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짓밟고 올라서려 여기까지 이 악물고 버텨왔다. 지금 현재 나를 향해 다가오는 너의 모습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마치 나는 과거의 김성규가 아닌 것처럼. 너를 처음 보는 것처럼. 그렇게 내 자신을 검은색의 천막으로 가려버리고 웃는다. 곧 내게 넘어올 너를 비웃는다. 나로 인해 서서히, 그리고 아주 처참하게 무너질 너를 상상하며 나는 웃었다. 시리도록 아프게. 그리고,
미치도록 소름끼치게.
옴므파탈
(Homme Fatale : 사람을 유혹하는 치명적인 매력을 소유한 남성)
더러운 시궁창. 그래. 내가 있는 곳은 그 한 단어로 설명되는 곳이 맞았다. 이리저리 쌓인 쓰레기들이 발에 치이는 아주 좁고 낡은 골목. 집들은 거의 폐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낡고 못 쓸 정도였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 또한 창녀나 늙은 노인뿐이다. 하지만 너와 나. 우리 두 사람은 이 더럽고 냄새나는 시궁창에서도 꿈을 꾸었고, 행복을 만들어 갔다. 우린 꼭, 이곳을 벗어날 수 있어. 라고 다짐하며.
너는 꿈이 굉장히 큰 아이였다. 나는 그런 너를 뒷바라지 하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너와 나는 사랑을 했고, 함께 꿈을 키웠다. 너의 꿈은 곧 나의 꿈이었으며, 네가 웃는 것이 나의 행복이었다. 그래서 괜찮았다. 내가 울어도, 네가 웃으니까. 나는 정말 그걸로도 됐었다. 점점 그 큰 꿈에 한 발짝씩 다가서는 너를 보며 나는 부러움에 몸서리치면서도 또한 그것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네가 나의 미래였으니까. 내가 꾸는 꿈은 남우현, 너. 단 한 사람이었으니까.
‘ 성규 형, 좋아해.‘
그 말을 가장 좋아했었다. 그 짧은 한 마디면, 온 몸에 쌓인 피로가 눈 녹듯 싸악- 가시는 느낌이었다. 너는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가만히만 있어도 살아가게 만드는 존재. 바라보기만 해도 막힌 숨이 탁, 트이는 존재. 나를, 숨 쉬며 살아가게 해주는 존재. 네가 그렇게 말해줄 때 마다 나는 더 이 악물고 이 시궁창에서 나가고 싶어 버텼는지도 모른다. 성공한 너와 함께. 그 아름답고 꿈같은 도시로 너와 함께, 말이다.
‘ 나도. 나도 좋아해, 우현아.’
너 또한 나의 이 대답을 가장 좋아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네가 웃을 때 마다 예쁘게 휘어지는 그 눈이 좋았다. 보기만 해도 굉장히 편안해지는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남우현 너는. 너는 가끔씩 추위에 부들부들 떠는 차가운 나의 손을 꼬옥- 붙잡고 말했었다.
우리 꼭 성공해서 여기서 나가자, 성규 형.
나는 너의 그 말을 믿었다. 언젠가, 정말로 언젠간. 너의 그 비상한 머리가 빛을 발해 그 아름다운 도시로 나가는 그 날. 나도 함께 데려가 줄 거라고. 그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너를 공부할 수 있게 뒷바라지한 나에게 얻어지는 당연한 보상이라고, 그렇게 여겨왔다.
…우현아.
…남우현, 어디 있어?
그런데, 네가 없다. 사라지고 없었다.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사라졌다. 이제 곧 나갈 수 있다고. 이 어둡고 추운 곳에서 더 이상 살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웃던 네가 사라졌다. 허름한 옷가지조차 챙겨가지 않았다. 마치, 나와의 추억을 버리고 간 것처럼. 꼭, 나란 존재를 영영 너의 삶속에서 지워버리고 싶다는 것처럼. 정말 그래? 그랬어, 우현아? 나는 너에게 겨우 그런 존재였어?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던 건, 그 두툼하고 붉은 입술이 만들어낸 새빨간 거짓이었어? 나는, 나 김성규는, 너에게 그저… 지워버리고 싶었던 존재였어? 그러게도… 끔찍, 했어?
울부짖었다. 네가 사라지고 나 혼자 남았다는 그 사실에 끔찍할 정도로 서럽게 울었다. 무너졌다. 내 세상이 무너졌고, 나의 꿈이 무너졌다. 네가 사라졌다. 내 사랑이, 사라져버렸다. 이 더럽고 냄새나는 뒷골목에서 유일하게 너만 바라봤던 김성규는,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버렸다. 네가 죽인 거다. 남우현 네가 날 이렇게 죽여 버렸다. 혼자 살겠다고 그렇게 내 곁을 떠나버린 너. 적어도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었다면 너는 내게 절대로 그런 짓을 하면 안 됐었던 거다.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나 김성규를, 남우현이.
괴물로 만들어 버렸어.
그 괴물은 곧 새로 태어나 발버둥 쳤다. 죽기 위해, 살기 위해도 아닌. 그저 복수하기 위해. 내 인생을 망가뜨리고 내 꿈을 부셔버린 널 증오해. 우현아, 어때? 나를 버리고 선택한 너의 그 자리는 행복하니? 내가 늘 꿈꿔왔던 그 아름다운 도시는 어떤 모습이야? 반짝반짝 네온사인이 길을 비추고 멋지게 정장을 빼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원하는 대로 술도 마음껏 마시고 먹고 싶은 것도 주저 않고 시키며, 원하면 예쁜 여자, 혹은 남자들과 하룻밤을 즐기기도 하겠지. 너도 그랬을까. 너도 나를 버리고 그곳으로 나가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하룻밤을 멋지게 보냈을까? 내 앞에서 웃던 너는, 정말로 거짓이었을까.
그렇게 버려진 이후로, 단 하루도 너의 꿈을 꾸지 않은 적이 없어. 그런데 참 웃기지? 왜 꿈에선 항상 네가 울고 있어? 날 버리고 가서 행복하게 웃고 있어야 할 네가. 어째서 그렇게 서럽게 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어? 혹시 후회라도 하고 있는 거야? 나 김성규를 버린 것을. 그 외롭고 무서운 곳에 혼자 두고 온 것을.
하지만 우현아. 그거 하나만 기억해 둬. 너는 이미 나를 버렸고, 너로 인해 김성규는 그 끔찍한 곳에서 절망을 맛봐야 했고, 그 마음은 홀로 죽어갔어. 그러니까 우현아,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야.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는 거.
새로 태어난 김성규로 다시 너를 찾아갈게. 예전의 여리고 한없이 약하던 김성규가 아닌, 지독할 정도로 나쁘고, 너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는 남자로 다가설게. 조금만. 아주 조금이면 돼. 그때까지 날 기다려줘. 김성규를, 네가 버린 김성규의 진짜 모습을….
너에게 버림받은 그 날. 너 없는 그 집에 홀로 남아 차가운 바닥을 구르고 그 아픈 가슴을 쥐어뜯으며 일 초에 한 번씩 네 이름을 부른 나를,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어간 나를, 잊지 마. 곧 죽어도 잊지 마.
그리고 똑똑히 기억해.
너의 그 엄청난 죄악을.
+ 인스티즈 가입된 기념으로 올려보았다지영? ^*^
커플링은 현성, 야성, 우열(불확실)일 거예용.
하지만!!!! 1편이 언제 나올지 모른다는 게 아주아주아주아주 크나 큰 함정 =3=
(관심이나 주실지 의문이지만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