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수."
복도. 중앙 계단 앞 두 남자가 마주쳤다.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듯한 시선과 분노에 찬 시선이 얽혔다.
이윽고 적선하듯 흘깃 시선을 던지던 경수 쪽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야!!!"
백현이 어금니를 깨물고 악쓰듯 내질렀다. 제 분에 못 이겨 씩씩댔다.
뒤돌아 멀어지던 경수는 그저 돌아볼 뿐이다.
"왜."
"너, 말하지 마. 보지도 마. 그냥 걔한테 관심 꺼."
"왜?
니 꺼야?"
장난해 지금? 낮고 거친 목소리가 백현의 이 사이로 새어나왔다.
두 소년들 주위로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야야, 쟤네 또 붙었어. 뭐 때문에? 5반 그 여자애. 걔 때문에. 아~...
시끄러웠다. 인파가 몰릴수록 경수는 가라앉았다. 큰 눈을 내리깔고는 들릴 듯 말 듯하게 내뱉었다.
미친놈.
"걔 이제 너네 아가씨 아냐. 정신 좀 차려."
"...닥치라고."
"어줍잖은 소유권 같은 거, 주장하지 마.
걘 누구의 것도 아냐. 지금 옆에 있다는 이유로 그러는 거, 무슨 심리야?"
어린애 같아, 속을 확 긁는 말을 내뱉었다. 다 들리라고 한 소리였다. 지나쳐 멀어져 갔다. 백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내어줄 수 없다. 너에게는 줄 수 없어. 아니, 그 누구에게도 절대 줄 수 없다. 주지 않을 테니까.
-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또 싸웠다는 말을 들었다. 도경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얌전히 앉아 있었다.
대충 연습장을 조금 찢어 갈겨 쓰고 접었다.
"이거, 쟤가 전해주래."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도경수가 슬쩍 이쪽을 쳐다봤다. 왠일이냐는 듯 크게 뜨인 눈을 차마 마주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쪽지를 건네 준 것이 돌아돌아 백현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상상할 수 없었다.
쪽지를 열어본 도경수가 피식 웃었다.
'백현이 너무 자극하지 마.'
느릿한 손길로 쪽지를 펴본 도경수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투박한 손으로 쪽지에 뭐라 끄적이고 다시 건넨다.
'유치하잖아. 너도 너무 받아주지 마.
변백현, 덜 컸어.'
쪽지를 전달해 준 여자아이가 이제 그만하라는 듯 짜증 섞인 시선과 함께 쪽지를 툭 던진다.
알았어, 이제 그만할게. 여자아이에게 한숨 섞인 사과를 건넸다.
그래, 걔랑 나, 덜 컸어 경수야. 우리 시간이 흐르지 않아. 멈췄어. 어떡하지.
-
와, 쟤네 봐. 또 스파크 튀긴다. 아까도 복도에서 싸웠다며.
또 그 여자애 때문에? 걔가 진짜 예쁘기는 하잖아.
셋이 어릴 때부터 친구랬어. 진짜?.....
아이들이 수근대는 소리가 백현과 경수의 귀에 들려왔다.
전혀 상관 없다는 듯이 눈을 내리깔고 복도 벽에 핸드폰 게임에 집중하는 경수가 백현은 미웠다.
"넌 왜 기다리는데?"
입을 먼저 연 것은 경수였다. 의외였다. 백현에게 놀란 기색이 비추자 경수가 웃기다는 듯 응수했다.
부드럽게 연한 컬이 들어간 검은 머리가 바람결에 흔들렸다.
백현은 아무 말 없이 경수의 검은 머리칼을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몰라서 물어? 같이 갈 거야.
우리, 집에."
'우리 집'을 강조한 백현의 말에 큭, 하고 경수가 낮게 웃었다. 비웃는 듯한 웃음에 백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윽고 경수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너, 나랑 같이 가고 싶어?"
"미쳤어?"
백현이 으르렁댔다. 당연히 너는 따로 가야지. 걘 나랑 하교할 거니까, 라고 말했다.
입 밖으로 뱉는 와중에도 자신이 유치한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뒷문이 열리자 두 소년 모두 그 쪽을 쳐다봤다. 경수가 핸드폰을 코트 안쪽에 집어넣었다.
"...뭐해, 둘 다."
경수와 백현의 시선이 또 다시 공중에서 얽혔다.
-
하굣길에 차가운 공기가 그득했다. 내가 불편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현은 연신 투덜대기만 했다.
내가 왜 저 새끼랑 같이 가야 해, 우리 집 가는데. 지금이라도 따로 가라 그래, 나 쟤 싫어. 투덜 투덜.
내 속도에 맞춰 걷던 경수가 이따금씩 농담을 건네며 분위기를 풀어보려 노력한다.
또렷하게 보이는 경수에 노력에 마냥 표정을 굳히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어색하게나마 웃었다.
"떡볶이 먹고 갈래?"
경수가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안부를 묻듯 말을 꺼냈다. 백현이 무슨 개소리냐며 날뛸 것 같아 백현이의 손을 꼭 붙들었다.
야, 안 된다고 해. 빨리!! 백현이 귓가에 속삭였다. 귓속말의 의미는 없네. 경수에게까지 들릴 텐데.
"어제 나랑 떡볶이 먹었던 거 때문에 늦은 거, 뭐라 했다며. 그럼 너도 같이 가면 되잖아. 아냐?"
"..."
"그래, 가자."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무언가 울컥 하고 올라와 욱하듯 그러자고 내뱉었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해진 백현의 손을 잡고 경수가 가자는 대로 향했다.
-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볶이가 나왔다. 그 누구도 포크를 들지 않았다.
백현은 부루퉁한 얼굴로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중간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안절부절했다.
원흉인 경수는 예의 그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내 쪽을 응시했다.
으아, 어떡하지.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양 쪽에 눈치가 보여 어느 것도 할 수 없었다.
옆에 있던 백현이 갑작스레 굳었다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백현 쪽을 흘깃 쳐다보니 의외로 편안한 표정.
"...예전에."
"응?"
"아주 어릴 때. 초등학생 때."
"..응."
"셋이서, 이렇게.
먹은 적 있었잖아."
경수가 포크를 쥐고 떡을 조심스레 찍었다.
도톰한 입술로 들어가는 떡을 뭐에 홀린 듯 멍하게 응시했다.
아, 그랬었지. 그런 적이 있었다.
예전에, 우리 셋이서 이렇게. 먹은 적이 있는 것도 같다.
아니, 먹은 적이 있다.
그 때도 봄. 봄이었다.
To be Continued
오타 지적 언제든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