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 망상 뙇
" 심심하다. "
그가 탁- 소리가 나게 읽던 책을 덮고는
반쯤 무릎을 감싸던 이불 안으로 들어가 내 종아리를 주물거렸다.
아이같이 천진한 그 손장난에, 간지러운웃음을 겨우 참는데
이내 머리를 빼꼼 내밀고는 안놀아줘? 하는 눈길을 보낸다.
" 난 이책 재밌는데? "
" 아-, 그러지 말고- "
평소에 맨날 능글맞게 구는 너를 이때 아니면 언제 놀려보겠어,싶어
장단안맞춰주고 책에 시선을 고정하니,
이젠 한 손을 가져다가 갑자기 꼬물락꼬물락. 뭐하냐, 기성용-
" 책을 못읽겠네, 기서방, 책을 못읽겠다고요 내가- "
" 심심해서 못있겠네, 부인, 심심해서 못참겠다고요 내가- "
하여간 장난치는거 하고는.
푸흐, 하고 웃으며 꼬물락거리던 손을 빼 머리를 몇번 쓰다듬어 주자
너는 이내 팔을 뻗어 이불안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 왜이리 장난이 심할까, 오늘? "
" 하고싶어서. "
" 뭘, 난 모르겠는데. "
" 그냥, 내 정기좀 뺏어먹으라고. "
강아지같은 눈망울로 말을 툭 던지고는,
이내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허리언저리를 쓰다듬기 시작한다.
능숙한 손짓으로 후크를 풀고, 어느새 바지안으로 들어온 그의 커다란 손이
둔덕을 가만가만히 어루만진다.
..아, 잠깐만,
바지 뒷주머니에-
" 기,기성용, 손 빼봐, 얼른- "
" 왜, 여기 뭐 숨겨두기라도 했냐, 수상한데? "
탁-
망할,왜 하필-..
낮에 같이 청소를 하며 그에게 들키지않기위해
바지 뒷주머니에 대충 쑤셔넣었던 약이, 그의 손에 들렸다.
뭘 또 이렇게 구겨넣었어,하며 흘기고는 약을 살펴보던 그의 안색이
점점, 굳어가기 시작한다.
" ..뭐야, 이거. "
" ... "
" ..너, 피임약먹냐? "
" 그,아니,가끔, "
" 먹냐고 안먹냐고. "
" ...먹어... "
" 왜. "
" ... "
" 다시말해줘? 왜 먹는데. "
" ..아직...아닌거같아, 아이는-.. "
하하-..그가 머리를 쓸어넘기더니 이내 허한 웃음을 쏟았다.
냉소적인 웃음이 허공을떠돌고,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일수밖에없었다.
" 오늘은. "
" 어..? "
" 오늘은, 먹었냐고 저거. "
" 저..저거 하고 난 뒤에 먹는거-, 윽-..! "
내 말이 채 입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그에게 손목이 결박당했고, 그는 나를내려다보며 계속 실소를터뜨렸다.
" 그럼, 오늘은 못하겠네, 피임? "
" 놔줘, 이거 놔,기성용-..!,읏, "
한손으로는 내 손을 결박하고 나머지 손으로는 거칠게 티를 올리고는
가슴과 쇄골을 오가는 그의 손길은
내가 알던 그가아닌, 생소한 모습이었다.
지나간 흔적을 남기듯 거칠게 살을 쓸던 손짓에 몸은 반응하면서도
계속해서 아려온다. 그에게 단단히 잡힌, 두 손목이.
" 놔...놔줘,제발,성용아-..."
어느새 눈물이 비집고 나와 볼에 흐르고, 뚝뚝 이불자락에 맺히고.
흐느끼는소리를 들었는지 그는 고개를 들어 눈을 응시한다.
" ..아프단말이야, 아파.. "
내 몸은 어느새 덜덜 떨리고있었고, 그는 눈을 한번 감았다 뜨고는
이내 결박한 손목을 풀었다.
빨갛게 부어오른 손목.
손자욱이 선명히 남아있는 그 손목을 떨며 도망치듯 침대 밖으로 뛰쳐나갔고
그는 한숨섞인 마른세수를 몇번하며 입술을 깨물다
패딩을 대충 걸치고는 밖으로 나갔다.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나가는 뒷모습을, 그가 남기는 발자국들을.
*
내가잘못한거겠지.
하지만, 한번쯤은 들어줄 수도 있잖아. 왜 그랬는지...
거실로 나와 소파아래에 무릎을끌어안은채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그가 얼마나 아이를 원하는지는, 알고있었다.
완전한 가정을, 우리사이의 어떤 결실을 원하고 있다는것은,
결혼 전부터 이미 직시하고있던 사실이었다.
이해를 바라는게 무리였던 걸까,
아니면 내 방식이, 잘못되었던 걸까.
여전히 빨간 손자욱이 새겨진 손목을 가만히 응시했다.
내가 그때 울지 않았더라면, 구걸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는, 끝까지 나를 결박한 채 강제로 관계했을까.
...
쾅-
문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그가 거실로 걸어들어오는소리가 들렸지만
고개를 들어 그를 보기는 커녕,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발걸음이 멎는다.
..어?
걸음이 멎은줄 알아 잔뜩 신경을 세우고 있었는데
숨을 죽이고 다가온듯한 그가 안아올리는 손길이 느껴진다.
한없이 조심스럽지만 주저하지않는 그 행동에 나는 그저 움츠렸다.
..밖을 걷다가 온 걸까.
나를 안아올리는손과, 살결에 닿는 그의 패딩에
차가운 바깥기운이 한웅큼 서려있다.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나 또한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내, 내가 가늠할수없는 깊이의 고민과
어떤 복잡함을 담은 얕은 한숨이, 그의 입에서 새어나온다.
그는 침실로 들어가 천천히 침대에 눕혀주더니
패딩을 벗고는 뒤에 누웠다.
온몸이 잔뜩 긴장하고있었다, 이 다음 일어날 일에대해
어떤것도 예상할수없었기에, 신경이 곤두세워진다.
항상 그랬듯, 우리가 잠자리에 들때 그가 그랬듯
그의팔이 배를 감쌌고, 그의 얼굴이 어깨와 목 언저리에 닿았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의 가까운 거리.
목 뒤에서 새어들어오는 숨소리.
모든게, 너무나도 그대로같은 순간.
" ..불안했어. "
그의 목소리는 겁을 집어먹은 아이처럼 미세하게 떨렸고,
깊게 잠겨있었다.
우는거야..?
그가 머리를묻은 어깨에 점점 번져나가는 물기가어려온다.
" ..내가 싫어진걸까, 나는 너와 같은것을 바라보고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걸까, 우리 미래를 같이 상상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
" ... "
깊은 고민과, 한숨과, 자신에대한 질책이 한껏 묻어나온 그의 음성에
눈물이 또 배어나왔다.
나를 믿은, 마음이변했나 고민했을 그에대한 미안함이,
작은 생명하나 품을 자리를 마련해주지않은 나에대한, 어떤 뭉뚱그려진 감정에
눈물이 자꾸만 배어나와 입술을 깨물었다.
몸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 괜찮아, 괜찮으니까.. "
" ... "
" 떨지마, 화 안났어. "
" ... "
" 서두르지도, 안달내지도 않을게.. "
어린아이를 토닥거리는 낮은 중저음의 음성.
괜찮다는 그의 말에 밀려오는 안도감때문인지,
온 몸의 긴장이 풀리고 이내 엉엉 울음이 터져나온다.
" ..그러니까, 걱정시키지마. 약속. "
*
쭉 이어갈생각인데
주제좀 던져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