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angle
13
"내일 수능 끝나면 나랑 놀아요."
맞아, 나 민형이한테 수능 잘 보라고 응원하려고 왔던 거였지. 근데 나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민형이의 제안이 싫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민형이랑 노는 건 처음이니까 떨렸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설렘의 감정에서 비롯한 떨림이 아니라 그냥… 그래, 그냥 뭐 그렇다. 나는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민형이가 웃는다. 입꼬리가 예쁘게 호선을 그린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11월 23일. 수능날의 아침이 밝았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민형이를 위아래로 살폈다. 단정하게 입은 교복 위로 패딩을 걸친 민형이의 눈에 피곤함이 가득했다. 새벽에 잠깐 잠에 깨서 물을 마시러 갈 때 민형이 방문 틈새로 빛이 새어 나왔던 게 떠올랐다. 수능 전날에는 푹 쉬는 게 좋은데. 밤늦게까지 공부를 했을 민형이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속상하다 속상해…… 누나로서 뭐라도 해주고 싶었는데 말이다.
"누나."
"응?"
"저 다녀올게요."
나를 내려다보며 작게 웃으며 등을 돌린 민형이의 손을 급히 잡았다. 잠깐만 기다려!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빠르게 걸어 방에 걸려있던 목도리를 챙겨 일층으로 내려갔다. 현관에 서 있던 민형이는 내 손에 있는 목도리를 보며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목도리를 풀러 민형이의 목에 매주었다. 무채색의 목도리라 그런가 평소 어두운 계열의 옷을 입는 민형이에게 잘 어울렸다. 다 됐다. 목도리를 예쁘게 매주고 나니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더라. 이게 뭐라고… 사람은 목이 따뜻해야 된다고 어디선가 주워들은 적이 있던 거 같은데. 그래도 아까보단 따뜻하겠지? 안한 것보단 한 게 나을 거야.
"이제 진짜 갈게요."
"응, 잘 갔다 와."
"이따 만나는 거 잊지 마요. 전화할게요."
그 말을 끝으로 민형이는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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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5시 3분이었다.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밤은 길어간다. 그리고 더 빠르게 우리 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지금이 딱 그랬다. 벌써 어둑해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손을 비비고 있었다. 학교 앞엔 많은 학부모님들이 계셨다. 왠지 나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는 기분이 들었다. 손을 비비적거리며 학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한두 명씩 나오더니 이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기쁜 표정, 슬픈 표정 그리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학생까지 표정이 참 다양했다. 나 때도 저랬는데. 나는 수능을 끝내고 어떤 표정이었을까. 저들처럼 웃거나 울었겠지.
과거의 기억을 꺼내들고 있다가도 저 멀리 민형이의 모습이 보여 들고 있던 기억을 다시금 넣어두었다. 멀리서 본 민형이의 표정은 기뻐하지도 그렇다고 슬퍼하지도 않는 그런 어중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까이서 본 민형이의 두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내 시선이 제 두 볼에 있는 걸 눈치챈 녀석은 히터가 너무 세서… 라는 말을 툭 뱉었다. 굳이 해명하지 않아도 됐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때였다. 주머니 속에 넣어둔 핸드폰이 짧게 울렸다.
정재현에게서 온 문자였다.
가던 걸음을 멈춘다.
[나 아파.]
단 세 글자의 문자를 보고서 잘 가던 걸음이 뚝 멈췄다. 옆에서 걷고 있던 민형이의 시선이 느껴진다. 차가운 바람이 맨손을 스쳤다. 손이 틀 것만 같다. 핸드폰 화면이 꺼질 때까지 정재현에게서 온 문자를 그저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이 문자를 읽고도 나는 과연 민형이랑 같이 있을 수 있을까? 편하게 놀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민형아 나 잠깐 전화 좀."
고개를 끄덕이는 민형이를 보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정재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아… 얜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작게 몸을 틔우고 있던 불안함이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정말 많이 아픈가. 불안함에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길고 길었던 신호음이 뚝 끊겼다. 나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정재현 너 괜찮아?"
"응. 괜찮아."
녀석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잠겨 있었으며 메마른 땅처럼 쩍쩍 갈라졌다.
"많이 아파?"
정말 걱정해서 물어본 질문이었는데. '내 걱정해주는 거야?'라며 쩍쩍 갈라진 목소리로 장난을 부려댔다. 아픈 와중에 장난은 아프다는 거 순 거짓말 아니야 이거? 그러기엔 목소리가 너무 정직했지. 나는 약 먹고 푹 쉬라는 말을 끝으로 정재현과의 통화를 빠르게 끝냈다. 멀찍이 서서 기다리는 민형이가 신경 쓰였다. 통화를 끝내고 가까이 서 본 민형이의 얼굴은 볼 뿐만 아니라 코끝도 발갛게 물들어있었다.
"그때 피자 먹을 때 본 형이에요?"
"응."
"왜요? 무슨 일 있어요?"
"그냥 좀, 아프다 그러네."
"많이 아프대요?"
"목소리 보면 그런 거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다."
내 말에 민형이는 고개를 얕게 끄덕거렸다. 그 뒤론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었다. 긴 침묵이 어색하다고 느낄 때 민형이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많이 걱정돼요? 갑작스러운 물음에 감정이 표정 위로 그대로 드러났나 보다. 바람 빠지게 웃는 민형이의 옆선에 눈에 걸렸다. 목적지를 정하지도 않은 채 정처 없이 우리는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걸음을 뚝 멈춘다.
"가요."
응? 고개를 돌려 민형이를 쳐다보았다. 내게로 뻗은 곧은 민형이의 시선에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얼른."
내 등을 떠밀며 민형이는 작게 웃었다.
"빨리 갔다 올게. 미안해."
미안하는 내 사과에 민형이의 입꼬리는 아까보다 더 크게 호선을 그렸다. 괜찮다는 그 말을 들은 후에야 나는 등을 돌렸다. 정재현 집이 어디인지도 모르는데.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들어 익숙한 번호를 꾹꾹 눌렀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아든 상대방의 목소리에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 계속 뛰어서 그런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야... 정... 재현 집 주소 알아?"
"갑자기 정재현 주소는 왜?"
"나중에 알려줄 테니까 문자로 좀 보내줘."
유타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들렸지만 전할 말을 다 전하고는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타가 집 주소를 문자로 보내주었고 나는 멈췄던 발을 다시금 빠르게 움직였다. 다행인 건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았다는 것과
"김시민?"
그리고 정재현이 집에 있었다는 것.
"여길 왜… 아니 그보다 주소는 어떻게 알고?"
쩍쩍 갈라진 목소리로 듣는 내 이름은 조금 새로웠다. 걱정돼서 무작정 오긴 한 건데, 막상 얼굴을 보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거…… 괜히 왔나. 주소는 어떻게 알았냐는 정재현의 질문에 개미만 한 목소리로 유타의 이름을 댔다. 급 조용해진 분위기가 어색해 괜히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시선을 마주치면 왠지 모르게 안될 것 같았다. 일단 들어와. 머리 위로 떨어진 부드러운 음성에 나는 조심스럽게 집안으로 발을 옮겼다.
"여기 앉아."
"어… 응."
씻고 있었던 지 젖은 머리를 탈탈 털며 녀석도 곧 내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혼자 살기엔 약간 커 보이는 넓이와 깔끔한 인테리어에 마음속으로 혼자 감탄을 해댔다. 역시 엄친아는 엄친아네… 공부 잘해, 돈 많아, 성격 착해…… 잘 생겼어. 이거 너무 불공평한 거 같은데.
"무슨 생각해?"
"어? … 별로?"
아, 깜짝이야. 갑자기 귀에 선 목소리에 어깨까지 들썩거리며 놀랐다. 내 반응에 녀석은 큭큭 거리며 작게 웃었다. 그러다 목을 가다듬고는 짐짓 진지한 투로 내게 물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라고 말이다. 나는 그 질문에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그러게 내가 여긴 어쩐 일일까. 그것도 정재현, 너네 집에 내가 왜 온 걸까.
나는 네 질문에 대답하기가 곤란했다. 나도 이유를 모르겠으니까.
네가 아프다는 말에 나는 걱정이 되었고,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 갈라진 목소리는 아픈 네 모습을 떠올게 했다. 그래서 뛰었다. 처음보다 많이 가까워진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널 좋아한다. 이런 이유는 아니었다. 또 다른 감정인 거 같았다. 그냥 너도 날 편하게 대해주니까 나도 어느새 너를 친구로 여기고 있었던 게 아닐까. 순간 민형이의 얼굴이 스치듯 지나갔다.
아, 민형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태 괜찮은 거 같네. 괜히 혼자 심각했네. 괜찮다는 것도 확인했으니까 이제 가야겠다. 자리에서 일어선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정재현의 시선을 피하며 나는 말했다.
"시간도 늦었고, 괜찮아 보이니까 이제 갈게."
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가방을 어깨에 메고 등을 돌리려던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떨어질 수가 없었다.
"안 괜찮아."
"…."
"아직 아파, 나."
"…."
"그러니까 여기 있어주면 안돼?"
내 허리를 꼭 끌어안고는 그대로 등에 제 얼굴을 묻는 정재현의 행동에 순간 사고회로가 정지되었다.
어니언의 말
글속의 아이들은 아직 한 겨울 속에 있는 듯하네요. 저는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독자님들은 무얼 앞두고 계시나요?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의식을 하게 되었더니 글을 쓰기가 힘들더라고요. 현생도 그렇지만.
그래도 앞으론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항상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빠르게 올리고 싶어서 올려요! 나중에 읽다가 수정할 부분 있으면 수정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