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기분 좋게 몸을 휘감았던 바람은 어느새 따뜻하다 못해 뜨겁게 데워진 온도로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팔이 스치는 곳마다 아침에 씻었다는 게 무색할 정도로 끈적끈적했고 찰랑거리던 머리는 편이라도 가르는 건지 자기들끼리 삼삼오오 뭉쳐버리는 참사. 그러니까 쉽게 말해 머리에 떡이 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더워.”
“뭐라도 마실까?”
“.......”
“아니면 팥빙수 먹을래?”
“.......”
기분 나쁜 날씨에 온 얼굴을 찌푸리며 아무렇게나 구긴 전단지로 부채질을 하던 성규가 우현의 말을 못 들은 건지 부채질을 멈추지 않더니 두 번째 물음에는 우현의 얼굴이 있는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분명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 은근한 느낌으로 성규는 우현을 무시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 성규의 의도를 당사자인 우현이 파악하지 못 할 리가 없음에도 우현은 상관없다는 듯 계속해서 성규에게 말을 걸었고 결국 그런 끈질긴 구애 끝에 성규의 얼굴이 우현에게로 돌아갔다.
“더위 먹었냐?”
“딸기빙수 어때?”
“남우현.”
“딸기빙수가 싫으면 그냥 빙수 먹을까? 아님, 생과일주스?”
손가락까지 접어가며 무엇을 먹을지 묻던 우현이 아무리 기다려도 답하지 않는 성규의 모습에 못 참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성규의 손목을 낚아챘다. 가서 고르자. 라며 손에 힘을 주어 성규 일으킨 우현이 황당하다는 성규의 표정에 기분 좋은 웃음으로 답해주었다.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우현의 웃음 때문인지 성규는 자신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이끄는 우현에게서 손을 빼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게 뭐야.”
“요거트스무디,”
“.........”
“뭐해? 녹기 전에 빨리 먹어.”
테이블로 고개를 숙여 빨대를 입에 물고 쪽쪽 빨던 우현이 성규에게 먹여달라고 안 먹고 있는 거냐고 농담을 건넸지만 돌아오는 건 대답도 아닌 방금 자신이 사온 하얀 요거트스무디의 차가운 온도였다.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스무디의 온도를 느끼던 우현이 그간 참았던 게 폭발 한 건지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신경질 적으로 얼굴 위에 있는 스무디를 쓸어내렸지만 눈을 뜨자 보인 성규의 표정에 잔뜩 달아오른 얼굴과 매섭게 뛰던 심장이 순식간에 푹 가라앉음을 느꼈다.
“남우현 나는 하나도 안 심심해.”
“나도 안 심심해.”
“심심한 게 아니면. 혹시, 니가 갑자기 짠하고 나타나서 다시시작하자고 하면 내가 병신처럼 그러자고 할 줄 알고 이러는 거야?”
“..........”
“그런 거라면 너 번지 수 잘못 찾았어.”
“김성규 난 그냥”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어난 성규 덕분에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의 높낮이는 맞춰졌지만 성규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우현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가게를 빠져나가는 성규를 서둘러 붙잡았지만 우현은 성규의 입에서 나오는 예상치 못한 말에 머리가 멍해졌고 그 사이 성규는 우현에게 잡힌 손을 떼어내고는 사람들 틈으로 사라져버렸다.
‘내가 유일하게 안 먹는 아이스크림이 요거트 맛이라는 건 명절 때만 만나는 내 사촌동생도 알아.’
우현의 손을 뿌리치고 나온 성규가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서둘러 고개를 숙여 눈물을 닦아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뜨겁다고 생각한 날씨가 어쩐지 쌀쌀하게 느껴져서 성규는 양 팔의 맨살을 쓰다듬으며 사라들 틈사이를 빠져나갔다.
평생 만나지 않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평생 만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꼭 만나야 하는 순간이 지금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더 멋진 모습이 되었을 때, 취직도 하고 상사에게 시달리면서 조금씩 어른의 옷을 입어갈 때. 그때라면 만나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하필이면 성규는 여태 살아온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이 가장 무능력하다고 느끼는 이 시점에서 나타난 우현 때문에 돌아버릴 거 같았다.
“미친새끼, 날 얼마나 만만하게 봤으면.”
“아까부터 누굴 그렇게 욕 하냐?”
“있어. 입에 담기도 엿 같은 놈.”
“아 맞다. 너 근데 왜 이 시간에 집에 있어?”
“왜 나는 집에 있으면 안 돼?”
“이 새끼 오늘 왜 이렇게 삐딱해. 너 알바 한다며.”
이제야 알았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성규를 향해 욕도 아깝다며 누나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섰지만 성규는 지금 누나가 자신을 무시하든 말든, 우현 때문에 다 돌리지 못하고 나왔던 전단지가 어디 있는지를 생각하려고 했지만 이내, 전단지의 행방지가 어딘지를 생각해 낸 성규가 서둘러 전단지를 찾으러 가는 거 대신 아직 자신이 앉아있던 모양 그대로 움푹 패여 있는 소파에 다시 앉았다.
“개새끼 남의 전단지는 왜 가지고 가고 지랄이야.”
*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확인한 성규가 역시나 어제의 전단지 알바 사장이 보내온 뻔하고 뻔한 문자에 핸드폰을 침대 끝으로 던져버렸다. 밤새 뒤척인 탓인지 잔뜩 흐트러진 이불을 더욱 흐트러트릴 모양인지 이리저리 발길질을 해대는 성규의 등살에 못이긴 이불은 결국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지만 성규는 그런 이불을 구원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불에게 동지를 만들어 줄 모양인지 머리에 깔려있던 베개를 힘껏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진짜 개새끼 내 평생의 일탁이다.”
그리 길지도 않은 네 글자를 줄여 일탁이라 칭한 성규의 말은 성규가 우현과 헤어지고 꽤 오랜 시간 우현을 비유하는 말로 써왔다. 우연히 들여다 본 신문에서 발견한 고사성어로 일어탁수. 뜻으로는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물고기 한 마리가 강물을 흐린다.’ 라는 뜻이었다. 우현 때문에 모든 걸 망쳤다고 생각한 그때의 성규 입장에서는 그 만하게 우현을 표현하는 말이 없었고 그 생각은 오늘 날에 와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 니가 양반일 리가 없지.”
침대 끝에서 울려대던 핸드폰을 든 성규가 저장이 되지 않아 번호만 둥둥 떠 있는 핸드폰을 바라보며 전화를 걸어온 상대방. 그러니까 우현을 향해 우현이 듣지도 못하는 욕을 내뱉으며 손가락으로 거절버튼을 힘껏 밀어버렸다.
첫 만남♥〈tbody>〈TBODY>
현성 〈/tbody>〈/TBO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