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고 싶어서 쓰는 3
: 스피드스케이팅 국대 강다니엘
1. 남들보다 바쁘게 살아야 했던 ㅇㅇㅇ은, 항상 잠이 부족했다.
"...네. 여보세요."
"ㅇㅇㅇ씨 되십니까?"
"......"
"아, 여기 XX병원입니다. ㅇㅇㅇ씨 맞으세요?"
"...맞아요."
"지금 여기로 와주실 수 있나요?"
"많이 다쳤어요?"
"네?"
"걔 많이 다쳤냐고요."
"어, 일단 허벅지 안쪽이 좀 찢어져서 수술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빨리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ㅇㅇㅇ씨?"
"...10분 안에 가요."
2. 얘는 또 얼마나 부상을 입었길래 병원이래. 쿵쾅거리는 심장을 억지로 누르며 ㅇㅇ은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어?"
"......"
"왜 네가 와?"
"...그게 할 말이야?"
"그럼 뭐라 그래."
"미친 새끼."
"야, 욕을. 그리고 나 별로 심하게 다친 것도 아니야."
"수술이라던데?"
"이런 거 하루 이틀이냐? 신경쓰지마."
"......"
"또 자는데 깨운 거지? 미안미안. 옹성우한테 전화하려고 했는데."
"일단 수술하고 나와."
"...화났어?"
"수술부터 해. 밖에서 기다릴게."
3. 1시간이면 끝난다고 했는데, 벌써 3시간이 넘어가는 중이었다. ㅇㅇ은 초조하게 손목에 찬 시계 끝을 툭툭 쳤다.
"...왜 안 나와."
"보호자분? 강 다니엘 환자 보호자분?"
"아, 네. 여기요. 수술 다 끝났어요?"
"중간에 문제가 있긴 했지만 무사히 잘 끝났습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안에 환자분."
"네?"
"되게 유명했던 쇼트트랙 선수 아니었나요? 한동안 안 보였던 그 때 그 선수 맞죠?"
"아. 기억하는 분이 계시네요."
"혹시 가족분이세요?"
"...아니요."
"그럼...?"
"여자친구요."
4. ㅇㅇ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발칵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깨어나서 다친 다리를 꼼꼼하게 살피고 있는 다니엘이 보였다.
"...변명."
"어?"
"나 지금 기분 되게 나쁘니까, 설명 제대로 해."
"아. 아니 그게, 훈련하다가 스케이트 날이 좀 맛이 가서. 어쩌다 보니까."
"누가 그거 물어봤어?"
"아니야?"
"눈치가 바닥에 달려있냐? 그동안 왜 연락 안 했는지 얘기하라고."
"아..."
"돌 터지는 소리 한다. 너 지금 이게 장난 같아?"
"나 환자야. 화 좀 내지마."
"환자 다 얼어 죽었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야아, ㅇㅇ아."
"헤어지고 싶어? 다시 친구할래?"
"미친?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네가 자초했잖아 이 새끼야."
5. 안 믿기겠지만 다니엘과 ㅇㅇ은 10년지기 친구이자, 곧 3주년을 맞는 연인이었다.
"다시 한 번 기회 준다. 변명해."
"......"
"계속 입 닫고 있을 거면 진짜 끝이야. 어떻게 친구일 때보다 연락이 뜸해? 내가 널 다칠 때만 병원에서 봐야겠어?"
"...아씨."
"? 아씨? 너 돌았냐?"
"나 쇼트 관뒀어."
"......"
"스피드로 옮겼다고. 그래서 존나 바빴고, 너 걱정시키기 싫어서 일부러 피했어."
"...너 어디 모자라?"
"뭐?"
"내가 그걸 몰랐다고 생각해?"
"? 너 그거 어디서 들었는데?"
"...너 진짜 좀 모자란가 보다."
"아 알아듣게 좀 말해."
"나 빼고 옹성우랑 하여주한테는 다 말했다며. 근데 내가 전혀 몰랐을 거 같아?"
"...시발."
6. 결국 다니엘은 ㅇㅇ에게 석고대죄를 해야 했다. 근 2달 가량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본 전적이 화려했고, 본인의 인생이 걸린 중요한 얘기도 털어놓지 않은 괘씸한 짓에 대해서.
"야... 미안하다니까."
"......"
"뭐 어떻게 해줄까? 내가 어떻게 하면 화 풀래? 어?"
"......"
"아 ㅇㅇ아."
"......"
"좀. 계속 등 돌리지 말고."
"......"
"솔직히 나라고 안 보고싶었겠냐? 아주 몸에 사리가 났어. 죽는 줄 알았다고."
"......"
"...아 진짜 사랑한다고, ㅇㅇㅇ."
7. 조용히 다니엘을 돌아본 ㅇㅇ은 짐짓 엄한 목소리로 다니엘을 불렀다. 그럼 없는 꼬리라도 흔들 것처럼 바짝 다가오는 제 남자친구를 보며 ㅇㅇ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땐 그렇게 짐승 같다가도, 이럴 땐 그토록 거대한 멍무이 같았다. 지 덩치도 모르고 자꾸 까부는.
"다리 다 나을 때까지 나랑 있어."
"? 그게 다야?"
"어. 그게 다야."
"...미안."
"알면 잘해."
"진짜 미안."
"그래. 미안하면 반성도 좀 해라."
"머리 박을게요, 자기."
"그런 의미로 나는 오늘은 집에 갈 거야."
"? 나 두고?"
"당연히 너 두고 가지. 내 집인데."
"나랑 안 있어줘?"
"반성 좀 하라니까?"
"와씨. 너무하네. 야, ㅇㅇㅇ. 일로와봐."
"응. 꺼져."
"아니 자기야. 이건 진짜 아니지 않냐?"
"자꾸 누구더러 자기래. 달라붙지 마."
"야! 나 몸에서 사리 나왔다니까!"
"어쩌라고!"
"인간적으로 좀 안아주고 가!"
8. 결국 ㅇㅇ은 다니엘의 아귀힘에 붙잡혔다. 꼼짝도 못하게 끌어 안고는 계속 머리 위로 쪽쪽 거리는 꼴을 누가 보면 쪽팔려 죽을 텐데, ㅇㅇ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아 이거지 진짜."
"...언제까지 이럴 거냐."
"내 몸에서 사리 안 나올 때까지."
"그럼 이걸로 안 되는 거 아니야?"
"...이 이상으로 가면 너 감당 못 할 텐데."
"응. 그런 것 같다. 내가 실언했네."
"오늘은 그냥 이러고만 있어. 어차피 나 다리 나을 때까지 네 옆에 있으라며."
"그랬지."
"그럼 아직 남은 날이 많네. 각오해라. 진짜 안 놔준다."
"변태같은 소리 그만하고."
"나만 변태냐? 너도 내 몸 엄청 좋아하면서."
"아 좀 닥치고. 기왕이면 정수리에다 뽀뽀하는 건 작작해."
"왜?"
"나 오늘 머리 안감았어, 미친아."
9. 그래. 그렇다. 달달함이 1분도 채 못 가는 게 다니엘과 ㅇㅇ의 사랑 방식이었다. 피 터지는 친구로 시작해서 가능할 수 있는 일명 배틀 연애.
"그런 건 좀 일찍일찍 말하라고! 이미 뽀뽀 엄청 했잖아!"
"비위 좋은 놈. 냄새 안 나더냐?"
"시발. 그거 그냥 내가 착각한 거다 싶었지!"
"안타깝게 됬네 그래."
"와, 내가 이런 걸 여자친구라고."
"왜? 싫어? 다시 친구해?"
"야! 그 말 좀 막 하지 말라고! 내가 너 짝사랑만 몇 년 했는지 아냐고!"
"1년?"
"하. 어이없네. 고작 1년?"
"아니었어? 옹성우가 1년이랬는데?"
"...솔직히 말해."
"뭐."
"너 나보다 옹성우랑 더 친하지?"
"그걸 이제 알았냐?"
"야!"
"왜!"
"존나 질투나니까 그만 좀 해! 사람 자제 못하게 왜 그러냐 자꾸!"
10.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고함을 지르는 다니엘을 보고 있자니 문득 3년 전 어느 날이 떠오르는 ㅇㅇ이었다. 그 때 참 귀여웠지. 적당히 설레기도 했고.
"야. ㅇㅇㅇ."
"말하셔."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 대박. 누구냐? 혹시 하여주야?"
"? 기분 나쁘게 왜 초를 쳐. 걔 내 취향 아닌데."
"하여주가 들었으면 너 벌써 척추 꺽였다."
"아, 무튼.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다고. 집중 좀 해."
"그걸 내가 알아야 하는 이유라도...?"
"너랑 관련 있으니까."
"너 나 좋아해?"
"어. 존나 좋아하는데."
"헐. 진심?"
"나 곧 너 사랑하는 지경까지 갈 것 같은데."
"...와."
"나랑 연애해주면 안 되냐?"
11. 그 날 이후 다니엘은 마치 갑자기 손에 넣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처럼 굴었다. 틈만 나면 얼굴을 들이밀고 ㅇㅇ을 빤히 쳐다보지를 않나, 갑자기 꽉 끌어안지를 않나. 꽤 늦은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자면, ㅇㅇ은 진짜 애가 미친 줄 알았다.
"ㅇㅇㅇ."
"나 과제 해야 하니까 귀찮게 하지 말고 가라."
"사랑해."
"?"
"왜?"
"아니 너 방금... 아니다. 좀 가라, 제발. 이거 다 끝나고 놀아줄게."
"싫어. 그냥 여기 앉아있을래."
"계속 알짱거릴 거잖아. 가."
"가만히 있는다니까?"
"...지금 네 손이 어디 있는지 알면서 하는 소리냐?"
"네 뒷통수가 너무 예쁜데 어쩌라고."
"돌은 새끼."
"말했잖아. 너한테 미쳤다고, 지금."
12. 기어코 그런 다니엘과 사귀기로 한 ㅇㅇ이었지만, 항상 느꼈다. 그 날 연애 하자는 말을 꼭꼭 씹어 먹었어야 했다고.
"...왜 질투난다는 말이 이렇게 번졌는지 아시는 강다니엘씨?"
"안 돼."
"어. 나도 안 돼."
"에이, 자기야."
"주둥이 치워, 자기야."
"자기한테 주둥이가 뭐야."
"자기니까 주둥이라고 하지."
"자기는 무슨 그런 개소리를 하고 그래?"
"그러는 자기는 왜 자꾸 발정난 것처럼 굴어?"
"발정이라니. 말이 심하잖아 자기야."
"나는 보이는대로 얘기했을 뿐이야 자기야."
"...뭐하는 짓들이지 쟤네?"
"우리 그냥 집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13. 소식을 듣고 달려온 이 시대의 참된 친구 하여주와 옹성우는 눈 앞에 벌어진 풍경에 넋을 놓고 말았다. ㅇㅇ과 다니엘 딴에는 서로 뜻을 굽히지 않고 싸우는 중이었지만, 솔로 친구 둘에게는 그저 바퀴벌레 한 쌍일 뿐이었다.
"아. 기분 더러워졌어. 가자, 옹청아."
"그래야겠다. 하루 빨리 연애를 하던지 해야지 원."
"여자는 있고?"
"아픈데 찌르지 마라."
"...오케이."
"그나저나, 쟤네도 참 징하다."
"뭐가? 잘 사귀는 거 같은데."
"그래서 놀랍다고. 다니엘이 ㅇㅇ이를 엄청 좋아하긴 했는데, ㅇㅇㅇ까지 저럴 줄은..."
"뭐야. 몰랐어?"
"뭘?"
"쟤네 쌍방이었어. 자기들만 아니라고 친구라고 그랬던 거지."
"...와우."
"그것도 몰랐다니. 역시 너는 옹청이가 맞아. 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