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았다.."
E 호텔 VIP 파킹 라운지 구석, 차와 차 사이에서 우스꽝스럽게 몸을 웅크려 앉은 백현이 나지막히 탄성을 내질렀다. 가죽자켓에 덮혀 숨을 못 쉬는 동안 등에 땀이 죽죽 흘러내렸다. 그야말로 눈물이 날 것 마냥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북받치는 감정에 찡, 울리는 코를 왼 손으로 비적비적 닦았다. 때가 잔뜩 낀 오른 손에는 꼬박 세 달, 90일을 말 그대로 개고생하며 잠복한 결과가 들어있었다. 악바리 똥강아지 변백현이 동료들도 혀를 내두르는 수 개월의 잠복을 끝내 성공해내고 만 것이다. 아마도 억대, 아니 어쩌면 몇십억대의 부를 한 큐에 백현에게 안겨줄 골든 티켓.
새벽 4시, 신성한 주차장에서 C그룹 막내 며느리이자 국회의원 B씨의 차녀. 그러니까 스폰서와 카섹스를 감행하는 탑 아이돌 박찬열의 파파라치 샷.
그게 바로 백현의 티켓이었다.
w. 원
차분하게 자취방으로 돌아온 백현은 씻기도 전에 노트북을 켜서 사진을 옮기기 시작했다. 수십장을 찍어댔지만 사실 쓸모 있는 사진은 몇 없기 마련이다. 얼굴이 확실히 드러난 사진이 필요했다. 최대한 얼굴이 선명하게 나온, 또는 오해의 소지가 제법 큰 사진 열 여댓 장을 제외하곤 가차없이 지워버렸다. 징징 울리는 휴대폰을 흘깃 쳐다보니 어느 새 새벽 6시, 직장인들이 깨어나는 시간이다.
"어."
-형. 나 이제 일어났다. 어떻게 되가? 이제 빈 수레 그만 두드리고 집에 좀 들어와라, 어?
"뭐래, 집이야."
-뭐?
"넌 진짜 집 청소를 안하냐? 아무리 내가 집을 비워놔도 그렇지."
-뭐야 형 너 집이야? 이제 포기한거야?
"넌 어디냐. 이 시간에"
-어제 세훈이 집에서 한잔 했다가 뻗어버렸네.
"빨리 들어와. 우리 이사하자."
-어?
"전망 좋-은데로. 어디가 좋지? 우리도 존나 재벌처럼 살아보자."
-왜이래, 형. 진짜 한 건 했어?
"끊는다"아 형, 뭐야! 뭔데! 하고 딸려나오는 소음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휴대폰 화면에 짧게 종인이 잠든 사진이 반짝였다.
해가 뜨면 달려야한다고 했으며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했다. 하지만 백현은 해가 지면 달렸고 새벽을 활보하며 벌레, 아니 금을 캤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서울의 밤, 특히 상류층과 연예계의 은밀한 밤은 그야말로 금광이니까. 남들은 저질스러운 사생활 침해니 뭐니해도 그런 류의 이야기에 솔깃하는게 사람 마음이기 마련이었다. 백현은 영리했고 일찍이 벌이가 시원찮은 포토그래퍼로서의 정체성과 예술에 대해 고뇌하기보다 현실적이고 보다 자극적인 길을 택했다.
대중의 심리를 이용하는 파파라치.
악용이니 사생활 침해니 하며 비난받고 손가락질 받아도 백현은 사람좋게 씩 웃고 말았다. 내 사진 다들 좋아하면서 지들이 어쩔거야. 거창하게 뭐.. 선악과라고 해두던가. 아무리 앞에서는 욕할지언정 익명으로 가려지는 모니터 뒤에 서면 다들 궁금해서 기웃거리다가 보고, 보고 계속 보고… 종국에는 본인들 잣대로 욕하고 또 다른 가십거리를 만들어 씹어대는게 대중이라는 걸. 누구에게나 아주 깊은 저 속 어딘가 뿌리박혀있는 본능, 그 선정적인 호기심을 백현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것이 인생 한방!이 모토인 양아치 백현의 동아줄, 아니 돈줄인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백현은 세 달간 집을 비워놓아 먼지가 얕게 쌓인 인화기를 작동시키며 뿌듯하게 웃었다. 베란다 창에 비친 땀과 땟국물이 잘잘 흐르는 제 얼굴이 보였지만 누가 뭐라해도 이 순간 백현은 백만불의 사나이였다. 백만불의 사나이 변백!
"미안하고.. 미안한가? 아무튼 고맙습니다, 화끈하게 놀아주셔서."
천천히 인화되어 나오는 때깔 좋은 사진들을 뽑아 쫙 이불에 펼쳐놓고 풍덩, 씻지도 않은 더러운 몸을 침대에 누인 백현이 진심으로 해맑게 웃어보였다. 변 포토그래퍼의 유려한 손가락이 붙든 잘생긴 남자의 얼굴도, 그 옆에 바짝 붙어 명품을 휘감은 여자도 마냥 해맑게, 그렇게 웃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푹신한 매트리스 감각에 백현은 바로 곯아떨어졌다.
툭. 사진은 천천히 바닥으로 낙하했다.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
아 모르겠다.. 생각난 소재가 아까워서 일단 싸고볼래요
연재될지 뭔지는 아무도 모를.. 정말 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