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1998
Couple카이X디오/카디
NameHan Byeol
BGM Andre Gagnon ‘Fin de bal’
06
수 일이 지났다. 경수가 종인과 함께 지낸지도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갔다. 그동안 종인이 툭하면 경수를 데리고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덕에 경수는 종인 없어도 어느 곳이 누구 네 집인지 알게되었다. 그렇지만 경수는 혼자 다니지 않았다. 경수가 혼자 돌아다닐 성격이 되지 못하는 것도 이유였지만 더 큰 비중을 둔 이유는 경수 옆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종인 때문이었다. 학교에서도, 하교 후에도 주말에도 경수의 옆엔 종인이 있었고, 종인의 옆엔 경수가 있었다. 그런 탓에 반 아이들은 물론이거니와 동네 사람들까지 모두 두 사람이 더 없이 친한 사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종인의 엄마와 경수의 엄마는 달랐다. 둘 사이가 친한 건 알지만 종인과 경수가 붙어다는 것을 아니꼽게 생각하였다. 종인의 엄마는 혹시나 종인이 병에 걸릴까봐 경수가 아니꼬웠고, 경수의 엄마는 경수의 건강이 더 나빠질까봐 종인이 아니꼬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로 실컷 돌아다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두 엄마의 걱정이 담긴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끊일 줄 모르는 잔소리에 종인은 언제나처럼 큰 소리로 대꾸하였고 경수는 고개를 푹 숙여 조용히 고개짓만 하였다. 잔소리가 나날이 이어져도 둘 사이에 금이 간다거나 하는 지장은 없었다. 오히려 서로가 더 애달파 못 견디는 마음만 커질 뿐이었다.
가끔 아침 저녁으로 선선하면서도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때문인지 요새 들어 경수의 기침이 잦았다. 경수의 엄마는 경수가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을 권했지만 경수는 완강히 거부했다. 기침을 꾹 참고 경수가 웃음을 지으며 학교로 향했다. 경수의 집과 종인의 집 거리의 가운데인 징검다리에 달하면 교복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경수가 오는 길만 목이 빠져라 쳐다보는 종인이 서있다. 깃털처럼 팔랑팔랑 이 쪽으로 뛰어오는 경수를 조마조마하는 마음을 담아서 보다 경수가 헥헥대며 가까이 다가오면 종인은 경수의 머리를 쓰다듬고 함께 징검다리를 건넜다.
변하지 않는 일상 시작 중에 하나가 되버린 두 사람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 신경쓰였지만 단순히 여기는 것이 다였다. 그렇다고 티가 날까봐 자제하는건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하지만 이 이상은 안되겠다 싶을 땐 괜한 멋쩍은 웃음으로 무마시키고는 했다.
토요일 종례시간 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이 달의 추천 도서’라는 말과 함께 칠판에 책 이름을 써내려갔다. 책을 읽고 난 후 독서 감상문을 제출 할 것을 전하며 담임 선생님이 종례를 끝냈다. 가방을 챙겨 일어나는 아이들 사이로 칠판을 뚫어져라 보던 종인이 경수의 기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
“…응.”
입을 막고 기침을 하던 경수가 느리게 눈을 깜빡이다 웃으며 대답했다.
“저기, 경수야.”
“응?”
“있지. 여기서 마을 버스 타고 나가면 책방이 하나 있다.”
“책방?”
“응.”
종인이 손가락으로 칠판을 가리켰다. 경수가 칠판을 한 번 보고 활짝 미소를 짓고 말했다.
“가 볼래, 그 책방. 가고 싶어.”
반 아이들이 모두 나갈 때 까지 기다리다 종인과 경수는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교실에서 나왔다. 각자 집에 들러서 버스를 타고 나갈 채비를 조금 한 뒤 징검다리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둘은 징검다리 앞에서 헤어졌다.
집에 도착한 종인은 조금 급한 손길로 제 방 서랍을 뒤져 비상금을 찾았다. 몇 푼 안되는 돈이었지만 그 돈으로 마을 버스를 타고 나가서 책방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곳에 들러 경수에게 맛있는 것들을 사주고 싶어 모은 돈이었다. 먹을 것을 함부로 주지 말라는 경수 엄마의 말이 떠올랐으나 종인은 가방에 돈이 든 봉투를 꼭꼭 잘 넣어두었다.
신고 있던 양말을 벗고 새 양말을 꺼내 신은 종인이 마루에 걸려 있는 거울 앞에 서서 제 얼굴을 빤히 보았다. 모난 곳이 없나 한참을 살피고 헤실헤실 웃으며 마루 밑으로 내려와 신발을 챙겨신었다. 어깨에 맨 가방을 열어 비상금이 잘 있는지 확인하고 종인은 마당에 있는 백구에게 손 인사를 한 뒤 대문 밖을 나섰다.
경수와 버스를 타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별 것 아닌데 종인은 괜히 설레서 발걸음이 빨라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종인은 벌써 징검다리 앞에 도착한 상태였다. 조용히 흐르고 있는 개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종인은 경수가 오는 방향으로 몸을 틀고 경수를 기다렸다.
종인이 집에 도착한 시간과 비슷한 시간에 집에 도착한 경수는 즐거운 마음으로 제 방에 올랐다. 단 둘이 동행하는게 처음이 아닌데도 경수는 그저 좋았다. 엄마에게 용돈을 받으면 따로 보관해두는 저금통을 피아노 위에서 내리며 돈을 꺼낸 경수는 저금통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았을 때 무언가 허전하다는 걸 깨달았다.
“……상자가…….”
나무 상자가 없었다. 보물 처럼 여기는 물건을 넣는 나무 상자가, 종인이 처음으로 주었던 꽃을 고이 넣어두었던 그 나무 상자가 없었다. 자리에 잘 있던 상자가 없어진 것에 당황해 경수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저금통만 놓여있는 피아노 위를 쳐다보았다. 틈만 나면 나무 상자 안에 있는 꽃을 보던 경수였기에 어제 까지만 해도 있던 상자가 없어져버려 의아하기만 했다. 경수가 이리저리 방 안을 살피며 상자를 찾았지만 상자는 보이지 않았다. 경수는 없어져 버린 상자가 이상했지만 종인과 책방을 갔다 오고 나서 찾기로 하고 방에서 나왔다.
“금방 들어왔는데 어딜 또 나가?”
거실에서 라디오 음악을 들으며 잡지책을 보고 있던 경수의 엄마가 경수를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아, 저 친구랑 어디 좀 가려고…….”
“또 그 종인인지 뭔지 하는 애랑 만나는 거니?”
“네? ……네.”
“경수야.”
소리나게 잡지 책을 덮은 경수의 엄마가 팔짱을 끼고서 경수를 째려보았다.
“엄마가 몇 번을 말했지? 걔랑 어울리지 말라고.”
“…….”
“가만히 앉아서 약 꼬박꼬박 챙겨먹어야 병이 나을까 말까 인데 자꾸 그렇게 먼지 나는 곳 돌아다니면 쓰겠어?”
“…….”
“툭하면 걔랑 만나서 들어오고. 너 걔랑 어울리고 나서 부터 기침 심해진 거 엄마 무지 신경쓰여.”
종인 때문에 기침이 심해졌다는 건 말도 안되는 말이었다. 경수는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럴 틈도 없이 날카롭기만한 비수가 끊임 없이 날아왔다.
“그렇다고 걔가 공부를 잘 하는 애여서 같이 있으면 성적이 오르는 것도 아니잖아. 이래저래 너한테 나쁜 아이야. 엄마가 그걸 알려주는데도 우리 똑똑한 경수는 왜 알아듣지 못하는 걸까, 응?”
“…….”
“그리고 경수, 너. 방에 그런 건 왜 두고 있었어?”
“……네?”
계단 앞에서 묵묵히 엄마의 비수를 듣던 경수가 엄마의 물음에 고개를 들고 놀란 눈을 하였다.
“그게 언제 적 건지 썩기 일보 직전이더라. 엄마가 버리라고 했던 그 꽃들, 맞지?”
“……엄마가…그거 버렸어요?”
“그래, 버렸어. 쓰레기일 뿐인데 그걸 뭣 하러 방에 두고 썩히고 있어? 엄마가 말했지. 꽃 가지고 싶으면 그냥 말 하라고, 사다 줄테니.”
“엄마 그건,”
“꽃에 아무런 관심도 없던 네가 상자 속에 그렇게 넣어두고 여태 있었다는걸 안 엄마가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알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행동들 할 때 마다 엄마는 가슴이 다 철렁거려. 그게 다 종인이라는 걔 때문이겠지. 걔가 널 그렇게 물들이고 있는거야.”
“엄마.”
“이거 봐. 지금도 그래. 엄마 얘기 아직 안 끝는데 뭐하는 짓이니. 너 이런 애 아니었잖아. 엄마 말 끝날 때 까지 대꾸 한 번 안하던 애가.”
경수는 자꾸만 종인을 탓하는 엄마를 이해 할 수 없어 주먹을 세게 쥐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엄마의 입에서 종인의 이름이 나올 때 마다 어쩌면 벌써 징검다리에 도착 해 있을 종인이 떠올랐다.
“경수야, 엄마는 그래. 이런 시골 촌 구석에 있는다고 해서 네 병이 나을거라고 생각 안 해. 전에도 말했지? 다른 데로 이사 갈테니까 여기에 정 붙이지 말라고. 너만 마음 아파.”
“……네.”
경수는 어거지로 대답을 하였다.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다시 잡지 책을 든 엄마를 보고 경수가 현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엄마가 여태 말했는데 또 못 알아 들은 건 아니지, 경수?”
“……엄마, 친구랑 약속 한 거에요. 금방 들어 올 테니까,”
“나가지 마. 오늘은 다른 때 보다 날씨가 별로야.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
그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경수가 그 자리에 굳어서 엄마를 쳐다보았다. 경수의 엄마는 잡지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경수에게 나가지 말라는 소리를 한 번 더 전할 뿐이었다.
“그래도 약속을 했는데…….”
“기다리다 너 안 오면 지쳐서 집에 갈테지. 엄마 말 들어.”
경수는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어서 거실로 와 엄마의 옆에 섰다. 그래도 그녀는 경수에게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종인인 제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집으로 갈 애가 아니에요.”
“그거 참 멍청한 아이로구나.”
“멍청한 게 아니라 종인인……! 엄마, 제발요. 정말 금방 올게요. 종인이가 기다린단 말이에요. 종인이가……콜록!”
말을 빨리 하던 경수가 약간 가빠진 숨에 목구멍이 간지러워 기침을 하였다. 기침을 하자 가슴 쪽이 퍽퍽한 듯 아파와 표정을 찡그렸다. 경수의 엄마가 얼른 경수를 쳐다보았다. 기침을 연신 하면서도 경수는 말을 이었다.
“제가 먼저 잡은, 약속…….”
경수가 가슴 쪽을 잡고 허리를 조금 구부렸다. 경수의 엄마가 화를 내었다.
“거 봐! 지금도 이렇게 기침이 심한데 어딜 나간다는거야, 자꾸.”
“그래도, 그래도 종인이가,”
“그 종인이라는 소리 좀 그만 해라!”
엄마가 화를 내서 인지, 기침 때문에 가슴이 아파서인지 경수의 눈에 조금씩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경수는 손등으로 눈을 꾸욱 눌렀다. 금새 경수의 눈가가 빨갛게 물이 들었다. 화가 가라앉지 않은 그녀의 목소리가 거실 천장을 찔렀고, 경수의 가슴을 찔렀다. 한 번 가빠진 숨이 제자리로 돌아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하더니 경수는 곧 그 자리에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귓가에 내려앉은 그녀의 비명소리가 희미해져 갔다.
무겁게 내려 앉았던 눈꺼풀을 올리니 제 방 천장이 눈에 들어와 경수는 도로 눈을 감았다. 경수의 옆에 앉아있던 그녀는 경수가 눈을 뜬 것을 보고 놀랐던 가슴을 진정시켰다. 두세 시간 내내 누워있던 그녀의 아들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못 간다고 전해주기만 할게요.”
“뭐?”
“종인이 한테 가서, 그렇게 말 해주고 올게요. 못 간다고.”
“일어나자마자 한다는 소리가……경수 너.”
“종인이는 제가 올 때 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릴 지도 몰라요. 아니, 분명 그럴거에요.”
“그 애 하나 때문에 점점 더 고약해 지는구나, 우리 아들은.”
“…….”
“후우……. 이번이 마지막이야. 엄마는 그동안 많이 참고 봐줬다고 생각해. 가서 못 간다고 말만 하고 곧장 와야 해. 알았지?”
그녀는 다정한 투로 말했지만 경수는 그저 엄마의 말이 따갑게 들릴 뿐이었다. 욱씬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경수가 침대에서 내려와 방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경수의 뒤를 따르며 간이호흡기를 경수에게 건넸다. 경수는 그것을 받아 들고 현관 앞에서 신발을 신었다.
“말만 전하고 곧장 와. 우리 아들이 거짓말을 하진 않을테고 먼저 한 말인데, 지키겠지.”
“종인이한테 먼저 했던 약속인데 저는 그걸 지키지 못하게 됐어요.”
정말 작은 목소리로 경수가 혼자 대꾸했다. 경수의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물었지만 경수는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대문을 나섰다.
“금방 와라!”
대문 너머로도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자 경수는 바닥에 주저 앉아 귀를 틀어막았다. 질끈 감은 눈 사이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종인이 아른거렸다. 경수는 다리를 펴고 일어나 느릿느릿하게 걷다 이내 뛰기 시작했다. 징검다리가 가까워졌다.
개울가 근처에 앉아 개울 속에 자갈돌을 던지며 종인은 경수를 기다렸다. 경수의 말처럼 종인은 그가 오지 않아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해가 저만큼이나 기울어져있는데도 경수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종인은 저 멀리 오고 있는 경수를 발견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이 꽤나 오랫동안 경수를 기다렸지만 털끝 만큼도 그런걸 신경쓰지 않고 종인은 두 팔을 크게 벌려 경수를 향해 흔들었다.
“…어라.”
이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경수는 조금 위태로워 보였다. 종인은 터덜터덜 걷는 경수를 향해 뛰어갔다.
“도경수……!”
제 앞에 선 종인의 신발이 눈에 들어오자 경수는 고개를 들고 종인을 쳐다보았다. 종인은 마주한 경수의 얼굴을 보고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왜, 왜 그래?”
경수가 숨을 가파르게 쉬더니 금새 울먹이며 종인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되뇌였다. 종인은 경수가 걱정되어 그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이제 와서 갑자기 왜 이러는데. 무슨 일 있어? 응? 경수야.”
“책방 못 가게 됐어. 미안해. 미안해, 종인아.”
“그까짓 책방이야 다음에 가면 어때. 왜 울고 그러냐.”
“미안, 미안해, 정말로.”
“책방 못 가서 우는거야?”
“아니야.”
“그럼 왜 우는데.”
경수는 종인의 품에 더 파고들고 훌쩍였다. 종인은 대답을 듣는 것을 포기하고 경수를 쓰다듬었다.
“괜찮다. 울지 마라.”
“…….”
“우는 거 처음 봐서 뭘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다. 뚝 그쳐.”
“…안 울어.”
“여태 울어 놓고.”
경수가 종인을 안았던 팔을 풀고 제 얼굴을 감쌌다. 종인은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종인아.”
얼굴에서 손을 떼어내며 경수가 종인을 불렀다.
“응.”
“내가 아파서 미안해.”
“말 같지도 않는 소리 한다. 너 아픈게 왜 나한테 미안한데. 그 말 취소 해라. 미안하다고도 하지 말고. 너 잘못 한 거 없어.”
단호한 종인의 목소리에 경수가 한 번 더 울컥 했지만 꾹 참아내고 겨우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미안하다고 하지 말라니까.”
“기다리게 한 건 내가 잘못 한 거 잖아.”
“아니. 내가 괜찮으니까 됐다.”
“종인아.”
“응.”
“내가 계속 안 왔으면 어쩌려구 그랬어?”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한 경수를 보던 종인이 경수의 눈 밑을 닦아주며 말했다.
“기다리지.”
“…….”
“올 때 까지 기다려야지.”
“……완전 멍청해.”
“내가 집으로 가버린 다음에 니가 오면 어떻게 해.”
“…….”
“기다리다 기다리다 안 오면 니네 집으로 찾아 가려고 그랬어. 뭐, 너네 어머님이 좀 으음…….”
종인이 뒷말을 흐렸다. 그에 왠지 모르게 웃음이 터져 경수가 야트막히 웃었다.
“어쨌뜬 너 왔으니까 됐어.”
경수를 따라 웃으며 종인이 경수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책방에는 다음에 가자. 아무때나 가도 항상 책방 열려있으니까 상관 없다.”
“응. 알겠어.”
“집으로 데려다 줄까?”
“아냐. 괜찮아.”
“데려다 주고 싶은데.”
“너 여기서 너무 오래 있었잖아. 나 괜찮아.”
집 앞까지 종인과 함께 가면 분명 이층 방에서 경수가 오는 것을 보고 있을 엄마가 난리를 칠 게 불 보듯 뻔했다. 자신이 혼나는건 상관없지만 더 이상 종인을 욕하는게 듣기 싫었던 경수가 종인과 있고픈 마음을 애써서 눌렀다.
경수의 표정을 보아하니 더이상 조를 수 없어 종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히 들어 가.”
“응. 너도.”
“뒤 돌아보지 말고 곧장 가.”
“푸흐……응, 너도.”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를 비비며 경수가 종인에게 손을 흔들었다. 종인은 경수가 먼저 등을 돌려 갈 때 까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경수가 천천히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 뒤에서 종인의 눈길이 느껴졌지만 종인의 말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쭉 걸었다.
시야에서 경수가 희미해지자 종인은 그제서야 집으로 향했다. 숨을 가쁘게 쉬며 울먹이던 경수가, 자신을 끌어안으며 미안하다는 말만 하던 경수가 자꾸 생각나서 마음 한 구석이 시큰거렸다. 아파서 미안하다니.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더 마음이 시렸다.
종인은 어깨를 한 번 털고 큰 숨을 쉬었다. 돌아오는 월요일에 다시 학교에서 볼 경수를 생각하며, 그렇게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