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iss on you
세상 모든 불행을 다 짊어진듯한 기분이었다.
-김성규입니다.
나는 애교도 부릴줄 몰랐고 사근사근하게 말할줄도 몰랐다. 그런 부드러운것들을 배우기엔 내 어린시절은 너무나도 다사다난했다. 이제는 볼 수 없어 이상한 아쉬움 마저 느껴지는 덩치들에게 붙잡혀 입에 담지 못할 치욕스러울 일들을 당할뻔한것도 수십, 아니 수백번이 됬고-다행이면 다행이랄게 모두 미수로 끝났다-그들에게 쫓겨 죽을뻔한 경험도 수천번이 넘었다. 세상은 내가 채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미 나를 죽이지못해 안달나 버린것 같았다. 결국 나 대신 '그 여자'-끝까지 내 처지가 왜 이래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가 이 땅에서 추방당했지만 그 집에 들어가게 되었을때 나는 그 여자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무슨 생각인거야 대체!
-왜요. 꼭 무슨 생각이어야 해요? 밖에서 하던거 집에 들여서 하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잘못인가? 다 알고 있었으면서! 몰랐다는척! 사실 저 애하고 그 여자 둘다 쥐도새도 모르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 아니에요?
-최서현! 말가려서 못해?
어려서부터 내가 평범하지 않다는건 알았지만 그건 그냥 '평범하지 않다'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침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그 장면들이 사실은 모두 나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그 여자'는 결국 내 생각대로 노는 여자였다. 단 한점의 실망도 주지 않고 딱 예상대로 였다. 물론 그 집에 들어가게 된것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 사실 누가 상상이나 하겠냐만은. 더군다나 그 집의 사모님이 어렸을적 날 아주. 힘들게한 덩치들의 고용주라는 것도 꽤 충격이었다. 그리고 나를 본격적으로 괴롭히려 남편이 사랑한 그 증오스러운 여자의 아이를 '입양' 한다는것도 꽤 끔찍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런것들은 '그'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머니?
-아들. 깬거니? 미안하다. 우리가 너무 시끄러웠어. 별일 아니야. 들어가서 더 자.
-별일 아니긴요. 쟤는 어떻게 설명하시려고요.
뭐? 아니. 우현아. 별거 아니야. 나는 그때 처음으로 그 여자가 말했던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걱정, 애정, 아들에게 해가 될 나에 대한 두려움. 남자. 그러니까 지금은 내 아버지인 사람과 싸울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안절부절 힘주면 으스러질까 놓으면 사라져버릴까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 여자에게 보이지 않았던 어머니란 사람의 모습은 나에게 조금은 거부감을 주어 나도 모르게 굳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또한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싫은듯 인상을 찌푸렸다.
-하. 별일 아니긴. 니가 대답해봐. 너 뭐야?
나?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분명 그때 당황했었다. 내 또래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건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고 무엇보다 그는 목소리가 참 좋았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당황한 나는 더 굳어져서 표정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떨려서 였다. 무엇에? 라고 묻는다면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 그건 그에게 있었다. 그의 목소리였던지 잠이 덜깨어 풀린 눈이었는지 아님 풀어진 단추 사이 이상하게 자꾸 눈에 띄였던 점들에 있었는지 어쨌든 그 때문에 굳어버렸다. 아마 그땐 그도 내가 굳었다는것을 몰랐을것이다.가끔은 나조차도 알아보지 못할만큼 나는 표정이 없으니까.
-김성규
떨렸지만 티는 나지 않았다. 조용히 얘기하자 그의 졸린 눈은 금새 잠이 달아나 있었다. 눈꼬리는 약간 쳐져 있지만 묘하게 날카로운 느낌을 준다. 어머니보다는 아버지를 닮은얼굴이다. 서로 눈만 꿈벅이다 내가 먼저 눈을 피했다. 기분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릴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은 초조함으로 가득찼다. 무엇을 두려워 했을까. 그렇게 사랑해 마지않는 아들에게 자신의 치부를 들킬까봐서? 증오스러운 나와 아들이 정말 친형제처럼 우애가 생길까봐서?
-넌 뭔데?
어디서 나온 용기였을까. 순수하게 궁금했기도 하고 나도 말했으니 너도 밝혀야한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조금은 기대도 됬다. 그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해봐. 니 이름을 가르쳐줘. 너는 텔레비전 속 그 재수없는 부자집 아들들과는 다르다는걸 증명해봐.
나의 물음에 어머니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감히. 너따위가 감히 누구한테 말을 걸어. 언제 드라마처럼 대사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였다. 고상하고 아름다운 여인은 혹시라도 제 아들이 대꾸 할까 황급히 입을 열었지만
-남우현
아들은 뭐 어떠냐는듯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더 새파랗게 질려 결국에는 몸이 달달 떨리기 까지 했다. 그는 무심히 새어나오는 하품을 손으로 막으며 위층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달칵.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옴과 함께 기다렸다는듯 어머니의 떨리는 몸은 멈췄고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며 눈에 힘을 주었다. 그 눈속에는 많은것이 담겨있었다. 아들을 누군가에게 빼앗길것 같은 두려움, 나를 향한 끝이 보이지 않는 증오. 대체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증오스러운지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한참을 노려보다 방문을 열고 들어간 어머니를 뒤로한채 나는 어디선가 나타난 가정부의 손에 이끌려 윗층으로 향했고 그의 방과는 조금 떨어진 작은방-물론 이 집의 다른 방에 비해서-에 들어갔다. 내 방. 내 집. 나의 부모님이 생겼지만 그것은 그 여자와 쫓기는 삶을 살았을때와 다르지 않았다. 똑같이 긴장되고 무료하며 온갖 불행을 달고 다니는 나였다. 하지만 그 전과는 다른 뭔가가. 변화가 있었다.
남우현 남우현 남우현 우현 우현.
조용히 그의 이름을 입안에 굴렸다. 꼭 그의 모습처럼 동글동글하면서도 어딘지 날이 서있는듯한 이름이다. 형제가 생겼다. 생각지도 못했던 형인지 동생인지가 생긴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비웃음이 아닌 미소가 입가에 살짝 맴돌았다. 조금 들떴던게 사실이다.
+글 처음 쓰는 존못 블루데이 입니다. 우울한 글이지만 재밌게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