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민규] 기억을 걷는 밤 00
그 날은 참 더운 날이었다. 마치 피서를 가야할 듯한-그것이 에어컨이 있는 카페든, 정말 물에서 흠뻑 젖을 수 있는 계곡이든 바다든 어디든.-정말 장마라면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비가 오리라 생각이 들지 않았던 여름이었다. 그 날의 최저 기온은 20도 중반을 향했고, 최고 온도는 30도 중반을 향할 정도로 정말 무더위가 이어졌고, 그 전날의 밤은 마치 정말 캠핑을 하는 사람들은 멍청하다고 생각 될 만큼의 열대야였다.
그 날도 무더위가 여전히 이어지는 날이었고, 커튼을 확 걷었을 때는 구름 한 점도 없었던 정말 화창한 날씨였다. 더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냥 자취방의 에어컨을 틀어놓고 친구에게 받았던 기프티콘을 사온 베라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영화를 보러가고픈 날이었다. 정말, 그 날 나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의 내 남자친구를 만날 수 있었을까.
무더위가 이어지던 그 날, 알바를 마치기 1시간 전부터 갑자기 흐려지더니 교대를 하기 위해 업무를 넘기고 있을 때 폭풍우가 쏟아졌다. 우산도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머리라도 먹아 줄 가방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 물론, 이럴 때를 대비하여 점장님이 탈의실에 비상용으로 두신 우산 하나는 같은 파트타임에 일하던 알바생이 먼저 가져간 뒤였다. 결국 그 날은 집까지 미친 듯이 뛰어서 들어갈 생각이었다. 친구를 부르거나, 부모님을 부르거나, 다양한 사람들을 부를 수 있는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했지만. 본가를 떠나 서울로 대학을 와버린 바람에 시작한 자취생활과 더불어, 얼마 있지도 않은 친구들은 정말 학교와 멀리 떨어진 거리에 살고 있었다. 고로, 정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물론 그 방법이 제대로 먹히면 참 좋았겠지, 그 방법은 결국 먹히지 않았다. 분명히 나는 차도의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었고, 횡단보도의 불이 빨간 불에서 초록 불로 바뀌는 것을 확인 하고 걸음을 뗀 것이었지만, 미끄러운 길의 여파였던 것일까, 브레이크를 밟던 차는 그대로 미끄러져 나를 박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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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벅, 끔벅. 내 눈을 강타한 눈부신 햇살에 두어 번 눈을 깜빡 거렸다. 분명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차에 치인 것인데 왜 나는 흰색 천장이 아닌 빨간색 천장으로 도배가 된 낯선 곳에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차에 치였으면 병원에 실려가 큰 수술을 받았다던가, 아니면 안타깝게 저 세상이던가 둘 중 하나 아닌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뻐근한 몸을 서서히 일으켰다.
“어?”
무엇인가 잘못 되었나 싶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항상 사극에서만 보던 익숙한 장면들이 펼쳐진다는 건, 내가 아무래도 과거로 넘어왔다는 것인가 싶었다. 교과서에서 흔히 보던 가구들과 도자기들이 차례대로 진을 이루고 있었고, 서울에서는 잘 들을 수 없었던 정말 맑고 청아한 매미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이 곳은 정말 적어도 조선시대라는 것인가. 다시 고개를 숙여 옷차림을 보아하니 환자복이 아닌 흰색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있었고, 머리도 애매하다며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거지존이라- 하나로 묶고 다니던 머리는 더 긴 머리로 땋아져 있었다.
“일어나셨습니까, 몸은 좀 괜찮으신지요.”
“아, 네. 좀.”
상황파악을 하겠다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린지 몇 분이 지났을까, 한 궁녀가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오더니 말을 걸어왔다. 물수건을 갈아줄 계획인건지 아직 완전하게 짜내지 못해 물기가 있는 것이 보이는 수건을 뒤따라온 궁녀에게 내밀고는 내게 다가왔다.
“꼬박 보름을 누워 계셨습니다.”
믿기지가 않았다. 이 궁녀의 말에 의하면 나는 감기 같은 병 하나로 꼬박 보름을 누워있었다고 했다. 이 시대에서 감기는 대체 어떤 병이라서 이렇게나 끙끙 거리며 앓았다는 것인가 싶었다. 상황 파악이 가지 않아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을 때였다. 밖에서 주상전하 납시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두 번의 문이 열렸고 한 남자가 발을 디뎠다.
“꼬박 보름을 앓았소, 몸은 괜찮은 것인지요.
“아, 네.”
짧은 대답에 전하라던 그니까 이 나라의 국왕이라던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 원래의 왕비는 이러지 않았던 것인가. 고개를 갸우뚱하던 국왕은 궁녀에게 나가보라는 사인을 보냈던 것인지 손짓 하나에 궁녀들이 방을 빠져나갔다.
“정말 몸은 괜찮은 것인지 물었소.”
아까의 대답이 거짓말인 것을 눈치 챈 모양인지 딱딱한 말투로 나에게 재차 물었다.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정말 사실이지만 미래에서 왔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들에겐 2010년대라는 시대는 까마득한 시대일 것이니까. 그렇다면 나는 이 사람에게 무슨 대답을 내놓아야 할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미래에서 왔다고 한다면, 이 사람들은 나를 미친 여자로 보고 목을 쳐 낼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나는 연기가 필요했다. 정말 왕비인 척 하면서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모두 알아낼 수 있는 연기.
“아니요, 몇 가지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작가의 천한 사담 |
안녕하세요 글잡 오랜만에 입성해보는 새럼입니다. 제대로 연재 할 수는 있을지 모르는 샌액히지만 (독자: ?) 누가 그랬죠 1학년은 놀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저는 글잡을 연재할 것이고, 뭐 시험기간에만 공부하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최소한의 학점은 나오겠죠, 설마 학고를 받을까요. 대화 중간 중간 아이들 사진을 끼워 넣을까 많이 고민하던 순간 컴퓨터 세븐틴 사진 파일을 홀라당 날렸습니다 정말 최대한 사진을 모으기 전까지는 대화에 사진 첨부는 없을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