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서 너는 나의 메시아가 되었는가.
아님 내가 너의 메시아가 되었는가. ”
w. 더웨
05.
지민은 기도를 하느라 밤이 새벽으로 흐르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그냥 흘러가는대로 흐르는 것이 시간이라면 놔두는 것이 현명한 것일뿐.
시간에 대한 태도 자체는 이도 저도 아니었다.
다만, 시간은 흘러가면 다시는 붙잡지 못한다는 것, 그 하나만 알고 있어도 현명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을 뿐이다.
바로 마주하고 있던 손을 깍지를 끼고,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기회를 잡으려 발악을 하듯, 간절하고 애틋한 기도는 끝없이 지민의 입술에서 되풀이 될 뿐이었다.
몇 주에 한 번 쯤, 같은 방을 쓰고 있는 석진이 나가더라도 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한가지, 걸리는 건 이상한 냄새.
지민도 이렇게까지 냄새가 올라오는 것은 처음이라 당혹스러운 마음 뿐이었다.
냄새는 마치 꽃안에 숨긴 독과 같았다.
뱀의 독은 꽃 안에서도 신선한 악취를 풍기며 기어올랐다.
기도를 하던 지민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단순히 술 냄새 때문인가, 하고 치부한 석진이 옷장에서 옷을 새로 꺼냈다.
까만 사제복은 여전히 석진에게 자로 잰 듯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물론 본인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대게 사람들은 그런 석진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했다.
딱히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밥 안먹어?"
급하게 들어온 석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침대 위에서 기도문을 중얼거리던 지민에게 물었다. “먹어야죠.” 하는 지민에 식당으로 온 두 사람이었다.
걸어 내려오는 층계에서 보통 메뉴에 대해 심층적으로 토론을 하고는 했었는데, 지민은 조용했다. 마치 속이 더부룩한 것 같이 보여 석진이 지민의 등을 조금 쓸어내릴 뿐이었다.
"아."
"어? 왜 그러는 거에요? 진짜 아픈 거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지민의 등을 쓸어주는 석진의 손이 뱀이 기어가는 것 처럼 느껴진 지민이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그런 지민의 행동에 잠시 멈칫한 석진이 이내 어색하게 웃었다. 뒤에 있던 몇몇의 수사들이 걱정이 섞인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을 옅은 미소로 화답한 지민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최대한 석진과 닿지 않으려는 태도였다.
"왜 저러지?"
"Syrus(시로스), 헤수스(Jesus)에게 뭔가 문제 있는 것 아닙니까?"
"밤을 지새우며 기도를 올려서 그런 것 같네요."
헤수스(Jesus)는 참 신실한 목자네요. 하며 웃는 수사에게 석진도 그저 웃음으로 어색함을 모면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적당히 나빠진 기분은 다시 상승기류를 타려 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위태로운 난류에 붕 띄워진 기분은 석진으로 하여금, 참으로 오랜만에 제 일터이자 성전에서 욕짓거리를 내뱉을 수 있게 했다.
다들 식사를 하고 일어난 뒤에 온 터라 한산했다. 밥을 퍼서 가지고 온 석진이 그새 밥 냄새에 기분이 조금 나아짐을 느꼈다. 사람이 간사한 동물이라는 말은 이 때 쓰이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식전 기도를 마친 석진이 다시 기도를 시작한 지민을 바라봤다.
앞자리에 앉았던 제 몸을 일으켜 식판과 함께 지민의 옆으로 다가갔다.
뭔가 고민이 있어보이는 얼굴이기도 했지만, 신실한 헤수스가 말 못할 고민이라도 있으면 대강 잘 달래볼 계획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짜 우리의 순교자라면, 지금의 마음가짐으로는 영혼이라도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에게 팔아 현자의 길을 포기할 망정, 절대 그를 놓고 먼저 갈 수 없다는 제 입장을 표명하는 것과 같았다.
어딘가 아픈듯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석진은 좀 더 제 삶에 우아함을 불러오려고 했다. "괜찮아?" 라는 그 짧은 마디 안에 불러온 예절이 그리했으며, 그의 제스처와 억양 또한 그리했다. 전형적인 성자의 모습으로 바라보는 석진의 눈을 마주친 지민이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구역감을 참지 못하며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독한 술냄새와 함께 올라오는 역한 냄새.
아아, 코 안으로 들어오는 향은 시로스가 악마에 가깝다는 말을 본능적으로 내뱉는듯 했다.
저를 걱정하고 있는 석진을 바라보면서 그의 위선에 박수를 쳐야할지, 아니면 자신의 무심함에 경례를 보내야할지 고민하면서도 벌개진 눈으로 연신 구역질을 하는 제 등을 치는 손길을 모질게 뿌리쳤다.
"신부님."
"응?"
"냄새.. 납니다."
냄새? 하고 석진이 제 옷의 냄새를 맡았다. 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듯 지민을 쳐다보자 지민이 귓가로 다가왔다. 코 안에 가득 들이차는 지민의 섬유 유연제 향이 석진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그의 냄새는 묘했다. 향기라고 격상시켜주기는 뭣하고, 냄새.
냄새는 석진의 코로, 입 안으로 들어와 마치 꽃을 씹어먹는 기분이었다.
본능적으로 끌리는 오묘한 그 느낌과 설렘.
지민에게 그의 냄새는 악마의 향에 지나지 않았다.
향이라고 굳이 높여주고 싶지도 않을만큼 역한 냄새.
술 냄새가 독했어서 그랬던걸까 만약 이전에도 접했다면 분명 났어야하는 냄새인데도 신의 눈을 가린듯 왜 아무것도 몰랐을까.
아니, 알았으면서도 모른척 했음이 맞았다. 지민은 아직 어렸고, 수사기 되기 전까지는 끝없는 자기 고민에 빠져있을 때가 많았으니까.
"악마의 냄새요."
"뭐?"
이 말을 끝으로 잠깐의 정적, 이미 밥을 먹을 생각이 없어진 지민은 다른 수사들의 걱정에 괜찮다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내 식판을 챙겨 "먼저 일어날게요." 일어서는 지민을 보다가 석진이 급하게 식판을 그냥 들고 지민을 따랐다. “무슨 의미야.” 하고 묻는 석진에 몸을 돌린 지민이 애써 웃으며 답했다.
"말 그대로."
"그 냄새를 어떻게 아냐고."
석진이 지민을 붙잡고 물었다.
지민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일부러 이 공간에서 말을 한 것도 있었다. 만일 악마가 맞다면 홀랑 제 살을 내어줘야 할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제가 악마와 관련이 있다는 모호한 소문이 나는 것은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긴팔 뒤에 숨겨져 있을 짜릿한 아픔을 왠지 모르게 지민은 기억이 있는 그 순간부터 기억하고 있었다.
달콤함일까, 아님 그저 스치듯 지나갈 쾌락의 잔여물을 신처럼 숭배하고 있는걸까.
밥을 다 버리고 두 사람이 향한 곳은 성당의 뒤켠,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이상 잘 보이지 않는 으슥한 곳이었다.
석진이 지민의 팔을 잡고 벽으로 거세게 밀쳤다. 심장이 불안감에 휩싸인듯 두려움에 떨고 있으면서도 겉으로 담담한척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아냐고요?"
"그래."
"고해소에 오는 사람."
석진이 숨을 들이켰다.
순간적인 행동이었지만, 하나하나 지민의 머리에 박힐 것 같은 동요였다.
석진의 눈동자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니가 알고 있는 그 악마는 내가 아는 악마와 같다는 걸까.
석진의 입이 매말랐다 혀를 내밀어 계속 축였지만, 역부족이었다.
긴장감은 벌써 손 끝으로도 전달 된 것 같았다. 눈이 점점 풀려가는 듯 싶기도 했다.
석진은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지민의 눈에서 보이는 것은 선명한 확신이었다.
확신은 곧 확인이 되었다.
넘치는 불안함, 역하게 올라오는 냄새는 지옥으로 향하는 문을 잡아당긴 것에 지나지 않았다.
지옥은 달큰하게 끌어당긴다.
절대자의 내기에 놀아나지 않으리라 다짐해도, 우린 그걸 몰랐다.
우리의 삶은 절대자의 내기가 없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었다.
어쩌다 정신을 놓으면 이 세상이 어찌될까 불안했다. 끊어진 실타래는 언제나 지민의 머리 속에서 존재하긴 했다.
존재의 유무는 별 상관이 없으므로.
"형이랑 아는 사람이죠?"
공기는 여전히 버티기 버거운 것들 뿐이라, 숨을 쉬기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