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연속으로 병가를 낸 주임을 대신해서 소심하게 계획서를 썼던 게 본부장 귀에 들어가게 됐고 본부장은 바로 실행하는 게 좋겠다면서 아주 만족했고 그 결과, 신입으로 들어 왔던 나는 수습 기간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인턴으로 승급했다. 내가 노력했던 과정을 인정 받게 되는 오늘처럼 기분 좋은 날, 회식이 진행되었고 안일하게 그것도 다 같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 휴대폰을 참 오랜만에 꺼내들었다. 너에게 다섯 통이나 부재중 통화가 와 있었고, 서둘러 나는 여러 각도에서 세 장 정도를 촬영하고 막차 시간을 알아 보겠다고 말한 뒤에야 겨우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사람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조금 넓은 골목,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두 개밖에 안 남았네, 집 가는 길에 사야겠다. “전화한 거 이제 봤어. 왜 전화했어?” - “...” “불리하다고 생각 될 때는 너가 의견을 뭐라도 제시해야...” - “아무 일도 아냐. 그냥 전화했어.” “아무 일도 아닌데 누가 전화를 다섯 통이나 하냐? 뭔데.” 전화가 끊기는 소리. 담배 이제 불 붙였는데. 나는 신경질적으로 낮게 욕을 하고 다시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한 자리가 비어있어서 누가 집 간 건가, 두리번거릴 때 이번 프로젝트에서 날 힘껏 도와 준 차 대리가 화장실 쪽에서 걸어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는다. “원식 씨.” “대리 님! 이번에 제 계획서에 같이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이에요.” “아니에요. 그건 누가 봐도 좋았어.” “과찬이십니다.” “혹시...” 차 대리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나에게 귓속말을 하였다. 담배가 있냐는 말이었다. 나는 머쓱하게 주머니에서 내 취향의 담배를 꺼냈고 너는 따라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라이터까지 꺼내 들려고 했을 때, 너의 손에 내 가방과 코트가 같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집 가실 거에요?” “데려다 줄래요?” “아니, 저 술 마셨는데...” “알아요. 걷자는 말이에요. 술도 깰 겸.”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고 미소 짓는 차 대리가 이상하게도 조금 예뻐 보였다. 술 많이 마신 건가. 나는 양 볼을 조심히 톡톡 치고 너의 옆으로 걸었다. 나도 모르게 너를 안쪽으로 안내하면서. “그럼 쭉 여기서 산 거네요?” “네. 원식 씨는 독립한 지 얼마나 됐어요?” “저도 오래 됐어요. 지금 애인... 아...” “아,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음 말하지 마요.” 이홍빈이 말한대로 나는 지나치게 솔직하다. 나의 현저한 말실수에 황급히 말을 감췄고, 너는 괜찮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그러고 보면 차 대리는 이번 프로젝트 때문에 알게 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사 내에 어느 책상을 쓰는지는 알고 있었고, 어느 층에 자주 오가는지 알고 있었지만 너를 너의 자리에서, 그러니까 지정된 곳에서 본 적은 드물었다. 아니, 본 적이 없었다. “나 사실 본부장이랑 사겨요.” “...네, 네?” “몰랐어요?” 이제 회사 막 들어와서 적응한다고 점심도 안 먹은 나한테 본인과 본부장의 연애 사실을 알았냐고 물어 본다면 도대체 어떤 현명한 대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인지. 괜히 헛기침을 해댔다. “진짜 몰랐나 보구나. 나 본부장이랑 회사에서 떡도 많이 쳤어요.” “...대리 님, 술 많이 드셨어요? “원식 씨.” “네.” “이상한 거 모르겠어요?” 이상한 거? 내가 눈치 못 챈 거 말고는 전혀 모르겠는데. 되물어 보려고 한 순간 너에게서 전화가 왔다. 속으로만 한숨 쉰 나는 거듭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며 먼저 가 보겠다고 한 뒤에 네 전화를 받았다. “왜.” - “피 나.” “어디서. 어쩌다가.” - “보고 싶어...” “...갈게. 기다려.” 나의 뒤편에서 차 대리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게 아주 잘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런 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궁금하긴 했다. 그 ‘이상한’ 게 뭔지. “...원식 씨. 우리 본부장 남자야.” 학연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저 멀리 뛰어가는 원식의 뒷모습을 보면서 밤하늘에 뜬 아주 희미한 별처럼 웃어 보였다. - 내가 글을 쓰는 단 한 가지 이유는 너야 오늘 떡볶이를 맛있게 만드는 레시피를 알아냈어 내일 아침에 해 줄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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