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 15 [평소처럼 그렇게]
“ 아아~!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말 좀 해봐, 경수야아…”
변백현이 우는 표정을 하며 애걸복걸했다. 학교에 나가지않았다. 핸드폰 배터리도 내내 빼놨다. 하루쯤이야 그렇다쳐도 이틀째 나가질 않으니 변백현은 그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는지 자취방에 찾아봐 나를 들들 볶아댔다.
“ 연습도 안 나오고… 내일 모레가 엠티 까먹은거 아니지?”
“ …… ”
“ 아, 진짜 나 속터져죽으까? 도도, 말 좀 해… 내가 뭐 잘못했쪄? 그래서 그래? ”
“ 잘못한 거 없어. 그냥 혼자 있고 싶으니까 가라.”
“ 준면이형도 너 걱정하더라. 연습 안 나오고 연락도 안 받는다고.”
“……”
김준면 이름에 난 가슴이 두근거렸다. 도저히 김준면을 다시 마주하지못할 것 같다.
“ 혹시… 준면이형이랑 관련있어?”
내 미묘한 표정을 언제 캐치했는지 곧바로 김준면에 대해 물어왔다. 아냐. 난 한템포늦게 대답을 했고 변백현은 내 두팔을 잡아 앉히며 짐짓 화난 얼굴을 해보였다.
“ 나 그래도 나름 니 절친이야. 니가 그렇게 생각 안 해도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내가 얼마나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진짜 섭!섭!하고 서,운,해!”
“ ……”
“ …아, 진짜! 대답하기싫으면 고갯짓 대답해봐. …준면이형이랑 관련있는거지?”
난 인상을 쓰며 변백현에게 잡힌 팔을 빼냈다.
“ 맞구만. 준면이형이랑 관련된 거. 역시 내 예상대로가 맞았어.”
“ …예상대로?”
“ 아니 어저께 아침에 준면이형이 나한테 전화가 왔었거든. 너 왜 전화 안 받냐면서 무슨 일 있냐구… 그리고 어제 오늘 계속 나한테 너 왜 연락 안 되는지 물어보고 계속 걱정하고 암튼 이상했어. 왜 그렇게 걱정하나했더니.”
몸을 일으켜 책상에 이리저리 분리돼있던 핸드폰 본체와 배터리를 껴고 전원을 켰다. 변백현한테서 온 부재중 전화 14통. 그리고 김준면한테서 온 부재중 전화가… 48통?
“ 도대체 준면이형이랑 무슨 일 있었는데? 설마 너… 고백이라도 한거야?”
“ 시끄러워.”
“ 도경수 간 큰 건 알았지만 밖으로 튀어나왔을 줄이야.”
“ 시끄럽단 뜻은 닥치라는 뜻이야. 알아들어?”
“ …도경수 미워.”
내가 험악하게 말하자 변백현은 풀이 잔뜩 죽어 TV 리모컨을 찾아틀었다. 그래도 내일은 학교나와. 전공 두 번 결석은 얄짤없이 에프(F)니까. 난 변백현의 말을 흘려들으며 김준면이 보낸 카톡을 확인했다.
[경수야. 전화 왜 안 받아.너 형이 거짓말한거때문에 화나서그래? 그런거야?]
[전화좀받자 경수야]
[도경수. 형 전화 받어]
[연습은 왜안나와. 학교도 아예 안 나왔다면서. 형 걱정되니까 이거보면 전화 좀 해.그리고 학교는 빼먹지말고 나오고]
아. 김준면은 지긋지긋할만큼 눈치도 없고 속까지 착해빠졌구나.
“ 나 통화 좀 하고 올게.”
“ …그러던가 말던가… 언제부터 나한테 보고했다고.”
변백현은 삐쳤는지 날 보지 않은채 혼자 무어라 연신 욕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베란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한번 숨을 가다듬은뒤 김준면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준면은 내 전화를 기다렸는지 곧바로 받았고 받자마자 한숨을 뱉었다.
[하아, 경수야!]
“ 죄송해요. 배터리가 고장나는 바람에 전화 못 봤어요.”
[너 학교는 왜 안 나왔어?]
“ …나갈 몸이 아니었어요.”
[연락 갑자기 안 돼서 형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연습도 안 나오고 내일까지 안 나왔으면 자취방 찾아가려고 했었어.]
“ 며칠전에 욕한 건 죄송해요. 술먹고 제정신이 아니었었나봐요.”
[술먹고 실수한번 할 수 있지. 형 괜찮으니까 너무 신경쓰지마.]
“……”
[…경수야.]
“ 형. 저 끊을게요.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좀 자야겠어요.”
무언가 더 말하려는 김준면의 말문을 막았다.
[…그래. 내일은 꼭 나오고. 얼른 나아.]
“ 죄송해요. ”
[ 죄송하긴. 그리고 이제 전화하면 바로바로 받아. 걱정되니까]
“ …왜 걱정돼요?”
[어?]
김준면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되물었다. 왜 내 걱정을 해주는건데? 도대체 왜?
“ 아니, 형한테 저는 뭐에요?”
[…경수는 그야 당연히…]
뭐하러 물어봤을까. 대답은 역시나,
[…착하고 귀여운 동생이지.]
뻔할텐데.
“형. 끊을게요. 내일 봐요.”
[그래. 내일 꼭 보자]
난 왜 김준면에게 착하고 귀여운 동생밖에 되지 못하는걸까. 처음엔 김준면을 좋은 섹스상대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김준면과 나는 , 좋은 선후배 또는 좋은 형동생 그 어느것도 되지못한채 어정쩡하게 머물러있었다. 배터리가 잔뜩 바닥난 핸드폰을 들고 뒤돌았을때 베란다 문에 바짝 붙어 귀를 대고 있는 변백현 모습에 하마터면 심장이 떨어질 뻔 했다.
“ 깜짝 놀랐잖아!”
“ 뭐야. 뭔 얘기했어? 준면이형이지? 맞지? 그치? ”
“ 제발 백현아…. 너 아니어도 나 지금 충분히 심란하니까 나 걱정되서 보러온거면 조용히 보다가고 아니면 집에 가라. 아니 박찬열이 너 안 찾아?”
“ 왜 안 찾겠어. 존나 찾지.”
변백현이 보여준 핸드폰엔 또라이(안 봐도 박찬열)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 53통이 찍혀있었다.
“ 나 얘한테 발목잡힌 거 같아. 무서워. ”
“ 둘이 잘 해봐.”
“ 미친, 뭐래. 뭐가 잘 해봐야. 그리고 나,난 게이아니다!”
“……”
“…아, 그게 내 말은,”
“ 백현아.”
“ 으응?”
“ 김준면도 그렇게 말할까?”
“ … ”
“ 내가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나 게이아니야. 이렇게 말할까, 김준면도? 아마 그러겠지?”
변백현은 자신이 말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는지 입술을 안쪽으로 오물오물거렸다.
“ 아,아니 경수야, 내 말은 그게 아니라…”
“ 난 왜 게이일까. 난 왜 안 평범한거야. 내가 평범했으면 김준면때문에 이럴 일도 없을텐데.”
“ 경수야아, 왜 그래…”
“ …존나 싫어. 짜증나. 나만 맨날 혼자야. 나도 이제… 이제 혼자인거 외로운데.”
사실 말은 안 했지만 박찬열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변백현이 부러웠다. 물론 변백현이 원한 사랑은 아니었지만 나도 변백현이 박찬열한테 사랑받는 것처럼 김준면한테서 사랑을 받고 싶었다. 에휴. 변백현이 한숨을 쉬며 내 머리를 끌어당겨안았다.
“ 너 이러는 거 처음 봐서 당황스럽다.”
“ …나 가슴아파.”
“ 도대체 준면이형이 뭐라고…”
그러게. 김준면이 뭐라고. 김준면 하나때문에 가슴이 콕콕 쑤시고 코도 시큰시큰거리는지. 변백현 손이 가만히 내 등을 토닥거렸다.
“ 도도가 뭐가 못 나서 이래. 너 충분히 괜찮은 애야! 그리고 니가 왜 혼자야! 나도 있고! 박찬열. 그래! 그 또라이 자식도 있는데 뭐가 혼자야.”
김준면의 손에 돌봄을 받고 싶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를, 상냥한 미소와 눈빛으로 사랑을 받고 싶었다.
내일, 김준면을 만나도 난 아무렇지않은 척을 해야한다. 평소 음탕하고 도발적이고 자존심 쎈 도경수로. 정말 아무 일 없었다는듯이.
어쨌든간에 우리는 다시 웃으며 평소처럼 그렇게 마주봐야했으니까.
*
잠시후 !
episode. 16 [엠티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