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세계
말을 전해들은 호원은 박장대소를해댔다. 아니, 돈을 퍼다주는 젊은 회장님한테 공사를해도 모자를판에 같은 처지인 호스트? 그것도 남우현? 진중하고 뚜렷하던 이목구비가 웃음과함께 한가운데로 모였다 펴지기를 반복했다. 마디마디가 불거진 호원의 손가락사이에 끼어진 담배는 위태로운 시소마냥 중심을잡으려 부던히 애를쓰고있었다. 사실 같은 처지라고 몸한번 못섞어주겠냐며는, 하지만 한번 뒤를 대줘봤자 남우현은 대쪽같을거같다며 한바탕 웃은 호원은 묻지도 않고 제 손가락에 걸쳐있던 담배를 입에 물려주었다. 반쯤 펴버려서 밍숭맹숭한 텁텁함만 간직한 담배는 최악이였다.
아니면 속는셈치고 한번 털어내보던가
걔가 털거라도 있으면몰라
한숨을 쉬고서 말없이 턱을괴고 바라보았다. 너도 경험자잖아. 당장이라도 입술사이를 뚫고 나오려는 말을 다행이도 눌러삼키고서 입술을 축였다. 직업병의 일종이였다, 상대가 듣고싶은 말만하고 내가 정말로 하고싶은 말을 삼키는것. 말이 뚝 끊겨서 조용해진 방안에는 상자를 뒤적거리는 요란한 소리만 가득찼다. 근무하는 사람들은 대기실의 서랍과 쇼파밑을 만물상이라고 불렀다. 담배며 콘돔까지, 누가 가져다놓는지는 몰라도 항상 그득히차있었다. 이호원이나 남우현 류의 호스트들은 딱히 콘돔에 신경을쓰지않았다. 있으면쓰는거고 없으면 안쓰는거였지 챙기지는 않았다. 위에서 박아대는 입장인데 뭔들알겠나싶어서 남우현이한말은 떠올릴때마다 짜증이 솟구쳤다. 나보고 다른것도 아니고 몸을 사리라니, 허.
콘돔하나를 이빨로 깐 호원은 돌돌 말려있는 하얀 라텍스를펴서 쇼파 팔걸이에 올려두었다. 시발 더럽게 남 앞에서. 질색하는 저에게 호원은 어깨를 으쓱하고서 거리낌없이 바지지퍼를 내렸다. 축 쳐져있는 페니스위에 막을 덮어씌운후, 두어번 쥐고흔들고나니 반쯤서서 꺼덕이는게 볼썽사나웠다. 아직도 누가 흥깬다고 미리끼고 오라는 부탁을하나. 저한테 박혀올거던 아니던 남의 걸보는건 딱히 유쾌한 경험이아니였다. 얼른 입어 새끼야. 장난삼아 버팅기는게 괘씸해서 등을 내리쳤다.
남우현 부를까?
지금? 남우현은 왜?
거짓말처럼 지금 남우현이 들어온다면 무슨 생각을할까. 문을 열자마자 차례대로 제가 좋아하는 사람, 초면의 남자 그리고 콘돔. 90년대 주말드라마라면 아마 천천히 저와 호원을 비추고 아연실색해 일그러진 남우현의 얼굴에 초점을맞췄을테다. 그럼 아마 전국의 주부들한테 저는 먼지가되도록 씹혔겠지. 생각해보니까 후자는 지금과 별다를게 없다. 그럼 남우현은?
바지나 입어. 눈버렸어
의외네, 난 형이 남우현이면 다 질색하는줄알았더니
밖에 내보내더라도 목줄은 채워놔야지
혀를 두어번 찬 호원은 옷을 털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볼께. 넓은 어깨가 이유없이 불안해보였다. 근사하게 맞는 어깨선을 따라 내려가면 자리잡은 남자다운 손에 불현듯 저를 잡아채던 또 다른 손이 생각났다. 남우현. 옆에 아무도없어서 그런지 불안함은 가릴필요도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주체할수없이 달달 떨리는 다리가 증명해주듯이 허벅지가 파르르 떨려왔다. 지푸라기 잡듯이 맹하던 맛의 괴상한 담배라도 집어서 필터를 자근자근 씹었다.
* * *
우혀나아- 역하게 달라붙어오는게 상대는 매너가없었다. 술 몇잔 들어간채로 누나누나하고 불러주면 대체적으로 여자들은 쉽게도 넘어왔다. 내일이면 와장창 깨질 약속이라도 달콤함을 전제로두고 속삭여주면 감동했다는듯이 눈동자는 집요하게 저를 따라왔다. 같이 일하는 몇몇사람들은 고깃덩어리라고칭했다. 좀 예쁘고 베푸는 돈씀씀이가 헤픈 고깃덩이.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맨살을볼때마다 속에서 역한것이 올라오려했다. 올라오려는 역함을 참지못하고 룸에서 뛰쳐나왔을때 한 남자가 제 앞에 쪼그려앉아있었다. 처음인데 고생이많다며 저를 일으켜세우는 얄상한 손가락을 타고 시선을 위로 올리면 천사가 있었다. 김성규는 천사였다, 그게 저의 첫인상이였다.
그 이후로 김성규가 눈에 밟혔다. 좋아한다고 얘기하고싶었다. 아침시간이면 으레 손님없는 가게중앙에 앉아 심심함에 제풀이지쳐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하는걸 수도없이 보면서도 입이 떨어지지않았다. 수시로 들고다니는 작은 약병에서 약이 한알한알 입으로 넘어갈때면 애가탔다. 물어봐도 딱히 저게 뭐라고 정확하게 대답해주는 사람은없었다. 이런데서 일하면서 정신돌릴데가 있어야지 숨통이 트이지, 쟤한테는 이게 그거고. 제 지인은 무미건조하게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듯이 똑같은 약통을 흔들어보았다.
궁굼하면 너도 먹어보던가.
주머니에서 달그락거리는 작은 병을 쥐고서 입안에 털어넣었다.
온몸에서 열이 훅 올라왔다. 매슥거리는 속을 부여잡고서 바닥에 웅크리고 드러누웠다. 그러지않으면 저를 둘러싸고있는 벽이, 그리고 세상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것같았다. 몇분이 지났을까. 입안이 버석하게 말라왔다. 덜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서 무작정 뛰쳐나갔다. 놀란 사람들의 수근거림과 처음이라서 저런다는 비웃음이 섞여서 귓속으로 파고들었고 벽이라도 뚫을 기세로 문을 향해 달리다가 저를 잡아채는 손놀림에 결국 앞으로 고꾸라졌다.
미쳤어? 왜그래?
아니야,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나, 나 지금 너무...
입이 마음대로 떨어지지않았다. 당황스러움에 벌떡 일어나려다 갑자기 가슴에 퍼지는 편안함에 다시 주저앉고말았다. 편안했다, 5분전만해도 저려왔던 온몸이 구름위에 올라탄것마냥 풀어졌다. 저를 동물원 원숭이 취급하면서 구경온 사람들이 족히 열댓명은됬지만 이 자리에서 잠이 들수있을만큼의 편안함이였다. 무슨일인지 보려 몰려온 와글거리는 인파속에 김성규가있었다. 매번 저를 외면하던 김성규가 먼저 저에게 손을 뻗어주었고 당연히 그 자리에서 망설임없이 일어났다. 제 기억이 맞다면 김성규는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입이 찟어지도록 웃었다.
어제의 그 방에 도착해서 김성규는 찬물이 담킨 컵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다 그래, 얼른 먹고 속이나차려. 아직도 아까의 편안함은 가시지않았다. 컵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제멋대로 제어할수없는 손은 보라는듯이 컵을 넘어트렸다. 내 의지가아니였다며 뭐라도 변명하기도전에 김성규는 손가락 사이에 들린 담배를 깊에 들이마쉬었다. 독하게 퍼지는 담배연기마저 달콤하게 느껴졌다. 약때문인지, 아니면 김성규가 눈앞에있어서인지는 잘모르겠다. 아마 둘다인거같기도.
좋아해 우현아
..뭐?
넌 내가 이렇게말하면, 떨려? 다 거짓말이여도?
응 완전 떨려. 김성규가 작게 욕을 내뱉은건 딱히 상관하지않은채로 바보같은 웃음을 짓고서 얄상한 몸둥이를 와락 안았다.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