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를 사랑했다.
생각에 골똘히 빠져있을때 자연스레 벌어지던 입도, 처음 커플링을 꼈을때 손가락에 스르르 들어갔지만서도 그 위로 통통하게 차오른 여주의 손가락도, 내가 화나 보일때면 곤란한 표정으로 내 눈치를 보던 그 동그란 눈동자도.
심지어 그녀가 화가 났을때 그를 숨기지 못하고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는것도, 버스를 탈때 옆자리에 가방을 두고 사람이 탈때마다 눈치를 보는것도, 자판기에 동전을 넣어놓고 마실 음료수를 한참 고민하는것도 사랑스러웠다.
여주와 자주가던 카페 구석의 자리에 노트북을 켜놓고 한참을 다리만 덜덜 떨며 글을 쓰는걸 주저하는것도 잠시, 나는 술술 글을 써내려갈 수 있었다. 사랑스러웠다 로 끝나는 그 글을 지우고는 주문해놓고 한참동안 마시지 않아 얼음이 녹아버린 아메리카노를 쭉 들이켰다. 쓰다. 그래, 쓰다. 쓴 그 향을 입안에 머금은채로 다시 글을 써내려갔다.
사실은, 멍청한 상념에 빠져 입을 벌리는 모습도, 살이 쪄 커플링 위로 손가락살이 오동통하게 올라오는것도, 내가 화를 낼때 멍청하게 눈치를 보는 그 눈동자도 역겨웠다.
화를 낼때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표정에 드러내는것도, 버스를 탈때 예의 없이 옆자리에 가방을 둬놓곤 눈치를 보는것도, 자판기에 동전을 넣어놔놓곤 별것도 아닌거로 한참을 고민하는것도 지겨웠다.
여주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여주는 참 좋은 여자였다. 보통의 남자들은 돼지라며 그녀를 가벼운 말장난의 대상으로 여겼지만, 나는 꽤나 깊이 그녀를 사랑했다. 굉장히 예쁘게 웃을 줄 알고 사랑받아 마땅한 따뜻한 마음씨의 여자였으니까.
웬만큼 예쁘다는 여자들과 사겨봤다. 그래서 그런지 예쁜 여자에게 큰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가벼운연애, 딱히 내 구미를 당기지는 않았다.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 뭐 그래. 나는 배가 불렀다. 그래서 여유롭게 내가 정말 사랑을 주고싶은 사람을 찾아다녔다. 생각없이 밤마다 포르노나 보면서 딸이나 쳐댈 저 애들은 나에게 친한척 어깨동무를 하며 '부러운 새끼' 하며 키득키득 대겠지만, 나는 속으로 한참이나 그들을 비웃는다.
네들이 뭘알겠냐.
나에게 여주는 충격이었다. 그토록 자존감이 낮은 사람도 없겠다 싶을만큼 자신감까지 바닥에 뚝뚝 흘리고 다니는 여자였다. 내가 이토록 만나던 여자들은 하나같이 제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듯이 구는 콧대높은 여자들이었는데, 그에 비해 여주는 남의 눈치나 봐가며 항상 쩔쩔매는 모습이었다. 그런 여주가 신기했다. 남들 앞에서 햄버거를 먹는 모습을 보여주길 꺼려하는 여주가 신기했다.
여주에게 연애를 하자고 제안했을때, 그 표정은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이해가 안된다는 그 표정.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하다가 결국 흘리는 눈물. 그날 나는 그녀를 안고 몇시간동안 내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녀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 그녀는 결국 내 정성을 알아주기라도 한건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말했다.
연애 초반의 여주는 나와 함께 다니길 꺼려했다. 나는 그게 결국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것임을 알아챘다. 그게 뭐가 중요해 여주야, 내가 너를 사랑하는데. 하는 달콤한 말들을 귀에 속삭이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손을 바르르 떨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 모습이 흡족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더이상 아무도 우리에 대해 왈가왈부 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제법 인지도 있고 응원받는 커플이 되었다. 내가 자주 올리는 럽스타그램에는 보기좋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고, 여주도 서서히 그런 관심에 적응을 해갔다.
처음 커플링을 주던 날, 여주는 너무 예쁘다며 내게 연신 고맙다고 하며 내게 폭 안겼다. 흡족했다. 따로 재지 않았지만 그녀의 손가락에 딱 맞게 들어가는 반지도 완벽했다. 분명 딱 맞지만 오동통한 그녀의 손가락은 반지를 집어삼킬듯 했다. 여주스럽다고 생각하며 그 모습도 귀엽다고 생각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여주는 변해갔다. 예전과는 다르게 자신감을 찾아갔고 다른사람의 개소리를 모른척하고 무시할 줄 알게 되었다. 더이상 다른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똑바로 하는, 그런 멋진 사람이 되었다.
그에 비해 나는 그런 여주에게 점점 이질감을 느꼈다. 여주에게서 찾은 특별한 점들이 점점 보잘것 없는것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뭐, 흔히 연애에서 겪는 과정이라고 치부하고 넘겼다. 여주의 웃는 모습은 여전히 사랑스러웠으니.
내 취미는 글을 쓰는것인데, 연애 초반부터 여주에게 줄곧 편지를 쓰고는 했다. 그 내용은 뭐, 주로 내가 여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여주가 얼마나 대단한 여자인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내가 재밌게 읽었던 책의 한구절, 내가 감동받았던 시의 한구절을 직접 종이에 써서 여주에게 주기도 했다. 그때마다 여주는 나를 끌어안고 고맙다고 말했고, 그럴때마다 나는 어떤 흡족감을 느꼈다.
그래서 오늘도 어김없이 여주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어느덧 여주랑 사귄지 1년이 넘어갔다. 습관처럼 여주에게 사랑을 전하는 긴 편지를 전해줬고, 그 편지를 읽은 여주는 눈물을 흘렸다. 흡족스러웠다. 이제까지 여주를 보면서 든 감정을 정리하고 글을 쓰려는데, 오늘따라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 이제 나는 여주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이제야 깨닳는다.
오늘 여주에게 줄 마지막 편지를 쓰려고 한다. 여주는 멋진 사람이니까 나를 분명 이해할거니까
<사담>
어... 인티에 제 글을 올리는건 처음이라... 뭐 제대로 한건가 싶네요.
가벼운 마음으로 다정한 남준이가 이별을 한다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서 술술 써내린 글이라
음... 엄청난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독자..?(호칭 되게 어색하네요 ㅎㅎ)님들도 가볍게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아, 어떻게 마무리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