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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We Want

Written by.흑지

 

 

 

*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졌다. 아직 무엇이 어떻게 결정 난 것도 아닌데, 세훈과 종인이 경영수업을 끝마치고 나면 기다리고 있는 기자들. 사회적 위치라는 게 그랬다. 아직 열아홉밖에 되지 않았지만 대중들은 이들을 제강기업의 후계자, 혹은 몇 년 뒤의 사장님으로 생각했다. 앞으로의 계획들과 학업에 대한 이야기 세훈은 딱히 인터뷰할 게 있냐고 하며 그냥 잘하면 되지. 라고 답했고 종인은 이미 여러 번 카메라를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를 피했다. 무서웠다. 애초부터 후계자 자리를 갖겠다고 아저씨를 따라온 게 아니었다. 그냥 나를 키워줄, 내가 있을 안락한 가정이 필요했던 것뿐이다. 물론 예상과는 다르게 그 집의 아들인 세훈과 눈이 맞아버렸지만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건 종인이 원하는 것은 권력도 사회적 지위도 아니었다. 그냥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평범하게

 

 

 

“세훈아, 나 지금이라도 못한다고 말씀 드릴까?”

“무슨 소리야. 수업 잘 받아놓고.”

“너랑 수업 받는 건 좋아. 근데 부담돼.”

“원래 처음엔 다 그래.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대하고 괴롭히지.”

“처음이여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욕심이 없어서 그런 걸까?”

“전자든 후자든, 넌 나랑 계속 같이 있어야 해.”

“…그래.”

 

 

 

선택이었다. 불가피한 선택. 오세훈을 선택하기 위한 감행. 하지만 뜻처럼 쉽지 않았다. 경영수업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내가 잘 못 따라가던 것도 아니었다. 이과였지만 경영은 이과 수업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정해진 공식이 딱딱 들어맞았다. 인플레이션부터 해서. 수요와 공급, 회사에서 내놓을 대처방안까지 작성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점점 이 자리가 부담스러워지고 거북해지려 했다. 같이 가는 것은 좋다. 하지만 우리가 어른이 된다면? 후계자 자리가 확정이 난다면? …같이 있는 게 힘들어지겠지.

차에서부터 말하고 싶었던 생각들을 속으로 꼭꼭 쟁여놓고 있다가 집에 들어가서 외투를 벗으며 덤덤하게 말했다.

 

 

 

“너 어렸을 때부터 후계자 자리 계속 하고 싶어 했잖아.”

“응, 그렇지. 그 땐 당연히 되는 거였으니까. 그렇게 욕심 안 났지.”

“지금은 욕심나?”

“아니, 한 1~2년 전까지만 해도 욕심났는데. 뭐 지금은 어떻게 되던.”

“네가 해. 세훈아. 원래 네 자리였잖아.”

“…네가 그러라면 그럴게. 요새 힘들었어?”

 

 

 

지친 기색이 역력한 종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세훈이 말했다. 뺨을 쓰다듬는 손길이 다정했다. 요 근래 들어, 학교 건, 회사 건. 너무 사람들이 들러붙긴 했지. 일반인들도 교문 앞에서 가끔 질문을 툭툭 던지기 일쑤였으니까. 세훈에게 그것은 일상이었고 종인에게는 감당키 어려운 일상이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적응하지 못한 건 명백하게도 종인 자신의 책임이었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터였다. 나는 뭐든 네게 줄게. 내가 받았던 네 마음만으로도 충분하니.

 

 

 

“그리고 후계자 자리 나는 애초부터 자격조차 없었어.”

“…에이, 무슨 그런 소릴 해.”

“이제 말해도 되겠지….”

“무슨 말하려고 그렇게 뜸 들여 말해.”

“넌 아버지 피를 이어받았고 나는 네 아버지, 아저씨랑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야.”

“…뭐? 남이라고? 아들이라고 데리고 왔잖아.”

“그냥 내가 고아 되는 게 불쌍해서 데려온 거야. 자기 친구 아들이 보호소 가는 게 불쌍해서.”

“…진짜야? 이걸 지금 말해주는 이유가 뭔데? 답답해서 욕 나올 것 같아.”

“그냥 네 아버지의 선심쯤이라고 해둘게.”

 

 

 

이제 한 번만 더 말할게. 우리가 결국은 엮일 일 없는 남이었다는 소리야. 그래도 이렇게 만나서 서로 마음을 나눴잖아. 네 아버지께 참 감사드리고 또 죄송해. 네가 먼저 좋아했던, 내가 먼저 좋아했든 순서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마음 품었다는 게 문제겠지. 이제 넌 내가 피 섞인 형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마음껏 좋아해도 되고 또 마음대로 나를 추궁해도 돼. 그거 각오하고 말한 거니까. 다만 아쉬운 건 우리가 왜 남자 대 남자로 만났을까 하는 거야. 이렇게 김종인이 네 아버지 총애 받고 예쁨 받고 기회란 기회 다 얻으면서 자랐는데. 정작 널 정식으로 좋아하게 되었다는 말 한마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잖아.

 

 

 

“그래서 진짜 우리가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었다고?”“…응, 이제 말해서 미안해. 말하려고 했어. 근데 언제 말해야 할지 몰랐지.”

“그럼, 내가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었네.”

“죄책감?”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우리가 나눴던 모든 것들은 다분히 뜨거웠다. 작은 입맞춤도 처음 손을 잡았을 때의 떨림도 피를 나눈 형제가 느끼기에는 위험했던 감정들. 그래, 차라리 형제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그러면 조금 더 욕심내도 괜찮은 게 아닐까? 세훈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기에는 우리가 같은 성별이기 때문에 또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결국 우리 둘을 위하는 최선의 방법은.

 

 

 

“부담되면 후계자 포기해도 좋아.”

“…응. 고마워.”

“수업은 같이 듣고 싶은데.”

“할 수 있어. 수업 같이 듣자.”

 

 

 

결국은 겉으로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세훈은 종인에게 품은 마음을 정당화시켰다. 내가 이전에 여자를 좋아했건, 남자를 좋아했건 잘 모르지만 그래도 종인을 좋아하는 것은 정당한 거였다. 생각해왔던 것처럼 근친도 아니고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직 인정받진 못하지만 그래도 김종인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떳떳함이 생겼다.

 

 

 

“…말하고 싶었어. 크리스한테도 루한한테도 우릴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건 안 돼. 크리스가 저번에 네 생일파티에서 했던 일 생각 안 나?”

“…계속 오해하면 너나나나 이상한 사람 되잖아.”

“그래도 좋아. 우리가 좋다는데 지들이 뭐 어쩔 거야.”

 

 

 

아무리 오세훈이 변했어도 틀은 그대로구나. 맞아. 우리가 좋다는데 남들 신경 쓸 것 없지. 연연하지 말자. 세훈의 마인드는 종인에게도 가끔씩은 좋은 영향을 끼쳤다. 생각이 많고 조심성 있는 종인에게 해답을 던져주고는 했다. 그런 세훈은 결단력에 종인은 긍정적으로 수긍했다.

 

도어 록 열리는 소리가 났다.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세훈과 종인은 일제히 현관 쪽을 바라봤다. 요새는 아버지의 퇴근이 잦은 편이었다. 매일 일에 붙잡혀 사시더니 세훈과 종인의 후계자수업이 있은 뒤로 사장이라는 직책에 대한 부담감이 줄었는지, 아니면 그 일들이 모두 후계자의 몫인지. 아버지는 이제 골머리 앓으며 일하지 않으셨다. 이윽고 문이 열렸고 역시나 예상대로 아버지가 말했다. 종인은 현관문 앞까지 가서 아버지에게 인사했다. 세훈은 소파에서 일어나 그 자리에서 인사했고 아버지는 인자하게 미소지었다.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그래, 종인아.”

 

 

 

뭘 말하려는 거야. 세훈은 불안한 마음에 종인을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살짝 위로 치켜뜬 눈과 종인의 눈이 잠깐 닿았다. 떨어졌다. 혹시 설마 아니겠지 했건만, 종인은 진실을 고했다.

 

 

 

“세훈이에게 말했습니다. 저희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라는 걸.”

“…아니, 그걸 말했다고? 그런데 네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더불어 후계자 자리는 욕심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으니까요.”

“…종인아, 그래도 나는 네게 많이 베풀었다고 생각했다.”

“압니다. 알아요. 아버지, 아저씨 감사해요.”

 

 

 

꼭 마지막인 것처럼 눈물을 보이는 종인이었다. 이제 우리는 떳떳해질 수 있다.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세훈이 있을 때는 아저씨라고 한 번도 부르지 않더니.”

“이제 세훈이도 알았고 후계자는 원래대로 세훈이가 하면 되요.”

“…그럼 넌 어떻게 하면 좋겠니?”

“저를 공식적으로 후계자 자리에서 내려주세요.”

 

 

 

아버지는 깊고 느리게 묵직한 한숨을 쉬었다. 그래, 알겠다. 더 이상 종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미 많이 왔고 또 진실을 말한 종인에게 더 바라서도 안 될 것이었다. 하고 싶은 공부가 있으면 이 아저씨가 도와줄 테니, 다 말 해라. 호칭도 어느새 아버지에서 아저씨로 정리되어있었다. 종인은 웃으며 말했다. 사실 공부에는 흥미 없어요. 할만은 하지만. 언제까지고 제가 붙잡혀 있으면 제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뭐가 하고 싶은데?”

“어릴 적에 발레를 했었거든요. 물론 지금은 몸이 다 굳어서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혀 의외의 것을 말하는 구나. 내가 말했던 공부는 말 그대로 펜 잡고 하는 공부였는데.”

“무용, 전공하고 싶습니다.”

 

 

 

제 주장을 말하는 종인에게서는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졌다. 종인은 제가 원하는 것을 잘 말하지 못했다. 나쁘게 말하면 소심했고 좋은 쪽으로 말하면 깊게 생각해보고 말하는 쪽이었다. 어쩐지 지금의 종인은 세훈과 많이 닮아있었다. 원하는 것을 꼭 해야겠다는 분명한 어조.

 

 

 

“야, 김종인 그런 건 나한테 말 안 했잖아.”

 

 

 

두 사람의 대화에 불쑥 세훈이 끼어들었다. 서운했다. 뭘 하고 싶은지 얘기 해 준 적 없으면서 아버지에게만 털어놓다니. 그럼 몰래 학원이라도 다니게 도와줬을 텐데.

 

 

 

“미안, 미안. 너한테 말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잖아.”

“그래도 말 안 하는 것보단 낫지.”

“두 사람, 많이 친해졌나보구나.”

“아, 네. 같이 지내다보니.”

 

 

 

후계자 수업도 같이 받는다고 해서 기특하고 좋았는데. 이제는 종인이 후계자 자리를 물려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세훈에게 종인이 오씨 가문의 피가 아니라고 밝혔단다. 진실을 고한 순간 갑자기 모든 것들은 뒤바뀌었다. 형제가 아닌 게 되었고 종인은 세훈의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라 양아버지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종인은 결과적으로 세훈과 같이 후계자수업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럼, 내일부터는 세훈이 혼자 후계자 수업을 받아라.”

“같이 받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이제 종인이는 후계자에 관심이 없다는데. 뭣 하러 수업을 받니.”

“…그래도 혼자는 싫습니다.”

“대체 종인이와 굳이 같이 받아야하는 이유가 뭔데?”

“혼자 받는 수업이 싫으니까요.”

“그럼 다른 기업의 친구와 그룹으로 받는 것도 나쁘지 않고.”

“…그게 아니라. 김종인이랑 같이 받고 싶다고요.”

 

 

 

억지였다.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어서 부리는 어린 아이 같은 치기. 이렇게 우긴다고 무언가 뒤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김종인이 미웠다. 조금만 버티지. 조금만 있다가 말하지. 왜 지금 말해서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지.

 

 

 

“종인이, 유학보내자.”

“…네? 뭐라고요?”

“한국에서 배우는 발레나 무용은 외국에 비해서 현저하게 수준이 떨어질 테니.”

“말이나 되요? 그건 저한테 말하는 게 아니라, 종인이에게 직접 말하셔야죠.”

“네가 종인이를 형이상으로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알려주는 거야.”

“…하지만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학원이 있고 배울 수 있는데. 왜 굳이.”

“후계자는 후계자대로. 양 아들은 제 마음대로 누릴 걸 다 누리면서 사는 거지.”

 

 

 

종인도 역시 같은 공간에서 다 듣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유학이라니, 말이 되요? 하긴 모든 것은 다 갑작스러웠다. 종인이 이제 와서 밝힌 우리가 피 한 방울 안 섞인 생판 남이었다는 진실과 종인이 하고 싶어 했던 발레, 우리는 숨기는 것 없이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모르는 건 세훈이 더 많았다. 뭔가 억울하고 분했다. 다 말하지. 그냥. 나한테만 다 말하지.

 

 

 

*

 

 

 

백현의 파혼기사가 나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종인의 기사가 떴다. 후계자 자리 포기, 본인의 의사가 담긴 결정, 후계자 자리는 역시 예정된 대로 세훈에게로. 라는 기사였다. 그리고 종인에 대한 기사가 더 적혔다. 거둬주신 것에 감사, 사실은 원래 주인인 세훈에게로 후계자가 돌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제가 정말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을 하기위해 유학예정, 더 이상의 언론의 노출을 원치 않는다. 부담스럽고 과분하다. 까지 해서. 한참 새 학기여서 그런지, 말할 거리가 많아서 그런지 4층에 있는 학생들은 모두 고3인데도 불구하고 소란스럽고 떠들썩했다.

 

 

 

“헐, 진짜? 왜 갑자기?”

“내 생각에는 이건 백퍼센트 들킨 거야. 두 사람 사이.”

“크리스, 어떻게 생각하는데?”

“봐봐, 후계자 수업도 둘이 같이 들었었잖아. 근데 갑자기 김종인이 안한다고 나선 거면 제 아버지한테 들킨 거나 다름없지.”

 

 

 

아, 그렇구나. 크리스의 무리들은 크리스의 말을 듣고 그렇게 수긍했다. 물론 세훈과 종인의 사이를 모르는 다른 학생들은 그냥, 종인의 능력이 부족했거나, 아니면 정말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안 한다고 했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크리스, 방금 했던 말. 사실 아니야.”

어느샌가 복도에 나와있었던 종인이 불쑥 그들의 틈에 껴들었다.

“뭐야. 그거 억울해서 지금 해명하러 온 거야?”

“…아니, 사실 말하고 싶어서. 더 이상 오해하는 일 없었으면 해. 나 곧 유학가니까.”

“…뭔데?”

“나 오세훈이랑 형제 아니야. 더 이상 형제여서 더럽다는 둥, 그런 말 하지 마.”

“그건 크리스가 아니라 내가 말한 건데.”

 

 

 

루한이 말했다. 뭐 잠시만 근데 형제가 아니라고? 근데 왜 같이 살아? 되묻는 루한에게 민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디서 삿대질이야. 화내려고 했지만 금세 종인의 뜻을 눈치챘다.

 

 

 

“민석이랑 비슷하다고?”

“그래, 날 그 집에서 받아준 거야.”

“…아, 오해했네.”

 

 

 

오해는 한 순간에 풀렸다. 멍하게 크리스가 눈만 끔뻑이다가, 얼굴을 막 썼다. 아, 정말? 말도 안 돼! 그동안 무시하고 괴롭혀서 미안해. 크리스가 잔뜩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종인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제 나 가니까. 세훈이랑 잘 지내. …이제 나 없으니까.”

“…김종인 그렇게 덤덤하게 말하면서 왜 울려 그러냐.”

 

 

 

눈물까지 맺혔으면서 끝끝내 울지는 않고 덤덤히 말을 이은 종인이 할 말 끝. 하고 뒤돌아섰다. 민석이, 종인을 끌어안으며 고생했어. 하고 어깨를 토닥였다. 우리는 제대로 된 친구가 되지 못했지만 오해가 풀리고서는 한 발 더 가까워졌다.

 

교실로 들어가자, 찬열이 먼저 종인에게로 다가왔다. 얘기 들었어. 어떻게 된 거야? 왜 가? 물 밀리듯, 빠르게 질문하는 통에 종인이 관자놀이를 짚으며 천천히 물어도 돼. 나 당장 안 가 하고 답했다. 이미 종인의 얼굴은 조금 젖어있었다.

 

 

 

“울었어? 가기 싫어서? 응?”

“…찬열아, 천천히 물어보라니까.”

“따라가고 싶다.”

“비행기 값은 있고?”

“아르바이트하면 되지.”

 

 

 

종인은 자연스럽게 교실을 둘러보다가 세훈을 찾았다. 세훈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종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종인에게로 고정된 채였다. 종인은 작게 한숨 쉬며 저보다 더 달래주어야 할 쪽은 찬열 같아서 찬열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뭐하게? 뭐 배우러 간다며.”

“그냥 춤.”

“우와, 진짜? 너 춤 잘 출 거 같아.”

“잘 추면 잘 추는 거지. 출거 같아는 뭐야?”

“그냥 얼굴이 춤 잘 추게 생겼어.”

 

 

 

아, 박찬열. 진짜. 종인은 결국 고인 눈물을 거둬내고 웃는 쪽을 택했다. 관상도 보냐? 너? 다분히 놀림가득한 말이었는데 찬열은 긍정을 표했다. 나, 좀 눈썰미가 있어서 그 사람 보면 뭐 잘할지. 무슨 직업일지 가끔 맞추기도 하거든. 잘할 거야. 너.

 

그리고 다음은 백현이었다. 세훈은 묵묵하게 종인이 아이들과 대화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끼어들어선 안 될 것 같았다. 그건 종인 역시도 원치 않을 테니까. 백현의 자리에 가자, 경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종인에게 꽂혔다. 무슨 말을 하나, 궁금했던 거겠지. 동그란 눈을 끔뻑이며 종인을 응시했다.

 

 

 

“나 이제 간다. 하도 밖에서 떠들어대서 알고 있겠지만.”

“…오세훈이랑 쌍으로 쌩 까더니, 작별인사라도 하러 온 거야?”

“내 진심은 아니었던 거 알지?”

“그럼, 김종인은 오세훈이랑 달라서 무진장 착하잖아.”

“안 그런 줄 알았더니, 뒤끝 있네. 세훈이 좀 그만 까.”

“어이고, 알겠어.”

 

 

 

백현이 금세 표정을 풀고 장난스럽게 미소 지었다. 그래도 종인에게는 호의적이었다. 사람대하는 게 항상 진심이었던 종인을 백현은 알고 있었다. 종인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세훈이랑 잘 지내. 나, 가면 혼자잖아. 그래도 같은 반인데 잘 지내야지. 그리고 너 파혼한 거. 멋있더라. 경수가 부러웠어.

 

 

 

“부러워 할 게 뭐있어. 너도 오세훈 있잖아.”

“우리는 같은 집 사니까.”

“맞다, 형제였지.”

“피 안 섞인 형제야. 남인데 그냥 양아버지한테 묶인 거.”

“…피가 안 섞였다고?”

“그래, 그것도 말해주려고 왔어. 너는 어떨지 몰라도 남들은 근친이라고 오해했으니까.”

“대박이네. 그걸 여태 숨기고 있었다니,”

“세훈이도 어제 알았어.”

 

 

 

김종인, 고단수네. 그걸 어떻게 쭉 숨기고 있었어? 백현이 종인의 팔을 두어 번 쳤다. 종인은 말없이 씩 웃었다. 어찌됐건 돌아오는 날에도 너랑 경수랑 꼭 붙어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도 세훈이 옆에 떳떳하게 돌아가지.

 

 

 

“다음에 또 보자.”

“너 왜 오늘 당장 갈 사람처럼 구냐?”

“이왕 기사 뜬 김에 미리 말해줘야지.”

“그건 마지막 날에 해도 괜찮거든?”

“마지막 날에 울면서 갈 수는 없잖아.”

 

 

 

아, 그래. 백현은 종인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그래, 반에 세훈이도 있는데 굳이 울면서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는 거겠지. 경수는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종인의 손을 덜컥 잡았다.

 

 

 

“잘 가, 그리고 다시 돌아오면 그 때는 진짜 친구하자.”

 

 

 

계약친구 말고, 어색하게 묶여있는 가짜친구 말고 진짜 친구.

 

 

 

*

 

 

 

얼마 후, 종인이 앉던 자리는 빈자리가 되었다. 세훈은 옆자리가 비어있는 상태였고 경수는 어색한 듯, 자꾸만 빈자리를 곁눈질 했다. 정말 갔나 봐. 종인이가 갔어. 뭔가 코끝이 찡해졌다.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없는 백현이를 제외하면 유일한 친구. 경수는 괜스레 백현의 어깨를 매만지며 백현의 팔에 얼굴을 기댔다.

 

 

 

“진짜 종인이 갔어. 어색하다.”

“…어쩔 수 없잖아. 비행기 타고 간사람 다시 앉혀 놀 수도 없고.”

“왜 꼭 가야했을까? 응? 세훈이랑 종인이 서로 좋아했잖아.”

“두 사람 사이가 나빠져서 간 건 아니야.”

“그래도 세훈이 혼자 남겨졌잖아….”

“그렇다고 영영 헤어진 것도 아니야.”

“만약 네가 유학가야 한다면 난 어떡하지?”

“너 두고 내가 어딜 가겠어. 너 혼자 놔두면 위험하잖아.”

“넌 가지 마.”

“안 간다고.”

 

 

 

걱정돼서 잠시도 못 떨어뜨려 놓겠는데. 그런 걱정하지 마. 온통 불안한 생각 투성이인 너를 두고 내가 어딜 가. 가도 같이 가겠지. 어떻게 해서든지 같이 가겠지.

 

 

 

“불안해하지 마. 파혼도 했고 어른 되면 너랑 같이 살 거야.”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응, 믿어.”

 

 

 

너랑 같이 있어야하는 이유는 네가 불안해서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내가 너와 같이 있고 싶기 때문이야. 연애라는 거 별 거 없잖아. 그냥 같이 있으면 행복한 거잖아. 우리가 원하는 건 그거잖아.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너와 쭉 같이 갈 거야. 원치않는 약혼, 결혼 안 해. 꼭 그래야만 한다면 도망이라도 치겠어.

 

 

 

“경수야, 오랜만에 병원갈래?”

“어? 나 다 나았대며. 병원가기 싫은데.”

“그래도 너 자꾸 부정적인 생각하잖아.”

“알겠어. 좋은 생각만 할게.”

“말로만?”

“아니, 진짜 생각도 그렇게 할게.”

“그래도 병원은 가자.”

 

 

 

안 간지 오래됐잖아. 오랜만에 한 번쯤 가줘야지. 꼭 치료가 아니어도 되니까. 네가 긍정적인 생각만 했으면 좋겠어. 그래야, 내가 꿈꾸는 미래와 같은 미래를 그릴 수 있을 테니까. 함께 있자. 무엇이 되었건,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찾아서.

 

 

------

저번 편 부터 한 편 쓸 때마다 자꾸 결말 낸 듯 끝맺음이 이상하네여..뀨뀨...35편 결말 예정입니다.

시간은 이제 빠르게 흘러갑니다. 왜냐, 세종 재회해야 되니까..ㅠㅠ 나도 종인이 보고 싶으니까!! 끙끙.

암호닉을 끌어오겠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셔요.

 72%님 심키님 안녕님 판다님 잉여님 렌즈통님 판다님 잉여님 텐더님 슈슈님
리마님 퐁퐁님 호호님 짜요짜요님
디니님 비밀님 파레라님 aa님 백백님 정모카님 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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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72%에요! 와이제종인이가모든걸밝혔군요.. 근데ㄷ떠난다니ㅠㅠㅠㅠㅠㅠㅠㅠ이럴수가..
10년 전
백흑지변
ㅠㅠㅠ 아이고.. 30편이라 급전개가 죄송할 뿐입니다. 72%님 일찍부터 읽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10년 전
독자2
심키입니다! ! 얼릉 재회했으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얼릉 오세여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독자2
흑지님!! 저 안녕인데 오늘은 사정이 생겨서 비회원 댓글로 왔어요ㅜㅜ 이제 진짜 완결이 다가오는 것 같아서 한편 한편이 올라올 때마다 얼마나 아쉬운지 몰라요ㅜㅜ 우으... 종인이 언제 오죠ㅠㅠㅠㅠ 재회가 시급합니다ㅠㅠㅠㅠ
10년 전
독자2
판다입니다ㅠㅠㅠㅠ와이런게어디예요ㅠㅠㅠㅠ이런전개라도짱짱좋은거아시죠ㅜㅜㅜㅜ????진짜좋다...이제곧또세종만나곸ㅋㅋㅋㅋㅋ진짜다들친해지고!완전좋좋♥
10년 전
독자3
홀홀 잉여에요! 이제 오해가 다 풀리고 종인이는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하러 떠났군요 허허 세종은 어짜피 다시 만날테니까..짱짱 경수백현이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네요 경수가 이제는 나쁜생각 안했으면..ㅠㅠㅠ 잘보고가욤 하튜 ♡닥흑찬♥
10년 전
독자4
ㅠㅠㅠ렌즈통이에요ㅠㅠ앜ㅋㅋㅋㅋㅋㅋ그냥 춤 잘추게생걋뎈ㅋㅋㅋㅋㅋㅋㅋ라낰ㅋㅋㅋㅋㅋㅋ완전 빵터졋어요ㅠㅠ슬펏는데ㅠㅜ근데 아ㅠㅠ세니랑니니ㅠㅠ애들이랑..오해풀랴서 좋기는하다만..떨어지다니ㅠㅠ엉엉그 다음 어서 버러가야겟어요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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