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여자라 여태동안 맡았던 새끼들보다는 꼼꼼히 잘 할 거야. 뭐 작은 먼지라도 있으면 기겁하면서 치우고,
혹시라도 손에 뭐 묻으면 바~로 씻고, 어.. 그리고 뭐 중요한 일이 있으면 절대 안 까먹고. 알뜰하고 그래."
그치? 하고 날 보고 어색하게 웃는 윤기오빠에 나는 에? 내가? 이 표정을 하고선 오빠를 보았다.
오빠가 더 어색하게 웃으며 입모양으로 '그렇다고 해'하는데 나도 모르게 기계처럼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는데.
뭔 갑자기 이상한 소리야. 작은 먼지라도 있으면 내 코로 숨쉬어서 먹어버리고, 손에 뭐 묻으면 귀찮지 않을 때 씻고,
중요한 일 있으면 까먹어서 화영이한테 맨날 혼나는데.
"전정국 얘가 결벽증이 있거든."
"……!?"
"아, 그렇게 심한 결벽증은 아니고. 그냥~ 보통 사람들한테도 다 있는 작은 결벽증. 응."
"아."
하하- 웃는 윤기오빠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미워보이는지
알뜰하고 깨끗하게 만드는 건 진짜 한 순간이구나 싶었다.
피곤한지 팔짱을 낀채로 우리를 보는 눈빛에는 귀찮으니 '얼른 나가라'가 써져있어 나는 상당히 눈치가 보였다.
"뭐하고 있었어?"
"일어난지 얼마 안 됐어. 문 두드리는 소리 듣고 방에서 나온 건데."
"그래. 오늘은 좀 쉬어라. 쉬는데 방해해서 미안해. 내일부터 당장 일 해야 되는데.
무턱대고 여름이가 너 데리러 오면 웃기잖아.
그냥 인사 한 번 시킬겸."
"굳이 매니저 없어도 알아서 한다니까."
"대표님이 가만히 있냐? 너 예전에 매니저 없이 혼자 돌아다니다가 칼 맞을 뻔 했잖아.
누구라도 옆에 두고 다녀야지."
"더 위험할 것 같은데."
나를 턱짓으로 가리키는 전정국에 속으로 콧방귀를 꼈다.
그래요, 나를 옆에 둔다고 뭐 달라지나요? 그나저나.. 칼 맞을 뻔 했다니까 괜히 무섭고 그러네..
윤기오빠를 보다가 갑자기 나를 보는 전정국에 나도 모르게 진짜 바보같이 화들짝 놀라버렸다.
"매니저 한 번도 안 해본 거 아니야? 그런 애가 무슨 내 매니저를 해."
"너도 몇개월 하는 것도 아니고 어? 5년을 활동했음 괜찮잖아. 그냥 데려다주고, 일정 챙겨주고, 밥 챙겨주고.
얘 이런 일 엄청 잘해. 정말이야."
"여자가 해봤자 얼마나 잘 한다고."
여자가 해봤자 얼마나 잘 한다고? 쟤 지금 뭐라는 거야.. 부글부글 끓는 속을 찬물이라도 먹어서 풀고싶은데
물 먹고싶다고 말해도 차가운 말만 돌아올까봐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윤기오빠랑 전정국이 다른 얘기를 하길래 나도 모르게 계속 전정국을 보았다.
첫인상은 좋지 않아도.. 그래도 확실히 연예인이라 그런지 잘생겼네. 티비로만 보던 사람 보니까 신기하다..
왜 팬들이 티비로만 보다가 한 번 실물 보면 더 보러다니는지 알겠다, 알겠어.
한참 눈치없이 보고있었을까,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정말 최악이었다.
"뭘봐."
"네..? "
"뭘."
"……."
"보냐고. 너."
"저요…?"
그럼 누구- 하고 나를 차갑게 정말 차갑게 보는 전정국에 나는 아- 하고 시선을 다른 곳에 두었다.
윤기오빠는 쟤를 혼내주지는 못할 망정 아저씨처럼 껄껄 웃는데 새삼 얄밉다. 새삼..
아니 누가 나인 거 몰라서 저요?라고 했겠어. 나도 나한테 뭘보냐고 한 거 아는데! 사람이 원래 말을 걸어오면
자기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저요?라고 하는 거 아니야?
괜히 기분이 상해서 고개를 숙인채로 식탁만 주시하는데 윤기오빠가 말했다.
"자, 차키는 네가 가지고 있고. 원래는 얘 전에 같이 일하던 매니저들은 같이 살거나, 옆에 원룸에 살았어.
근데 아무래도 너는 여자이다 보니까. 둘이 같이 살 수는 없잖아?
집에서 출퇴근 하고.뭐.. 왔다갔다 하기 불편하면 방 하나 구해줄까?"
"아니!..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 어차피 한 두달 정도 하고 말 건데.."
자꾸 나를 팔짱을 낀채로 뚫어지게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들어보면 전정국이 나를 계속 쳐다보고있었다.
나보고는 뭘 보냐면서 지는 왜 쳐다봐..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
"너희 동갑인 건 알지? 말을 편하게 하던지 말던지는 너희가 알아서 하고.
내일부터 얘 엄청 바쁘거든. 어제 월드투어 마치고 오늘 한국와서 겨~우 쉬는 거라.
오늘은 우리가 그만 괴롭히고 가야될 것 같은데?"
"……."
뭘 괴롭혀. 해봤자 말 두마디밖에 더 했나? 저 피곤해하는 표정이 애잔하기도 하면서 왜 이렇게 별로인지
괜히 조금 기분이 별로라서 입술을 쭉- 내밀고선 고개를 들었는데 또 눈이 마주쳐서 표정을 풀고 바로 다른곳을 보는척을 했다.
한참 다른곳을 보고있었을까
이젠 나를 보지않겠지 싶어서 전정국을 보면 . 아직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저래. 왜 자꾸 쳐다봐. 설마 또 뭘 보냐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설마.. 설마..
"너."
맞나봐. 너- 하는데 왜 이렇게 심장이 떨려. 혼나는 것 마냥 심장이 마구 뛰고 난리야.
턱까지 괸채로 나를 무섭게 쳐다보는 전정국에 나도 모르게 침을 크게도 꿀꺽- 삼켜버렸다.
"나 어디서 본적 있지."
솔직히 저 말은 티비 속에서만 보던 작업용 멘트라서 솔직히 조금 심장이 두근 거렸다.
아마 남자에게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네? 네. 티비에서 많이 봤죠… 채널만 돌렸다 하면 노래 부르는 거 나오던데요.
아무래도.. 한류스타이시다 보니ㄲ.."
"그거 말고."
"아, 얼마전에 뉴스에 나온 거 봤어요. 그 대상 받으셨잖ㅇ.."
"아니. 그거 말고."
"아! 저 작년에 친구가 가요대상 티켓 줘서 한 번 가서 봤었는ㄷ.."
"말고."
말을 계속 끊어먹는 전정국이 재수없어서 주먹을 한 번 더 꽉 쥐었다. 저거 진짜.. 좋게 보려고 해도..!
"그럼.. 전 잘.. 모르겠는데요. 처음 보는데..."
"아니다."
"……."
"걔는 너보다 더 예뻤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등을 돌려 방쪽으로 들어가면서 가라는듯 손을 휘이- 저어보이는데
아.. 미안하네요. 내가 그 사람보다 덜 예뻐서. 되게 사람 무안하게 뭐 저런 말을 한대..?
윤기오빠를 어이없게 쳐다보자 오빠는 키득키득 웃으며 먼저 일어났다.
먼저 집에서 나가려는 윤기오빠를 따라 신발을 신는데 벌써부터 드는 이 불길함은 뭘까.
나... 괜히 한다고 했나.
사람에게 치이는 거 제일 싫어하는데.
"인기 없다며! 얼마전에 미국가서 상까지 다 받아 온 사람이잖아!
정 많고, 착하고! 그렇다며! 근데 왜 다 정반대야!"
"진정해. 나한테만큼은 인기 없고, 착하고, 정 많은 애야. 걔."
"그건 오빠한테나잖아!"
"와. 너 이렇게까지 짜증내는 거 처음봐."
"대놓고 초면에 나 무시를 하지 않나. 뭐 어디서 봤냐면서 이상한 멘트 쳐놓고 또 이상한 말을 하지를 않나.
그리고 알뜰은 뭐고, 결벽증은 뭐야. 그리고! 그리고.. 눈빛은 뭔데에.. 뭘 보냬! 나한테 뭘 보냐구! 막!
그런 사람인줄 진작에 알았으면 한다고도 안 했어."
"워워. 사람은 쉽게 판단하면 안 돼. 너희 이제 한 번 봤어. 임마."
"진짜 미워."
우쭈쭈- 하고 나를 또 애취급하는 오빠가 미웠다. 해봤자 오빠랑 나는 2살 차이인데 말이다.
사람이 아무리 모든 걸 다 가지고, 피곤한 상황이라도
초면인데 그렇게 예의없게 행동할 건 뭐람? 이래서! 이래서 내가 연예인을 별로 안 좋아해.
다 가면을 쓰고 살잖아. 티비를 틀면 웃는 얼굴로 노래를 하고, 얘기를 하던 사람이 원래는 그 모습이 아니라는 거 너무 웃기잖아.
추워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선 고개를 숙여 하얗게 쌓인 눈을 툭툭 치는데 윤기오빠가 미안한지 야아- 하고 나의 어깨를 톡- 치고선 말한다.
"미안하다. 어? 네가 조금만 고생 좀 해줘. 조금 까탈스럽고 문제 많은 놈인데.
막 네가 생각하는 것 처럼 쓰레기는 아니야. 쓰레기가 감히 빌보드차트 1위까지 먹겠냐? 엉?"
"쓰레기라고 1등 안 먹는 세상이야 요즘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쟤 알고보면 되게 착해."
"……."
"많이 힘든 놈이야. 전에 소속사에서 계약 문제로 팀 해체돼서 다들 솔로활동 하는데.
혼자만 엄청 잘 되서 얼마나 미안해하고 맘 고생하는데."
"알았으니까…."
"응."
"나는 뭘 하면 돼?"
"자, 이거. 종이에 이번달 일정 다 적혀있어. 그냥 너는 이 시간에 맞춰서 전정국을 태우고 방송국까지 가면 돼.
전정국한테는 스케줄시간 2시간 전에 미리 연락 하고, 집 찾아가야 된다? 그리고! 이거 차 키.. 그리고 이거는 아파트 카드.
이거 대고 그냥 들어가면 돼. 정국이 집 비밀번호는 혹시 모르니까 카톡으로 남겨줄게. 그리고.. 어어! 그래.
지하주차장에 차 주차시켜놨다? 번호판도 같이 알려줄게."
뭘 2시간 전에 미리 연락까지 한대.. 몇년 가수 생활 했으면 혼자서 알아서 잘 준비하고 시간 되면 나오면 되지.
뾰루퉁한 표정을 하고선 지루한듯 일정이 다 써져있는 종이를 매만지자, 일이 끝나고 이제야 왔는지
화영이가 어머- 하고 윤기오빠의 옆에 서서 말했다.
"오랜만이시네요. 여름이랑 같이 밥 먹고 오는 길?"
"아, 네 안녕하세요 화영씨."
"네에. 어제는 여름이가 스테이크를 강제로 먹어서 체해서 난리 났었어요.
뭔 그리 비싼 걸 억지로 먹인대요? 먹기 싫다는 애 두고, 나 사주지."
윤기오빠가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 하길래 어깨를 으쓱 했더니 오빠가 푸하- 하고 웃어보였다.
억지로 먹었어? 말을 하지- 하며 아저씨처럼 껄껄 웃는데 괜히 또 얄미워서 주먹을 꽉 쥐었더니
오빠가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선 갈게- 하고 차에 올라탄다.
"내일 늦지말고, 모르는 거 있으면 나한테 전화 해."
화영이가 손을 흔들자 윤기오빠도 손을 작게 흔들고선 출발했다.
내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자 화영이가 뭐야? 하고 내 귀에 바람을 불고선 말했다.
"너 오늘 연예인 보러 가서는 왜 나라잃은 표정이야? 설마 그 연예인이 김경진이야?"
"그거보다 더 충격적인 사람…."
"더 충격? 그럼 박명수? 아니야. 나는 박명수 좋던데."
"아니…."
그럼 누군데? 유희열? 유재석?하고 온갖 연예인을 다 말하는 화영이를 애잔하게 쳐다봤더니
화영이가 왜애 뭔데- 하고 기대하는 눈을 하고선 방긋 웃어보인다.
"전정국…."
"아~ 전정국…."
"……."
"전정국!?!?!"
평소에 전정국 노래를 많이 듣는 화영이기에 아- 하다가도 놀래서는 뒷걸음질을 치기에
세상 제일 불쌍한 표정을 지었더니 화영이는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선 말한다.
"근데 너 표정은 왜 그래! 완전 감사해야지! 전정국이면 콘서트 티켓팅도 3초만에 매진 되고,
돈도 꽤나 버는 앤데. 야 야 어떻디? 막 빛나? 등 뒤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막 그러더냐?
"응…."
"호오!!"
"거실에 앉아있는데 25층이라 햇빛이 장난 아니더라."
"야이씨. 진짜 어땠냐니까?"
내 어깨를 꽉 쥐고선 기대하는 눈을 하는 화영이에 기대하지 말라는듯 먼저 앞장서 걸어 빌라 문을 열며 말했다.
"연예인이라고 다를 거 하나도 없어. 초면에 사람을 무시하지를 않나. 뭘보냐고 꼽 주지를 않나.
집은 얼마나 쓸데없이 넓던지 거기서 자전거 타도 되겠더라."
"꼽을 줘?"
화영이도 날 따라 빌라 안으로 들어와 계단을 천천히 밟았다.
저녁시간이라 크게 떠들면 사람들이 안 좋아해서 우리는 최대한 속삭이며 말했다.
"우리 어디서 보지 않았어요? 이래서."
"그거 작업용 멘트잖어."
"응. 내가 모르겠다니까, 아니다 걔는 너보다 더 예뻤어. 이러더라?
어, 그래! 말까지 혼자 놨어. 아무 말도 없이. 아, 그리고 나보고 뭘봐- 이러더라?"
"와 미친놈 아니야."
전정국에 대해서 궁금하다며 해맑게 웃던 화영이도 듣고 짜증나는지 미친새끼! 하고 소리를 쳤고,
빌라 안에 화영이의 목소리가 진짜 크게 울려퍼져서 우리 둘다 놀라서 멈칫했다.
그게 또 웃겨서 푸흡- 하고 웃는데 화영이가 또 전정국 쌍욕을 하는데 이렇게 즐거울 수가.
집에 들어와서 평소에 하지도 않았던 청소를 하는데 화영이가 나를 이상하게 보았다.
너 설마 죽으려고? 하고 묻는 화영이에게 대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죽으려고 다짐해야만 청소를 하니..
쓰레기통을 비우려고 보니 내가 어제 버린 유리상자가 있기에 그 유리상자를 다시금 꺼내 쓰다듬으며 말했다.
"6년동안 고생 많았어. 너 덕분에 더 힘들었지만.. 덕분에 과거 생생히 기억할 수 있어서 좋았다."
"너 드디어 미쳤구나? 사물하고 교감하니?"
돌아오는 건 화영이의 쓴 소리였지만, 그래도 나는 이제 후련하니까. 그 나쁜새끼는 이제 잊고 나는 나대로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나서 쓰레기통에 다시금 유리상자를 넣고 밖으로 나왔다.
뭐 이리 추운지 슬리퍼만 신고 나와 발이 꽁꽁 얼 것 같아서 발을 꼼지락 거리다가 결국엔 다시 집에 들어와 양말을 신었다.
양말만 신고 다시 나갈 거라 문을 빼꼼히 열어놨더니 엄청 춥네에...
누워서 팩을 하던 화영이가 나를 보더니 팩이 떨어질 것 같으니 어색하게 입을 모아 호호- 웃으며 말했다.
"너 설마 진짜 그거 버리려고? 얘 이상해.'
"왜? 버리는 게 이상한 일이야?… 나 많이 이상해?"
"응. 열라 이상해. 한편으론 기특하고 기쁜데, 한편으론 열라 이상하다고.
절대 못 버린다고 꽁꽁 숨겨두더니 갑자기 뭔 바람이 불어서 당차게 버려? 남자 생겼냐 너?"
"남자가 생겼으면 내가 지금 집에 이러고 있을까…."
"아하~? 잘 버리고 와. 추우니까 빨리 문 닫고."
"양말만 신고 나갈 거야아…."
"양말만 신고 나갈 건데 문은 왜 열어놓냐구."
"알았어. 닫을게…."
"아! 우리 샴푸 다 떨어졌어. 나가는 김에 사와."
"네가 올 때 좀 사오지!.."
"나가는 김에 겸사겸사."
윤기오빠도 그렇고 화영이도 그렇고 다들 왜 이렇게 겸사겸사를 좋아해.
그러다 나가는 김에 겸사겸사 다쳐서 오라는 말까지 나오겠다 아주그냥?
겨우 추운몸을 이끌고 밖에 나왔을까 쓰레기봉투를 쥐고있는 손이 얼어버릴 것 같은 느낌에 빠르게 쓰레기장에 와서
쓰레기봉투를 던져보았다. 그래! 버려! 다 버리자! 훌훌 다 털어버리고 내 인생을 찾는 거야.
이 세상에는 쓰레기도 많지만, 착한 사람도 많아. 응! 맞아!
"아자아아아아! 나는 이제 나 말고 다른 것에 신경 절대 안 쓸 거고, 오로지 나만 보면서 살 거야."
시련당하고, 돈 없는 초라한 서민이 얼마나 부자보다 더 잘 사는지 보여줄게. 이 세상아 기다려! 하고 속으로 소리쳤을까
갑자기 옆에서 스륵- 소리가 들렸고, 나는 민망할 정도로 화들짝 놀라서 그쪽을 보았다.
뭐야.. 고양이잖아.. 야옹하고 작게 우는 고양이를 보고선 무시하자 무시하자 주문을 외우고 걸었을까
자꾸만 내 다리에 볼을 대고 부비는 고양이에 나는..
"고양아…. 밥은 먹었어?"
또 결국엔 이런 나 말고 다른 것에 동정심을 느껴 편의점에서 고양이 간식을 사다가 주었다.
그래 이제 다른 것에 신경 안 쓰지만, 동물은 제외하고.. 그래 그래..
근데 한가지 신기한 건
"아, 샴푸 안 샀다."
고양이 간식은 샀으면서 샴푸는 안 샀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어찌 잠도 안 오는지 새벽 4시는 되어야 잠이 들었다. 나 생각보다 긴장 안 한 것 같았는데
막상 눈을뜨고 준비하고, 택시를 타고 이 비싼 오피스텔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손이 막 떨려오기 시작했다.
오피스텔 입구에서부터 비밀번호를 대라기에 그 곳에 카드를 댔더니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오오- 하고 신기한듯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섰는데 엘레베이터에서 익숙한 사람이 내리기에 또 입을 떡 벌렸다.
유명한 여배우가 내리는데 얼마나 빛이 나던지 입을 떡 벌린채로 그분이 내 옆을 지나칠때까지 입을 다물지 못 했던 것 같다.
우와.. 냄새도 좋아. 아, 생각해보니 전정국 그 사람도 집에서 좋은 냄새가 났었는데.. 아, 아무튼.. 엘레베이터 안에 들어서
25층 버튼을 누르고나서 25층까지 가면서 별 생각을 다 한 것 같다. 갔는데 또 무시 당하면 어쩌지.. 고민만 하는데
벌써 25층에 도착했다. 쓸데없이 빠르게 도착하고 난리야..
문 앞으로 간신히 천천히 도착해서는 검지손가락을 들고서 초인종 벨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만 열 번을 하고선 눌렀다.
"아, 나 눌렀어. 어떡해.. 어떡해?"
괜히 눌렀나? 그냥 문을 두드릴 걸 그랬나? 아닌가? 어떡하지.. 아니야! 원래 벨을 누르지 문을 두드리지는 않잖아.
초조하면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이 있어서 손톱을 물어뜯는데 몇십초가 지나도, 몇분이 지나도 열리지 않는 문에
아무도 없나.. ? 자나? 싶었다. 아직 10시인 시간이니 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걱정이 되었다.
2시간 전에 오라해서 왔는데 정작 스케줄 가야하는 인간은 문도 안 열어주고.. 이게 뭐야..
어떡해야하지 아무 대책도 없이 뒤 돌아 엘레베이터를 탈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었을까
이때 갑자기 문이 천천히 열리기에 놀라서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엄..마야.. 집.., 집에 있었어요?"
"문을 열어줘도 안 들어오냐 넌."
"문을 언제 열어줬어요…? 지금 열어주셨는데.."
문을 살짝 열어둔채로 등 돌려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기에 닫히는 문을 빠르게 잡고선 열어 따라 들어갔다.
뭔 집이 이렇게 깔끔한지 조금은 더러워진 내 신발이 민망해질 정도였다.
그나저나.. 문을 언제 열었다는 거야. 긴 복도를 지나 거실로 가는 전정국의 뒷모습을 보고 말했다.
"언제!.. 열었는데요? 저 진짜 못 들었는데."
"무슨 무너져가는 집에서 살다왔냐."
"…에?"
"요즘은 집 안에서도 열어줄 수 있어."
아- 하고 바보같이 이해하는척 좀 했더니 이 사람이 나를 답답한듯 쳐다보았다.
아니... 모를 수도 있지. 그냥 몰랐구나? 요즘엔 이렇게도 열어진단다- 하면 되는데 왜 저렇게 차갑게 말해?
영화를 보고 있었는지 스크린에 비춰지는 영화를 쇼파에 앉아서 보기에
뻘쭘하게 서서는 나도 따라 흘낏 보다가 입을 천천히 열었다.
"근데 준비는 다 하신 거예요? 저희 12시까지 방송국에 가야 돼요. 라디오.. 12시까지니까
여기서 11시에는 나가야되지 않을까요?"
"……."
"뭐, 저보다 더 잘 아시니까. 알아서 하시겠지만! 그냥 확인차 물어본 거예요.
그 라디오 가끔 들었었는데.."
"……."
"어, 이 영화 저 엄청 좋아해요. 이거 안 보셨어요? 이거 남자주인공이 잘못도 안 했는데.
잘못을 뒤집어써서 대신 사형을 받는 내용이잖아요? 어, 이 정도까지 보셨으면 다 나왔겠네. 엄청 오랜만에 본다아.."
"말이 너무 많아."
"네?"
"너 말이 너무 많다고. 머리아파."
"……."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넌 거기 가만히 앉아있어."
"……."
"내가 일어나라고 할 때까지."
아, 죄송합니다.. 하고 뻘쭘하게 식탁 의자를 끌어다 '여기 앉아요?'하고 물으니 전정국은 귀찮은듯 고개를 끄덕인다.
저봐 저 싸가지.. 사람이 어색한 것좀 풀려고 말을 걸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쳐주면 되지 저 반응은 뭔 싸가지냐구.
괜히 뻘쭘하고 짜증나서 입술을 쭉- 내밀고 있다가도 전정국이 일어나길래 표정을 바로 풀었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는 전정국에 나는 치- 하고 콧방귀를 꼈다.
근데 저 사람 참.. 눈에 뭐가 그렇게 많은 게 담겨있는지 많이 생각이 들게끔 만들어버린다.
그냥 차가운 눈빛만이 아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눈빛 말이다. 아무렴 내 상관 아니지, 싸가지에는 싸가지로 대응하는 법이지.
대응하기는 개뿔. 가만히 앉아있으란다고 진짜 가만히 앉아있는 주제에...
정말로 가만히 앉은채로 주변을 둘러보는데 TV옆에는 팬이 줬는지 종이학이 있었다. 아, 저거 10년 전까지만 해도 선물 많이 해줬는데.
저런 선물 받아도 되게 기분 좋겠다.. 오오.. 저거 비싼 양주네? 저거 구하기 되게 힘들다고 했었는데.
몇십분이 지나서야 방에서 나온 전정국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지나쳐가기에 멀뚱히 올려다봤더니 전정국이 발걸음을 멈추고선 말했다.
"니 뭐하냐?"
"네?"
"안 가?"
"일어나라고 할 때까지 앉아있으라고 하셔서…."
"장난하냐?"
"네에…?"
"아니…."
"……."
"무슨 앉아있으랜다고 진짜…"
"…죄송해요."
솔직히 죄송할 일은 아니었는데. 습관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전정국이 나를 한심하게 보고선 가길래
쫄레쫄레 그의 뒷모습을 따라 걷는데 갑자기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나를 보기에 나도 따라 멈췄다.
뭔 말을 하려는듯 숨을 몰아쉬었다가 말고 다시 앞을 보고 걷기에 나는 궁금해 죽을 것 같았지만 다시 조용히 그를 따랐다.
나.. 이유없이 또 찍힌 거 맞지?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웬 비싼 차들만 있기에 놀래서 입을 떡 벌렸다. 와.. 여긴 거의 다 부자들만 사나봐.
여기에 내가 예전에 탔던 차 끼면.. 눈치없다는 소리 듣겠지.. 윤기오빠가 알려준 차 번호판을 찾아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
내 옆에 서서 걷던 전정국에게 도움이라도 청할까 싶어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차 어디에 주차 했는지 아ㅅ.."
분명 내 옆이었는데 먼저 앞장서 차를 향해 걷는 전정국에 나는 끝말을 조용히 읊었다.
"시는 구나..."
차에 올라타 몇분동안 운전을 하면서 너무 조용하게 왔더니 속이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 같았다.
문이라도 열까 싶어서 룸미러로 전정국을 힐끔 보면, 뭔가 열면 안 될 것 같아서 꾹 참고 운전대를 두손으로 꽉- 잡았다.
어제 새벽에 인터넷에 전정국의 이름을 치고 대충 봤더니 진짜 나랑 동갑이었다. 아, 물론 나는 빠른년생이지만..
룸미러로 한 번더 전정국을 보고선 얘기 할 타이밍을 잡다가 신호를 못 봤고, 우뚝- 멈춰섰다.
와아.. 앞에 차 박을 뻔 했다.. 욕 먹을 준비 하고 뒤를 살짝 돌아보았더니, 전정국은 핸드폰을 보던 시선을 잠시 나에게 두고선 말한다.
"운전 똑바로 해."
"네에…. 죄송합니다."
신호를 기다리면서 입술을 물어뜯는데 너무 조용하니까 이거는 진짜 아닌 것 같아서 살짝 고개를 틀고선 말했다.
"저희!.."
"……."
"동갑이에요!"
"……."
"저는 빠른이거든요. 제 친구들은 다 정국씨랑 동갑.
다 그렇게 친구 먹고 살아왔거든요! 우리도 말 놓을까요? 길면 두달정도 볼텐데."
"빠른은 취급 안 해."
"아…."
"앞이나 봐."
네에- 하고 뻘쭘하지만 앞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은척했다. 아니 빠른은 취급을 안 해?
해봤자 나랑 생일도 5개월밖에 차이 안 나면서 나이 부심이야. 나 같으면 그냥 친구 하겠다 진짜..
무슨 핸드폰을 책 읽듯이 스윗한 눈을 하고선 보는데 얼마나 또 저 모습이 기분이 나쁜지 입술을 또 삐죽 내밀었다.
기분나빠.
라디오에 나가선 얼마나 착한척을 하던지, 안 보이던 웃음까지 흘리며 스윗한척 하는데 얼마나 또 기분이 나쁘던지.
내가 보기엔 매니저들이 사정이 있어서 나간 게 아니라, 저 자식 옆에 있는 게 힘들어서 나간 게 분명해.
2시쯤 되어서야 끝나고 바로 집으로 갈까요? 내 말에 전정국은 피곤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 것도 별로 없는데 되게 힘들어하네.. 그냥 눈이 피곤해 보이는 건가.. 집에 들어섰을까 베란다 밖을 보자
하얀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아까는 안 오더니.. 눈 참 이쁘네, 이뻐. 눈을 한참 보다가
10시에 일어나 아무것도 안 먹었으니 점심이라도 먹여야 하나 싶어서 방에 들어간 전정국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식탁 의자에 앉아서 조금 기다렸을까. 그가 옷을 갈이입고선 나왔고, 나는 고개를 들어 전정국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점심은요? 점심 먹어야 되잖아요. 평소에 뭐 시켜 먹어요?"
"……."
"짜장면 좋아해요? 여기 주변에 짜장면 되게 맛있게 하는 곳 있는ㄷ.."
"안 좋아해. 오늘 스케줄 더 없잖아. 가."
뭔 말을 더 못 하게 끊어버리는데 난 이 남자랑 절대 말이 안 통하겠다 싶었다. 한 두번도 아니고 몇번 째 이러는지.
첫인상도 별로였어. 네에- 그럼 내일 또 올게요. 이 쫌팽이야. 속으로 그 말만 몇 백번이나 읊고선 일어나 현관문까지 걸어갔다.
무슨 지가 잘나가는 연예인이면 다야? 아주 아주 텃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재수 없는 사람이란 건 정확하게 알겠네.
문을 열려고 문고리에 손을 댔는데 왠지 모를 불안한 느낌에 잠시 멈칫했지만, 빨리 이 답답한 공간을..
전정국에게 벗어나고 싶어서 문고리를 돌려 열면..
"……!!"
"……."
초인종벨 버튼을 누르려던 김석진이 나를 보았고, 나는 급하게 문을 쾅- 닫았다.
뭐하냐? 작게 들리는 전정국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전정국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채로
벽에 머리를 기대어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내 손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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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러분! 암호닉은.. 엄.. 음.. 헷갈리니까!! 이번화에 다시 적어주세요! 번거롭겠지만 @_@ 헤헤..
눈덮!(덮밥 먹고싶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여 ㅎ헤헤헤ㅜ 사랑해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