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작사가 이지훈 x 구여친 너
"...여보세요?"
항상 패턴은 똑같다.
늦은 밤, 전화가 걸려오고 내가 대답하면 몇 초 동안은 답이 없다.
"아무 말 안할 거면..."
-영희야.
"...응."
-오늘 뭐했어?
술에 취한 이지훈에게 우리가 헤어졌다는 기억이라는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별 전 행복했던 그 때의 기억만 존재한다.
그래서 이지훈은 술을 마시면 지금처럼 내게 전화를 건다. 우리가 언제 헤어졌나는 듯 다정했던 그 때처럼 내 일상을 물어온다.
'오늘 뭐했어?'
우리 헤어졌어 지훈아.
나는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하지만
-응? 뭐했어?
다정히 재촉하는 목소리에 나는 져버리고 만다.
"오늘은... 좀 늦게 일어났어. 알람 소리를 못들었거든."
-아이구. 그래서?
"그래서 점심 약속도 취소 했어. 준비할 시간이 없었거든. 밖에 비가 와서 귀찮기도 했구."
-응.
"...밥솥을 열었는데 밥이 없는거야. 그래서...그냥 나가기도 귀찮아서 배달음식을 시켜먹으려고 전단지를 찾았지. 내가 좋아하는 분식집 전단지를 따로 챙겨놨었거든. 근데 그걸 얼마전에 버린기억이 나는거야. 바보같이. 식당 이름도 제대로 몰라서 챙겨뒀으면서 그걸 버렸어."
-속상했겠다. 근데 왜 나 안 불렀어?
우리는 헤어졌으니까. 그래서 너랑 같이 밥을 못먹었어.
뱉지도 못할 말이 마음 속에서만 머문다.
-나도 오늘 점심 못 먹었어...왜냐하면 요즘 곡 작업 할게 너무 많았거든... 그래서 너가 너무 보고 싶었어.
술에 취해 흐트러진 목소리로 다정히 마지막 문장처럼 말을 할때면 나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 앉는다.
아니. 통화 내내 한마디 마다 심장이 떨려온다.
나도, 라고 대답하려다 입을 다문다.
나는 여전히 네가 밉다. 너는 내일 일어나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지난 여러 날처럼.
- 그래서 또? 점심 후에 뭐했어?
점심의 일을 기억하려다 더 오래 전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가 행복했던 그 때.
매일 밤마다 내게 전화를 걸었던 너. 그 땐 지금처럼 취하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래서 또?
"뭐가 그래서 또야? 그래서 그냥 집에 와서 씻구 이렇게 누워서 너랑 통화하고 있지. 언제까지 물을거야. 나 졸리고 피곤하단 말야..."
사귀던 시절에도 이지훈은 매일 저녁 내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내 하루를 물었다. 크건 작건, 재밌건 지루하건. 하찮고 소소한 이야기도 이지훈은 귀담아 들었다. 어떤 때는 다시 물을 때도 있었고 보통은 모든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걸 좋아했다.
-피곤하긴 하겠다. 밤새느라 고생 많았어. 그래도 발표는 무사히 마쳐서 다행이야.
"다행이긴 한데...다음 번에 내가 걔랑 같은 조 되면 내가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어떡할 거냐면.. 내 ㄱ..ㅏ...."
-응.
"....."
-영희야?
"응. 그래서 내가..."
-영희야, 자. 끊을까?
"싫어.. 끊지마. 너는 맨날 묻기만 하고 끊어. 오늘 넌 뭐 했는데?"
-난 똑같지. 하루종일 작업실에서 곡 작업 했어.
"치. 맨날 거기에 갇혀 있으면 좋아? 남친이라는 애가 바쁘다고 만나주지도 않고."
이지훈은 곡 작업 기간 중엔 만나주질 않았다. 일이 바쁘고, 시간이 없단 이유였다.
하지만 나는 그게 불만이었다. 매일 이렇게 통화할 시간에 얼굴만 보면 될텐데. 뭐가 그리 어려운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미안해.
"지금 전화 건 것도 너 가사 영감 얻을려고 그런 거지? 너 나빠. 맨날 나 이용해."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왜 안 만나주는데?"
내 말에 침묵이 흐른다. 맞구나, 나쁜놈.
네가 만드는 노래에 내가 방해되냐는 말에 이지훈은 절대 아니라고 말했다. 내 모든 것들이 음악적인 영감이 되어준다고 했다.
나도 그걸 느꼈다. 내가 전화통화로 했던 사소한 말들이 이지훈의 노래 가사 속에 들어간다.
처음엔 좋았다. 사람들이 듣는 노래 가사의 실제 주인공이 나니까.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불안해졌다. 이지훈이 나를 만나는건, 음악적인 영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 라는 생각. 작업 기간 내내 만나주지 않고 전화 통화만 하는 이유에 대한 답은 그것밖에 없었다.
-영희야.
"너는 정말.. ㄴ..ㅐ..ㄱ..."
항상 통화의 마지막엔 서운함을 토로하고, 이지훈의 사과가 이어졌다. 그러면 나는 그 사과를 듣다가 또 대답해주다가 어느 순간 잠들어 버린다.
생각해 보면 나는 매일을 이지훈과 통화하며 잠들었다. 나의 밤에 이지훈이라는 습관이 생겼다. 밤마다 그애가 말하는걸 들으며 잠들었다.
그래서 아직도 과거를 놓지 못해 술취한 이지훈의 전화를 끊지 못한다.
*
[ 미안해. 어제 내가 실수 했어? ]
다음 날 이지훈에게 문자가 왔다. 일어나서 제 통화 목록을 보고 내게 연락을 한 것이다. 놀랬을 것이다. 구여친에게 술마시고 전화라니.
하지만 이지훈은 역시나 어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또 처음인 것 처럼 사과한다. 기억 하지 못한 실수에 대한 사과는 진정성이 없다.
[ 아니야. 실수 없었어. ]
[ 앞으로 이런일 없도록 할게. 정말 미안해. ]
늘 그렇듯, 미안하다는 말에 답을 하지 못하고 폰을 던지듯 내려놓는다.
술에 취하면 또 나한테 전화 할 거면서. 나쁜놈.
술을 마시면 너는 나랑 헤어졌다는걸 기억 못한다.
그리고 사겼던 그 때 처럼 내게 전화를 걸어 일상을 묻는다.
이별을 먼저 말한건 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건 아니다. 네가 없는 일상은 힘들다. 힘든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물어오는 너 때문에 더 힘들다. 기억을 못하는 너에게 나는 최대한 평범한 척 대답한다.
이 모든게 엿같다. 구남친의 술주정 때문에 나는 매번 고생한다.
그래도...
오늘 밤 네게 또 전화가 걸려온다면 나는 또 전화를 받겠지.
'오늘 뭐했어?'
그리고 나는 또 기억을 못할 걸 알면서 대답하겠지.
이쯤되면 기억 하지 못하는건 이지훈만이 아닌 것 같다.
/ end
* 에필로그 - 헤어지기 전
"아, 영희 보고 싶다."
"그럼 만나."
"안돼요. 곡 작업 끝나고 만나야 해요."
"왜?"
"큰일나요."
"뭐가?"
"지금도.. 그렇잖아요. 제 곡이 밝아지고 있다면서요."
"...그렇지."
"그냥, 곡 작업하는 중에도 영희가 떠올라요. 그냥 불쑥 떠올라요. 그리고서는 하루종일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아요. 그러면 나는 영희를 떠올리면서 자꾸 행복해져요."
"....."
"내가 쓰는 곡은 이별노래인데. 자꾸 가사랑 멜로디가 밝아져요 형."
"...미친놈. 야, 차라리 통화를 하지마. 곡 빨리 쓰고 끝내면 되잖아"
"그건 안 돼요."
"왜?"
"목소리라도 안 들으면 ...저 못 버텨요, 형."
-
새벽에 삘 받아서 썼는데.. 두서 없고 결말은..음...
계속 수정할게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