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킥 메르헨
(Psychic Maerchen)
w. 제이제이
"..."
"..."
"..."
"..."
관린의 방 안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막상 찾아오긴 했지만 선뜻 먼저 말을 꺼낼 용기는 없는 셋과, 그 보다 더 용기가 없어 고개도 못들고 있는 하나.
한참을 창 밖만 바라보던 세운이 고개를 돌려 관린을 바라보았다.
"...고개 들어."
나직한 음성에 움찔, 어깨를 떤 관린은 그의 말 대로 고개를 들어 저를 바라보던 세 명과 눈을 마주쳤다.
꽤 자주, 꿈에도 나왔던 상황이다. 어쩔 땐 꿈 속의 친구들은 무시무시한 경멸의 눈빛을 보내고 있기도, 또 어쩔 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안아주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그냥, 다들 복잡미묘한 표정일 뿐, 다른 어떤 감정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라이관린."
"..."
"대답 해."
"...응."
"그래서. 잘 지냈어?"
"...아니. 잘 못지냈어."
"왜? 잘 살겠다고 떠난거, 아니었어? 우린 네가 돌아오고 싶지 않을 정도로 잘 살고 있는 줄 알았어."
"..."
"그래서 찾지 않았어. 찾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그래. 사실 우리가 굳이 마음 먹고 널 찾고자 했다면 이미 오래 전에 찾았을거야. 하지만 우린 그러지 않았어. 왜냐면...모든 사람들이 시간이 필요했던 것 처럼, 너도 시간이 필요할거라고 생각 했으니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힘들었던 시간은 모두 묻어두고 괜찮아진 모습으로 돌아올거라고 생각 했으니까."
"..."
"하지만 이제 보니까 그게 아니었나보네. 넌 아직도 그때의 그 시간에 머물러 있어. 라이관린. 너 그러다가 죽어. 다른 무엇도 아닌, 네 자신이 너 스스로를 목 졸라 죽일거야."
세운이 덤덤한 척, 말을 이었다.
자꾸만 입술이 떨려서 틈틈히 숨을 골라야만 했지만, 어쨌든 차분하게 말을 끝마쳤다.
사실 세운은, 관린이 밉다기 보단 짜증난다- 고 표현하는 쪽이 맞다고 생각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여주를 자꾸만 울리니까.
그가 돌아온 날 화를 냈던 것은, 관린의 앞에 서 있던 여주가 곧 울것같은 얼굴이었으니까.
그리고, 관린이 떠난 날. 여주는 울었으니까. 그 때문에 오랫동안 힘들어했으니까.
그 때문에 세운은, 사실 관린에게 매우, 짜증을 내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네가 돌아옴으로써 여주가 더이상 울지 않는다면, 난 널 미워할 이유가 전혀 없어.
"세운이 말이 맞아. 계속 걱정했어. 하지만 넌 우리의 손을 뿌리쳤지."
"...그럼, 날 미워하지 않는거야?"
"아니. 미워하는데? 너 짜증나, 라이관린."
여주가 무척이나 단호한 표정으로 관린의 말을 딱 잘라 부정하자, 그의 어깨가 다시금 축 늘어졌다.
"하지만 네가 자꾸 그런 얼굴이면 더 미워할꺼야."
"..."
"이젠, 좀 웃어. 우리 언니도 네가 이렇게 힘들어하는거 원치 않을꺼야."
"..."
"...우리 언니는 네 웃는 모습에 반했거든."
그 말에 결국 관린의 울음이 터졌다.
결국은 돌아갈 곳이 있었기에 마음 놓고 방황한 것이다.
이렇게나 이기적인 저가, 제멋대로 굴어도 결국은 친구들은 저를 다시 받아줄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기에.
"미안해...난 그냥, 이곳을 벗어나면 살 수 있을 줄 알았어...근데, 숨은 쉴 수 있게 됐는데...그 외의 다른 건, 못하겠더라. 계속, 계속. 간신히...숨만 쉬면서 살아왔어."
관린의 눈물 젖은 고백에, 동현이 머뭇대며 그의 어깨 언저리를 다독였다.
지금 현재 그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였다.
여주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입술을 꾹 깨물었고, 세운은 다시 먼 허공으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누군가의 기다림이 끝났고.
집 나갔던 탕자는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
"...잘 돌아왔다."
다니엘이 손을 뻗어 관린의 흑색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세상을 살 만큼 살고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 했는데도, 아직 이 사람 앞에 서면 어린 꼬맹이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죄송해요."
"그럴 필요 없어. 넌 그때의 너에게 있어 최선의 선택을 내린 것 뿐이야."
"..."
"그리고 난 널 이해한다. 살고 싶은게, 죄는 아니잖아."
민현이나 다니엘이나. 왜 그렇게 사람 속을 궤뜷는 말만 하는지 모르겠다.
황민현은 능력 탓이라고 하지만, 다니엘은 저보다 5살밖에 많지 않은데 왜 그렇게 '어른' 같은지.
이미 잘 갈무리 했다고 생각 한 눈물이 다시 후두둑, 무릎 위로 떨어졌다.
"왜 울어, 그만 그쳐."
"왜, 아무 말도 안해요?"
"...관린아. 나도, 소중한 사람을 잃어봤어. 도망쳤다가 돌아와봐도 봤어. 그러니까. 난 네가 어떨지 너무나 잘 알고 있어."
"..."
"결국은 버텨서 이렇게 돌아왔잖아. 난 그것만으로도 칭찬해주고 싶다."
"...왜 다들, 이렇게, 착하기만 해서,"
다시 엉엉 울음을 터뜨린 관린이 침대 위로 상체를 엎드리자, 다정한 손길이 뒷머리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다니엘의 병실을 퉁퉁 부은 얼굴로 나오자, 우연의 일치인지 그쪽으로 걸어오던 민현과 맞닥뜨렸다.
두 검은 눈이 마주쳤다.
이번 만큼은 어떤 부정적인 표현도 내비치지 않은 관린이 민현이 병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섰다.
민현은 그에게 까딱, 고갯짓으로 인사를 한 뒤 지나치는 관린에게 스치듯 말을 던졌다.
"다들 널 기다렸어. 라이 중위."
"..."
"집에 돌아온 걸 환영해."
말을 마친 민현은 병실 안으로 들어갔고, 관린은 두 주먹을 꽉 쥐고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어디선가, 따듯한 바람이 부는 듯 한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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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총사 화해 끝!
짧아서 미안합니다...다음 이야기를 덧붙이려니까 그냥 모든게 애매해서요...
전개는 빨리빨리 빼야죠...그래야 안지루하죠....
저는 이 글 완결을 15화 안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