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쓰레기를 비우러 가고, 그 애는 내 뒤에서 말없이 따라와 내가 흘린 종이를 주워 주는 그 짓도 김동영이 오자 끝이 났다. 김동영은 쓰레기 청소 당번 고정이었고, 내 청소는 국어교육실로 바뀌었다. 그렇게 그 남자애도 보지 않게 됐다.
그 때까지만 해도 몇 학년이었는지, 왜 나를 그렇게 도와준 것인지. 많은 것들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았다기보다 떠오르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겠지.
그리고 일주일 쯤 지났나. 모든 반이 이주 뒤 있을 체육대회를 연습하고 있었다.
“아 빨리 와!!”
“아 기다려 진짜 빡치게 하지 마라.”
먼저 밥을 다 먹은 김동영이 자꾸만 교문 앞 편의점을 다녀오자며 떼를 썼고, 알겠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가준다며.
아니 지금?
자리에서 일어난 김동영은 빠르게 움직였고, 나 역시 그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 급하게 잔반을 버렸다. 저 멀리 사라지려 하는 김동영의 뒤를 따라가려 바삐 움직이던 찰나, 무섭게 몰려오는 남고딩들 사이에서 빠져나가지 못 하고 있었다.
어, 가야 되는데. 아, 씨 김동영은 어디로 갔어. 저 멀리 가고 없어진 김동영을 원망하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데
“어!!”
꽤나 덩치가 큰 남학생이 뛰어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의 어깨에 살짝 밀려 뒤로 넘어질 뻔 했던 때
“조심.”
누군가 내 뒤에서 나를 받쳐준 덕분에 크게 넘어지는 쪽팔림은 겪지 않았다. 너무 놀랐던 차라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쉰 뒤 바로 뒤에서 들리는 낯설지 않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면
“다칠 뻔 했잖아요.”
그 아이. 그 아이가 서 있었다.
“야 괜찮냐?! 그러니까 빨리 오라니까!”
“어? 어어..”
보이지도 않던 김동영이 학생들 사이에서 날 빼갔고, 나는 네게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못 한 채 빠져나왔다. 김동영이 좋아하는 빵을 먹으면서도 아까의 장면이 자꾸 떠올랐다. 결국 김동영이 내 빵을 한 입 베어 물 때 정신을 차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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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차라리 서프라이즈를 틀어 주면 재밌게 보겠다 진짜.”
“저기 반장이 너 기다린다. 얼른 청소나 하러 가”
내가 든 영화 동아리에 들지 못한 김동영은 내 바로 옆 교실에서 시행하는 다큐 동아리에 들었다. 맨날 ‘동물의 왕국’이나 ‘과학자들의 명언’ 이런 걸 보여 준다며 푹 잔 김동영의 툴툴거림이 더 길어지기 전에 나는 그를 반장에게 보냈다. 김동영은 나를 한 번 째려 보더니 결국 잠이 덜 깬 눈을 하고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뭐. 뭐. 어쩌라고.
왜 이렇게 청소 운이 없는 건지. 오늘 아침부터 속이 안 좋다던 연주가 조퇴를 하는 바람에 혼자 하게 된 청소가 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있겠나. 발걸음이 천근만근. 겨우 올라갔더니 동아리 활동이 아직 진행중이었다.
독서 동아리. 도서관 에어컨이 고장이 나 동아리 실을 옮겼다는 것쯤은 아침에 들었다. 살짝 보이는 창 안의 풍경은 너무나도 삭막했다. 정말이지 책 읽는 소리만 들릴 것 같아 ….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끝이 난 건지, 하나 둘 일어나며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다. 첫 멤버가 문을 열고 나오고 나서야 교실에 들어간 나는 칠판지우개를 들고 칠판을 지우기 시작했다. 아우 무슨 이렇게 높이까지 썼어. 낑낑거리며 칠판을 다 닦고는 뒤를 돌았는데, 아직 안 나간 한 사람이 있었다.
“…어.”
그 안 나간 한 사람이, 내 시선을 끌었다. 그도 나를 알아본 듯 짧은 소리를 내뱉었다. 우린 서로를 알아봤고, 동시에 헛웃음이 터졌다.
자주 마주치네.
그러게요.
그래, 이동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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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청소 언제 바뀌었어요?”
“얼마 안 됐어. 아, 맞다.”
그냥 인사만 하고 나갈 줄 알았던 이동혁은 책상에 앉아 내게 말을 건네 왔다. 누나 동아리는 어디예요? 그럼 1 층에서 해요? 등 가벼운 질문에 답을 해 주다 문득 생각이 나 입을 열었다.
“어제. 급식실에서 고마워.”
이동혁은 생각이 안 나는 듯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곧 아, 하며 나를 보며 웃기 시작했다.
“누나가 그 형들 사이에서 치이고 있었잖아요.”
“치인 거 아니거든?”
“완전 밀려나던데.”
그런 그의 말에 작게 웃었다. 그 얘기를 시작으로 말문이 트였다. 독서 동아리냐는 나의 물음에 이동혁은 독서 동아린데, 축구부 형이 자꾸만 불러서 제가 무슨 동아리인지 모르겠다며 내게 툴툴댔다.
그리고 약 이주간은 그 상태였다. 내 청소가 바뀌기 전까지 그는 일주일에 두 번. 아니, 시간이 날 때 자주 와 내 청소가 끝날 때까지 나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다.
“나 내일 청소 바뀌는데.”
“벌써 그렇게 됐나 시간이?”
“빠르지.”
“지우개 줘 봐요.”
그는 간간히 내게 반말을 하며 장난을 치기도 했고, 나 역시 이동혁의 반말이 기분 나쁘지만은 않아 별다른 저지는 하지 않았다. 그저 그는 내게 들린 지우개로 내가 닦지 못 한 칠판 위쪽을 닦아 주며 웃을 뿐이었다.
약 이 주 동안 우리는 꽤 많이 친해졌으며, 딱 선을 넘지 않을 정도의 장난을 주고받았다. 또한 가끔, 아니 자주 연락을 했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는 바람에 김동영이 날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했다. 누구야? 뭐. 누군데~? 아 꺼져.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이랬다.
“내일 체육대회 때 몇 시에 와요?”
“내일?…어…….”
이동혁은 그저 가만히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의 눈은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3은 체육대회 종목 참가가 아니면 등교 시간이 자유라는 말 때문이었다.
“저 열 시에 축구경기 있는데.”
“……”
“보러 올 거죠?”
녀석이 결국 진 듯 먼저 말을 꺼냈다. 사실 열 시에 축구경기가 있고, 동혁이가 출전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걔 축구 나간다더라. 걔 누구? 그 이동혁 있잖아. 어느새 이동혁이 누군지 다 알아온 김동영이 내게 귀가 닳도록 얘기했기 때문이다.
“올게.”
그런 내 말에 그는 만족한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 종 쳤다. 내가 정리하고 갈게요. 끝나면 카톡 할게요.” “어떻게 맨날 그래!!!” 끝까지 괜찮다고 했지만 등을 떠미는 그의 손에 의해 나는 먼저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 때는 몰랐다. 이동혁의 다음 교시는 담임선생님 시간이었고 그는 나 때문에 매일 꾸중을 들으며 교실에 들어간 것을.
-
-누나 학교 오고 있죠?
9시 40분이 돼도 학교에 간다는 말이 없어 결국 연락을 한 네가 귀여워 보인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 와중에 내가 김동영에게 데이터가 없다며 찡찡거린 걸 들은 건지, 문자로 보낸 이동혁에 웃음이 나왔다. 이따 말없이 학교 가서 놀래켜 줘야지 하는 생각에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하나 둘 셋 넷 - 둘 둘 셋 넷.
“아 왜 이렇게 늦게 와!”
학교에 도착하자 이미 운동장에서는 축구 경기에 출전하는 학생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거의 사십 명의 남학생들이 몸을 풀고 있었고, 나는 김동영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김동영은 덥다며 손으로 부채질을 했고, 이동혁은 저를 찾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한 번 웃어 보였다.
그 때의 이동혁은 참 예뻤다. 무슨 감정이었을까. 내리쬐는 햇살 아래의 그가 참 예쁘다 생각했다. 양 쪽 선수가 인사를 했고,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에 경기는 시작됐다. 왜 축구부 형이 이동혁을 자꾸만 불러냈는지 증명이라도 하듯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이동혁은 골을 넣었다.
“어!!”
이동혁은 본인의 팀인 2학년 애들과 함께 세리머니를 했고, 골이 들어갔음에 놀란 나는 어! 하고 짧은 소리를 내뱉었다. “넌 누구 편이냐.” 하는 김동영의 소리에 왜일까 웃음이 나왔다.
세리머리를 마친 이동혁의 눈은 나를 쫓았고, 나는 무의식중 그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렇게 경기는 3:2로 2학년의 승리였다. 이동혁과 골을 넣은 다른 학생들은 2학년의 우상이 되었고, 그는 그저 멋쩍게 웃어보일 뿐이었다.
-
“씨…”
괜한 서운함이 몰려왔다. 김동영은 며칠 전부터 연락하던 여자 후배와 오늘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며 발에 모터라도 달린 것 마냥 먼저 사라져 버렸다. 모두가 가버린 운동장을 혼자 걸었다. 건물 너머로 지고 있는 노을이 예뻤다.
김동영이 여자친구를 사귀지 말라는 게 아니다. 나도 걔가 연애 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그냥, 아무도 없는 운동장을 혼자 걸으려니 조금 쓸쓸할 뿐이었다.
“누나.”
“어?”
그러다 갑작스레 들리는 목소리에 뒤를 돌았다. 텅 빈 운동장에 나와 이동혁. 이 둘만이 있었다. 어디 가요? 하는 그의 물음에 집이라 대답하니 그는 같이 가자는 말과 함께 내 옆에서 걸었다.
“오늘 골 넣었는데.”
“봤지!”
“멋있었죠.”
그런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멋있었어. 사실이니까. 또한 그를 본 우리 학년의 여학생들 모두가 소리를 질렀다. 우리 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 그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누나.”
“응?”
“좋아해요.”
멈칫,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봐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심장이 주체할 수없을 만큼 가빠르게 뛰었다. 왜일까. 지나가는 노을 아래 선 네 모습이 예뻐 보여서였을까 아님 나를 내려다보는 큰 키 때문이었을까.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던 그 날에,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나도.”
“…네?”
“나도 좋아해 동혁아.”
그날따라 뒤돌아 본 운동장이 넓어 보였다. 운동장이 넓은 것인지, 너와 나의 발걸음이 느렸던 것인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그저 너와 맞잡은 손을 흔들며 걸었던 운동장이, 모든 거리가 예뻐 보였을 뿐이었다.
열여덟, 열아홉. 바야흐로 여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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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
평소에 쓰던(?) 물과 좀 다른 일상 학교물을 쓰려니 조금 어렵네요! 하하.. 여러분들이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ㅠㅠㅠ 에이도스의 업로드 주기는 아직까지는 딱히 정하지 않았어요! 암호닉 신청 기간두요..! 참고로 '愛夢::애몽' 때 쓰셨던 암호닉과는 차별화를 둘 예정입니다! 다시 받는다는 말씀이죠..! 아직 많이 부족한 글이겠지만, 늘 읽어 주시는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 +) 과거 회상편이기 때문에 조금 전개가 빠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