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 04
결국 컨버스 밑창이 모조리 까졌다. 밑창과 신발이 분리 되었다. 내 신발을 본 선배들이 깔깔 웃어 제꼈다. 한 두 번 보는 것도 아니면서 뭐가 그렇게 웃긴 지 볼 때마다 웃어댔다. 그래도 이번 껀 오래 신었다. 반 년 정도. 점심 시간에 신발이나 사러 가야겠다.
“야, 주아야. 너도 짜장면 먹을 거냐?”
“나가게요. 신발 사러.”
선배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잔액이 얼마 남아 있더라. 핸드폰을 켰다. 옆모서리 액정이 깨진 핸드폰은 아직 쓸만했다. 다행이었다. 문제는.
그 날부터 미친 듯이 오는 전화와 문자였다.
오늘도 전화를 받지 않으면 경찰서에 전화하겠다던 놈은 그런 수고는 하지 않았다. 내 핸드폰에만 주구장창 연락을 해댔다. 내 고물 핸드폰은 번호를 차단하는 기능이 없었다. 그냥 씹을 수 밖에. 놈의 전화로 추정되는 걸 씹은 지 일주일하고도 삼 일 정도가 지났다. 별 일은 없었다.
아니, 있었다.
“형사님, 제발요. 그 이가 자살할 위인 아닌 거 아시잖아요.”
김기환의 아내가 내 발목을 붙들었다. 며칠 전 경찰서를 찾아와서는 나를 찾았다. 할 말이 있다며 대뜸 억울함을 풀어달라더라. 부탁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그 쪽이나 나나 없는 처지인 건 잘 안다.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날 찾았겠지만 나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해줄 생각도 없고. 그래서 거절했다. 매몰차게.
“그 날 저희 애한테 돈 쥐여주고 가신 거 알아요.”
알량하게 베푼 선행이 모진 희망을 심어준 모양이다. 헛웃음이 튀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착각이라고. 난 착하고 정의로운 경찰이 아니라고 말하려 했다.
“형사님, 제발요.”
내 팔을 붙드는 얇은 손이 거슬렸다. 그 손을 뿌리치면 부러질 것처럼 얇았다. 어린 시절에 잠시 스쳐지나갔던 엄마라는 사람처럼.
“그걸 밝혀내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뒷 말은 삼켰다. 남편의 억울함을 밝히는 것. 그거면 되는 걸까. 헛된 희망을 안겨주는 건 소용이 없다. 한 줄기의 얇은 희망을 걷어내면 남는 것은 어둠 뿐이다. 모든 걸 집어 삼키는.
“남편을 죽인 사람을 알아낸다고 쳐요. 그 다음은?”
난 진심으로 바랐다.
“재판이 열리겠죠. 판사가 정의로운 판결을 내릴까?”
여자의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기를.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거 잘 알잖아요.”
내 등을 쫓는 애처로운 눈빛을 뒤로했다.
뒷골목 04
“오십.”
희끗희끗한 머리를 자랑하는 할아버지가 금테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계산기를 몇 번 두드리더니 나온 말이었다. 내가 들고 온 게 얼마짜린데. 고작 오십이라니.
“됐어요. 다른 데 알아보죠.”
가져온 코트를 다시 쇼핑백에 구겨넣자 노인이 입맛을 다시더니 가격을 다시 불렀다.
“육십. 딱 여기까지야.”
내가 걷어찬 차의 주인이 던진 코트였다. 족히 이백은 넘는 발렌티노 코트. 중고 명품을 취급하는 가게를 십 년 넘게 해온 노인이 코트의 가격을 모를 리 없다.
“팔십. 안 해주면 다른 데 가고.”
노인이 내 말에 계산기를 두드리더니 궁시렁 거렸다. 애비를 닮아서 집요하다고. 사람 등쳐먹고 사는 데엔 도가 텄다고. 동네 사람들에게 욕은 하도 들어 먹어서 아무렇지도 않다. 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하나 더 알았다. 그 때 야상은 부친이 여기서 팔아먹은 모양이다. 혹시나 해서 화장실 천장을 뜯어 숨겨놨는데 그걸 또 찾아서 팔았네. 당분간 술이 넘쳐날테니 집에 들어가긴 글렀다. 옷 살 돈도 없는데. 지민이 옷이나 빌려입어야 하나. 강력계엔 여자 동료를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사교성이라곤 밥 말아 먹은 내가 다른 과 여자애들이랑 친할 리도 없고. 박지민의 키가 나랑 비슷한 게 다행이었다. 조금 크긴 했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노인의 안경 위로 숱 없는 눈썹이 꿈틀 거렸다. 재보는 거다. 내가 진심인지 아닌지. 원래 바닥에서 사는 삶은 딱히 미련을 가질 여유도 없다. 아니면 그만이다. 옷을 챙겼다.
“아, 아. 알았어. 팔십.”
노인이 내 행동을 제지했다. 그래, 노인과 같은 저런 아쉬움도 있는 자들의 전유물이다. 다시 코트를 꺼냈다. 어떻게 이번 달 월세는 제 때 낼 수 있겠다.
뒷골목 04
신발만 모아 파는 가게에 삼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들어갔다. 유명 브랜드들의 신발이 즐비해 있었다. 그 사이를 둘러보다 저렴한 컨버스화가 있는 곳으로 갔다. 회사 이름도 박혀있지 않은 그저 그런 신발. 어디 회사의 짭이라고 하더라. 짭이면 어떤가. 나한텐 제격이었다. 비싼 운동화가 발이 편하다고 하던데 발이 편하면 뭐하나. 인생이 불편한데. 때가 타도 티 나지 않는 검정색을 찾았다. 그것들 중 가장 튼튼해 보이는 걸로 골랐다.
고른 신발을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유명 브랜드 신발이 즐비한 저 편에 서 있던 한 남자가 눈을 맞춰왔다. 입 밖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그 새끼다. 모른 척 가던 길을 갔다. 쫄면 끝나는 게임이다. 계산 하고 냅다 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거랑 같이 계산.”
대뜸 나타난 놈이 자기가 집은 운동화와 제 카드를 내밀었다. 놈이 집은 운동화 두 켤레와 내 컨버스화가 좁은 계산대 위에 올려져 있다. 요상한 조합이었다. 사주겠다는 걸 굳이 막을 이유는 없다. 땡 잡은 거지 뭐. 내 카드를 밀어넣고 컨버스화만 집어서 나가려할 때였다.
“어딜.”
놈이 내 팔을 잡았다. 멍이 든 자리에 힘이 들어가자 아픔에 인상을 썼다. 그걸 안 건지 놈이 힘을 살짝 뺐다. 살짝 힘이 풀어진 틈을 타 뿌리치고 가려했으나 쉽게 내쳐지지 않았다. 좆됐네. 제대로 걸렸어. 양아치답게 검은색 라이더 자켓을 입은 놈이 밖으로 날 데려갔다.
“제대로 박아놓으셨더라고.”
제 차 앞으로 날 데려간 놈이 바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놈을 향해 어깨를 으슥였다.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전화도 씹고. 문자도 씹고.”
“전화했었어? 문자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존나 미안하지만 난 네 차를 수리해줄 돈이 없단다.
“근데 너.”
놈이 내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가짜이서 본 얼굴엔 흉터 하나가 돋보였다. 왼쪽 볼에 패인 자국. 어디서 몸을 막 구르고 다니는 게 뻔했다.
“원한이라도 샀어?”
놈이 내 뒤를 주시하며 물었다. 원한? 나한테 불만있는 놈들이 많긴 하겠지. 한 때 무식하게 범죄자들을 잡다 보니 별 꼴을 다 봤었다. 그렇게 반쯤 미친 상태로 수사하며 실적을 올렸으나 번번이 승진하지 못 했다. 이젠 안다. 그런 건 다 필요 없다는 걸. 그 당시에 붙은 미친 주아 딱지가 아직 붙어있었지만 그 때처럼 미친 듯이 일하지 않는다. 할 것만 해도 충분했다. 월급은 열심히 하든 대충 하든 똑같다.
“타.”
놈이 조수석 문을 열었다. 놈을 흘겨보며 내 갈 길을 가려했다.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다. 제 연락을 씹었다며 뭐라하더니 수리비를 청구하지도 않는다. 핸드폰 연락을 받지 않으면 경찰서에 연락하면 될 텐데 그건 또 하지 않는다. 게다가 오늘은 내 운동화까지 사준 놈이다. 그것도 모자라 태워준다고? 속이 읽히지 않는다. 이런 부류는 두 종류였다. 욕 나올 정도로 똑똑한 놈이 거나 회까닥 돌아버린 놈이 거나.
결국 놈은 내 머리 위로 제 손을 얹고 다른 손으로는 나를 밀어넣었다. 떠밀리 듯이 차 안으로 들어갔다. 운전석에 탄 놈을 한 껏 야렸다.
“잔 말말고 하자는 대로 해.”
“지랄하지말고 문 열어.”
“벨트.”
짧은 말을 마친 놈이 엑셀을 밟았다. 더러운 운전 실력은 여전했다.
“방향이 같아서 태우고 가는 거야.”
놈이 나를 힐끔 보며 말했다. 버스비 굳었다고 생각하지 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거칠게 운전하는 통에 덜컹대던 차가 차츰 안정적으로 변했다. 몇 번 탔다고 적응된 거야 뭐야.
뒷골목 04
“일어나.”
낮은 음성이 귓가를 때렸다. 눈을 천천히 떴다. 재수 없는 놈의 차 안이었다. 손목 시계를 보니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미친..”
어떻게 오면 차로 십 분 걸리는 길을 삼십 분만에 올 수 있는 건데. 들어가자마자 한 소리 들을 생각에 입이 썼다.
“말해놨어. 너네 과장한테.”
놈이 운동화를 건네주며 말했다. 내가 건네 받은 운동화 박스는 두 개였다.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맨날 달리던데 그런 거 신고 달리면 발이고 다리고 다 아작나.”
“그러니까 그걸 네가 왜 신경 써.”
“싫으면 주던 가.”
진짜 들고갈 것 같은 놈의 말에 박스를 내 쪽으로 끌어 안았다.
“아니, 뭐.”
“연락 또 씹으면 죽어.”
놈의 마지막 말은 못 들은 척하고 차에서 내렸다. 이미 수리를 받은 건지 내가 박은 조수석 문은 멀쩡했다. 얼마나 달라고 하려나. 누가봐도 내 과실 백프로인데. 과장한테 말해 놨다는 건 또 뭐고. 명품을 휘두르고 몰고 다니는 차에 과장 운운하는 걸 보면 있는 집 놈일 게 분명했다. 왜 걸려도 저런 놈한테. 아오. 바닥의 돌맹이 하나를 걷어 찼다.
“형사님.”
절박한 목소리가 내 팔목을 잡아왔다. 그 여자다. 여자의 얼굴을 보지도 않은 채 손을 뿌리쳤다.
“난 그 쪽이 원하는 그런 경찰이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그러면요.”
“저 남자랑 무슨 사이세요?”
여자의 말에 몸을 돌렸다. 그 날 이후 처음보는 여자는 그 사이에 좀 더 말랐고 더 힘들어보였다.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눈. 무언갈 결심한 사람의 눈이었다. 여자가 지금 막 경찰서를 빠져나가고 있는 놈의 차를 가리켰다.
“아까 형사님이 내리신 차요.”
여자가 날 보는 눈에 힘을 줬다. 오싹한 느낌이 등 뒤를 뚫어온다.
“그냥 좀 아는 사람이에요. 왜 물으세요.”
“아니에요...”
기분이 싸했다. 내게서 멀어지는 여자에게 가까이 갔다. 이번에는 내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 앙상한 팔목은 힘 없이 붙잡혔다.
“안 돼요.”
여자의 달라진 눈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다. 말을 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안 된다고. 하지 마요. 눈빛도 함께 보냈다. 여자가 희미하게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얇은 손목이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빌어먹을.
내 최근 통화 목록을 가득 채운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