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검백에 대한 필명 검색 결과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기타 방탄소년단 정해인 변우석 세븐틴 더보이즈
검백 전체글ll조회 2415l 3

 

06

 

 

지훈은 아쉽지만 일거리가 잔뜩 밀려있어 경의 폰에 번호를 찍어주는 것으로 급하게 떠나고 말았다. 수면부족으로 피곤에 찌들어있긴 해도 지훈이 저렇게 행복해하는 건 어린 시절 이후로 처음 본다. 지호는 살짝 입매를 당겼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다섯 가지 욕구 중에서 자아실현을 가장 고차원적인 것이라고 했다. 정말 꿈을 향해 가는 지훈에게서는 열정과 에너지와 건강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다 먹었으면 일어나지.”

 

지호는 어느새 버거를 다 먹은 경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경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보고 멈칫했다. 닦아줘야겠지. 지호는 주문할 때 같이 나온 티슈로 아기에게 하듯 경의 입가를 꾹꾹 눌렀다. 왜인지 겁먹은 기색이 가득했던 경은 지호가 손을 치우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직 스킨십이 어색해서일까.

 

“맛은 괜찮았어?”

 

어색해진 분위기에 지호가 궁색하게나마 입을 열었다. 경은 방금 전 맛을 떠올리는 듯 혀를 날름거리다 대꾸했다.

 

“괜찮았어요. 특히 검은 물이 톡 쏴서 신기했는데, 그래도 아침에 먹었던 게 제일 맛있어요.”

“검은 물을 콜라라고 해. 아침에 먹었던 건 짜파게티고.”

 

경은 그 이름을 외우려는 듯 세 번 반복했다. 콜라, 짜파게티. 콜라, 짜차게티. 콜라, 짜파게티.

 

경의 알몸사건 목격자가 남아있을지도 몰라 지호는 옆 마트로 장소를 이동하기로 했다. 신중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저 경이 알몸으로 있던 곳이 CCTV의 사각지대이길 기대할 뿐. 경은 지호의 뒤에서 졸졸 따라오다가 결국 지호의 손에 끌려 옆에 서게 됐다. 뒤에 있으면 경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불안했기 때문이다. 지호는 안전을 위해 경의 자리를 제 옆이나 앞으로 한정했다.

 

지호는 옷을 고르는 내내 경의 옆에 찰싹 붙어있었다. 또 어떤 사고를 칠 지 몰라 불안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경은 지호가 곁에 있어도 그다지 불편해 하지 않았다. 이것저것 옷을 뒤적거리는 경을 지호는 지켜 섰다. 간간히 옷 디자인에 대해 조언을 해주며.

 

 

 

지호와 경의 첫 쇼핑은 나름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물론 경이 계산 되지 않은 옷을 가지고 나가거나, 카트에 앉아서 가는 어린아이들을 보고 따라하려는 등의 귀여운 소동이 벌어지긴 했다.

 

경은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본인도 모르는 출연료와 시청자들이 준 선물을 받은 바 있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의류는 하나도 없었는데, 지호는 제작진들이 의도적으로 옷을 걸러냈을 것으로 짐작했다. 경이 최대한 불쌍해 보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비싼 로고가 달린 옷차림의 박경보다 헐고 오래돼서 지저분한 옛날 옷차림의 박경이 시청자들의 호응을 더 끌어낼 것이란 건 자명했다. 결과적으로는 경의 옷가지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옷을 잔뜩 사고 남은 시간에 이층을 더 내려와 식료품점에서 장을 보았다. 지호는 냉장고가 텅 비어있어 가리지 않고 마구 카트에 물건을 담았다. 당근, 양파, 대파, 콩나물, 무, 시금치, 두부, 김치, 당면, 음료수, 치즈, 푸딩, 만두, 햄, 돼지고기, 닭고기, 고등어, 갈치, 오징어, 사과, 바나나, 포도. 경이 좋아하는 짜파게티도 한 봉 사고 군것질거리 용으로 과자도 샀다. 경은 특히 시식코너가 재미있었는지 여기저기를 깡총깡총 다니면서 이쑤시개로 요리를 찍어 먹었다.

 

바리바리 물건을 싸들고 바깥으로 나오자 하늘이 핑크색이 섞인 금빛이었다. 경은 지호의 차 안에서 하늘을 구경하느라 난리였다. 손만 뻗으면 닿는 막힌 천장만 19년을 보다가 고개를 젖혀도, 젖혀도 끝없이 뻥 뚫린 하늘을 보니 신기했나 보다. 더욱이 하늘은 곰팡이 번식 정도만 다를 뿐 사시사철 변함없는 지하실 천장과는 달리 잠시도 똑같지 않았으니까. 지호는 차창에 코를 박고 있는 경을 보다가 창문을 내려주었다. 좀 더 마음껏 구경하라는 의미에서였다.

 

“위험해!”

 

창이 내려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경이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팔을 뻗는 바람에 지호는 순간 급제동을 걸었다. 시트에 남아있는 팔을 잡아당겨 경을 안으로 들어오게 한 뒤 지호는 다급하게 창문을 올렸다. 손가락 하나 들어가지 않게 꽉 차창을 닫은 뒤에야 지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작은 사고로 차가 멈춘 탓에 뒤에서는 빨리 가라며 빵빵 클랙슨을 울린다. 지호는 이를 까득 물며 차를 몰았다.

 

“무슨 생각으로 밖에 얼굴을 내민 거야? 그러다가 옆에 차가 치면 어떡하려고 그래!”

 

최대한 차분하게 말하려고 했는데 격양된 탓에 말이 날카롭게 나왔다. 경은 지호가 매준 안전벨트를 만지작거렸다.

 

“유리문이 내려가서요. 한번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보고 싶었어요. 어떤 기분인지 궁금했고… 또 언제 창문이 내려갈지 모르잖아요.”

 

말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간다. 경은 심기 불편한 지호를 의식하며 눈을 굴렸다. 지호는 답답한 듯 목을 조이는 단추를 풀었다.

 

“창문 개폐는 언제든 조작이 가능해. 원한다면 너도 내릴 수 있고 반대로 올릴 수도 있어. 달리는 차에서 신체를 바깥으로 빼는 행위는 위험한 거야, 박경.”

 

네에……. 경이 작게 중얼거렸다. 다정다감한 아빠가 되고 싶은데 경이 무슨 사고를 칠지 몰라 노심초사하며 잔소리만 줄줄이 늘여놓는다. 지호는 입술을 잘근 씹었다. 먼저 조심하라고 경고하지 않은 내 잘못인데 왜 경이 죄인 취급을 당해야 하는 건지. 이 상황이 못마땅하고, 교사임에도 애 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도 꼴불견이라 지호의 기운은 점점더 다운됐다. 분위기에 휩쓸려 경의 몸도 따라 움츠러들었다.

 

차가운 눈빛으로 정면만 똑바로 보는 지호의 옆모습이 무서워 경은 찍 소리도 할 수 없었다. 빛나던 눈동자가 암울한 그늘로 뒤덮인다.

 

 

 

말 한마디 없이 운전만 하던 지호가 차를 멈춘 곳은 가족 단위로 많이 찾는 패밀리 레스토랑이었다. 개인 주차장과 2층까지 있는 큰 규모의 레스토랑. 둥근 아치형의 지붕과 순백색의 외관이 정갈했다. 어둑해진 저녁하늘에 맞춰 입구에 달린 네온사인이 주홍 빛으로 반짝였다. 지호는 차에 내려 조수석 문을 열었다.

 

경은 내리는 대신 얼음장처럼 매섭기 그지없는 지호의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바짝바짝 입술이 마르는지 혀로 축이던 경이 눈꼬리를 힘없이 내리고 물었다.

 

“저 버릴 거예요?”

“뭐?”

“저 이제 아빠 자식 아닌 거냐구요… 제가 씨발놈이라서.”

 

지호는 눈을 크게 떴다. 경이 오해를 해도 무언가 단단히 오해한 게 틀림없었다. 구슬픈 경의 얼굴에 심장 부근이 바싹 조여들었다. 이 단어, 저 단어가 머릿속에서 엉망진창 뒤섞였지만 뭐라도 말해야 했다. 지호는 경이 어디 달아날 새라 꼭 손목을 쥐고 입을 열었다.

 

“아니, 아니야. 내 기분이 저조해 보여서 착각 했나본데, 박경 너 때문에 언짢은 게 아냐. 내 자신이 너무 무능력하고 쓸모없는 것 같아 화가 나서 그런 거야.”

“아니에요!”

 

경이 당황할 차례였다. 까무룩 가라앉은 눈동자가 반항적인 기운을 품고 되살아났다. 경은 차에서 나와 지호의 옷매무새를 부여잡은 채 매달렸다. 필사적이기까지 한 경의 태도에 지호는 얼떨떨했다. 지호의 가슴팍에 푹 얼굴을 묻은 경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잘은 모르지만… 좋은 분이라는 거는 알아요. 보육원 선생님도 그랬어요. 아주 멋진 사람이 아빠가 되어줄 거라고요. 전 아무것도 모르고 사고만 치지만, 그래도 알아요. 나쁜 사람 아니에요. 좋은 분이에요.”

 

지호는 침을 삼켰다. 경은 계속 자신이 좋다는 둥의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경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 몰랐다. 언젠가 먼 미래에 그 비슷한 말을 듣지는 않을까, 하고 희망 비슷한 것을 품긴 했지만 그게 바로 지금 이 순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고마워.”

 

지호는 경의 가르마를 따라 앞머리부터 뒤통수 꼭지까지 쓸어내렸다. 찬찬히 경이 지호의 가슴팍에서 얼굴을 떼어냈다. 슬픈 듯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있다. 지호는 한 팔로 경의 어깨를 감싸고 다른 팔로는 경의 머리를 껴안았다. 깨진 도자기를 다루는 것처럼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동작. 심박 수가 일초가 다르게 높이 치솟았다. 지호는 차문을 닫을 생각도 않은 채 품안으로 가득 경을 안아주었다.

 

“…빠.”

“?”

“아… 빠…….”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자동차 엔진 음에 묻혀버릴 작은 목소리. 아빠, 태어나서 처음 불리는 호칭에 세계가 변했다. 세상이 찬란했다. 반짝이는 재질의 셀로판지를 대고 세상을 보는 것처럼 온통 사방에서 빛이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지금 저의 품안에 있는 아기 새 같은 소년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실감했다.

 

 

 

 

 

레스토랑에서 로맨틱한 저녁을 보낸 지호와 경이 집으로 돌아왔다. 지호는 저가 썰어준 스테이크를 먹으며 했던 경의 말을 잊을 수 없었다. 원래 바깥사람들은 하루에 밥을 세 번이나 먹나요? 전 하루에 한 끼도 먹기 힘들었는데. 지호는 그저 경의 머리만 쓰다듬었다. 목울대에서 어떤 뜨겁고 응어리진 것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경은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풍족하게 먹은 건 처음이라고 했다. 지호는 앞으로 배터질 때까지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줄 테니 각오 단단히 하라고 일러주었다.

 

오전 10시부터 지금까지 쭉 걸어 다녔더니 많이 지쳤나보다. 지호가 차에서부터 잠든 경을 공주님 안기 자세로 안아들고 집에 들어갔다. 새근새근 잠든 모습이 귀여워 한동안 넋 놓고 쳐다봤더랬다. 지호는 경을 침대에 가지런히 눕히고 혹시 불편할까봐 옷도 벗겨줬다.

 

“음?”

 

매끄러운 피부 감촉이 아닌 우둘투둘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자는데 불을 켤 수는 없어 지호는 핸드폰을 꺼내 액정 불빛으로 경의 맨살을 살펴보았다. 견갑골부터 흉골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제법 큰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다 나았는지 살이 아물어 있었지만 바늘로 꿰지 못해 분홍빛의 흉터자국이 적나라했다. 마치 날개가 돋으려던 자국 같다. 지호는 조심스럽게 흉터자국을 손끝으로 만지다가 이불을 덮어줬다. 으응, 꿈을 꾸는지 경이 연신 뒤척였다. 시트가 경의 몸짓에 따라 물결무늬로 구겨졌다. 좋은 꿈 꿔. 지호는 나지막이 속삭이고 방을 나갔다.

 

 

 

 

“으….”

 

지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누군가가 저를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노골적이고 대범한 시선에 몸이 굳었다. 지호는 이불을 끌어당기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몽롱한 피로감이 뇌를 지배하고 정신을 흐리게 했다. 아침? 아니, 아침이기엔 너무 어둡다. 날이 밝지 않은데다가 커튼까지 쳐 빛이 들어오지 않아 주변은 지나치게 컴컴했다. 그때 지호는 누군가의 기척을 느꼈다.

 

“박경?”

 

졸린 음성으로 지호가 불렀다. 누군가가 침대에 앉았는지 잠시 매트가 출렁였다. 지호는 눈에 힘을 주고 앞을 살폈다. 경이었다.

 

“안자고 뭐해?”

 

협탁에 둔 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하니 겨우 새벽 네 시 이십분이었다. 지호는 하품을 하면서 몸을 일으켜 헤드보드에 등을 기댔다. 한밤중에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경이 원한다면 삼일 밤을 새도 좋았다. 그러나 이성은 수면을 갈구하는 본능에 힘을 잃고 있었다.

 

“저거…….”

 

경이 커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제 방에도 달아주시면 안돼요? 달빛 때문에 잠을 못자겠어요.”

 

지호는 멍하니 경을 보다가 손목을 잡고 저에게 끌어당겼다. 지호는 반쯤 감긴 눈을 뜨려고 노력하며 경을 침대에 눕혔다. 아…! 경은 외마디 소리를 내며 풀썩 지호 옆으로 쓰러졌다. 베개가 하나밖에 없어 지호는 기꺼이 저의 팔을 내밀어 경의 머리맡에 넣었다. 졸지에 지호의 팔베개를 하고 지호 옆구리에 끼인 경이 바르작댔다.

 

“날 밝으면 커튼 달아줄 테니까… 자자.”

 

일어나려는 경의 이마를 짚고 다시 쓰러트렸다. 경은 꼴깍 침을 삼키고 손을 모았다. 잠결에 울리는 지호의 목소리는 어쩐지 잠겨 있고, 낮고, 허스키했다. 평소와 달라 낯설고 묘했지만 듣기 싫은 건 아니었다. 그걸 두고 세간에서는 섹시하다고 하겠지만, 아직 어휘력이 부족한 경은 그저 치수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색하기만 할 따름이다. 낮은 지호의 음성에 마법처럼 몸에 힘이 풀리고 심장이 조금 뛰었다.

 

어느새 지호는 꿈나라에 빠져들었지만 경은 도리어 더 눈을 말똥말똥 뜨고 천장을 보았다. 언제 드라마에서 본, 잠이 안 올 때 하는 양 세기를 하며 말이다.

 

 

 

 

 

“아아, 잘 잤다.”

 

오랜만에 푹 잔 느낌이었다. 지호는 기지개를 켜며 크게 입을 벌리고 하품했다. 근래 들어 아침에 기상할 때면 느껴지던 두통도 씻은 듯이 나은 후였다. 언제부터 괜찮아 진거지? 지호는 눈을 비비고 커튼을 걷었다. 찬란한 햇살로 샤워를 하며 지호는 눈을 감았다 떴다. 박경과 같이 산 이후부터. 공교롭게 경과 지낸 후로 만성적인 두통이 사라졌다.

 

“박경?”

 

침대를 돌아서 방을 나가려던 지호는 침대 밑에 다리를 모으고 앉아있는 경을 발견했다. 지호의 부름에 경이 파묻었던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퀭했다. 경의 눈가에 축 늘어진 다크서클에 지호는 혀를 찼다. 어제 너무 무리했었다. 지호는 경에게 다가가 겨드랑이를 잡고 일으켰다.

 

“피곤해? 얼굴이 말이 아니네.”

“네…….”

“잠자리가 불편했어?”

“잠이 안 왔어요.”

 

경은 놀란 지호의 얼굴을 흘끔 보다가 시선을 바닥에 깔았다.

 

“아빠랑 같이 자서요…….”

 

나랑 같이 잤다고? 지호는 멍청한 얼굴을 했다. 그러고 보니 왜 경이 내 방에 있는 거지? 목을 긁으며 곰곰이 어제를 짚어보던 지호가 마침내 기억해냈다. 새벽 즈음 달빛 때문에 못자겠다며 저를 찾아온 경을 침대에 쓰러트리고 그대로 잠들었던 것이다. 안쓰러울 만큼 질린 경의 얼굴에 지호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흠, 흠. 혹시 내가 너한테 뭐, 그러니까… 이상한 짓 했어?”

 

잠버릇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초췌하기 그지없는 경을 보면 뭔가 밤에 무슨 일을 저지른 게 틀림없었다. 지호는 비장한 얼굴로 경을 마주보았다. 무릎을 살짝 굽혀 경과 동일 선상에서 눈을 쳐다봤다. 무엇이든 다 말해도 된다는 눈빛에 경이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팔을 들고 저를 꽉.”

 

숨도 못 쉬게 껴안았고요. 겨우 한 문장이었는데 지호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경은 파리한 안색으로 계속 중얼중얼 댔다.

 

“다리로 제 허리를 칭칭 감으셨구요.”

 

지호의 입이 벌어졌다. 내, 내가 그랬어? 뭔가 푹신한 게 있어서 끌어안은 것도 같다. 죽부인인 줄 알았는데……. 경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지호의 안색이 경의 것과 흡사해져갔다. 그러나 아직 경의 발언은 끝나지 않았다.

 

“제 얼굴에 숨결을…….”

“그, 그만! 알았어, 미안해.”

 

더는 들을 수가 없다. 지호가 얼굴을 깡통처럼 찡그리며 손바닥을 바깥으로 하고 손을 들었다. 항복이라는 표시였지만 경은 고개만 갸웃했다. 하아. 내가 뭔 짓을 했지. 경의 옆에 지호가 미끄러지듯 앉았다. 혼자만 자서 잘 몰랐는데 나 잠버릇 되게 고약하구나. 허탈함에 이산화탄소를 연달아 뱉어냈다.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자학하고 있는데 어디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푸흐흐.”

 

경이었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던 경이 작게나마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호선을 그리는 경의 입술에 지호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초승달로 접히는 눈, 위로 올라간 입꼬리. 지금 작은 기적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지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경의 얼굴을 매만졌다. 평소와는 다른 지호에 경이 웃음기를 지우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호는 침을 삼키고 말했다.

 

“다시, 웃어, 볼래?”

 

말이 뚝뚝 끊겼다. 경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눈만 부지런히 깜빡였다. 지호는 검지 손으로 경의 입꼬리를 위로 죽 당겼다. 의지를 배반하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얼굴 근육에 경이 눈을 찡그렸다. 지호는 허리를 돌리고 기대다시피 경에게 다가왔다.

 

“예쁘… 다.”

 

어제 만났던 종업원이 떠올랐다. 동그란 안경테가 몹시도 잘 어울리던 생과일주스 종업원은 경을 보고 예쁘다고 했었다. 그 때는 왜 남자에게 예쁘다는 수식어를 붙였는지 이해가 안 갔지만, 지금은 알 수 있었다. 지호는 경의 뺨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 내렸다. 아기피부처럼 뽀송뽀송하다.

 

“경아, 예뻐.”

 

지호의 말에 경이 얼굴을 점점 붉혔다. 투명한 물이 담긴 비커에 붉은 용액을 똑 떨어트렸을 때처럼, 홍조가 경의 얼굴에 퍼져나갔다.

 

 


더보기

커플링을 따라 필명을 나눠야할지 고민중이에요 ㅜㅡㅜ


♡암호닉♡

새우깡
야상
컴백
흑백
현미밥
망고
숀리
호박
효달

 

피드백 늘 감사합니다!!! 짘경으로 다시 넘어왔네요 ~~

지하실 얼렁얼렁 써서 빨리 완결내고 싶어요 ㅎㅎ

장편 완결 낸 게 하나두 없어서..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돼요!

독자1
현미밥입니다아!! 쪽지확인하자마자 왔어요..... 역시....경이는 아직 순수해요ㅠㅠㅠㅠ 하...중간에 달빛에 잠을 못잤다는게 너무 마음아프더라구요... 얼마나 지하실에 갇혀있었으면 희미한 달빛으로도 잠에서 깰 수있을까..... 어느 순간순간 움찔움찔하면서 경이의 아픔이나 과거가 나오는거같아 먹먹해지네요
...

10년 전
검백
현미밥님 안녕하세요!! 희미한 달빛에도 잠 못이루는 경이 ㅠㅠ... 점점 밖의 생활에 적응해나가야할텐데요!! 쪽지확인하자마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늘 부족한 덧글 달아주셔서 더 감사합니다!!
10년 전
독자2
아이고달달해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마음아프고 경이불쌍하지만 그래도 너무 달달해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얼른 경이 상처가 다 낫기를!!ㅠㅠㅠㅠㅠㅠ
10년 전
검백
달달하게 쓰려고 했는데 어떻게 먹혔네요 ㅎㅎㅎ 얼른 경이 상처가 났기를222 덧글 감사합니다!
10년 전
독자3
컴백이예요 ㅠㅠㅠㅠㅠ아이고 예쁘다 박겨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우지호진짜다정하다 ㅜㅜㅜ
10년 전
검백
컴백님 안녕하세요! 경에게만 다정한 너란 남자 우지호... 덧글 감사해요~
10년 전
독자4
새우깡입니다
유후 오늘은 뭔가 기분이 좋네요 검백님 글을 봐서그런가?(능글)
장난이에요 아시죠?주먹에 힘 푸세요..ㅎ
5.5였나요?바로 전글에서 경이 심정을 알고나서 뭔가 6도 다크다크하고 낯설어서 힘들어하는 경이일줄 알았는데 나름 잘 적응하고 있나보네요!ㅋㅋ
지호 경이한테 소리치고 안절부절?이라고 하기엔 약하지만 이런저런 생각하는것도 귀엽고 뒤에있던 경이 당겨서 옆에 세우는거 멋있어..!(두근)
박력남..!
아 그리고 경이 달빛때문에 못자겠다는데에 혼자 의미부여하면서 읽어가지고 심각했네요ㅋㅋ
보통 달빛 눈부시다고 깨는경우는 없는데 얼마나 어둠에 익숙하면 달빛때문에 잠을 못자나 싶기도한데..
생각해보니까 제방은 빛이안들어오는곳에 위치한..^^
거기까지 생각하니까 괜히 헛발짚은거 창피하기도 하지만 홀가분하네요ㅋㅋ1
아 헐 이번회에 좀 아빠란 단어가 강조되서 갑자기 생각?난건데
아빠랑 아들이었어..!
이거..좀..위험한데요?(사실 좋아 죽는다)ㅋㅋㅋ
늘 좋은글 감사합니다!싸랑해요!!

10년 전
검백
ㅋㅋㅋㅋ능글맞은 새우깡님 좋은데요 뭐ㅎㅎㅎ! 사실 제가 다크한 글을 잘 못쓰기도 하고... 언넝언넝 달달한걸 쓰고싶네요ㅜㅜ아무래도 계속 삽질하는 것보단 둘이 짝짜쿵 하는 게 좋죠. 아빠와 아들..... 허허 여러모로 위험한 관계(?)이긴 하다만 앞으로 잘 해쳐나갈 수 있을거에요 ㅋㅋㅋ 암요 ㅋㅋㅋ 여하튼 항상 긴 덧글 감사드려요ㅠㅠ 덕분에 아드렐날린이 팡팡 솟구치네요! 저두 감사하구, 사랑합니다♡♡ (님 덕분에 괜히 새우깡 과자가 점점 좋아지고 있네여 크크)
10년 전
독자6
제 댓글이 힘이된다면 엏마든이 쥐어짜내드려야져..(수줍)
새우깡 많이 좋어하세요 새우깡 맛있습니다!!(새우깡 영업)

10년 전
독자5
흑백이에요! 친구들이랑 1박 2일 놀러 갔다가 집 오자마자 뻗어서 이제야 보네요ㅠㅠ 저도 빨리 완결까지 보고 싶어요! 두근두근 너무 재밌고 설레기도 하고 완전 좋아요ㅠㅠ 끄아..!
10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돼요!
 

혹시 지금 한국이 아니신가요!?
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분류
  1 / 3   키보드
필명날짜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 경성블루스 五2 11.07 12:07
기타[실패의꼴] 최종 면접에서 탈락하셨습니다 한도윤10.26 16:18
      
      
      
블락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11 검백 01.04 14:46
블락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44 검백 08.11 17:14
블락비 [블락비/짘권] 카프리카 상수 完10 검백 03.30 15:43
블락비 [블락비/짘권] 카프리카 상수 中9 검백 03.23 00:34
블락비 [블락비/짘권] 카프리카 상수 上9 검백 03.02 21:49
블락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2 검백 02.25 15:51
블락비 [블락비/짘경] 박경 길들이기 中29 검백 02.24 16:52
블락비 [블락비/짘경] 박경 길들이기 上29 검백 02.22 22:31
블락비 [블락비/짘경] 지하실 811 검백 02.22 00:00
블락비 [블락비/짘경] 지하실 713 검백 02.18 20:43
블락비 [블락비/짘경] 지하실 610 검백 02.17 16:34
블락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3 검백 02.16 17:33
블락비 [블락비/피코] 운명의 급전 下23 검백 02.16 03:07
블락비 [블락비/피코] 운명의 급전 上22 검백 02.16 00:35
블락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35 검백 02.14 20:43
블락비 [블락비/짘경] 지하실 5.514 검백 02.14 14:33
블락비 [블락비/짘경] 지하실 516 검백 02.13 17:41
블락비 [블락비/짘경] 지하실 410 검백 02.12 18:12
블락비 [블락비/짘경] 지하실 37 검백 02.11 16:58
블락비 [블락비/짘경] 지하실 28 검백 02.10 18:30
블락비 [블락비/짘경] 지하실 113 검백 02.09 23:25
블락비 [블락비/짘경] 지하실 prologue6 검백 02.09 20:02
블락비 [블락비/짘효] 로맨틱하게 나이스데이17 검백 02.05 01:26
블락비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17 검백 12.29 20:44
블락비 [블락비/피코] Rainy Day 中8 검백 12.28 19:39
블락비 [블락비/피코] Rainy Day 上7 검백 12.09 22:35
블락비 [블락비/오일] 세 번의 만남 下8 검백 12.08 18:27
추천 픽션 ✍️
by 알렉스
[배우/남윤수] 너를 삭제,ㅡ단편ㅡ  ㅡ내가 봐도 유치한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어젯밤은. 발단은 돌아버릴 것 같은 심심함 때문이었다. 그 전까지 나는, 내 앞으로 산더미처럼 온 시나리오 책들을 읽고 또 읽고 있었다. 툭, 하고 나..
thumbnail image
by 유쏘
아저씨! 나 좀 봐요!'뭐야 ... 지금 몇시야 ... 머리는 또 왜이렇게 아픈데 ㅜㅜ...'기억났다 ... 어제 내가 저지른 모든 만행들이 ..."미쳤어!! 백설 미친년아!!! 진짜 죽어!!죽어!!!"(전화벨..
by 한도윤
나는 매일매일 이직을 꿈꿨다. 꿈꾸는 이유는 단순했다. 현재 내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환경의 변화를 꾀하는 게 필요했기 때문이었다.나는 2년 전 중견 건축사사무소에서 프리랜서의 꿈을 안고 퇴사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터지면서 세계..
thumbnail image
by 한도윤
2007년 6월 어느 날.우리가 만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어갔다. 나는 남자친구가 되어본 게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지만 그녀를 위해서는 작은 부탁도 모두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슬이에게 요즘..
thumbnail image
by 유쏘
아저씨! 나 좀 봐요!나는 지극히 연애쪽으론 평범한 백설 ... 25년 인생 100일은 단 한 번도 넘겨본 적 없는 암묵적인 모쏠(?) 백설이다...사실 나는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걸수도 ...?!"야!!!..
thumbnail image
  낭만의 시대 - 남혜승 및 박상희본 글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조선을 배경으로 나아갑니다.경성블루스 五정국은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도 자꾸만 아까의 상황이 그려졌다. 저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과 살랑이던 바람. 하천의 물결 위로 올라탄..
전체 인기글 l 안내
11/25 7:30 ~ 11/25 7:32 기준
1 ~ 10위
11 ~ 20위
1 ~ 10위
11 ~ 20위
팬픽 인기글 l 안내
1/1 8:58 ~ 1/1 9:00 기준
1 ~ 10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