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사이트 동시 연재 중입니다.
뒷골목 01
집구석에 들어가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서울 외곽의 월세 60짜리 다 헐거워진 빌라. 5층짜리 건물엔 엘리베이터도 없다. 3층까지 느린 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계단 어귀에서 부터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정도면 꽤 평화로운 편이었다. 오늘은 그래도 나으려나 싶어 열쇠를 꺼내들 때였다.
와장창. 안에서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어김없이 들렸다. 그럼 그렇지. 체념한 채로 열쇠를 구멍에 밀어 넣었다.
등 뒤로 이웃집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섯 살짜리 아들과 함께 사는 분이셨다. 여섯 살 아들을 둔 엄마치곤 나이가 좀 있는 편이었다. 우리 집에 아주 많은 불만을 품고 있는.
“대체 밤낮 끊임없이 깨부수는데 살 수가 있어야지.”
“아, 죄송합니다.”
영혼 없는 답을 내뱉었다. 이후로는 항상 들었던 말을 했다. 자기 아들이 무서운 소리에 덜덜 떤다. 혹시나 마주칠까봐 집 밖을 못 나가겠다. 어린 아들의 정서에 좋지 않다. 대체 돈도 없는 양반이 술은 어디서 얻어오는 거냐. 여자의 말을 들고 있자니 쓴웃음이 흘러 나왔다. 이래서 오기 싫다는 거다.
“죄송합니다.”
이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타이밍에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형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이다. 어릴 적부터 입에 붙어버린 말. 이웃은 내 얼굴을 한 번 보더니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부친에게 질린 사람들은 내게 화를 내다가도 자기가 참겠다는 듯 동정 어린 얼굴을 해왔다.
“아가씨 좀 자주자주 와.”
“......”
“딸이 아빠 보살펴야지 어쩌겠어. 엄마는 도망간 지 오래라며.”
소문은 이렇게 빨리 난다. 어디서 주워들었을까. 이웃이 내 어깨를 두어 번 토닥인다. 코웃음이 나려던 걸 참았다. 구멍에 꽂아두었던 열쇠를 돌렸다.
“딸! 왜 이제 와. 어어? 술 사오란 지가 언젠데!”
문을 열자 알싸한 냄새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바닥에는 초록색 병들이 제멋대로 굴러다녔다. 좁은 현관에도 병이 몇 개 떨어져 있었다. 신발은 벗지 않았다. 밑창이 다 까진 컨버스였지만 바닥의 유리조각을 맨발로 밟는 것 보단 나을 터였다. 컨버스화 밑으로 자잘한 유리조각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 중 커다란 조각 하나가 신발 바닥 위로 올라왔다. 발을 들어 박힌 유리조각을 빼냈다.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병 하나가 옆으로 날아들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묻잖아. 아비가!”
“일했어.”
날아온 병은 벽을 맞고 부서지며 추락했다. 늦게 피해 내 오른쪽 어깨 끝을 때리고 지나갔다. 내일쯤이면 시퍼런 멍이 하나 들겠지. 저번에 났던 멍은 이제 노란색이 되었다.
“일?”
병나발로 소주를 들이켠 부친은 풀린 눈으로 날 노려봤다.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집에 딸린 조그만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 있는 유일한 가구인 옷장이 활짝 열려 있었다. 열심히 뒤진 흔적이 역력했다. 팔아먹을 게 없나 온 집을 뒤졌겠지. 일부러 팔 수 없는 아주 값 싼 옷들만 사두었다. 저번에 사두었던 패딩은 채 하루를 가지 못했다. 내가 부친에게 사주는 옷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얀색 무지 반팔 티로 갈아입었다.
부친의 행동에 초연해진 것은 엄마가 도망가고 난 뒤였다. 알코올 중독자에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를 보며 엄마와 나는 매번 벌벌 떨었다. 생각해보면 그래도 내가 엄마보단 깡다구라는 게 있었다. 악을 써보기도 하고 협박도 해보고 도망도 가봤다. 다 소용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태어난 이후 술에 절어있지 않은 부친을 본 적은 손에 꼽았다. 그렇다고 그 때는 좀 낫느냐. 그건 또 아니었다. 맨 정신이면 맨 정신인 채로 지랄을 해댔으니까. 차라리 술에 절은 채 난동을 부리는 것이 나았다. 나름대로 이유라도 있었으니.
엄마는 내가 중학교 입학을 했을 무렵 집을 나갔다. 시장에 다녀오겠다고 말하더니 그 길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엄마가 도망갈 것이란 걸. 그래서 찾지 않았다. 엄마 대신 나는 스스로 지옥에 발을 디뎠다. 딱 취직할 때까지만. 그 때까지만. 나는 그렇게 중학교 검정고시를 칠 무렵이 되어서야 부친의 행위에 초연해졌다. 포기했다. 그 말이 딱 맞았다.
어떻게 초등학교 시절 친구 하나는 잘 둔 덕에 고등학교 검정고시까지 치긴 했다. 그 이후가 문제였다. 왜 그렇게 졸업장이 따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학교도 안 다닌 주제에 졸업장은 따고 싶었다. 매달릴 게 필요했다. 그리고.
엄마처럼, 아빠처럼.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나쁜 짓한 놈들은 쳐 잡으면서 이 애비는 왜 안 잡아가나. 어? 어디 한 번 잡아가 봐.”
부친은 한 손에 소주병을 든 채로 수갑을 채우라는 듯 팔목을 붙이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예전엔 목소리에 악다구니라도 있었는데 이젠 힘도 없다. 병 안에 든 액체가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아깝게.
“흐르잖아.”
부친의 손에 들린 병을 뺏어 들었다. 병에 절반도 남지 않은 술을 들이켰다. 생각보다 많은 술이 목구멍 뒤로 넘어갔다.
“이 년이! 어디서 애비 술을 탐내!”
“새 거 뜯어.”
부친은 뒤에 있는 병들 중 하나를 또 꺼내들었다. 술기운에 몸속이 화했다. 여기서 자고 가긴 글렀다. 술을 연거푸 들이켠 부친은 또 손목을 내밀어댔다. 나 좀 잡아가라! 어? 잡아가. 이윽고 흐느꼈다. 힘없이 꺼억 꺼억 거렸다. 늙더니 폭력을 휘두를 힘도 없어진 부친은 앉아서 난동을 피웠다. 지친다. 옷장에서 무지티 몇 장을 더 챙겨 집을 나왔다. 그 돈으로 또 술을 살 거란 걸 알면서 만 원짜리 몇 장을 두고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날 욕할 테다. 어디 둘 데가 없어서 거기에 돈을 두고 나왔냐고.
뒷골목 01
담배를 배운 건 엄마가 집을 나가고 얼마 있지 않아서. 중독까지 갔던 것 같다. 하루에 두 갑은 피워댔다. 애비는 술, 딸은 담배. 주위에서 욕을 그렇게 해댔다. 덕분에 엄마는 욕을 덜 먹었다. 사람들이 도망간 엄마를 두고 욕을 할 때보다 나았다. 그마저도 강제로 금연을 해야 했다. 담배 가격이 올라서.
취직을 한 이후 다시 담배를 샀다. 이번엔 중독까진 아니었다. 중독 직전쯤.
“세븐스타 하나요.”
편의점을 나온 뒤엔 꼴에 경찰이라고 흡연 구역을 찾아다녔다. 우리 집이 있는 동네였지만 내가 봐도 을씨년스러웠다. 범죄가 일어나도 당연할 것 같은 그런 동네. 담뱃갑을 만지작거리며 걷다보니 담배 냄새가 훅 끼쳐왔다. 저쪽에 흡연 구역이 있으려나. 냄새가 나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로등 하나 없는 골목길이었다. 흡연 구역일 리는 없고 으슥하니 동네 양아치들이 담배 피울 장소로 정해둔 곳 같았다. 어느 정도 걸어가자 담배 연기가 보였다. 미성년자인가.
굳이 미성년자가 담배 피우는 걸 막지 않았다. 나도 했었고 귀찮은 일은 질색이었다. 그 때였다. 입에 물었던 담배가 빠져나갔다.
“시발. 어디서 면전에 대고 담배야.”
머리 위로 낮은 톤의 남자 목소리가 울렸다.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차림새가 이래서 그런가. 사람을 만만하게 보는 것도 유분수지. 자기도 이런 데서 담배 피는 주제에. 게다가 처음 본 사람한테 욕지거리라니.
“네가 꺼져.”
남자의 손에 들린 담배를 뺏어 들었다. 재수가 없으려니 별 소릴 다 듣네.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려 손을 집어넣었다. 주머니가 비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옆을 돌아보았다. 남자가 내 라이터를 손에 쥔 채로 약 올리듯 흔들었다. 손버릇 하나 고약하네. 열 받아. 입에 문 담배를 그대로 뱉어 바닥에 떨궜다. 제대로 타지 않은 장초가 소리 없이 떨어졌다.
“뭐 하자는 거야.”
“귀찮게 구네. 다른 데 알아봐.”
“지랄을 하네. 진짜.”
남자는 온갖 예민함은 다 가진 표정으로 날 보았다. 어두운 데다 검은 마스크를 껴 이목구비가 제대로 보인 건 아니었으나 미간에 잡힌 주름은 눈에 띠게 잘 보였다. 키가 큰 편인 나보다 훨씬 큰 키에 운동을 좀 한 듯 체격이 좋았다. 으슥한 곳에서 남한테 시비를 거는 것까지. 결론적으로 진짜 양아치네 이거.
“야, 나 너랑 노닥거릴 시간 없거든? 내 놔.”
남자는 큰 키를 이용해 라이터를 든 손을 위로 뻗어 가져갈 수 없게 만들었다. 슬슬 열이 올랐다. 남자의 정강이를 걷어차려 다리를 들어올렸다.
남자를 차기 전에 내 바지 뒷주머니에서 남자는 담뱃갑까지 빼냈다. 이런 미친.
“야 너 죽고 싶어?”
남자가 내 말에 실소를 터뜨렸다. 마스크가 위로 들썩이는 걸 보니 정말로 웃기다는 반응이었다. 양아치답게 말이 안 통하는 새끼였다.
“안 내놔? 나 오기 전까지 너도 피웠…….”
말을 하다 말고 아래를 바라보았다. 저 새끼가 피웠다면 담배꽁초가 어디든 있어야 하는 데 바닥은 방금 내가 떨군 장초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지금까지로 미루어 보아 꽁초를 곱게 모아 쓰레기통에 버릴 놈은 아닌데. 남자가 흡연을 했든 하지 않았든 그건 알 바가 아니지 않나.
남자의 팔에서 담배를 낚아채려 까치발을 들었다. 키 하나 오질라게 크네 진짜. 날 잠시 내려다본 남자가 곧바로 라이터와 담뱃갑을 뒤로 던져버렸다.
“야 시발!”
방금 산거라고.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열이 올라 앞으로 내려온 긴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아래로 긴 숨을 내뱉었다. 보상은 받아야지.
남자의 겉 옷 주머니 안에서 지갑을 빼냈다. 형사 짓을 몇 년 하다 보니 이상한 데 재주가 생겼다. 인간을 관찰하고 판단하고. 지니고 있는 것들이 죄다 값이 꽤 나가는 것들이다. 옷소매에 가려진 시계며 구두, 하다못해 양말까지. 입고 있는 정장도 이름 있는 샵에서 맞춤 제작한 게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꺼낸 지갑까지 유명 브랜드 제품이었다.
지갑 안에 든 현금은 모조리 수표였다.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진짜 재수가 없으려니 별 이상한 게 꼬이네.”
지갑에서 수표 한 장을 꺼냈다. 어두워서 얼마짜리 수표인지는 안 보이더라.
“내 담뱃값.”
남자의 앞에 침을 칵 뱉어주고는 골목을 빠져나왔다. 한 달 담뱃값은 번 셈이다.
뒷골목 01
아침부터 시작된 회의는 지루했다. 진전 없는 수사를 다시 반복하는 것에 그쳤다. 저번 회의에서 나아진 것이 없었다. 손가락으로 펜을 휘휘 돌렸다. 자꾸만 감기는 눈에 힘을 줬다. 눈물이 찔끔 났다. 손톱으로 손가락 끝을 꾹꾹 눌러보기도 했다. 앞에서 브리핑하는 후배의 목소리가 자장가 같았다.
손가락 하나가 옆구리를 살짝 질렀다. 옆자리의 지민이었다. 정말로 잠이 든 모양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자세를 바로 했다. 지민에게 입 모양으로 물었다. 언제 끝나.
곧 끝나요. 지민이 청량한 표정으로 말했다. 얘는 나와 살아온 길이 아주 다른 아이였다. 밝다. 걷잡을 수 없이. 구김 하나 없다. 내가 얘 인생에 주름 하나 정도 만든 것 같긴 하다. 만만해서 맨날 부려먹거든.
“박지민 내가 방금 보낸 파일 출력 좀.”
“아, 네.”
회의가 끝난 후에는 보고서 작성에 매달렸다. 시시한 사건을 줄줄 쓰려니 온 몸이 쑤셨다. 뒤편에서 전화가 울렸다. 안 받고 뭐하는 거야. 뒤를 돌았다. 자리에 아무도 없다. 일어나서 전화를 받았다.
“네 강동경찰서 형사과 강력계 1팀 이주아 형사입니다.”
뚜. 뚜. 뚜. 전화가 끊겨 버렸다. 중요한 목격자 전화면 어쩌려고. 진짜. 머리를 헝클었다. 얼마 있지 않아 내 자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경찰서 강력 1팀…….”
- 이주아 형사님이시죠.
수화기 너머 음성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야.
“무슨 일이십니까.”
전화가 다시 끊겼다. 찝찝하게. 뭐야. 출력한 종이를 들고 오는 지민이 보였다. 지민이 종이 더미를 내밀었다.
“지민아. 방금 나한테 온 전화 발신자 누군지 좀 알아봐.”
“옙.”
시원스러운 대답을 한 박지민이 가고 작성 중이던 보고서를 마무리했다. 조금 있으면 잠복근무를 하러 가야했다. 이번엔 기필코 잡으리라. 그 미친 새끼.
뒷골목 01
“야. 야.”
조수석에 탄 선배가 내 머리를 콩콩 쥐어박았다. 머리에 느껴지는 생경한 통증에 눈을 떴다. 졸린 데 어떡하라고. 졸린 눈으로 선배를 흘겼다. 차 안에 컵라면 냄새가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배도 고프다. 손목시계를 보자 새벽 네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아까 두 시였던 것 같은데. 오늘도 허탕인가. 선배가 옆에서 라면 국물을 들이켰다.
“나도 줘 봐요.”
선배가 말없이 내밀었다. 다 식은 라면 국물은 맛대가리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으. 그래도 여섯시까지는 대기해야 하는데 뱃가죽이 등에 들러붙을 것 같다. 무의식적으로 배를 슬슬 문질렀다. 선배가 옆에서 뭘 뒤적거리더니 초콜릿을 내밀었다.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알파벳 초콜릿.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니 봉지를 깠다. 카시트에 등을 기대고는 입을 오물 거렸다. 초콜릿 단 내가 입 안에서 사라질 무렵이었다.
“야, 떴어. 떴어. 떴어.”
옆 자리 선배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문을 열어 젖혔다. 나는 왼쪽 선배는 오른쪽. 나머지 동료들은 자리에서 일단 대기. 한 달 잠복 끝에 머리에 박히다 못 해 새겨진 지시였다. 발소리를 죽여 그대로 내달렸다. 하필 오늘 바지가 청바지다. 집에서 트레이닝 바지를 챙기는 걸 깜빡했다. 집 나올 때 나오더라도 그건 챙겼어야 했는데. 불편함이 한 가득 올라왔다. 오늘 무조건 저 새끼들 잡아서 이 생활 끝내야지.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내 옆으로 누가 스쳐지나갔다. 일반인치고는 걸음이 아주 빠른데다 발걸음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뛰는 속도를 슬슬 늦췄다.
이건 감이다.
형사 생활 5년 짬밥이 만든.
저 새끼는 잡아야 해.
“우리 친구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실까아?”
일부러 높은 목소리를 내며 팔짱을 끼며 팔을 붙들었다. 너 이 새끼 이제 콩밥 맛보게 생겼어.
“담배?”
귀에 익숙한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가만히 내가 잡은 놈의 몸을 천천히 훑었다. 실루엣이 예사롭지 않다. 낯설지 않은 게. 딱.
“그 양아치?”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