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bitrage
w.fumerie
orig. text from http://fumerie.livejournal.com/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2단으로 내렸다. 차 엔진을 4500 rpm 까지 끌어올리며 그 충격파가 그의 몸을 뚫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빠르게 클러치를 풀었고, 굉장한 압력이 그를 뒤로 던져버릴듯이 들이닥쳤다. 뒷바퀴가 마찰력을 잃어 차 뒤편이 통제력을 잃으며 돌아갔고, 트랙에 모래 바람을 일으켰다. 사실 이게 다인 건 아니었다. 여기서 트릭은, 어떻게 충격파를 타고 커브시 차체 회전에 맞서면서 드리프트를 시키느냐에 있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 밟고, 속도 낮추고, 돌리고. 고무와 고철 덩어리가 콘크리트 바닥과 마찰하면서 엔진소리보다도 시끄럽게 끼이익하고 소리를 냈다. 그는 핸들을 좀 크게 돌렸고, 차가 다시 트랙을 점령하면서 큰 아치를 돌았다. 차 뒷편이 콘크리트 기둥을 박을 뻔 할 때, 미묘한 충격이 그의 몸을 스치는 것을 느꼈다.
차는 스핀을 네 바퀴째 돌았고, 그는 스키드 패드 중간에 서있는 남자를 중심점으로 잡고 쳐다봤다. 계산적인 눈, 위로 곡선을 그리며 작게 재미있어하는 웃음. 그의 시선을 따라다니며, 가슴 위로 느긋하게 팔짱을 끼고 있었다. 차가 구심점을 잃고 원을 벗어났음에도 말이다. 그의 발이 브레이크를 밟자, 차가 끼이익 소리를 냈고 마지막 드리프트를 마치며 그 사람 앞에 섰다. 삐걱거리고 시끄러운 소리. 둘 중 누구도 움찔하지 않았다. 키가 큰 남자는 느긋하게 팔을 풀며 천천히 들어 박수 치는 모션을 취했다. 경수는 엔진을 끄고 안전벨트를 풀으며 작게 숨을 내뱉었고, 자동차를 빠져나왔다. 그가 문을 쾅 닫았지만 모두가 보내는 박수갈채와 휘파람 소리에 묻혀버렸다.
“존나 멋있었어! 난 네가 북악 스카이웨이 지나고 따라잡을 줄 알았어!” 미친듯이 키가 큰 사내의 말투는 계산적인 차분함에서 매니악한 흥분으로 바꼈다. 눈이 얼굴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크다고 생각하며, 경수는 그 사내에게서 슬쩍 빠져나왔다. 그가 활짝 웃으면 이 밖에 안 보인다. 미친듯이 하얗고, 위생상태가 좋은 고른 이.
“찬열아, 좀 꺼져라, 애 놀라잖아!” 높은 고철 벤치위에 걸쳐 앉아있던 놈 한명이 커다랗게 뱉었다. “애 눈 튀어나오겠다!"
“너나 꺼져, 크리스! 너는 도대체 왜 여기 있는건데? 넌 이 팀도 아니잖아!”
“내가 너희 신입들을 체크하러 다녀야 너네가 레이스 트랙에 싸지른거 뒷처리할 사람을 안 구하러 다니지.” 금발머리가 담뱃재를 땅에 털며 입술을 비틀자 반은 웃고 반은 찡그린 듯한 얼굴이 됐다. 그가 우뚝 일어났다. 그 금발머리는 더하면 더했지 정말 찬열만큼이나 미친듯이 컸다. 경수는 그들이 경수의 양 옆으로 우뚝 솟아있는 것을 보고 속으로 움츠러들었다. “나쁘진 않은 것 같은데. 지난번에 너희 뒷뜰에 깨진 유리조각 버리고 튄 놈보다 낫다.” 금발머리는 그를 정면으로 똑바로 쳐다봤다. 희미한 조소가 아직 그의 입가에 머무르고 있었다.
“좀 꺼져, 크리스. 질투 좀 하지마. 자꾸 그러면 이번엔 우리 귀요미랑 같이 너 박살내고 니 좆 같은 얼굴 땅에 묻어드릴거니까.” 라고 찬열이 금발머리- 크리스의 온 어깨에 팔을 두르면서 얘기했다. 크리스는 찬열을 떼어내려 그를 팔꿈치로 가격했고 찬열은 하하하 웃었다.
“채찍질 조금만 하면 몇달 안에 제대로 된 모양새로 갖출 걸.”
“쟨 타고났어. 난 알아.” 또 다른 사내가 그들에게 웃으며 걸어왔다. 수호다. 경수는 맨 처음 차고지에 들어왔을 때 그가 자신을 소개하던 걸 기억했다. 경수가 말했다. “날 찾고 다녔단 얘기 들었어.” 이어서 상냥한 스마일가이, 수호가 그에게 답했다. ”네가 가진 걸 보여줘.” 정말 진부한 표현이다. 라고 경수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차고지 뒤뜰의 그의 차 주위로 모여드는 동안, 그의 가슴 속에선 심장이 계속 쿵쿵 뛰고있었다. 그 곳은 웬만한 뒤뜰보다 훨씬 컸다.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경수.” 머리 부터 발 끝 까지 쭉 훑어대는 시선들이 제대로 불편하다고 생각하며, 그는 차에 살짝 기댔다. “뭐, 신원조사라도 해야 돼?”
“아니 아마 아직” 어떤 말라깽이 놈이 웃어제꼈다. 그는 혀짧은 소리를 냈고, 웃을 때 눈이 반달로 졉혔다.
“걘 괜찮아. 실력 있는 드라이버는 널렸다고. 막 나가는 사람 한 명 쯤 있어야지.” 크리스가 찬열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테크닉 쪽이 아직 떨어지긴 하는데- 손이 미끄러져서 가끔 중심을 잃을 때가 있는 것 같더라고…그래도 뭔 가 있긴 있어.”
“그러냐, 누가 널 우리 인사부 매니저로 고용이라도 했나?” 찬열은 금발머리를 밀치면서 두 눈을 굴려댔다. “그래도 쟤 보면 걔 생각나지 않냐?” 찬열이 가까이 기대 오면서 활짝 웃었다. 멀대같은 키로 폭 가두면서. 경수는 등을 기대고 있던 그의 차의 딱딱한 금속 지붕을 밀며 몸을 피하려했다.
“운전하는 거 보면, 그렇지…그 자식이 떠오르긴 해.” 크리스가 정면으로 쳐다보기 위해 홱 돌아섰다. 무언가를 재는듯한 눈으로. “둘 다 무슨 사고라도 내러 가는 사람마냥 운전하잖아. 존나 겁대가리없이. 가끔씩 좋지 않을 때도 있단다.”
경수는 얼굴을 반박하려 입을 열며 찡그렸다. 누군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그는 입에 손을 얹고, 팔은 허리에 얹은 채, 눈으로 경수의 테를 따라 위 아래로 훓었다. “야 그럼 걔 대신에 꼬맹이 완전 잘 데리고 온거네, 안 그래?”
“아무도 카이를 대신할 수는 없어, 백현아. 카이는 아직 우리 팀이야.”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던 수호는, 정말 언짢아보였다.
“뭐, 이젠 가끔씩 기억도 안 나려고 해, 그 존나 잘난 시발 새끼님은 어떻게 반 년째 코빼기도 안보이냐.” 백현이 눈알을 굴렸다. “걔한테 이번 대회 참가 할거냐고 물어보기나 했냐?”
모두가 서로를 쳐다봤고 머뭇거리는 정적이 그들 위에 안착했다. “…마지막으로 본게 레이싱대회 공식 발표 전이야. 벌써 한달이 지났다고.” 말라깽이가 눈에 보일 정도로 언짢아 하며 으쓱거렸다. 백현은 분이 나서 “난 내 할 말 다 했다.” 라는 듯이 두 손을 들었다.
“그러니까…” 경수가 발을 끌었다. “난 빠지는 건가?”
“이제 와선 나가고 싶어도 그렇겐 못하지.” 수호가 경수쪽으로 자세를 틀고, 환영의 악수를 내밀었다. “EXO-K에 온걸 환영한다.”
경수는 악수를 받기전에 몇 초 동안 주시했다. 그의 눈은 뚫어보는 시선을 떠나보내지 않았다.
“걔 오늘 밤에 인천 트랙으로 데리고 가.” 크리스가 크게 외쳤다. 무시하듯이 손을 흔들며, 뒤돌아 걸어갔다.
봄이 된 서울은 온통 반짝이는 불빛과 젖은 콘크리트로 가득 차있었다. 도시의 소리는 인천 북항 고속도로를 따라 선 12대의 차 엔진의 굉음으로 증폭되었다. 흥분에 가득 차 환호하는 관중들 속 가지각색의 모양과 색을 가진 금속 맹수들이 줄을 서있었다. 실제 차보다 더 큰 대형 스피커에서 미칠듯한 댄스 음악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재벌집 주주 아드님들은 폼을 잡고 팔에 예쁘장한 여자들을 두른 채, 번쩍거리는 LED 조명과 거대한 자동차 스포일러로 집안 주머니를 과시하며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었다. 진짜 부유층은 멀리 떨어져 끼리끼리 섞였다. 중년의 감독들과 정부직원들은 십 억원을 호가하는 슈퍼카 옆에서 비웃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자본의 페라리 레드와 BMW 블랙은 매끄럽고 흠 없이 완벽했다.
후드를 따라 형광 은색 스트라이프가 그려진 불타오를 듯이 빨간 GT-R 옆에 경수는 부드럽게 그의 검은 제네시스를 주차했다. 그 위에 앉아서, 찬열은 시끄럽게 바베큐맛 칩을 씹어먹고 있었고, 백현은 5초마다 한 번씩 몰래 그 것을 뺏어먹었다. 경수는 백현의 모습에 놀라 멍하니 보다 정신을 차렸다-터무니없는 두께의 아이라인과 금속 반지들로 손가락을 장식하고 있는 그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경수가 차에서 나오자 그들이 그에게 손을 흔들었고, 동시에 벨벳 보라색 아우디가 GT-R의 반대편에 부드럽게 들어와 멈췄다. 경수는 그 차를 차고지에서 본 적이 있었지만, 가로등 아래서의 그 코팅의 광채는 정말 깜짝 놀랄정도로 멋있었다.
“요, 세훈!” 운전수가 차에서 나오자 찬열이 그에게 얼른 하이파이브를 건넸다. 마른 그 놈은 유난히도 깔끔을 떨었다. 그는 올백으로 넘긴 머리를 했고, 어깨에 걸친 디자이너 가죽 자켓은 그의 차 값의 반은 나가 보였다. 그의 부모님에 재산과 넘쳐나는 여가 시간에 버릇없이 커버린, 레이싱 트랙에 찰나의 스릴을 찾으러 오는, 정말 불쾌하게 생긴 전형적인 재벌집 도련님 상이었다.
“웃긴건 사실 수호가 재벌집 아드님이라는거지.” 찬열이 웃었다. 그의 깊고 미친 듯이 큰 동굴 목소리는 가속하는 엔진이나 쿵쾅대는 음악소리보다 더 시끄러웠다. 그는 견고한 GT-R 후드에 몸을 기대어, 찬열과 백현이 횡설수설하며 트랙에 관련 없는 뒷담화를 주고 받는 것을 들으며 베팅이 다 끝나길 기다렸다. 주황색 이클립스 너머로 누군가와 얘기하고 있는 수호를 향해 찬열이 손을 흔들었다. 경수가 따라간 그의 시선 끝에는 무리 안에 있는 크리스의 눈동자가 보였다. “저 아우디 V10은 사실 수호꺼야. 근데 본인이 직접 레이싱 하기엔 너무 착하신 분이라 세훈이가 쓰게 해줘. 실로 매우 좋은 전략이야. 서커스 판의 허세 가득한 찌질이들을 다 떨궈내는데 세훈이 정도면 좋은 미끼지. 그냥 쟤도 돈과 시간이 넘쳐나는 잘 사는 집 도련님 중 하나겠거니 하고 마니까. 쟤 트랙 뛰면서 돈 엄청 따.”
“솔직히, 너도 그렇지 않아? 그치?” 감자칩 한 개를 그의 입으로 털어넣으면서, 백현이 활짝 웃었다. “그 아무것도 몰라요-하는 얼굴 말야, 다들 네가 그냥 트랙에 어쩌다 잘못 걸려 들어와서 새파랗게 질린 애인 줄로만 알 걸. 그런데 넌 그게 아니잖아, 안 그래? 네가 레이싱 하는거 봤어. 네가 어쩌다 걸려 들어왔을 수는 있어도, 난 네가 아무것도 모를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 크리스가 널 제대로 집어냈네. 걔가 확실히 보는 눈이 있다니까.”
“그 북악산로 커브길 있잖아…그거 진짜 대박이더라. 넌 잠재력이 있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 그러니까 아무도 네가 뭘 할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잖아. 넌 우리 비밀 시드 선수야.”
경수가 어깨에서 감자칩을 털어냈다. 찡그린 얼굴로 자켓의 천을 쓸어내렸다. “넌 내가 왜 너희 팀에 들어갈거라고 생각했는데?”
“글쎄, 넌 지금 여기 있잖아, 안 그래?” 그리고 너도 이게 그냥 우리 만의 일이 아니라는 건 알잖아. 돈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것도 아니고.”
찬열이 아우디 옆에 선 하얀 스카이라인을 향해 손을 흔들며 웃었다. 호리호리한 사내가 내렸는데, 그의 눈은 크고 터무니없이 어렸지만, 뚜렷한 선과 얼굴의 각이 무언가 샤프함을 뱉어냈다. 세훈이 그를 끌어 안았다. “넌 그 특유의 표정이 있단 말이지. 마치 모든 것이 갑자기 엿 같은 상황으로 변해도 개썅 마이웨이를 걸을 것 같은. 그런데 넌 항상 마지막에 가서야 뒤늦게 아 충돌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고 깨닫고선 뒤로 빼더라. 내가 말했지, 너 보면 생각나는 사람 있다고.”
“그 떠났다는 친구?”
“카이 안 떠났거든?” 찬열이 그의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마치 그의 생각을 떨쳐 내려는 것 처럼. “걘 그냥… 전 보다 조금 덜 같이 있는 것 뿐이야.” 백현이 옆에서 쿨쩍거렸다.
“쟤네가 크리스네 크루야?” 경수가 수호와 세훈이 놀고 있는 무리 쪽으로 고갯짓을 했다.
“응, M팀이야. 저게 크리스, 트랙 제일 재수 없게 생긴 놈, 쟨 이미 봤고. 주황색 이클립스 옆에 키 조그마한 애가 이씽. 방금 하얀 스카이라인에서 나온 귀엽게 생긴 금발이 루한. 아이스 블루 370z 가 민석. 번질번질한 풀색 제네시스가 타오. 쟤가 크리스 옆에 쿵푸 어쌔신 같이 생긴 애야. 애가 귀여워, 정말로. 아 그리고 저기 수호한테 말 하고 있는 게…종대. M 팀 코치? 매니저? 머시깽이. 다 만나게 될거야.”
무리 너머 경수의 눈을 보고, 종대가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레이싱 대회. 들어봤을텐데, 그렇지? 레이싱 쪽 망년 상금쇼 같은 건데, 한 크루당 최대 다섯대. 그래서 우리가 차고지는 같이 써도 K랑 M팀 으로 나눠져 있는 거야.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튜너, 수입사, 부잣집 도련님들, 남녀노소 다 와. 대회 장소는 매년 바껴. 이번 년도는 갈마산코스.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 드리프트 잘 하는 신입을 찾아다닌거야. 우리 크루도 잘 하긴 하고, 에이스 카드도 있지만, 새로운 놈이 필요했거든.”
“왜냐면 우리 시발 에이스 카드 새끼가 신뢰도 제로 새끼거든. 잘하는데,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를때면, 팀워크 쌓기가 어려워.” 백현이 입술을 오므렸다.
“너희 그래도 걔가 격주로 돈 긁어 모아다 줄 땐 아무 불평 안하잖아.” 수호가 백현의 어깨를 치며 다가왔다. 세훈이 그를 뒤 따라왔다. “가자, 4회전 가야 돼.” 찬열이 빨간 GT-R에서 뛰어내리며 그의 뺨을 두드렸다.
“오늘 밤엔 누가 달려?”
“세훈이랑 경수. 세훈이는 이미 오늘 밤 경기에 베팅이 꽤 걸려있어. 아, 그리고 오늘 밤에 도로 안 막는대. 자유경쟁트랙으로 연장시킨대.” 수호가 활짝 웃으며, 경수의 뒷머리를 흐트러뜨렸다. 도로 막히는데 없으니까, 표지판 잘 보고. 그들은 오늘 밤 일반인들과 레이싱을 펼친다. 새벽 두시, 도로 구역에 교통체증이 있을 것 같진 않다. 수호는 세훈과 경수에게 작은 검은 이어폰과 마이크 셋을 건넸다. “코칭용,” 수호가 얘기했다. 경수가 운전석에 앉자 경수의 귓 속에서 그의 작은 목소리가 치직 거렸다.
흑녹색 제네시스와 눈 처럼 흰 스카이라인이 그들 옆에 다가와 출발선에 섰다. 금발머리 루한이 그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타오는 흘러내리는 어두운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타오가 핸들을 쥐자 비장하게 집중한 모습이 그의 얼굴에 새겨졌다. 찬열과 백현이 군중들 사이로 행운의 엄지를 휙 치켜세웠다. 과한 GT-R 장식과 파란 LED 조명으로 튜닝 된, 눈이 아플정도의 형광 초록색 닛산 실비아가 반대 쪽 옆에 섰다. 미끈한 은색 벤츠 S350이 따라 들어왔다. 이번 판은 트랙이 좀 혼잡스러울 것 같았다.
경수는 엔진의 울림이 그의 머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관중의 소음을 떠내려보내며 방음 유리창 뒤로 온 세상을 보내버렸다. 그의 손 아래 부드러운 떨림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눈을 정면으로 향했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고속도로가 콘크리트 건물과 어두운 산 위로 길게 뻗었다. 가로등과 전조등이 길을 밝혔다. 그의 고막 속 수호의 목소리는 아주 작게 멀리서 들려오는 독촉일 뿐이었다.
“제자리에. 준비. 출발.”
그리고 관중들이 앞으로 쏠렸다.
세훈이 은색 벤츠와 함께 선두에 섰다. 보라색 아우디는 다른 차들보다 4분의 1 마일 정도 앞서 부드럽게 질주해 나갔다. 흑녹색 제네시스가 따라잡았고, 세훈과 은색 벤츠사이로 미끄러지듯이 들어왔다. 몹시 시끄러운 형광 초록 실비아의 머플러 소음기가 경수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경수는 침착하게 오른쪽으로 빗겨나갔고, 차 뒷쪽으로 페인트 코팅을 크게 주욱 긁으며 실비아를 들이받았다. 깨진 LED 조명보드가 펑펑 터지는 모습이 꽤 만족스러웠다. 그 충격의 여파로 실비아는 고속도로의 반대 차선을 반쯤 막은 채 뻗었고, 다시 트랙으로 돌아오려 돌진하는 모습에 경수는 코웃음을 쳤다. 반대차선에서 오는 일반 차량들이 피하기 위해 방향을 홱 틀며 시끄럽게 경적을 울려댔고, 닛산의 뒷쪽 끝을 또 다시 거의 칠 듯이 지나쳐갔다. 실비아 운전수는 창문을 내려 그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경수는 앞 질러 가 흑녹색 제네시스를 바짝 쫒고 있었다.
마일의 반 쯤을 도달할 때 까지 그들은 속도를 유지한 채 달렸다. 타오가 갑자기 벤츠를 한 쪽으로 눌러버렸다. 경수는 그것이 루한에게 길을 터주기 위함이란 걸 알아차리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루한의 하얀 스카이라인이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왔다. 그의 차에서 몇 센치 떨어지지 않은 채였고, 왼쪽으로 빗겨나가기 전 세훈의 아우디를 거의 바짝 쫒고 있었다.
“뭐야-” 경수가 깜빡였다- 그는 스카이라인을 까맣게 잊고있었다. 하얀 스카이라인이 금새 세훈의 아우디와 벤츠를 앞질러 나갔다. 마치 어두운 도로위 하얀 유령의 인영처럼.
“루한은 무슨, 날라간거야? 그나저나, 걘 M팀의 에이스카드야.” 수호가 이어피스 너머로 활기차게 알려주었다. 경수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말도 안되게 귀여운 금발 꼬맹이주제에 무슨 미친 악마 새끼처럼 운전하고 있었다. 타오는 보아 하니 M팀의 미끼새끼였고, 아무도 경수에게 그런 것들을 알려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경수야, 지금이 네 차례다!” 세훈이 갑자기 틀어 타오의 제네시스와 은색 벤츠를 한 번에 사이드로 박았고, 경수 앞으로 넓게 길을 터주었다. 그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엑셀을 세게 밟았다.
“100미터 앞 유턴!” 수호가 이어피스 너머로 소리쳤다. 경수는 순간 속도를 빠르게 낮췄고, 차체의 무게 중심이 앞바퀴로 쏠렸다. 타이어 앞바퀴가 아스팔트 위로 시끄러운 마찰음을 밟았다. 차의 뒷바퀴는 마찰을 잃고 드리프트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 엑셀을 밟기 전에, 경수의 차는 완전히 180도로 돌아갔고, 출발선으로 다시 속력을 올렸다. 그는 지금 2등으로 달리고 있었다. 앞으로는 그를 앞서나간 루한을 쫒고 있었고, 먼 발치 뒤에선 다른 차들이 드리프트하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엄청 밝은 헤드라이트가 그의 바로 옆에 비췄고, 그 무거운 맹수같은 차는 갑자기 그의 차를 들이받으며 쌩 하고 지나쳐 가버렸다. 경수는 반대편 차선으로 밀려나 다른 차에 정면으로 들이받을 뻔 한 것을 겨우겨우 트랙으로 다시 차를 돌렸다.
“뭐야 저 새끼는?”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씩씩 거렸다. 왜냐면 방금 하얀 스카이라인과 그 사이로 끼어든 그 차는 거대한 은색 차체와 무시무시함이 십억원대의 영광에 빛나는 재규어 XJ 세단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이번 레이스 차량은 아닐테고, 대체 어떤 일반인이 그딴 식으로 운전을 한단 말인가, 재규어 씩이나 모는 놈이-
“아 좆됐다,” 찬열의 쉴 새 없이 웃는 시끄럽고 불쾌한 목소리가 이어피스 너머로 들려왔다. “아 시발, 쟤가 그 시발새끼님이야! 쟤니까 당연히 한 달 만에 갑자기 나타나서 레이스를 부시고 다니지. 꼬맹아, 알아서 비켜라!”
“뭐?!”
“저 재규어, 저게 카이야! 야 진짜 박살난 네 차랑 같이 길거리에 버려지고 싶지 않으면 쟤 막지마! 쟤 지금 루한 잡으러 간다!”
찬열이 말한대로, 말 끝나기 무섭게 은색 재규어는 루한의 스카이라인의 옆으로 돌진해 세게 들이받으며, 날려버리다시피 했다. 스카이라인은 재빠르게 회복했지만, 관성을 잃었는지, 재규어에게 길을 내어줄 수 밖에 없었다.
“아 나, 루한 열받겠-“
경수는 차 오른쪽의 빛나는 은색 페인트 코팅이 반절은 긁힌 것을 보고 재규어 운전수에 이입이 되어 “으-“하고 소리를 냈다. 재규어와 스카이라인의 줄다리기 사이로 끼어들어갈 수만 있다면…하지만 재규어가 뒤로 빠지면서 뒷쪽 끝으로 그의 헤드라이트를 들이받았고, 재규어의 백라이트 역시 부서졌다.
“어 좆됐네,” 찬열이 이어피스 너머로 계속 웃고있었다. “쟤는 꼬맹이가 우리 팀인 줄 모르잖아! 경수야, 잘 들어, 카이는 여기 이 시발 레이스를 이기러 온게 아냐, 쟤는 그냥 상대팀을 막고있는거야, 그러니까 그냥 그 근처에서 물러나 그리고-“
경수는 깊은 숨을 들이마쉰 뒤 그의 어깨를 뒤로 돌렸다. 그 다음, 그는 재규어에 돌진해 박았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그 둘 사이의 작은 은색 공간에서 터져나왔다. 그는 검게 선팅된 재규어 유리 너머 그 운전수를 볼 수는 없었지만, 그를 꿰뚫어보는 눈빛은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모든 것이 흐릿하게 옆을 지나쳐갔다. 그들은 결승선을 향해 나란히 속력을 내었고, 그의 머릿속은 날카로운 소리로 흐려져만 갔다. 조그만 충격이 매 충돌 마다 그의 몸을 울렸다. 그의 귀에 정말 정말 큰 외침이 들린 듯한 희미한 기억은 있지만, 그는 아무말도 내뱉을 수 없었다.
그러자 재규어는 달아났다-그리고 모든것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멈췄다.
경수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찬열이 있었고, 그를 차에서 끌어내어 크게 안아주었다. 큰 소리로 웃고 막 흔들었다. 관중은 휘파람과 박수갈채를 힘차게 보냈고, 경수는 어떻게 된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호가 뒤에서 점프해오더니 볼을 문댔다.
“야 너 진짜 돌았구나, 꼬맹아!” 찬열이 그의 팔을 잡아당겨 차 쪽으로 돌렸다. “너 방금 레이스 하나 이기려고 차 오른쪽을 완전히 날려먹은 것 같은데, 보니까 다른 미친놈이랑 정면으로 뜨려면 그래야하긴 하겠더라!”
그가 올려다보자, 은색 재규어가 그의 제네시스 바로 옆에 있었다. 그의 차 역시 비슷한 정도로 금속이 완전 긁히고 찌그러져 망가져 있었다. 그리고나서 그는 그 운전석 창문이 열려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다른 미친놈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있었다. 가득 붉어진 입술로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경수는 가슴의 심장박동이 크게 뛰는것이 느껴졌다. 아드레날린이 그의 핏줄을 따라 세차게 휘감아 그의 손끝을 간질였다. 그는 손을 구부려 주먹을 쥐었다. 피부아래 느껴지는 떨림을 할퀴어낼 것 처럼 그의 손톱이 손바닥으로 파고들었다. 하얀 스카이라인이 재규어옆에 멈춰섰고, 그들의 시선은 스카이라인이 시야를 가리면서 깨졌다. 경수가 눈을 깜빡였다.
“카이야! 너 레이싱 대회 참가할거야?” 루한이 그의 차에서 소리쳤고, 보기에 그는 랜덤하게 갑자기 튀어나온 차에 치여 방금 길에 나뒹군 사람 치곤 그렇게 화가 나 보이지도 않았다.
“응. 어, 그럴 것 같다.” 깊은 음색을 가진 목소리가 경수의 고개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의 착각일 수 도 있지만, 그들은 다시 서로를 쳐다봤고, 경수는 그자리에 얼어붙은듯 한 느낌을 받았다.
재규어는 레이스에 있던 다른 차들이 결승선에 마침내 도착하기도 전에 차를 돌려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세훈은 그날 밤 끝에 그에게 현금다발을 건네줬다. 경수가 눈을 깜빡거렸다.
“종인이한테 겁 먹지마.”
“종인이 누군데?” 경수가 물었지만, 세훈은 이미 시끌벅적한 무리안으로 다시 사라져버린 뒤였다.
헛 것인가, 새벽녘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그는 은색 재규어가 다시 보이는 듯 했다. 후방등은 깨져있고, 차 문은 움푹 패여있는 채, 금속 프레임이 겨우 겨우 경첩에 걸려 덜렁거렸다. 그 재규어는 스카이웨이를 따라 속력을 냈고, 옳지 않은 차선의 커브길을 돌아, 길 밑에 있는 아스팔트로 돌진하더니 소름끼치는 충돌을 만들어내는 것을 경수는 쳐다보았다. 찌그러진 금속과 산산조각난 유리가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죽은 듯한 이른 아침 속 소리의 불협화음은 시끄럽고 째지는 듯했고, 이른 아침의 부드러운 윤기를 갈기 갈기 찢었다. 고철덩어리가 콘크리트 바닥을 미끄러지며 할퀴었다. 드라마틱한 화재라던지 폭발은 없었고, 고철덩어리의 잔해만이 싸늘한 서울 아침 도로 위, 차갑게 식어 부서진 채로 나뒹굴었다.
경수는 그 자리 차 안에 앉아 도시의 스카이라인 위로 한 줄기 햇빛이 들어올 동안 까지 기다렸지만, 그 고철 잔해덩어리에서 아무도 걸어나오지 않았다- 남은 것이라곤 은색 재규어 뿐이었다. 그의 심장이 가슴속에서 거칠게 뛰었다. 그는 그의 노래 컬렉션을 정리하며 기다렸다-아티스트별로, 앨범 이름별로, 장르별로, 년도순으로-하고 또 하고 또 하고. 혈흔을 확인하기엔 너무 먼 거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