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게 지내 보자며 악수부터 건네던 너의 손은 따뜻했지만 손끝은 차가웠다. 연습생들 내에서도 유일한 동갑내기로 서로 대화를 자주 하는 사이였다면 좋았겠지만 너는 말수가 적었다. 막역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갑지도 않던 사이. 하루는 연습실 보수 공사로 인해 한동안 연습을 못 가던 날, 다른 애들은 모두 숙소에서 쉬거나 본가로 갔지만 나는 못내 마음이 불편하여 결국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응, 엄마. 알았어요. 형이랑 누나들한테도 전화할게요." 요즘 들어 엄마에게 전화가 자주 걸려 왔다. 빠짐없이 받아서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는 것, 그것이 지금으로써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좀 있으면 회사에서 개인 휴대폰도 걷는다고 했는데, 그 때까지는 무슨 수가 있어도 어떠한 성과라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숙소 앞 놀이터에서 간만에 그네를 타면서 숨 좀 돌리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아끄는 게 느껴져서 발을 땅에 내딛고 멈춰 섰다. "어. 택운아." "..." "너도 나왔네? 집에라도 가지." "..." "나는 왜 안 갔냐고? 난 창원이잖아. 너무 멀어. 도착하면 내일일 걸?" 나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였다. 너는 내 얼굴을 몇 초간 보더니 미끄럼틀 옆에 있던 의자로 걸어가서 풀썩 앉는다.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자연스럽게 옆으로 다가가서 앉았다. 놀랍게도 내 예상과는 달리 아무런 말이 없는 너였지만 왠지 이전과 분위기가 많이 변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색하지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할 거 같았던 날들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오랜만의 휴식이라 그런 걸까. 두 눈을 감고 바람에 내 몸과 마음까지 맡기려는데 네가 내 손을 잡았다. "괜찮으면 우리 집 가서 같이 밥 먹을래?" "어? 내가? 그래도 돼?" "엄마한테... 연습실 공사한다고 했더니, 그럼 집에 와서 밥 먹으라고 했는데 그래도 연습 같이 하는 친구 데려 가면 엄마도... 좋아하실 거 같아서." 단순히 친구와 본인 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싶었던 거다. 나는 흔쾌히 알았다고 했고 같이 버스를 타고, 또 택시를 타고, 또 한 번 더 버스를 타고 너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가는 동안에 너는 네가 살았던 동네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면서 웃기도 했다. "그래서 축구는 어떻게 보면 포기할 수 없는 것들 중 하나인 거 같아." "...나 처음 알았어." "...뭐가?" "네가 이렇게 말을 잘 하는지. 그리고..." "..." "예쁘게 하는지. 잘 들었어. 고마워." 그렇게 말하는 순간에 나의 두 눈은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일렁이고 있었다. 하지만 너는 보지 못 했겠지. 옛날 생각들도 나고, 그래서 친구들도 보고 싶고 그런 마음에 울컥했던 거 같다. 괜히 눈물을 참으려고 아랫 입술을 꽉 깨물었을 때, 네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고마운 것도 많네. 다 왔어. 내리자." 너의 가족은 모두 따뜻한 분들이셨다. 나에게 반찬을 챙겨 주시는 어머니와, 나의 과거에 귀 담아 주시고 모두 이해해 주시는 누나들까지. 하루 자고 가라는 권유에도 감사한 마음과 더불어서 죄송한 마음까지 생겨날까 봐 한사코 거절했다. 그래도 너라도 자고 갈 줄 알았는데, 내일 숙소 근처에서 운동을 해야 한다며 함께 나올 수 있었다. 시간이 꽤나 늦어져서 버스가 끊겼고, 너는 그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대신에 나에게 입모양으로 '걸어가는 방법을 아니 걸어가자'고 하였다. 나는 망설이는 거 하나없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오늘 정말 행복했어. 나는 집이 머니까 그래서 한 번 가는 것도 엄청 신중해야 하거든. 또 자주 가면 엄마랑 아빠가 힘들 거라고 생각할 거 같아서 그러지도 못 하고." 차들이 쌩쌩 지나가고, 다리 위라서 그런지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앞장 서서 아무 말 않는 너의 뒷모습에 열심히 떠드는데 네가 걸음을 멈추더니 나와 동일한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학연아. 너는 꿈이 뭐야?" "어?" 꿈인가, 싶을 정도로 오늘 너는 나에게 참 친절하다. 대답하고 싶은 것들은 수없이 많았지만 하나만 정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너에게 다시 물었다. "너는? 너는 꿈이 뭐야, 택운아?" "...너랑 같이 데뷔하는 거." "...할 수... 있겠지? 우리." "답지 않게 왜 겁을 내고 그래? 난 당연히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데." 어느새 다리의 끝에 다다르고 육교 위로 곧게 뻗은 나무에서 벚꽃 잎들이 흩날렸다. 지금은 사 월, 봄이었다. 너와 나는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가만히 서서 봄의 냄새를 만끽했다. 연신 떨어지던 꽃잎 중 하나가 네 머리에 붙었을 때 나는 웃음이 나왔다. "꼭 데뷔하자. 택운아." "당연하지." 아까까지만 해도, 꿈인 거 같아서 실감도 안 나고 사실 겁까지 났었는데. "난 꼭 내 꿈 이룰 거야." 지금은 꿈이어도 마냥 행복할 거 같아. 고마워. 택운아. *
지금은 아니긴 하지만, 예전 택운이와 학연이의 사이를 보곤 너와 나 같다고 말해 준 네가 떠올라서 쓰게 됐어.
그 때나 지금이나 너는 여전히 나에게 사 월처럼 따뜻하고, 다정해. 보고 싶다, 내일도 너를 사랑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