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스트라이크
written by, 파음.
#scene 1 - 1
한 12살쯤이었나,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날에 이사를 가게 되었다. 한 층에 여러 집이 줄지어 있던 그 전 집과는 다르게 새 집은 앞집과 우리집. 딱 2개의 집만이 마주보고 있던 구조였다. 이삿짐 정리를 다 끝내고, 앞집에 이사왔다며 인사차 떡을 돌리러 언니가 갔었는데, 아마 그 때 둘이 눈이 맞은 게 아닌가 싶다. 아, 무슨 얘기냐면. 다음해 내가 13살이 되었을 때, 언니에게는 죽고 못사는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그게 바로 우리 앞집 사는 오빠였다. 언니의 남자친구는 언뜻 보기에는 굉장히 무심하고 냉정하기만 할 것 같은 사람이었는데, 언니와 사귀게 된 후로는 내가 언니의 동생이여서 그랬는지, 가끔 마주치게 되면 어색해하면서도 나를 챙기려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예를 들어 손에 아이스크림 하나라도 들려 집에 보낸다던가 하는.
어리다면 어리다고 할 수 있는 나이였던 내가 집에 혼자 남는 게 걱정됐던지, 아니면 남자친구와 편하게 만나기 위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잦은 만남을 가지는 둘 덕에 만나게 되었다. 전정국을. 인사해, 여주야. 언니는 나를 제 앞에 세워두고는 전정국을 마주하게 했다. 특별히 낯을 가리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까지 발랄하게 인사를 건넬 성격은 못되었던 나는, 언니의 옷자락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인 마냥 작은 손으로 꽈악 움켜쥐고 있었다. 저쪽 사정도 마찬가지였는지. 전정국은 나보다도 더 낯을 가리며, 제 형 뒤에 자신의 몸을 감춘 채 나를 빼꼼하게 내다보고 있었다. 언뜻 보이는 전정국을 보고 떠올린 게 동그라미였었나. 동글동글 경단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귀엽네. 그런 생각도 했던 거 같고.
몇 분 째, 서로에게 인사도 건네지 못하는 우리 둘이 답답했는지 전정국을 자신의 앞으로 보내려 애를 쓰던 오빠는 방법을 바꿔 말을 걸기 시작했다.
"정국아, 여주라고 너랑 동갑이야."
"..."
"여주 예쁘지, 인사해."
"..."
그런 오빠의 노력에도 전정국은 그저 오빠의 뒤에서 얼굴만 빼꼼하게 내민 채로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당황한 오빠가 어색하게 웃으며, 정국이가 낯을 많이 가려서, 그런 오빠의 말이 뚝하고 끊긴 건. 오빠의 뒤에서 작은 목소리를 낸 전정국에 의해서였다.
"......뻐."
얼마나 작게 말하던지, 그 자리에 서 있었던 3명 중 누구도 그 대답을 듣지 못해서, 다시 되물었다. 뭐라고 정국아? 어색함으로 가득찬 복도에서 두서없는 말을 내뱉던 오빠와 언니조차도 조용해질만큼 그 자리에 모두가 아주 중요한 뉴스라도 되는 듯이 전정국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나도, ...안 예뻐..."
전정국의 말에 상처를 입었는지,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는지. 그 말을 들은 나는 입술을 앙 다물고는 전정국에게로 다가갔다. 앙 다문 입술이 가득담은 분노를 표현하듯, 나는 순간적으로 받은 수치심과 분노를 모두 모아 그 애에게 던졌다. 그러자 곧 전정국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고, 당황한 언니와 오빠는 우리 둘을 떼어놓고는 서로에게 사과를 하며 각자의 집으로 데려갔다. 한 마디로, 첫만남에 전정국은 내게 거지같았고, 엿같았다. 이렇게 정의내릴 수 있겠다.
피치 스트라이크
# scene 1 - 2
"야, 너 그 때 기억나?"
"뭐."
전정국은 가끔씩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고는 하는데 지금이 딱 그렇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한참을 제 핸드폰을 만지던 전정국은 뜬금없이 제 볼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나를 쳐다보고 실실 웃었다. 그런 전정국의 이상행동이 하루 이틀은 아니라 곧 관심을 끄고는 다시 침대에 누워 의미없이 핸드폰의 이런 저런 글들을 읽고 있던 참이었다.
"아, 이 미친아."
순간적으로 울컥 욕이 튀어나왔다. 별안간 볼을 물어뜯은 전정국 때문에. 원래부터 또라이라는 걸 알고있었지만, 지가 강아지도 아니고 갑자기 가만히 있던 사람의 볼을 왜 물어뜯냐고. 재빨리 물어뜯긴 볼을 손으로 문지르자 알싸한 통증과 함께 진득한 액체감이 느껴졌다. 아, 진짜 짜증나. 옅게 남은 이빨자국에 손가락으로 이빨자국을 문지르며 전정국을 노려보았다. 내 짜증에도 그런 내 태도가 오히려 재밌다는 듯이 자꾸만 실실 웃는 전정국에 손에 잡히는 배게를 아무거나 던져 녀석의 머리를 맞췄다. 왜, 웃어. 왜 웃냐고. 평소같으면 짜증이라도 낼 녀석이 배게를 맞고도 계속 미소를 띄고 있었다. 이쯤되니 짜증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저 새끼 어딘가 아픈가...?
"복수야."
뜬금없이 그 말을 내뱉고는 배게에 맞아 헝클어진 제 머리를 손으로 털어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선 전정국은 제 긴 손가락으로 제가 물었던 내 볼을 살짝 건드리고는 웃었다. 이게 진짜 돌았나. 싶은 마음과 솔직히 좀 당황스럽기도한 마음에 녀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푸스스 웃고는 내가 좀 뒷끝이 길어. 그렇게 내뱉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퉁명스레 말이 튀어나왔다. 뭔 소리야 대체. 그 와중에도 전정국은 내 볼에서 손가락을 뗄 생각이 없는지 자꾸만 옅은 자국이 있는 볼을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자꾸만 간지럽고, 괜스레 이상한 기분이 들어 손으로 볼을 쓸어넘기듯 전정국의 손을 쳐냈다.
"사실, 그 때 한 말은 거짓말이야."
도대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하는 녀석이 진짜 아픈지 걱정이 되어서 가까이 다가가 손을 이마에 얹어봤지만 미지근한 온도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전정국과 눈이 마주쳤는데, 누구도 그 시선을 피하지 못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 한참을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낯간지럽다며 나를 떨어뜨려야 할 전정국이 그 순간만큼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둘 중 누구도 먼저 고개를 돌리지를 못하고, 서로의 눈을 올곧게 바라볼 뿐이었다. 분위기가 가라앉고 점점 낮간지럽다는 느낌이 들어갈 때쯤.
"김여주."
평소의 장난스런 목소리가 아니라 한결 낮아진 목소리로 나를 부른 전정국은, 제 한 손을 아직 이빨자국이 옅게 남아있는 볼에 올리고천천히 쓰다듬었다.
"나, 너,"
"안 돼."
"..."
"더 말하지마."
자신의 말을 단호하게 끊어버린 나에 한껏 다정한 표정을 짓고있던 전정국의 눈매가 굳어졌다. 그리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한쪽 눈썹을 오리고는 물었다. 묘하게 날이 선 목소리로. 왜. 너는 왜 매번.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황급하게 녀석을 밀어내고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 섰다.
"너랑 나는 친구잖아."
"..."
"그리고 우리 둘은..."
"..."
"아무튼 안 돼."
피치 스트라이크
# scene 1 - 3
그렇게 내가 12살 쯤 시작된 언니와 오빠의 사랑은 자그마치 5년을 이어졌다. 그 덕에 첫만남은 최악에 가까웠던 전정국과는 친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지게 되었다. 물론, 앞집이었던 게 가장 큰 몫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보단 신기하게도 초등학교, 중학교, 게다가 고등학교까지 같이 진학했다. 중학교는 집이 가까워서였지만,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니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고등학교는 집에서 꽤 떨어진 곳을 1지망으로 썼으니까. 가까운 게 최고!를 외치던 내가 고등학교를 멀리 쓴 데에는 전정국이 아주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유는 나중에 말하겠지만, 여튼 그래서 전정국한테도 비밀로 쓴 곳이었는데. 우연이 겹친건지 뭔지 간에 전정국도 같은 학교에 오게 되었다.
"야, 김여주."
입학실 날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가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쟤가 왜 여기있어...? 내가 저를 피해서 일부로 먼 고등학교를 쓴 걸 알았는지. 입학식 날까지 나와 같은 고등학교가 된 사실을 철저하게 숨긴 전정국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놀라서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었다. 그리고는 일어서려다 다시 힘이 풀려 주저 앉았지만.
"너, 나랑 또 같은 반이다."
웃으며 그 사실을 전달하는 전정국의 말에.
전정국과 같은 학교에 다니고 그런게 싫은 건 아니었다. 좋은 점도 많았으니까. 우선 전정국 덕에 김태형, 박지민하고 친해졌고, 전정국의 외모 덕에 친한 사이로 알려진 내가 덕을 많이 봤었다. 물론, 처음에는 전정국이 내게 하는 행동을 보고 오해해서 미워한 친구들도 있었는데. 전정국의 오빠와 우리 언니가 사귀는 사이라서 친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친구들은 내게 전정국에게 다리를 놔달라며 이것저것 먹을 것들을 품에 안겨주었던 터라 제법 쏠쏠하게 이득을 보고는 했다.
하지만 분명 그 오해가 전부 풀리는 건 아니었다. 중학생 때 어쩌다 좋아하게 된 선배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선배에게 고백했을 때 선배는 나를 거절하면서 남자친구가 있는데 이러는 건 아니라고 나를 타일렀다. 나는 남자친구가 없는데, 이게 대체 무슨 멍멍이 소리지? 싶은 마음에. 네? 제가 남자친구요? 그래, 너 남자친구 있잖아. 누구요? 그 눈 동그랗고, 토끼같은... 선배가 묘사하는 건 아무래도 전정국이 분명했다. 답답한 마음에 아무리 친구라고 하는데도 믿지 않는 선배에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것보다도, 내 억울함을 푸는 게 급급해서. 지금 전정국을 불러 확인시켜주겠다며 전정국을 그 자리로 불러냈다.
몇 분 후, 그 자리에 나타난 전정국은 나와 선배를 번갈아보다가 무슨 상황이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자, 전정국 말해봐. 내가 너랑 사귀거나 좋아하는 사이야? 너랑 나랑 그런 사이 아니잖아. 내가 전정국까지 불러내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자 당황스런 표정을 짓던 선배도 점점 내 말을 믿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며, 정말...너희 아무 사이도 아니야? 하고 전정국에게 물었다.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건지 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전정국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네, 저희 '그런'사이는 아닙니다."
그런 전정국에 그제서야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믿는 듯 했다. 그 덕에 한시름 놓은 내가 그제서야 편하게 숨을 쉬려던 찰라.
"근데, '그런'사이에 가깝죠."
저,저 미친. 순간 너무 벙쪄서 아니라는 해명을 내뱉지도 못하고 눈만 동그랗게 뜬 채 전정국을 쳐다보고 있었다. 전정국은 말을 마치고 생긋 웃으며 내 한쪽 팔을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그럼 이제 제가 김여주 데려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선배를 바라보고 예의바르게 인사까지 하고서 나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었다. 가는 내내 전정국의 등을 내려치며 이 미친놈아. 어, 남의 연애를 말아먹어도 유분수지. 그렇게 씩씩 거리며 화를 냈다. 사실은 황당함이 더 컸다.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지껄인 건지. 이런 장난은 진짜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말없이 내가 손을 움직이는대로 맞아주던 전정국은 계속 맞다보니 등이 아렸는지. 내 양손목을 한 손으로 잡으며, 아. 좀 아파. 넌 아파도 싸. 소리치듯 짜증스레 내뱉고는 씩씩 거리며 손을 벗어나려 버둥거리자, 나를 멈추게 하려는 듯 내 팔을 잡아당겨 제 품에 끌어안고는 등을 토닥였다. 일정한 토닥임에 좀 진정이 된 내가 좀 잠잠해지자, 전정국이 입을 열었다. 나지막하게. 그 선배, 질이 안 좋다고 들어서 그런거야. 진짜? 응, 진짜. 그래도 그런 걸로 거짓말할 녀석은 아니라 오히려 좀 고마웠다.
그치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이제 좀 전정국과 떨어져 나도 그런 오해없이 평범한 학교생활 좀 해보자. 그런 마음이었는데. 다 망쳤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 같은 반인 건 너무한 거 잖아? 그런 내 툴툴거림도 모르는지 전정국은 그저 웃으며 나를 새 반으로 이끌었다.
"올해도 잘 부탁한다."
징한 놈.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 새학기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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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일단, 네. 죄송합니다 ㅠㅠ
금방 온다고 예고편까지 띄워놓고는 말도 없이 사라졌었죠 게다가 갈등 장면에...
일단, 결론적으로 성적과 연애의 상관관계는 연중. 하겠습니다.
계속 연재할 자신이 없어요. 그 작품 좋아해주신 분들이 계셨는데, 일단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그래서 암호닉도 아마 다 엎어졌어요.
원래 있으시던 분들도 그냥 새로 신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동안 혼자 생각나는 소재들로 일편씩만 잔뜩 적어놨었어요.
새 작품으로 오려고 독방에서 어떤 글이 나을지 물어본 것도 많은데, 우선 이 작을 연재하기로 했답니다!!!
이건 어떻게든 완결 내 보겠습니다.ㅠㅠ
이만 말 줄입니다.
아! 저 필명 바꿀거예요. 파음.으로.
그럼 진짜로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