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글자
글쓴이 / 페퍼민트티
( 에피소드 형식 )
추천 BGM : 조정치 - 때때로 ( feat. 강이채 )
01. 세글자
Q. 세글자로 할 수 있는 말은 얼마나 있을까?
A. 일단 내 손에 쥐어진 '참이슬'...
그리고 '좋아해','사랑해','보고파','누구를?'
'박지민'...
나는 박지민을 좋아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에 나이와 성별의 제약이 사라진 지금 21세기 이 시대에, 난 왜 그 한마디를 밖으로 꺼내 내뱉지 못하는 걸까. 왜 박지민에게 이 바다같이 깊고 넓은 푸른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는 걸까. 내가 누군데, 태권도장을 하는 아버지와 유치원교사이신 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건강한 참된 여성이 아닌가. 누구에게 기죽고 살지는 말라 라는 가훈 아래에서 자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신여성인 내가...
박지민에겐 사심 담긴 한마디를 못하는 거냐고오...
" 야 김태형, 부어 시발 막 부어. 어, 김여주 이 새끼 또 맛 간 거 아냐? "
철 없는 내 친구 금희가 날 흔들어 깨우려 든다.
" 이 미친년아, 취했냐? 존나 흥 깨는 ㄴ … "
그대로 잠식.
안녕 이슬아,
내일 또 보겠지만.
02. 카페인
Q. 세글자로 할 수 있는 말은 얼마나 있을까?
A. 내가 항상 들어가길 망설이는 이 곳 '카페인'
박지민, 내가 술을 먹었을 때에만 당당하게 부를 수 있는 그 이름. 나빼고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좁은 원룸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얼굴을 막 부비며 한탄하듯 부를 수 있는 그 이름. 부대끼는 속에 대자로 뻗어 천장을 노려봤다. 하, 내일 해장은 아이스티로 확정이겠네.
본투비 카페인 부적응자로 태어난 나에게 카페는 부적절한 곳이다. 커피가 몸에만 들어갔다하면 심장이 막 뛰었다. 본래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은 뛰기 마련이지만 그 정도를 벗어났단 말이다. 꼭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기분이 들기에. 그렇지만 내가 굳이, 굳이 집과 학교 사이에 자리잡은 '카페人'에 아침,점심 출석 도장을 찍어대는 이유. 바로 박지민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박지민은 카페인 마냥 내게 해롭기만 하다. 오늘도 저 흰 나이키가 날아다니는 검정 볼캡, 그리고 검정 찢청. 내가 환장하는 무채색의 박지민이 기다린다. 자길 닮은 복숭아 아이스티를 들고.
" 저, 복숭아 아이스티... 하나 주세요. "
" 네, 5,500원 입니다. "
" 여기 쿠폰... 다 썼는데… "
" 커피로 바꿔드릴까요. "
" 그, 그게 바꿔달라는 건 아니구... 새 걸로... 하나 찍어주세요. "
" 네. "
박지민이 찍어준 도장이 꽉 찬 쿠폰을 다시 지갑 안에 대충 우겨넣고 새로운 쿠폰을 받았다. 의자에 앉아 대충 세어보니 완성된 쿠폰만 5장이 넘었다. 난 이 쿠폰을 쓰지 못한다. 박지민이 동그라미 칸 안에 벗어나지 않으려고 심혈을 기울여 찍은 티가 나서이기도 하고,
' 쿠폰에 도장 10개 완성 시에 아메리카노 증정
- 카페人 - '
쓸 수 있는 날이 올까 싶기도 하고…
03. 복학생
Q. 세글자로 할 수 있는 말은 얼마나 있을까?
A. 너와 나의 카테고리, '복학생'
김태형이 제대했다. 그리고 장금희도 새로운 출발을 하겠다며 수능을 본 후 우리 과 신입생으로 들어온단다. 나에겐 복학하기에 더 좋을 시기가 따로 없었다. 김태형은 윗니 아랫니를 다 보이며 웃었다. 오늘 죽어라 먹자, 장금희 너도 정신차려서 다행이고. 김태형 뭐라했냐, 뒤질래 시바러마?
" 복학하면 우리 존나 아싸 되는 거 아니냐? 우리 다 늙은이 냄새 나잖아 "
" 병신아, 언제는 아싸 아니었다고. 원래 김여주랑 둘이서만 쳐 다녔잖아. "
" 아, 시발 어케 알았냐? "
금희는 하고 싶은게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돌연 자긴 대학에 안 갈 것이라 선언 후, 대학에 간 우리보다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림을 배우고 싶어 미술학원을 대뜸 다니다 프랑스 여행을 하고 오지 않나, 영어를 배워 해외로 아주 뜰 것이라며 스피킹 전문 영어 학원에 들어가 외국인 남자친구를 사귀었었고, 알바로 그 유명한 시혁이와 아이들이라는 아이돌 그룹 코디도 했다며 자랑 했었다.
그에 비해 나는, 1학년 대학생활을 김태형과 순조롭게 마쳤지만 다음 해 군대를 가버린 김태형에 홀로 남아 꾸역꾸역 1년을 더 다니다 그냥 휴학을 때려버렸다. 김태형의 남은 군대기간 동안 나의 1년은 ' 집 - 카페 - 집 ' 을 반복했었지. 한마디로 백수였다. 가끔 알바를 했더라도, 그 알바비는 모두 박지민의 카페에서 탕진해버렸고. 심심하다는 금희를 만나 수다를 떨었고, 도시락 싸들고 금희와 김태형 면회를 가곤 했다.
" 아 맞다, 김여주. 박지민도 우리랑 같이 복학할 것 같던데. "
" 아, 진짜 … ? "
" 박지민도 우리랑 같은 과야? "
금희가 오징어를 질겅이며 물었다.
" 엉, 걔도 우리랑 경영임. 야 딱 됐다, 이 때네. 걍 존나 들이대라니까? "
" 야 김태형 미쳤냐? 그럴 깡이 얘한테 어딨어. "
" 그럼 시발, 맨날 카페에서 죽치는 걸로 답이 나오냐? "
내 답답한 사랑이야기를 아는 건 태형이와 금희가 전부였다. 나와 같은 경영이라 해도 걘 나를 모른다. 매번 같은 복숭아 아이스티를 시켜도 아는 척 한번 하지 않는 애인데, 휴학 하기 전 수업 몇 번 같이 들은 것 가지고 나를 기억할까… 설령 기억하더라도 스쳐지나가는 김태형 친구 중 한 명, 또는 많은 손님 중 한 명이겠지. 나는 금희가 말한 것처럼 들이댈 수 없다. 그럴 깡도 없고, 내가 아는 척을 한다해도 모른 척 지나갈 그 애의 무관심을 알기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박지민 앞에서만 서면 말 대신에 심장이 입 밖으로 나올 것만 같아서…
세글자는 에피소드 형식이에요. 그래서 한번에 올릴 때 01,02,03 처럼 여러 이야기가 올라갈 것 같습니다. 제가 글을 길게 못쓰는 버릇이 있어서요 ㅠ.ㅠ 솔직히 세글자도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박지민 깔쌈함을 너무 사랑하고 좋아해서 즉흥적으로 써봤습니다. 추천 BGM은 제가 글을 쓰면서 참고하거나 들으면서 쓴 노래들이에요. 꼭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읽으실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도 막 쓴 거라 읽으셨을때 이해가 안가는 점이 몇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 부분은 물어봐주시면 답댓 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