는 소년을 가만 두지 않았다. 열심히 소년의 입술라인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더니, 허리쪽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예쁜. 장미를. 새겨 줄게, Babe."
소리없는 아우성과, 끝없는 눈물로 몇분이 지났을까. 남자는 깔깔대며 몸을 일으켰다.
"아가야. 네 소원은 뭐야? 죽는거야? 음... 싫은데. 아직 3일밖에 안됐는데. 흠... 그래. 뭐. 다 그렸으니까, 죽여줄게."
남자는 어디론가 가더니, 은빛의 총을 들고 소년에게 다가왔다. 소년은 이제 죽을 수 있구나, 하며 두 눈을 꼭 감았다. 총구가 소년의 이마에 닿고, 남자는 셋 하면 쏠게. 하며 총을 살포시 장전했다. 하나, 둘, 셋- 과 동시에 탕-, 총성이 울리고 남자는 깔깔대며 웃었다.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을것 같아? 큭... 병신. 너는 내 인형이야, 아가야. 내!! 씨발!!!! 인형이라고!!! 내 인형!!!! 내가 퍽이나 쉽게 널 죽여주겠다. 웃긴건 또 믿어가지구. 눈 꼭 감고, 어휴 병신. 이래야 내 인형이지. 크하하하, 아가야. 우리 좀더 보자...?"
남자가 미친듯이 웃으며 소년의 뺨을 쓰다듬었다. 아가, 우리 오래보자. 남자는 깔깔대며 지하실에서 나왔다. 나오자 마자 보이는 곤색 가죽쇼파에 드러누웠다. 가죽의 질감에 남자가 손을 뻗어 쇼파를 쓰다듬었다. 내 장미... 도대체 어디간거지? 분이 가시질 않았다. 그렇게 즐거운시간을 보냈는데... 남자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Dust off your sneakers, Love."
쥐 떼들로 고생하던 마을이 있었다. 한 사내가 나타나 천 냥을 주면, 자신이 모든 쥐를 처리해 주겠다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말도 안됀다며 손을 저었지만 사내는 강한 자신감을 내비췄다. 사내는 피리를 불어 쥐 떼들을 강으로 빠트렸다. 마을은 평화로워졌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쥐들이 그 피리소리를 따라간 것이 아닐수도 있다며 사내에게 약속했던 천 냥을 주지 않았다. 화가 난 사내는 피리를 불어 마을의 어린 아이들을 데려갔다. 마을 사람들은 기겁하며 천 냥을 줄테니 아이들을 돌려달라 했다. 하지만, 사내는 두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피리부는 사나이, Prelude.
End.
-
아직은 서곡이니, 아직 우리는 더 볼 시간이 남았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검은 배경에, 하얀 글씨. 가독성이 떨어질까 걱정이긴 하지만,
원하는 글의 느낌(?)을 위해선 딱 검은 배경이 맞더라구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이 장르를 뭐라고 해야할까요... 누아르를 원하긴 하는데... 이게 뭐라고 해야할까...
조직물... 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범죄수사물도 아니고...
그냥 느낌만있는데 말을 설명을 못하겠어요. 바본가봐요.
아무튼, 오늘도 즐거운 감상 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