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30편.
완결에 가까워질수록 뭔가 착잡해지는 이 기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형이 사자인걸 몰랐을때도 좋았고 지금도...지금도 난 형이 진짜 엄청 좋단 말이에요..."
갑자기 슬픔이 북받친 동우가 말을 꾸역꾸역 내뱉으며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 이,이제 나 피할 이유없는거죠,그쵸 ? "
가지말라는 듯이 뒤에서 호원을 꽉 껴안았다. 등뒤로 억지로 울음을 참으려는듯이 들썩들썩거리는 동우가 느껴졌고 호원이 결국 홱 돌아섰다.
" 동우야.잘 들어."
" 흐어엉!!!!가지마요!!!"
결국 터져버렸다.
동우가 손등으로 눈을 가린채 엉엉 울자 호원이 씨익 웃으며 엄지손가락으로 동우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대충 슥슥 닦아냈다.이건 정말 아닌데...
동우를 살포시 껴안은 호원이 조용히 속삭였다.
" 나도 너 좋아하니깐 그만 울어. "
*
" 흠...두 사람 잘 된거겠지 ? "
" 모르지.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얼른 집에 가자.은근히 춥다."
우현이 성규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동우와 호원이 있는 아파트 옥상을 빠져나왔다.
*
보통날과 같은 월요일 아침.
학교가기전 아침밥을 먹던 우현이 문득 냉장고에 걸린 캘린더를 멍하니 응시하더니 한숨을 쉬며 밥을 남긴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머니와 걱정스런 말투로 물었다.
" 왜 ? 남기게 ? 평소엔 두 공기씩은 먹던 녀석이..."
" 그냥 좀..."
우현이 식탁을 떠나 2층으로 향했고 그 모습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보던 성규도 입맛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의자를 밀어넣고 서둘러 우현을 따라 올라갔다.
" 갑자기 왜 그렇게 축 쳐졌어 ? "
" 딱... 6일 남았어...이번주 일요일말이야."
" 일요일이 왜...... "
그제서야 책상위에 있던 캘린더를 본 성규가 곧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 늦겠다. 학교가야지. "
우현이 슬픈 표정을 지우고 애써 웃으며 가방을 챙겨들었다.
*
반 아이들이 아주 신났다.
처음 수학여행지가 경주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아주 개똥을 씹어먹은 것 마냥 오만상을 쓸때는 언제고 내일 출발하는 여행에 벌써부터 신난건지 학교는 온통
수학여행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그에 반해 동우와 우현은 나란히 앉아 흥미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초딩들도 아니고 경주로 가면서 신나긴 개뿔..."
" 그러게...근데 담임이 수학여행 안 가는 애들은 학교 나와서 자습하랬는데... "
'미쳤냐.그걸 왜 해.안 할꺼야' 우현이 딱 부러지게 대답하며 귀찮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어댔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우현은 머릿속으로 이번주 일요일이 오기 전 6일 동안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늘이 월요일이고 6일후 일요일이면 한달이 다 채워지는 날.
책상에 엎드린 채 핸드폰을 꺼내 갤러리를 켰다. 원래 기본이미지나 동우의 엽사만 있던 초라한 갤러리가 이제는 몇 백장으로 가득 채워져있었다.
성규와 찍은 사진,혹은 성규를 찍은 사진. 정말 가끔씩은 성규가 핸드폰을 뺏어들어 자신을 찍은 사진도 섞여있었다.
비록 엉망진창으로 흔들리거나 웃기게 나온 것들이었지만.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던 우현이 푸흐흐하고 웃다가 갑자기 울상을 짓다가 또 푸흐흐 웃어댄다.
" 얘 어디 아퍼 ? 아주 단단히 돌았네. 뭐하냐,남우현."
2반에 놀러온 명수가 누워있던 우현의 뒷목을 주물거리며 묻자 우현이 미동도 하지않은채 핸드폰만 쭈물럭거린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못하고 우현의 핸드폰을 휙 뺏어든 명수가 사진첩을 훑어보더니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 아주 푹 빠지셨구먼."
" 이리 내놔,멍수새꺄...그리고 너도 그런 말할 처지는 아니지않나?"
" 내가 뭘."
'너도 한창 깨소금이 솔솔 쏟아지잖아' 우현이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자 명수가 괜히 시선을 피한다.
" 야,짱동. 저번에 봤지. 이 새끼 이성열한테 줄 핫바 사주면서 변태새끼처럼 실실 웃는거."
" 응. 봤지. 완전 눈에 하트가 가득해서는 ..."
" 내,내가 언제... "
명수가 더듬더듬거리며 얼굴이 붉어지자 우현과 동우가 낄낄거리며 더욱 더 놀려댔다.
그러다 갑자기 우현이 고개를 다시 책상에 쿵 박더니 '아,내가 이럴때가 아닌데'하며 중얼거린다.
" 이럴 때 ? 지금이 무슨 때인데 ? "
" 이번주 일요일 날. 성규형 돌아가는 날이래."
시무룩해져있는 우현 대신 동우가 설명했다. '아~그것때문에 이러는거야?'하며 고개를 끄덕거리던 명수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 헐,시발.아,왜 난 까맣게 잊고 있었지. 미친..."
명수가 욕을 하며 교실을 빠져나갔다. 번갈아가면서 쌍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동우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신의 손목에 걸린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성규가 줬던 삼베띠는 다시 성규에게 전해줬다. 며칠전에 호원에게 이쁜 팔찌를 선물받았다. 물론 교신이 되지는 않는 평범한 팔찌다. 일종의 프로포즈 겸 선물이랄까.
호원과 동우의 사이는 그리 달라진 게 없었다. 그저 옛날과 똑같이 우연히 마주쳤다. 하지만 이제는 우연이라기보단 호원이 일부러 찾아오곤 했다.
밤늦게 동우가 거리를 걸을때면 어느샌가 나타나 같이 걸어주기도 했고 문득문득 외로움을 탈때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곁에 함께 있어줬다.
동우는 그걸로도 충분히 만족해했다.
학교가 끝난후 명수와 우현이 아무 말 없이 후다닥 가방을 챙겨 집으로 뛰어갔고 멀뚱히 혼자 남은 동우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여유있는 느린 걸음으로 거리를 걸었다.
여름날의 피크를 달리고 있다. 세상이 온통 초록세상이다. 약간 후덥지근하지만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땀이 살짝씩 마르고 있었다.
*
" 그래. 승급됐어. 이제 니가 명부관이다."
" ...이게 무슨... "
호원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명부관의 말을 되물었다.
" 짜식. 요즘 들어 열심히 할때부터 알아봤다니깐. 걱정마,난 괜찮아...원래부터 이제 그만두고 좀 쉬어볼까하는 참이였어."
명부관이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고 호원이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에 들린 종이를 다시 확인했다.
" 축하한다. 지긋지긋한 사자 생활끝내고 이제 편안히 앉아서 일하겠네. "
" 그럼 언제부터... "
" 이번주까지 사자업무 마무리 짓고 다음 주 부터는 명부관 이수 교육받으면 돼. 나도 너처럼 사자 일때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
명부관이 늘어놓는 무용담은 귓가에 와닿지않았다.
한 쪽 귀로 들어갔다가 반대쪽 귀로 다시 나가는 기분이다. 자신이 명부관이 되다니. 그것도 이렇게 빠른 시일내에. 다른 사자들의 부러움을 잔뜩 받게 생겼다.
호원이 사관부장관의 싸인 들어있는 증명서를 들고 터덜터덜 기숙사로 돌아왔다. 여기저기서 축하한다는 말이 오갔고 호원은 애써 웃어보이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방문을 걸어잠그고 증명서를 대충 책상에 얹은 뒤 침대에 드러누웠다.
" ...어쩌지.'
명부관이 되면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인간세상과의 출입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 다른 사자가 확인받으러오는 명부에 도장을 찍고 새로 수거해야할 혼들을 찍어주면 되는 편한 직업이라 다른 사자들은 모두들 부러워했다.
게다가 직급도 사자보다 높은데다가 오르기도 어려운 자리였다. 사관부장관이 직접 싸인까지 해준 증명서를 다시 집어든 호원이 서둘러 동우를 만나러 갔다.
*
" 야 !! 이성열 !! "
신발을 후다닥 벗어재낀 명수가 서둘러 성열을 불러댔다. 소파에 기대 잠을 자고 있는 성열의 어깨를 잡은 명수가 마구잡이로 흔들어대며 성열을 깨웠다.
" 일어나 ! 일어나봐,이성열아 !!! "
" 아아...뭐야,멍청이 김명수... "
" 지금 잠이 오냐 !!!!! "
성열이 눈을 비벼대며 굼뜨게 기지개를 펴자 명수가 벽에 걸려있던 달력을 가져와 성열의 눈에 들이대며 소리쳤다.
" 이번주 일요일 !!!! 너 다시 돌아간다며 ? "
" 으음... "
눈을 꿈벅거려 달력을 한번 본 성열이 대충 손가락으로 셈을 하고나서는 하품을 하며 '그렇네'하고 대답하자 명수가 펄쩍펄쩍 뛰며 광분하기 시작했다.
" 그걸 왜 이제 말해 ! 진짜 미쳐버리겠네 ! 그럼 뭐야. 월요일이니깐 이제 6일밖에 안 남았네 !? 아오 ! "
" 왜 이래.미친 인간. "
" 야 ! 넌 왜 이렇게 느긋하냐 !!!!! 벌써 오늘 하루가 다 갔다고 ! "
' 아,안되겠어, 너 나랑 얼른 사진이라도 찍어' 하며 핸드폰을 꺼내들은 명수가 성열의 얼굴을 덥석 잡아 자신의 얼굴옆에 찰싹 갖다대더니 셀카를 찍기시작했다.
" 오자마자 뭐하는 거야 ! "
" 넌 나랑 사진 한 장 안 찍었잖아 ! 성규형이랑 남우현은 몇 백장 씩이나 찍었던데 !!! "
" 아이씨 ! 그 둘은 좋아죽는 사이고 ! 너랑 나랑 무슨 사이라도 되냐 ! "
" ...... "
" 그,그러니까 내 말은... "
무언가 말실수를 한 것 같은 기분에 슬쩍 명수의 눈치를 살폈다.
하긴.내가 너랑 무슨 사이라고. 명수가 씁쓸하게 웃으며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 ...아아... "
성열이 손으로 입을 찰싹찰싹 때렸다. 근데 생각해보면 정말 자신과 명수는 무어라 말할 사이가 아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맛봐야아는 성열이였기때문에 지금 자신과 명수의 사이는 그냥 아무 사이가 아닌 걸로 치부할 수 있었겠지만 명수는 달랐다.
그래도 좋아하는 감정까지는 아니여도 조금은 특별히 생각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 ...... "
" ...김명수야. "
결국 저녁시간.
명수의 반대편에 앉아 핫바를 뜯어먹던 성열이 먼저 말을 꺼냈다. 계속 젓가락질만 해댈 뿐 아무런 대답이 없다.
" 김명수야 ~ "
" ...야,이성열. "
갑자기 젓가락을 거세게 내려놓자 성열이 움찔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 내가 생각해봤는데 진짜 존나 자존심 상한다. 존나 화나고 존나 무안하고 존나 짜증나."
명수가 진짜 화가 난건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어떻게 할지 모르고 자꾸만 머뭇머뭇거린다.
게다가 욕까지 섞어대며 말하는 걸 보니 성열은 그제서야 아,곧 맞겠구나하는 생각은 슬쩍 몸을 움츠렸다.
" 저기...아까 내가 한 말은... "
" 나 혼자만 착각했던거야 !? "
" 뭐,뭐를 ? "
" 그러니까 나만 너 좋아하던거냐고 ?! 어 ?! "
" ...... "
" 아오,씨발 !! "
멍청이 김명수가 나를 ? 나를 좋아했다고 ? 아니 좋아하고 있다고 ?
성열이 벙찐 얼굴로 명수를 보다가 갑자기 두근두근거리는 기분에 얼른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다르게 해석한 명수가 얼굴이 터질 듯 울그락 불그락해져서는 땀을 식히려는듯이 베란다 창문을 열어재꼈다.
방충망에 모기들과 날벌레들이 다닥다닥 붙어 자신을 구경하는 것 같은 기분에 방충망을 퍽퍽 주먹으로 쳐댄다.
얼굴에 열이 좀 식은 뒤 다시 거실로 들어온 명수가 따다다다 따지듯이 흥분하며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 난 솔직히 ! 너랑 내가 말은 안 해도 일말의 그런 감정 ! 아이씨, 그러니까 너가 나를 조금이라도 좋아해주는 줄 알았다 !? 근데 뭐야 ! 존나 나만 너 좋아했던 거네 !? 나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했던 거였어 ! 아오,씨발. 그럼 착각이라도 하게 하지 말던가 ! "
" 그게 무슨...! "
" 변명하지마 !!! 이게 다 너가 날 헷갈리게 만들어서그래 !!! 이 바보 멍청아!!!!!"
" 내가 뭘 어쨌는데 !!! "
결국 성열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도 답답하고 미안한데 이렇게 버럭 알 수 없는 말을 해대며 화를 내는 명수를 보자 괜히 울컥울컥하고 눈가도 뜨뜻해지는 것 같다.
" 오히려 니가 더 바보 멍청이야 !!!! 너가 언제 확실하게 나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라도 있어 !? "
" 야 !!! "
" 아직 말 다 안 끝났어 !!! 생각해보니깐 너가 더 헷갈리게 만든거야,날 !!! 한번도 나한테 말한 적도 없으면서 !!!! "
" 넌 말해줘야알아 !?! 니가 눈치 없는 건 알았지만 어떻게 그런 것도 모르냐 !!!!! "
" 그럼 너가 먼저 눈치 채줬으면 됐잖아!!!!!! "
" ...뭐 ? "
" 이씨,난 몰라 !!!!!!! "
성열이 결국 참아왔던 울음을 터트리며 바닥에 철퍽 주저앉았다. 이미 먹던 핫바는 저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명수가 방금 성열이 했던 말을 곰곰히 생각했다. 먼저 눈치주다니 ? 뭐를 ? 한참 생각하던 명수는 문득 눈치가 없었던건 성열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어왔다.
가끔씩 머리를 쓰다듬을때 얼굴이 빨게지던 모습, 예전과 달리 샤워하고 나왔을때 웃통을 훌러덩 벗은채로 나오면 괜히 못본 척 쑥쓰러워하며 고개를 돌리던 모습, 가끔씩
베란다에 몸을 반쯤은 내놓고 자신이 오는 걸 미리 보고 있던 모습... 가쁜 숨이 점차 잠잠해지는게 느껴졌다.
명수가 한숨을 쉬며 성열에게 다가갔다. 너무 자신의 감정에만 치우쳐 성열에게 소리치고 말았다.
" ...미,미안해..."
" 흐어엉 !! 됐어 !! 저리가 !!! "
" 난...난 너도 나를 좋아하고 있을 줄은 몰랐지..."
" 거봐 !! 눈치없는 건 너면서 왜 나한테 성질이야 !!!! 흐어어엉 !!!!!! "
" 아,알았어. 미안미안. 눈치 없는 건 나고 바보 멍청이에 등신새끼도 나야. 얼른 뚝 해. 응 ? "
" 으허어어...? "
갑자기 머리가 홱 잡아당겨졌다. 명수의 몸이 점점 자신에게 기대어오자 서둘러 팔을 뻗어 몸을 받쳤다.
아직 성열이의 입에 있던 핫바찌꺼기들이 느껴졌지만 명수는 크게 신경쓰지않고 좀 더 깊숙히 성열이의 입에 파고들었다.
명수가 번쩍 성열을 들어 안았다. 식탁에 차려진 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성열을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타 다시 키스를 이어가려고 하자 아직 눈물이 서린 눈을 하고 있는 성열이 서둘러 명수의 어깨를 잡았다.
" 흐엉...너 진짜 미워,멍청아.... "
" 알았어,알았어. 일단 하던 거나 마저 하자."
" 흐응...진짜 미워,멍처..."
성열이 두 눈을 꼭 감고 중얼거리듯이 투정하자 명수가 입을 맞춘 상태로 씨익 웃으며 성열의 말랑거리는 볼을 꼬집었다.
*
심란한 기분에 한숨을 폭폭 쉬며 길가에 있는 걷어찰 수 있는 물건들은 죄다 걷어차며 집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불쑥 골목 귀퉁이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와 품안에 쏘옥
안긴다.
" 누구...! "
" 짜아잔 ! "
왠일로 하얀 천상옷을 입고 있다.
성규가 고개를 올려 샐쭉 웃자 우현이 심란한 표정을 애써 숨기고 환히 웃어보였다. 하지만 성규는 묘하게 어두운 우현의 표정을 눈치채고 우현의 손을 꼭 잡았다.
" 왠일이야. 먼저 손도 잡고. 그리고 그 옷도 입었네...?"
" 어때 ? 이뻐 ? "
" 으응...이뻐..."
근데 금방이라도 날아가버릴 것 같아. 안 입었으면 좋겠어.
우현이 뒷 말을 숨기고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다.
" 우현아. 많이 심란해 ? 내가 가서 ? "
우현이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을 했다.
" 응. 사실 미쳐버릴 것 같아. 학교가기도 싫어. 일 분 일 초가 아까워죽겠는데 학교에서 맨날 니 생각만 주구장창하다가 와."
" 학교에선 공부해야지..."
그게 되냐. 머릿속에 너로 온통 차있어서 들어갈 곳이 없는데.
우현의 말에 성규가 소리없이 웃으며 손을 깍지껴 잡았다.
" 우현아. 서운해하지말고 들어. 알겠지 ? "
" ...어."
" 너한테 나라는 존재가 전부는 아니였으면 좋겠어. "
" 그게 무슨 소리야 ? "
잠자리가 휙 날아와 성규의 머리 꼭대기에 가볍게 앉았다. 머리를 한번 흔들어 턴 성규가 다시 말을 이었다.
" 나 말고도 앞으로 우현이 삶에는 더 반짝거리는 인연들이 다가올꺼야. 그럴때마다 반짝거리게 꼭꼭 채워. 난 욕심쟁이아니라서 니 마음을 통째로 갖고 싶지는 않아.
난 너가 나를 알고 좋아해줬다는 것만으로도 무지 기쁘고 행복해. 잊지못할 일이야. 니 마음속에 나는 조그만한 방 한 칸이면 돼.
나머지는 모두 비워뒀다가 소중한 것들로 하나씩 채웠으면 좋겠어. 그 대신... "
" 그 대신 ? "
" 내가 너를 평생 잊지않을께. 내 마음은 온통 너니깐 걱정하지마. 앞으로 쭈욱 살면서 이쁘고 반짝거리는 것들로 가득 채워.그래줄 수 있지 ? "
" ......"
" 꼭 그래줄 수 있지 ? "
" ...진짜 나 잊어버리면 안돼. "
" 걱정마."
어떻게 너를 잊겠어.
" 너무 좋다."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보며 성규가 말했다.사실 우현이 완전히 자신을 잊어버리는 건 원하지않는다.
하지만 우현의 넓은 마음속에 온통 '김성규'들로 가득 차있게 하고 싶진 않은 성규는 이 말을 하기 위해 하루 종일 책상앞에 앉아 창문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고,정리하고 또 정리했다.
" 성규야."
" 으응 ? "
"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
" 그래. 나야 좋지. "
우현이 활짝 웃자 그제서야 마음이 놓인다. 집으로 가는 걸음을 돌려 다시 시내로 향하기 시작했다. 항상 가던 체인점으로 가는 길.
횡단보도앞에 서서 처음 만났던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드는 도중 옆에서 탱탱볼을 튀기고 있던 꼬마아이가 튕겨져나간 탱탱볼을 주우려 차가 쌩쌩다니는 도로로 쪼르르
달려가기 시작했다.
" 어머 !!! 영운아 !!! "
유모차를 잡고 있는 아이의 엄마가 뒤늦게 손을 뻗어보지만 이미 아이의 몸이 도로로 나가있었다. 커다란 택배운반차가 조그만한 아이를 향해 빠르게 다가왔고 우현이 잽싸게
달려가 아이를 잡아채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탱탱볼을 손에 쥐고 있었고 아이의 엄마는 우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 해댔다.
" 나 좀 멋있었지 ? "
우현이 성규에게 슬쩍 귓속말로 속삭이자 성규가 살풋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려보였다.
명부의 흐름이 갑자기 꼬이기 시작했다.
*
" ...자고있네. "
너무 늦었나. 아니면 너무 피곤한 나머지 일찍 잠이 든건가.
호원이 조심스럽게 창문을 넘어 몸을 나타내며 침대에 누워있는 동우에게 다가갔다. 아직 10시밖에 안 됐는데...
순간 문 밖에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서둘러 몸을 숨겼다.
" 동우야 ! 빨래통..."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동우의 아주머니가 동우가 깨지않게 조심히 다가가 방 구석에 놓인 빨랫통을 들고 다시 조용히 방을 나갔다.
" 휴우... "
호원이 숨을 내쉬며 침대에 살짝 걸터앉아 동우의 얼굴을 몇 번 쓰다듬었다. 자는 모습마저 사랑스럽다. 토나오겠지만 사실이다. 어디 하나 미운 구석이 없다.
이리저리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동우가 감기에 걸릴까싶어 조심스럽게 이불을 정리한 호원이 동우의 책상으로 향했다. 지우개 가루가 그냥 흩뿌려져있고 연필은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쓰레기 통에 있어야할 쓰레기들이 책상위에 너저분하게 놓여있었다.
" 정리 좀 하고 살지... "
두 팔을 걷어부친 호원이 책상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연필들은 가지런하게 연필꽂이에 넣어놓고 쓰레기와 지우개가루는 쓰레기통에 공책과 만화책은 책장에 탁탁탁 꽂아넣었다. 이제야 봐줄만하네.
호원이 문득 책장 구석에 꽂혀있는 앨범집을 꺼내들었다. 자주 꺼냈다가 넣은 모양인지 표지 가죽이 많이 헤져있었다.
" 오... "
온통 동우의 사진들로 가득하다. 책상에 앉은 호원이 본격적으로 동우의 앨범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안 웃는 곳이 없다. 중학교때 사진들도 들어있다.
마지막에 가까워지자 꽤 최근에 찍은 듯한 사진이 보였다. 코와 볼이 빨게져서 방울이 달린 모자를 쓰고 눈사람을 들고 있는 사진.
" ...귀여운 짜식."
호원이 웃으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지막 사진은 자신이 챙겨야겠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사진을 떼어냈다.
*
오늘도 어김없이 해가 떴다.
이제 D-6에서 D-5가 됐다. 하지만 성규는 내색하지않고 익숙하게 창문을 연 다음 에어컨을 끄고 시간을 확인하며 대자로 뻗어자는 우현에게 다가갔다.
" 우현아,학교... "
" 흐으음... "
우현을 깨우려던 성규가 잠시 멈칫했다. 방금...
" 벌써 아침이네...으으으으...가기싫다...너랑 계속 있고 싶은데..."
" ......"
" 표정이 왜 그래 ? 무슨 일 있어 ? "
" 아냐아냐. "
방금 우현에게서 어두운 기운이 확 뿜어져나왔었는데 잘 못 봤나 ? 우현이 기지개를 켜며 화장실로 향했고 잘 못 봤겠지싶은 성규가 서둘러 이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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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kb넘으면서 완결이 날 것 같아요.
마지막에 가까워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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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몽은 매일 8~10시사이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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