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합시다
2. 설마가 사람 잡음
첫날부터 지각을 하게 된 백현. 덕분에 첫 담임 해보는 아이들인데 조례도 못들어갔다.
"어휴.... 생각보다 왜이렇게 힘드냐.."
시간은 후딱 가고, 한 건 없고.. 쉬는시간마다 괜히 담당 반 아이들이 궁금해서 복도에서 기웃기웃거리다가 여고생들의 이상하다는 시선을 받기가 일쑤였다.
"야 저남자 누구야??" "누구남친인가? 교복아닌데? 대학생인가??" "야 새로온다는 그젊은쌤아님??"
여기저기서 쑥덕대는 소리가 선명히 들렸지만 또 의외로 낯을 가리는 우리 변선생은 새침하게 모른척 하고 교무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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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례때 받은 관심은 가히 상상초월-이었다. 워메 여고생들이 원래 이리도 저돌적인 존재였던가? 백현은 자신의 환상이 조금씩 깨지는 것을 느끼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들러붙는 아이들을 떼내고 학교를 나섰다.
그제서야 아침의 똥 소동이 생각난 것이다.
"맞다..!"
생각해 보니 환경미화원이 뻔히 있는데 가로수에다가 똥칠을 한건 좀 개념없는 행동이긴 했다. 구두는 어떻게 해서 겨우 말끔하게 돌려 놨다만.. 호기심 반 미안함 반으로 아침의 그 나무 근처로 가 보았더니 이미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여기 쭈그리고 앉아 똥을 치웠을 그 환경미화원을 생각하니 좀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할 것 같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환경미화원을 찾았다.
"...없네"
퇴근했나? 뭐 그럴 수도 있고.. 괜스레 무안해져서 모른 척 발걸음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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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집에 온 찬열은 열심히 손빨래를 하고 있다.
"아오 ㅅㅂ 피죤을 얼마나쓴거야"
오늘 아침 분노에 불타며 똥을 닦던 찬열은 그만 백현이 밟고 지나간 그 똥 찌끄레기위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순간 당황한 나머지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지나가는 사람은 한 두명. 이미 등교시간이 지나서 학생들도 없다. 그럼 일단 이 앉은자세 그대로, 나머지 똥 마저 다 닦는거야. 태연하게. 마치 엉덩이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찬열은 그렇게 미켈란젤로가 벽화를 그리듯 여유롭게 똥을 닦았다.
집에 오자마자 옷을 빠는데, 이건 뭐 대바기다. 냄새도 안 사라지고 얼룩이 지려는 건지 색깔이 빠질 기미가 안 보인다. 한참동안 그러고 앉아 있었더니... 옷이야 새로 배급받으면 되긴 한데, 그러려면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 다시 또 부아가 치민다.
"ㅆㅃ..."
아침에 도망간 똥덩어리 새끼한테 또 화가 치밀어 오른다.
오후가 되자 햇살은 쨍쨍하고 평소였으면 느긋하게 빗자루질을 할 그였지만 오늘은 아니다. 화도 나고, 이새끼 이거 딱 봐도 개념없는 학생인데 어떻게, 엿을 먹여야 할까?
아하, 그러고 보니까 분명히 사내자식인데 여고로 기어들어갔었지. 그럼 분명히 여고에서는 난리가 났을테고.. 아마 아침부터 나타난 그 남학생은 학생부로 넘어가서 자기 학교에까지 연락이 갔으리라.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찬열은 낄낄거리며 여고로 전화를 걸었다.
이구역의 청소부는 나야 왜이래..낄낄
"여보세요? 네 저 1학년 학부형인데요 아 네 오늘 아침에 남학생 한 명이 ㅇㅇ여고로 들어가던데요. 그 학생 어느 학교 학생이죠?"
-네? 그런 일은 없었는데요
친히 구라까지 까면서 물어 봤는데, 이건 웬 뚱딴지 같은 소리?
"네? 아뇨 제가 봤는데.."
-아뇨;;전혀아니구요 교문에 선도부 있어서 저희학교 학생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멍하니 전화를 끊은 찬열이 생각이 복잡한 듯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내가.. 시력 2.0의 이 내가 직접 봤는데 저게 무슨 소리..? 그래 분명히 이 학교는 선도부가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선도부를 통과한거지..? ....
그때 찬열의 뇌리로 뭔가가 슈왁! 하고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설마"
찬열이 당황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마설마설마!!!!!!!!!!!!!!!!!!!!!!!!"
아..그렇다 .
찬열은 백현을 여자로 착각한것이다. 아 그런데 분명히 그놈..년인지 놈인지 모르겠지만 암튼 그자식은 머스마였는데?!? 하긴 요즘은 여자애들 중에서도 사내애들처럼 하고 다니는 애들이 있다는 건 들었다. 하.. 그런데 그렇게 순도 99%의 남자애가 여고를 다닌다고..?
"뭐야... 옷도완전 남자였는데"
뭐지..? 내가 환상을 본 건가? 찬열은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분명히 똥묻은 그 신발도 구두였다. 남자용 구두. 아....혹시 성 정체성이 약간 불확실한 그런 아이였던 건가? 찬열은 백현의 모습을 기억해내려 안간힘을 썼다. 그래... 피부가 되게 하얬고.. 키도 되게 작았지! 생각해 보니까 좀 여학생 같이 생긴 것 같기도...라니!!!!!! 그래도 그건 남자였는데??! 남자끼리만 느낄 수 있는 아우라였는데??
"아뭐야!!!!!!!!!!!! 똥땜에!!!!!!!!!!!!!썅!!!!!!!!!!!!!"
퐝 하고 생각의 끈을 놓아버린 찬열. 신경 끄겠다는 듯 머리를 부비며 침대로 풀썩 뛰어든다. 오래된 침대는 그의 길다란 몸이 뛰어드는 데도 잘 받아준다. 아 역시 침대는 과학입니다. 짜증을 낸 것도 잠시, 찬열은 대낮부터 잠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