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스물셋, 그리 적지 않은 나이에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고,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쉼없이 달렸다. 인정 받고 싶었고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시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반드시 살아 남아야 한다고 스스로 많이 꾸짖었다. 그 결과, 춤을 추다가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서 눈을 감았다가 뜨면 합숙소에 누워있거나 병원에 누워있었던 날들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랬던 날들도 흐르고 어느새 꿈에도 그리던 데뷔를 했다. 마지막으로 멤버들과 무대 밑에서 동선을 맞춰 보면서도 얼떨떨하고 긴장이 됐었다. 그렇게 또 세월이 지났을 때, 조금은 다른 감정으로 많이 두려워졌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는 지금, 나의 위치는 어디 쯤인지, 대중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지 많이 궁금했다. 이따금씩 혼란스러운 마음이 날 집어 삼키려고 할 때마다 연습실에서 춤을 췄다. 어느 장르든 상관없이 오직 춤을 췄다. 정신 없이 추고 나면 옷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그러면 그런 혼란스러운 마음은 조금씩 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기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여전히 춤일 수밖에 없었다. “재환아.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너는 나에게 둘도 없는 둘째 동생. 내가 힘들어할 때, 행복해할 때 언제든 곁에 있어 주었다. 하루는 춤을 추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날의 초기에 네가 침대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는 걸 보고 고맙고 안쓰러운 마음에 머리를 쓰다듬었고 그러자마자 너는 바로 깨어나더니 비몽사몽, 저도 제대로 뜨여지지 않는 눈으로 나를 걱정 어리게 보면서 어기적어기적 괜찮냐고 물었었다. ‘여태... 여기 있었어?’ ‘형 언제 일어날 지 모르니까...’ 내 성격 맞춰 주기는 조금 힘들 텐데, 내가 많이 귀찮게 굴 텐데. 걱정하던 것도 잠시 너무나 예쁜 말로 나를 안심 시키고 오히려 나를 걱정해 주는 널 보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리 둘 다 연습생 신분이라 본인도 그렇게 돈이 많지는 않았을 텐데 선뜻 내 주사 비용과 진찰 비용까지 다 내고서 생색 하나 내지 않는 너에게 어떻게든 감사의 표현을 하고 싶었지만 감사해하는 나를 눈치 챈 건지 빤히 보기만 하더니 결국 한다는 말은. ‘형. 나한테 고마운 거면 노력하는 만큼 꼭 성공해요.’ ‘어?’ ‘같은 팀이 되면 좋겠지만 안 된다면 꼭 성공해야 해요. 알겠죠?’ 믿을 수 없게도 같은 팀이 되어 데뷔를 했고, 나는 나름대로 내가 정한 기준선에 맞춰 성공했다고 자부하였다. 그렇게 3년이 지났을 때 즈음 너만 단독으로 바깥에서 불러 같이 고기를 구워 먹었다. 몇 년을 함께 한 사이라 맨 정신에 말하려면 조금은 민망하니까, 부끄러우니까 평소에는 잘 마시지도 않는 맥주를 몇 입 대면서 먼저 꺼냈다. ‘...나, 아직도 네가 데뷔 전에 그 때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했던 말 기억하고 있어.’ ‘...’ ‘난 지금 내가 충분히 성공했다고 여기고 있어. 지금은 비록 이런 돼지고기만 먹지만 나중에는 더 맛있는 고기를 더 많이 사 줄게.’ ‘나중에도 나만 사 줄 거예요?’ ‘응? ...응, 그래!’ ‘네. 좋아요.’ 이상하게 나랑 둘이서만 있으면 괜히 분위기를 잡는 듯한 너에게 적응이 안 될 때도 사실 여러 때가 있었지만, 괜히 너와 나만 가진 특유의 분위기는 기분이 좋을 때도 분명히 많았기 때문에 딱히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네가 원하는대로, 해 달라고 하는대로만 했지. “형, 형은 좋아하는 사람이 슬퍼하면 어떻게 해줄 거예요?” 또, 이따금씩 이런 엉뚱한 질문을 할 때도 많았다. 가만히 잘만 있다가. 하지만 뼈가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을 되돌아 볼 수가 있어서 좋았고. 근데 오늘따라 질문이 조금은 속상하네. 슬픔이라는 단어가 왠지 정말 슬픔이 묻어나 보였기 때문일까. “기도하지 않을까?” “에? 기도요? 형 종교 없잖아.” “무언가를 바란 적은 있었지.” “뭐?” “많았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설명하기도 벅찬데. 내 사람들을 위한 축복도 바랐고 우리 여섯 명 모두 다 아프지 말고 순탄한 한 해라도 보내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해가 지면 달이 뜨는 거처럼 그런 당연함 하나로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우리를 아껴 줬으면 좋겠다고 빌었는데.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만히 너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근데 왜 물어 보는 거지? “근데 그런 건 왜 물어 봐?” “궁금하니까요.” “...”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요즘 슬퍼해요. 많이.” 말하면서 손톱을 뜯는 너. 그렇게 하면 피부 벗겨진다고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나저나 슬픔이라, 정말 슬픔이란 건 뭘까. 사실은 슬픔 자체도 이면성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랑도 갖고 있는데. 사랑과 슬픔을 같은 선상에서 보고 있노라면 둘의 싸우는 장면을 보게 되지는 않을까? “...재환아.” “...” 말 없는 너라도 난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아는 걸. 내가 현명한 조언을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일부러 그냥 말만 거는 이재환은 없는 거에 속하지. 그럼 말해 줄게, 내가 생각한 대답. “이왕 슬퍼진 거, 그 감정을 없었던 걸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을까?” “그렇겠죠? 저도 알아요.” “하지만.” “...네.” “하지만, 네가 행복한 감정을 더 크게 만들어 주면 되잖아.” “네?” “어차피 슬픈 감정도 행복한 감정도 둘 다 없어지는 게 아니라면, 행복한 감정을 더 크게 만들어서 슬픈 감정은 없는 거처럼 만들어 주는 거야.”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걸 눈치 챈 너는 휴지를 갖고 와서 내 눈 밑을 눌러 주었다. 기분이 아주 이상했다. 내가 대답하고 내가 거기에 울컥해서 울다니. 그치만 정말 사실을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슬픈 감정은 없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이 생각 나서 실재하게 만들기도 했는데, 그런 지난날들의 후회에 눈물을 흘린 걸까 아니면 그런 지난날들의 후회를 하는 내가 가여워서 눈물을 흘린 걸까. 그것조차 알 수 없다는 거에 또 가슴이 일렁였다. “아냐, 재환아. 형 괜찮아. 그냥...” “...” “그냥 형이 많이 힘들었나 봐, 괜히 내 이야기도 아닌데 이렇게나 이입이 돼서 울어 버렸네.” 나의 눈물을 보고 더 안타까워 하는 재환이에게 미안했다. 항상 리더라는 이름 하에, 맏형이라는 명목 하에 너에게 못되게 굴기도 하고 인상도 많이 찌푸리고 그랬는데. “...울지 마요.” “...응. 안 울게.” “아냐... 아냐, 울어도 돼요. 형, 마음껏 울어요.” 너에게 사과하고 싶던 순간은 늘 많았으니까. 내 진심을 알아 주는 사람도 어쩌면 네가 유일한 사람일 지도 모르지. 궁상 맞게 구네. 또 미안해, 재환아. “다 울었어.” “형, 뭐가 그렇게 무서워? 내가 옆에 있잖아요. 나 말고도 멤버들도 있고, 가족 분들도 계시고 팬 분들도 있는데.” “...하나면 될 거 같아.” “네?” “다른 거 필요 없이- 재환이 너 하나면 될 거 같다구.”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 여전히 해 왔던 생각들이 또 나를 괴롭힐 때마다 버틸 수 있었던 건 너 하나 때문인 걸 너는 알까. 왜, 그런 날 있잖아. 내가 내 길을 걷고 있지만 그 길의 끝이 어딘지도 모르는 채로 정해둔 곳도 없는데 그냥 걸어가는 거.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걷게 된 지는 몰라. 정말 이유 하나도 없는데. “...미안해요, 형.” “뭐가?” 근데 그런 이유 하나 없다는 걸 또 이유로 삼으면서 걷고 있었거든. “...” “뭐가 미안해?” “...사랑해서요.” “아-“ 네가 내 이유가 되어 줬단 말이야. “진짜요. 형. 사랑해서 미안해요.” “나도. 재환아.” 언제 안아도 따뜻하고, 그래서 더 걱정되고, 신경 쓰이는 네가 내 이유가 되어 줘서 오늘까지도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데. 솔직히 재환아, 나 무서워. 두렵고. 나도 택운이를 사랑하는데, 사랑해서 미안한 거 같아. 어떻게 이 마음은 달리할 수가 없다는 걸 그래서 더욱 미안하고. “형, 나 진짜 형 좋아하는데요...” “알아. 내가 뭐 모르는 거 봤어?” 재환아. 난 모르는 게 없지만 넌 모르는 게 많은 거 같아. “정말요? 꼭 알아 줘야 돼요. 잊으면 안 돼요, 오늘 있었던 일.” “달력에 표시할게.” 내가 최초로 내 마음에다가 크게 소리치고 싶었던 날인 오늘을 절대 잊지 않을게. 예전에는 적어도 갖고 있던 주관이 그랬어. 내가 좋으면 그만이고, 내가 좋아하니까 다 될 줄 알았지. 그게 이뤄지지 않아도 만족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안 답답해? 이렇게 안고 있으면.” “응... 딱 십 분만... 아니, 딱 오 분만 이러고 있어요.” 좋아하다 보면, 정말 좋아한다면. “사랑해요, 학연이 형.” 네가 날 사랑하는 것처럼 내가 그 앨 사랑하는 것처럼 꼭 그 마음 고스란히 닿아서 이뤄져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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