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벽 쳐대길래 도발했다가 역관광
w.무음모드
"여, 여주야"
내가 팔짱만 껴도 화들짝 놀라며 내게 붙들린 팔을 빼내는 녀석. 그 녀석이 나를 짝사랑 한지도 올해로 4년째다. 뭐, 올해에는 종지부를 찍었지만. 그 대단한 철벽이 어땠냐면.
"여주야 이거 먹고 수능 잘 봐"
"어, 고마워!"
초콜릿을 받으며 살짝 손이 닿자 급히 손을 뒤로 감추며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김민석을 보며 활짝 웃었다. 고 2 때 이과를 오면서 같은 반이 되었다. 이과면서 수학이 젬병인 나라서 수학을 잘하는 민석이에게 항상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하도 떨어질줄 몰라서 김민석 껌딱지 한여주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였으니까. 그만큼 공부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 내가 귀찮게 해도 민석이는 나에게 찡그림 한번 보인 적이 없었다. 내가 어려워하면 여러번 반복해주기까지 했다. 그런 민석이의 몫도 있었을 거다. 내가 가고 싶은 대학에 입학하게 된 것이.
대학교 1학년 신입생이 되었다. 민석이와 함께. 나보다 공부를 잘하던 민석이였기에 더 좋은 대학에 갈 줄 알았다. 하지만 민석이는 어째선지 과수석으로 나와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입학했다. 그렇게 다시 한번 민석이와 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신입생 환영회. 마셔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 선배들의 짓궂은 장난에 한 잔, 두 잔 술이 들어갔다. 점점 어지러워지고 눈이 감겼다. 안되겠다 싶어 내 옆에 있는 민석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잠시만 이러고 있을게. 나의 기댐에 민석이는 한참 동안 돌처럼 가만히 있었던 것 같다. 술에 취해 다들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누군가 나를 부축해 일어났다. 그리고 곧 나를 부축해주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여주야, 똑바로 걸어봐"
"어,어 조심해"
"여주야 업힐래?"
계속해서 혼자 중얼거린다. 그러다가 내 앞에 쭈그려 앉는 민석이의 등을 가만히 내려봤다. 내가 문제 물어볼 때마다 볼펜으로 꾹꾹 찔러댔던 등. 그의 등에 업히며 민석이다. 민석아. 끊임없이 불러댔다. 그럴 때마다 응, 왜 계속해서 대답을 해줬다. 자꾸만 감기는 눈을 꿈뻑꿈뻑 떴다 감았다했다. 정신은 말짱한데 자꾸 몸이 말을 안 들었다. 고개를 들고 있는 것조차 이제는 힘이 들어 힘을 빼 민석이의 목덜미에 묻었다.
"아흐"
나른해지려던 정신이 말짱해졌다. 술기운이 휙 달아나 버린듯했다. 민석이의 신음에. 내가 고개를 목에 묻자 진득한 신음을 내뱉는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끙끙 거리는 소리도 들려온다. 아, 민석이의 성감대가 목이구나. 간간이 한숨도 흘리는 민석이의 목소리에 가만히 있었다. 술에 취한척했다. 그냥 민망해서. 얼마나 흘렀을까 이제 내리자. 나긋나긋한 민석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응, 깨는 척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자 우리 집 앞에 있는 벤치였다. 벤치에 날 앉혀놓은 민석이는 곧장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대충 얘기를 들어보니 우리 오빠한테 하는 전화인듯 했다. 네, 그럼 기다릴게요. 얼른 오세요. 마지막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은 민석이가 나를 붙들고 있던 손을 거두고는 내 옆에 앉아 머리를 기대게 했다.
"여주야"
"...."
"한여주"
"...."
"내가 널 좋아한다고"
"...."
"언제쯤 고백할 수 있을까"
김민석이 날 좋아한다.
하마터면 벌떡 일어날뻔했다. 술에 취하지 않은 것이 들킬세라 감은 눈을 더 꾹 감았다. 조금은 쌀쌀한 날씨에 바람이 불자 머리가 헝클어졌다. 그리고 민석이의 달달한 냄새가 코를 자극해왔다.
김민석의 고백 아닌 고백을 듣고도 마음이 뒤숭숭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냥 불알친구일 뿐이었다. 내가 항상 불알친구라고 하면 있지도 않은 불알타령 좀 그만 하라던 민석이었는데.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김민석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발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아직까지도 안경을 쓰고 내게 수학을 가르쳐 줄 것만 같은 찌질인데. 그런 내가 김민석을 좋아한다니. 그 모쏠새끼를? 내가? 고백을 들어서, 그래서 그냥 그러는 걸꺼라고 생각했다. 한 여자 후배가 김민석의 팔에 그 큰 가슴을 마구 비벼대는 걸 보기 전까지는. 내가 팔짱을 낄때는 기겁을 하면서 빼내더니만 여자 후배가 끼니까 그저 가만히 있는다. 왜, 내 가슴에 무슨 송곳이라도 달렸냐? 좋아한다면서 철벽은 더럽게 쳐대네. 괜히 나 혼자 짜증이 났다. 그래서 그날 김민석이랑은 한마디도 안 했던 것 같다.
왜 그러냐는 김민석의 끈질긴 물음에도 전부 무시를 했다 그리고는 다른 친한 남자 동기와 붙어 다녔다. 일부러 김민석 보라고. 눈앞에서 장난치듯 스킨십도 진하게 했다. 이거 봐. 네가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랑 껴안고 있어. 보란듯이. 내 도발은 성공적이었다. 화가난 듯 나와 그 남자를 번갈아 보는 김민석의 표정에 씩 웃었다. 승자는 역시 나였기에. 내 도발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동기들과의 술자리에서 왕 게임이 걸리면 마다하지 않고 해냈다. 그게 화근이 될 줄이야. 왕 게임을 하면서 키스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장난에 불과한 뽀뽀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남자 동기 중 변태로 소문난 오빠와 벌칙이 걸리자 술에 취한 오빠가 냅다 입술을 들이밀었다. 처음으로 더럽단 생각이 들었다. 속으로 미친새끼. 욕을 퍼부으며 오빠를 밀어내보았지만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입술이라도 깨물까 생각하는데 누군가의 힘으로 나와 오빠가 떼어졌고 고개를 올려다 보자 여태껏 볼 수 없었던 표정의 민석이가 서 있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내 팔목을 붙들고는 술집에서 나와버렸다. 키도 작으면서 도대체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무작정 앞만 보고 걷는다.
"이거 놔봐! 김민석!"
"...."
"아프다고! 왜 이래 진짜!"
이것 좀 놓으라며 발버둥 쳤다. 도대체 어디 가는지 알고는 가자. 걸음은 또 왜 이렇게 빠른지 질질 끌려가다시피 걸었다. 힘도 다 빠져 발버둥 치는 걸 그만두고 그저 인상만 찌푸린 채 따라가길 몇 분, 김민석이 걸음을 멈춘 곳은 우리 집 근처 좁은 골목이었다. 늦은 시간 때문인지 골목은 어두웠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민석이가 쥔 손목을 뿌리쳤다.
"너 왜이래! 사람이 말을 하며 들어야 할 거 아냐!"
"...."
"나 갈 거야 비켜"
내 앞에 있는 민석이의 어깨를 밀고 가려 하자 내 팔목을 잡고 밀어버린다. 바로 뒤에 있던 벽에 등을 부딪쳐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화를 내려다 내 얼굴 앞에 있는 민석이의 표정을 보고는 말문이 막혔다. 눈이 빨갰다. 화가 난 건지 울음을 참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잡힌 팔목이 아려왔다. 아까부터 왜 자꾸만 팔목을 세게 쥐어오는건지. 잡히지 않은 팔을 들어 내 팔목을 잡은 민석이의 손을 내려치려 하자 또 다른 손으로 내 팔목을 잡아왔다. 두 팔목이 다 잡혀 당황스러웠다. 가까이 붙어 있는 김민석도 지금 김민석이 짓고 있는 표정도 모두 낯설었다.
"이거 놔"
"요즘 왜 그래"
"뭐?"
"왜 자꾸 안 하던 짓 하냐고"
"내가 뭘"
김민석도 알고 있었다. 요즘 들어 내가 자꾸 김민석의 앞에서만 다른 남자에게 치근덕 댄다는걸. 나도 모르겠다. 왜 자꾸 김민석의 질투를 유발하고 싶은지. 유치하단 것도 알고 있다. 잡힌 팔을 빼려 몸을 비틀었다. 그러자 한 손으로 내 두 팔을 잡아 위로 올린다. 나머지 한 손으로는 내 턱을 잡아 자신을 보게 했다. 고작 한 손으로 잡았는데도 빼내질 못하겠다. 그런 김민석의 행동에 그저 멍하니 바라만 봤다.
"난 소중해서 만지지도 못하겠는데"
"...."
"그 새끼가 뭔데, 널"
화를 꾹 눌러 참는 듯 뒷말을 잇지 못하는 김민석은 그대로 내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곧 힘없이 벌어진 내 입술 사이로 김민석의 뜨거운 혀가 파고들어왔고 어둡고 조용한 골목에는 타액이 섞이는 질척한 소리와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내 숨소리만 가득했다. 그렇게 나는 김민석에게 처음으로 역관광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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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및 맞춤법 오류는 고치고 있으니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래는 上 下로 나뉘어진 글이었지만 단편으로 바꾸겠습니다.
下편을 기다려주셨던 독자님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