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니가 기분이 왜 나쁘냐? 욕 먹는 건 난데."
너징의 말에 박찬열은 대답도 않고 괜히 진찰 순서표만 만지작 거리고 있다 정수기에 물을 받아먹으러 가.
털이 달린 야상을 입고 온 너징도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박찬열을 보며 옷의 털을 괜히 잡아 뜯어.
조금씩 흐르는 미묘한 기운에 너징은 헛기침을 했고 박찬열은 병원에 물 맛이 좋다며 헛소리를 해대다 뜬금없는 변명을 늘어 놔.
"기분이 나쁘지. 당연히. 애들이랑 같이 니 욕을 못해서."
"참나, 그런 거 였냐? 욕해라, 욕해."
너징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치며 일부로 박찬열에게 콜록콜록 기침을 해대고 박찬열은 미간을 한껏 찡그리며 그런 너징을 밀어내.
밀린 너징은 계속해서 박찬열을 향해 기침을 해댔고 박찬열은 유치하게 너징에게서 몇 걸음 떨어져 앉아.
"오지 마. 감기 옮거든."
"야, 이런 걸로 감기 안 옮거든?"
"옮거든?"
"하루종일 같이다니고, 음식 같이 나눠먹고, 매일 붙어있어야지 옮는 거지. 무슨 너랑 나랑……"
"에취!"
"너…… 감기 옮았냐?"
박찬열은 그냥 재채기일 뿐이였다고 둘러댔지만 박찬열은 그 후로도 코를 계속 훌쩍였어.
너징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박찬열을 보자 박찬열은 꽃가루 알레르기라도 다시 한 번 둘러대.
코를 훌쩍이면서도 아니라고 잡아 떼는 박찬열이 귀엽기도해서 너징은 그냥 한 번 모른 척 해주기로 해.
까만 후드를 입은 박찬열의 모자를 장난스럽게 잡았다 놓았다를 하던 너징을 가만히 놔두던 박찬열이 갑자기 너징의 팔목을 잡고 놔주지를 않아.
박찬열이 힘 자랑을 하려나 싶어 팔목을 빼내려던 너징은 도무지 빠지지 않는 팔목에 안간힘을 썼고 여유롭게 너징의 팔목을 잡고 있던 박찬열은 순간 너징의 팔목을 놓아버려.
덕분에 거의 매달려있던 너징은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짧은 치마를 입은 탓에 허둥거리던 너징에게 점퍼를 벗어 던져 준 박찬열이 혀를 끌끌 차며 너징의 팔뚝을 잡고 일으켜.
"봐봐, 겨울에 이렇게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니까 감기가 안 걸릴 수가 있느냐고."
"박찬열, 니가 뭐 패션을 아냐? 난 키가 작아가지고 요렇게 짧은 걸 입어줘야 키가 좀 커보이거든?"
"야, 니가 키가 뭐가 작냐? 일어서 봐."
일어 선 너징 옆에 박찬열이 나란히 일어섰고 큰 키 때문에 너징은 거의 고개를 뒤로 젖혀야 박찬열의 얼굴이 겨우 보여.
그런 너징을 내려다 보던 박찬열이 한 마디 해.
"니가 키가 뭐가 작냐? 나랑 딱 맞구만."
"뭐, 뭐가! 딱 맞는데!"
"……이렇게 딱 맞는다고!"
너징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는 박찬열 때문에 너징은 입이 앞으로 쭉 나왔어.
너징도 박찬열에게 꿀밤을 먹이려는데 진료 차례가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진료실로 들어섰어.
의사 선생님께서 너징의 증상에 대해 물으시는데 물음에 줄곧 대답하는 건 너징이 아니라 박찬열이야.
"언제부터 아프셨어요?"
"……4일 전 인가?"
"일주일 전부터요. 일주일전부터 기침 하기 시작했어요."
"증상은 기침만 있으시고요?"
"네. 기침만 좀 나는 것 같아요."
"야, 기침만 난다니? 선생님, 얘가 몇 일전 부터 목소리도 좀 변하고 코도 좀 훌쩍이는 것 같더라고요. 얘가 환절기만 되면 감기를 달고 살아서요. 어릴 때부터 편도선염을 앓았었는데 그거랑도 좀 연관 있는거죠?'
"아, 연관이 있을 수도 있죠."
계속되는 박찬열의 대답에 의사 선생님도 너징의 말을 받아적다 박찬열의 말을 다시 받아적었고 너징은 머쓱하면서도 어깨가 좀 솟는 느낌이야.
세세하게 내 증상을 말하던 박찬열도 너징의 눈빛을 눈치채고는 기침이 다 거기서 거기죠 라며 한 발 빼는 시늉을 해.
그러면서도 끝까지 의사 선생님께 약 잘 처방해달라며 부탁하는 박찬열의 모습에서 너징은 친구 하나는 잘 뒀다는 뿌듯함을 느껴.
"처방은 오늘 주사 한 대 맞고 가시면 될 것 같네요."
의사 선생님의 처방에 너징은 걱정이 되기 시작해.
어릴 때 부터 주사를 무서워했던 너징을 아는 박찬열은 배를 잡고 웃으며 너징을 놀리기 시작해.
심지어 옆에 있던 간호사 선생님께 주사 두방, 세방 놔달라며 부탁까지 하는데 너징은 그런 박찬열이 약오르지만 주사에 대한 걱정때문에 그냥 손톱만 깨물고 있어.
간호사 선생님이 너징을 부르고 너징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기는데 뒤에서 박찬열은 여전히 주사 아프게 놔달라며 장난만 치고 있어.
섭섭해진 너징이 박찬열에게 빽 소리를 지르고 주사실로 향하는데 언제 뒤로 따라온건지 너징의 머리에 손을 올린 박찬열이 갑자기 너징의 어깨를 뒤에서 끌어안아.
놀란 너징이 뒤를 돌아보려는 찰 나, 박찬열이 주사실 안으로 너징을 세게 밀어버려.
넘어질 뻔한 너징이 겨우 균형을 잡고 뒤를 돌아봤어.
"야, 박찬열!……방금 뭐, 뭐한거야?"
"뭐하긴. 주사실로 밀어넣은거지. 내가 뭐 했냐?"
얼떨떨한 기분에 너징은 주사를 맞을 때도 아프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어.
너징은 다짐했지.
병원 올 땐 꼭 박찬열과 동행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