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징검다리 앞에서 펑펑 울던 경수는 그 날 이후 학교를 빠지는 일이 잦아졌다. 그 누구도 경수의 결석을 신경쓰지 않았지만 종인은 달랐다. 경수가 학교를 빠질 때 마다 자연스레 쥐어지는 주먹이 얼마나 경수를 걱정하고 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오늘도 그랬다. 경수가 학교를 안 나온지 삼 일 째 되던 날이었고, 종인의 주먹이 세 번 째 쥐어졌다. 집 앞에 찾아 가볼까 하는 생각이 종인의 발걸음을 움직이려 했지만 종인은 꾹 참았다. 경수가 곤란하게 될 거 같은 상황이 만들어 질까봐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짙어져 가는 그리움 속에 녹아 든 두 사람의 애틋함이 안타까움으로 젖어들어가고 있었다.
종인은 경수가 오지 않은 교실에 혼자 남아 생각에 잠겼다.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경수를 그렸다. 사실 그동안 경수를 볼 때나, 경수를 보지 못할 때나 이성을 지배하는 감정이 불쑥불쑥 나타나고 점점 커져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머리가 아플 만큼 고민에 빠진 적이 많았다. 웃는 모습, 조곤조곤 말하는 모습,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듣는 모습, 조용히 숨만 쉬고 있는 모습……. 남들과 똑같은 행동들도 종인의 눈에 비친 경수는 달랐다. 이미 종인은 자신이 경수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쉽게 인정하기는 어려웠다. 낯선 경우였고 혼란스러웠다. 그치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와 경수를 다른 눈으로 본다는건 힘들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이미 좋아져버린 걸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이것에 대한 확신이 선 건, 경수가 처음 우는 것을 보았을 때였다. 꼭 자기가 울린 듯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었던 경수의 눈물이 그렇게 만들었다. 더 많이 좋아하면 좋아했지, 절대로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일은 없다고.
아주 오랜만에 경수가 학교에 나왔다. 누구보다 기뻐하는 마음으로 종인이 경수를 한껏 반겼다. 전보다 많이 수척해진 경수가 애써 건강한 척 종인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었다. 보고 싶었다고, 너무 걱정하고 있었다고. 종인이 얼마나 그를 생각하고 있었는지 표현하자, 경수는 부끄러워하다가도 어린 아이처럼 기뻐했다.
종례시간이 끝나고, 교실에 종인과 경수 둘만이 남았다. 창가 쪽에 서서 운동장을 하염없이 보고 있는 경수의 뒷모습이 더없이 작아보여서 종인은 조용히 경수의 몸을 끌어안았다. 말없이 허리에 감긴 종인의 팔을 경수가 살살 쓰다듬다가 이내 꼬옥 붙잡았다.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있잖아.”
경수의 귓가에 나긋하지만 단단한 종인의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경수가 종인의 몸에 조금 더 살짝 기대며 나지막히 ‘응.’ 하고 대답했다.
“……아니다.”
“응?”
“아니야. 아무 것도.”
“왜.”
무언가 망설이 듯 종인이 급하게 말을 마무리 지었다. 경수는 머리로 종인의 어깨 부근을 콩콩 찧으며 재촉했다. 그래도 종인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갑작스런 말을 경수가 받아 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서 말을 이어나가기 어려웠다.
“말하다 마는 게 어딨어.”
“여기있지.”
경수가 종인의 팔을 풀고 몸을 홱 돌렸다. 아주 가까이에 서로의 얼굴이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살과 살이 붙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짐에 당황 할 법도 하건만 둘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익숙한 체온이라서 그런건지, 낯익은 그림이여서 그런건지. 종인과 경수는 한참을 그렇게 서로를 마주보았다.
“정말 말 안 할거야?”
경수가 먼저 입을 떼었다. 종인은 입을 달싹이다가 별 것 아니였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냥, 정말 아무 것도 아닌데. 책방이나 다시 갈까 하고.”
대충 둘러대 듯 말하니 경수는 김이 빠졌는지 투정을 부렸다.
“겨우 그거?”
“응?”
“책방 가자는 소리를 뭐 그렇게 어렵게 해.”
“……너 또 울까봐.”
종인의 말에 경수가 뾰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울보냐? 그런 걸로 울게.”
“혹시나 해서. 너 울면 이상해, 마음이. 꼭 내가 울린 것 처럼.”
“너 때문에 운 거 아니야.”
“안다. 아는데 그렇다고. 내가 울린 거 같더라.”
“아니라니까.”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의 목소리가 이내 잔잔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손 장난을 치며 서로의 몸을 간지럽혔다. 경수가 종인의 손을 피해 도망치 듯 다른 곳으로 달려갔고, 종인은 금방 경수를 잡아채었다.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경수가 크게 웃었다. 종인은 그런 경수의 허리를 잡아 간지러움을 태우려다 말고 경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물함을 등지고 선 경수가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종인의 시선에 서서히 입꼬리를 내렸다.
“왜 그렇게 봐?”
새침하게 한 말이지만 경수는 더이상 종인의 눈을 더 보지 못하고 눈을 아래로 떴다. 야트막히 오르락내리락하는 종인의 가슴팍이 눈에 띄었다.
“경수야.”
“…….”
“도경수.”
“……응.”
“나 봐 봐.”
종인이 경수의 허리에 있던 오른쪽 손을 올려 그의 볼을 감싸쥐고 가볍게 고개를 위로 향하게 했다. 내내 아래를 보고 있던 경수의 눈이 천천히 위로 향했다. 눈 아래 길게 드리워졌던 속눈썹 그림자가 사라졌다.
부딪힌 두 눈동자가 종인의 마음을 흔들었다. 또 다시 종인의 감정이 무고한 이성을 지배했다.
“예뻐, 도경수.”
“……뭐야 그게.”
“너무 예쁘다.”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하려던 경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 수 없었다. 제 입술에 푹신하게 닿은 종인의 입술 때문이었다. 느닷없이 부딪힌 종인의 입술이 서툴게 움직였다. 목이 울릴 정도로 심장이 쿵쿵 거렸다. 경수는 종인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놓으며 눈을 감았다. 침묵 속의 기나 긴 입맞춤이 그들의 마음을 감싸안았다. 종인의 어깨에 올라가 있던 경수의 팔이 종인의 목을 끌어안았고, 경수의 볼을 감싸쥐었던 종인의 손이 다시 그의 허리로 천천히 내려갔다. 다소 급작스런 스킨쉽이었지만 아무도 의의를 상관하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입을 맞추고 있는 그대로, 마음 속에서 잔잔한 파문이 이는대로. 현재의 감정에 충실 할 뿐이었다.
“…….”
“…….”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맞대고 있던 입술을 떼어내고 고요히 흐르는 정적 가운데에 가지런하지 못한 숨을 쉬었다. 응어리진 고민들이 한 번의 입맞춤으로 모두 사라진 기분이었다.
종인은 경수를 끌어안은 채 속삭였다.
“좋아해, 도경수.”
“…….”
경수는 종인의 포옹과 고백 안에서 생각했다.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로 당연하게 정해진 윤리를 거스를 수 있을까. 앞으로 들킬 수도 있다는 불안함에 떨며 남들과 다른 길을 걸으며 부모님을 향해 덮쳐오는 죄책감들을 감당 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들에 대한 해답을 경수는 찾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 자신에게 전해져오는 이 온기를 뿌리칠 마음이 없었다.
“계속 이 말 하고 싶었다.”
“……종인아…….”
“너한테 피해주는 거 같아서 안 하려고 했어.”
“…….”
“근데 이젠 못 참겠다. 너무 좋아, 도경수.”
두 사람의 입술이 한 번 더 닿았다. 용기가 실린 종인의 혀가 조심스럽게 경수의 입술을 두드렸다. 주인을 닮아 여린 경수의 입술이 열렸다. 종인은 좀 더 경수의 안쪽으로 파고들며 세게 부둥켜안았다. 숨이 차오르는지 경수가 종인의 볼을 쥐고 살짝 밀어내었다. 경수의 급하고도 달뜬 숨이 종인의 코에 닿았다. 경수는 손을 내려 종인의 손을 꼭 잡고 그의 가슴팍에 몸을 기대었다. 종인은 경수의 머리에 얼굴을 묻으며 눈을 감았다.
“아프지 마, 경수야.”
“응…….”
그 말에 경수는 종인에게서 제 몸을 떼어내고 예쁘게 웃었다. 마음이 놓이는 미소였다. 종인은 장난스레 경수의 볼에 입을 맞췄다. 경수가 그만 좀 하라며 뭇 마땅한 어투로 말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아주 오랜만에 맛보는 그런 평화로움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