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씨가 흐려.] 해가지기 전 오후, 한 여자는 금방이라도 쓰러질것 같아 보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철컥- 소름돋는 소리가 나고 문이 열렸다. 흐린 날씨탓에 어두웠던 건물 내부는 더더욱 어두웠다. 미약하게나마 켜져있는 손전등 덕에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한걸음씩 앞으로 내딛는다. 남자가 소리없이 내미는 종이 한장, 그리고 그속에 담겨있을 수많은 의미들이 그녀를 괴롭혀온다. 설레설레 내젓는 고개에 남자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손을 올린다. 철컥- 그녀가 총을 장전하고 그를 겨눈다. 그는 당황한듯 하더니 다시 여유로워지며 총을 내리라며 손짓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조용히 묻는다. 이번 프로젝트 한번만 하라면서 그녀를 살살 넘어오게 만드려하지만 그녀는 그에게서 벗어나려 저항한다. 결국엔, 어쩔수 없는 힘에 의해서 그녀는 사람의 탈을 쓴 괴물이 되고 말 것이다. 벗어나려 했지만 워낙 쏠쏠한 댓가. 그리고 그녀의 재능을 생각해보면 꽤나 할만한 일이다. 딱히 무서움도 슬픔도 느끼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기에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 사랑이란 그저 스쳐지나가는 관계였음으로. 오른쪽 귀에 인이어를 꽃고 왼쪽 주머니엔 총을 넣었다. 이번 타깃은, 그저 평범한 직장인으로 보이지만 그녀의 눈으로 봤을때는 이 바닥의 반역자였다. 생각보다 오랜시간 일하다보면 이제는 누가 뭐때문에, 이 총알을 맞게 되는지 아는건 시간문제였다. 지령을 받을 인이어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 K.들려?-들려. 자신의 인이어에 문제가 없단걸 확인하자마자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는 그가 보였다. 그 사람 지금 내렸어. -그래, 몸 조심하고. 오늘같은날은 흐려서 더더욱.. K의 말이 끝맺어지기도 전에 비가 쏟아졌다. 그도 당황한듯 싶다가 무전을 다시 이어갔다. 어디서 죽을지 몰라. 항상 경계하고, 비가 오니까 얼른 처리해. 프로젝트에 피드백을 받자마자 그가 조금 더 가까워졌다. 무언가 수상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건물의 창문들을 올려다봤다. 그녀가 올라와있는 건물의 파란 창문, 마지막으로 그곳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쏜다. -잘 부탁해. 총의 방아쇠를 잡아당기는 순간. 탕- 하는 소리와 함께 타깃은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피는 빗물에 씻겨 내려 붉은 물을 만들어냈다. 워낙 큰 빗소리었기에 그녀는 안심하며 천천히 어두운 건물을 내려갔다. K. 성공했어. -.....가.. 약하게 들리는 K의 목소리에서 다시 한 남자의 목소리로 바뀌기까지. 아, K. 조금만 버텨. 내가 갈게. 아주 조금만- 살면서 무언가에게 이렇게 절박해 본적이 있으려나 싶을정도로 K가 살아있길 바랬다. 허억허억- 거친 숨소리에 괜히 구두를 신고 나온 것까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어느 방향이던 길이 보이는데로 뛰기 시작했다.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쯤, 발바닥은 이미 빨간 피로 물들어 있었고. 이제 그녀의 인이어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른쪽 귀에서 거칠게 인이어를 뽑아 주머니에 넣었다. 너무 무모한 생각이었나. K의 얼굴도 모르면서. 그리고 다시 건물로 돌아갔을때에는, 그 누구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 그녀의 떨리는 손을, 매일 밤 악몽에시달리던 그녀를,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사실 무서워.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몰라도 얼굴한번 본적없는 너를 보고싶었어. 사랑이라는 감정이 두려워서 회피했어. 그런데 이제 알것같아. 가지마..보고싶어. 네가 어떻게 생기는 그건 중요하지 않아.' 철컥-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반응한 총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한걸음씩 뚜벅뚜벅 다가오고 있었다. 그게 누구던간에 그녀는 죽음을 직감했다. 탕-. 총소리가 나자 그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이상하게 아픔이 느껴지지 않아서 뒤를 돌아보면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달려가 그의 등을 꼭 껴안았다.얼굴은 몰라도 그냥 틀림없는 K였다. 이제야 알아버린 감정이 두렵긴 했지만 그래도 K는, 나를 사랑한다. 한참을 내리던 소나기가 그치고 K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또다시 뒤에서 들리는 총 장전소리가 그녀를 움찔하게 만들었고, 이내 한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 총을 쥐어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이 그녀의 심정을 알려주었지만 K도 알고 있었다는듯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질끈 감고, K에게서 한발짝 물러서서 다시 고개를 저었다. K에게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건 그녀도 아는 사실이었기에 떨리는 두 손으로 다시한번 조준. K가 진짜 미소지었다. 정말 괜찮다고, -탕. 공허하게 흔들리는 총소리. 오늘은 겨울인데, 이상하게 건물 안으로 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가도 못잊을 사람. -툭. 그녀의 손에서 총이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도 쓰러졌다. 그녀의 꿈 속에는 계속 그가 리플레이 되겠지.K,황민현,황민현,K. 그렇게 계속. 당신이어서 찬란했던 시간들이라고. 민현이 조용히 병실을 나오자, 이름이의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다. 병원 복도에서 잠시 눈을 붙이며 민현은 생각했다. 그녀가 행복하게 해주세요- 다시 들어왔을때에, 잠들어있던 이름이의 머리칼을 쓸어넘겨주며 연신 미안하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겉옷을 집어들며 나갔다. 이젠 다시 돌아올일 없겠지. 민현은 생각했다. 그녀라서 찬란했던 시간들이라고. 해설 하..하하... 이게 무슨 망글이냐면요..그냥 몇일전에 비가와서..감성에 취해 쓴 글입니다..그니까 해설을 써보자면 여주는 긴 꿈을 꾼거고, 그걸 현실로 느끼는 겁니다. 민현은 여주의 연인이었고 몇년째 교통사고 당한 그녀의 곁을 지키지만 그녀의 손가락이 움직인것을 보고 더 좋은사람 만나라고 떠난겁니다.. 네...좋은앤딩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상상하기 나름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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