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 없는 내가, 그 형과 약속을 했다. 봄이 찾아오는 사 월이 되면 네가 좋아하는 커피, 내가 좋아하는 생과일 주스 하나 들고 벚꽃나무 아래서 웃어 보자고. 여름이 찾아오는 칠 월이 되면 너와 내가 좋아하는 고기 먹으러 바다 가자고. 가을이 찾아오는 구 월이 되면 너와 내가 장만한 코트 입고 기차 타서 떠나자고. 겨울이 찾아오는 십 이월이 되면 눈 펑펑 내리는 요코하마로 가서 눈사람 하나 만들고 다 만들면 네가 좋아하는 매운 라멘, 내가 좋아하는 따끈한 우동 한 그릇씩 먹자고. 그렇게 하고 나서 다시 봄이 되면 완전한 우리 사이가 될 수 있던 사계절에 감사를 드리자고 그 형과 약속을 했다. "사진 진짜 많은데? 다 옮기려면 이틀 정도는 족히 날밤 까겠어." "괜찮아요. 다 옮겨 주세요." 형보다 어리다면 또 얼마나 어리다고 난 형 앞에서 투정을 자주 부렸다. 배고프다고, 심심하다고, 다리 아프다고, 힘들다고, 목소리가 더이상 안 나온다고. 형은 형이 챙겨 뒀던 사탕을 내 입 안에 넣어 주면서 촬영 도중에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려 줬고, 내 다리를 그 작은 두 손으로 주물러 주면서 어깨도 주물러 주고, 나의 눈물에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눈은 웃고 있었다. "이거 되게 잘 찍었네. 여기 어디야?" "대한민국이에요." "대한민국에 이런 곳이 있어? 어디?" 아무도 확신을 가르쳐 주지 않았던 때, 형은 내 등짝을 때려가며 설득했다. 장담 하나 하는데, 지금부터 나와 같이 가 주면 다시는 이런 혼란을 안 느끼게 해 주겠다고. 철 없던 날들의 고집은 그렇게 꺾였다. 형은 하루가 끝이 날 적에 나에게 말을 걸었다. 힘든 일은 없었는지, 섭섭한 일은 없었는지. 나중에는 형이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형에게 토로했다. 이 부분이, 이 사람이, 이 상황이... 형은 잠이 오는 바람에 끝까지 들어 주지도 못 했지만 형의 긴 속눈썹을 보면서 나는 연신 떠들었다. 그렇게 욕심 많던 사람이 나를 위해서 포기하는 게 더 많아지던 날들의 연속. 그런 새벽도 있었다. "인물 피사체는 다 같은 사람이야?" "네."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형과 영화도 보고, 밥도 같이 먹으러 다니면서 훗날이 되어서는 내가 운전해서 지방으로 간 다음 사진도 많이 찍고 그랬다. 형 특유의 성향을 쉽사리 바꿀 수는 없었지만 짐을 넣을 가방에 무언가를 차곡차곡 넣고 다 필요한 거라며 능청 맞게 웃어대는 모습이 엄마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스케쥴이 있어도, 몇 시간 잠을 못 자도 형과 함께 떠났다. 고속도로의 미비한 바람도, 그 곳에서만 특별하게 먹을 수 있었던 음식도, 나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형이라도 먼저 재우고자 해서 서울로 다시 출발하던 중 형에게 자라고 당부했다. 분명 피곤할 거라고. 형은 '어떻게 운전하는 사람 혼자 놔두고 그럴 수 있냐'더니 어느새 잠꼬대까지 늘어 놓기도 했다. '빈아... 으음... 미안해... 내일은 형이 더 잘해 줄게... 미안해...' 형 앞에서는 한 번도 제대로 울어본 적이 없지만 애석할 정도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자신의 헌신에 내가 이렇게나 잘 컸는데, 나는 형을 아래서 봐야 할 만큼 잘 자랐는데. 충분히 받았는데. 형은 아직까지 미안하다며 자신만의 자책감에 사로 잡혀있었다. 내가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그 감정에 형이 나에게 예전처럼 해 주었던 방법으로 같이 울었지만, 같이 울 수가 없었다. 단순히 이렇게 해도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이 감정에 도저히 운전을 이어할 수가 없어서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밖으로 나와 혼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와중에도 심장은 눈치도 없이 빠르게 뛰면서 나에게 '첫사랑'을 알려 주었다. 그런 새벽도 있었다. "이 사진이랑, 이 사진은 인화하지 말아 주세요." "왜? 잘 못 나와서?" '이건 못 나왔다. 지우자.' "...아니요. 그냥 카메라 안에 담겨 있는... 그대로 두고 싶어서요." 형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나 혼자 속 시원히 털어 놓아도 형과 닿을 수 없는 거리가 벌써 멀게 느껴졌고 그게 무서웠고, 싫었고, 또 아프기만 했다. 그저 형이 웃는 것만 보고 싶었고 그래서 형을 웃게 해 주려고 노력했는데, 그렇게 지내 왔던 모든 날들을 나의 애달픈 '짝사랑' 하나로 망칠 수가 없었다. 내가 형을 만나면서 얼마나 행복해 졌는데, 이미 행복해 졌는데도 그걸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날까지 얼마나 힘들어 했는데. 그것까지 도와 준 형에게 차마 어떻게... "이런 거까지 다 보셨을 텐데 사진 주시면서 별 말씀은 안 하셨어?" "응, 그냥 다음에 또 오라고 하던데요." 아직도 형을 잊지 못 하는 내가 꿈을 꿨다. 형과 사 월에, 칠 월에, 구 월에, 십 이월에 떠나는 꿈. 떠날 때마다 비가 왔다. 형은 나에게 우산을 씌워 주면서 비를 부르고 다녀서 미안하다고 머쓱하게 웃었다. 나는 문득 걸음을 멈췄고 형은 얼른 오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더이상 그 우산 안으로 들어가서 형과 같이 걸을 수 없었다. 무엇이 문제인 지, 뭐가 그렇게 억울했던 것인지. 나는 그대로 돌아서서 도망쳤다. 형이 나에게 소리 치고 나를 불러댔다. 금방이라도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학연이도 하늘에서 널 보고 싶어할 거야." 형이 나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 '땅이 되어 줄게'라고 했었다. 지칠 때마다 천장을 바라보고 눈물을 참던 나에게 하던 말이었다. 결국 참을 수 없는 눈물에 땅을 보고 한숨을 쉬면 그만큼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날 떠올리게 될 거라고, 그렇게 얘기했었다. 납득이 되지 않았던 말이었다. 형은 '땅'이 아니라 '하늘'이 되었기 때문이다. 책임감 없는 내가, 그 형과 약속을 했다. 아무리 시련과 고난이 와도 형 얼굴 한 번 생각하고 참아내자고, 시간이 빨리 흘러가도 형이 해 줬던 말 다시 새기고 형을 잊지는 말라고, 모든 것에 익숙해 져도 형의 소중함은 네 품 안에 늘 간직해 달라고. 나는 처음부터 책임감이 없었고 지금도 형처럼 넓은 그릇을 가지지는 못 했다. 그렇게 부족한 내가, 그 형과 약속을 했다.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안 지킨 거 아니고 못 지킨 거니까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 주라. 그 추억은 내가 다 잊지 않았으니까, 앞으로도 잊혀질 일 없도록 할 테니까 형만 와 주면 돼. 만약 많이 더딜 거 같다면 내가 갈게. 형의 모든 날, 모든 순간 함께 하고 싶었어. "형의 홍빈이가 아니라, 형만의 이홍빈으로."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어둠에서 빛이 보이고, 그 빛은 너에게 갈 수 있는 무한한 존재일 지니. 나의 무지개로 너를 더 빛나게 할 지니, 이것을 '사랑'이라고 불러야겠다. "사랑해, 학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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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주신 'ㄱㅅㅌ' 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