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犬), 종현
바람이 살랑이는 가운데 종현의 머리가 흩날렸다. 제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꼭 어렸을 적, 저에게 바람을 불러 일으키며 장난을 치던 민호를 떠올리게 해서, 종현은 슬며시 미소지었다. 민호 왔나? 이미 깊은 시골로 내려가 정착하고 산 지 오래된 민호가 이 곳으로 다시 상경했을 리 만무했으나, 혹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훽 주위를 둘러본 종현이 별안간 제 후각을 자극하는 꽃향기에 슬며시 미소짓더니, 민호를 찾는 것도 잊은 채 쪼르르 발걸음을 꽃향기가 나는 쪽으로 옮기었다. 몰라. 민호가 오면 알아서 찾아오겠지. 이제는 꽃으로 가득 차버린 종현의 머릿속에서, 민호의 존재는 이미 봄바람을 타고 흐른지 오래였다.
본디 견신(犬神)인 종현이 꽃밭을 찾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었다. 개들의 성격이 그러하듯, 종현의 성격 또한 자연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거니와, 이미 몇백 년전부터 매년 봄마다 맡아왔던, 그리고 즐겁게 노닐었던 꽃을 찾지 아니하는 것은 모든 만물은 자연에서 나고 자연에서 사라진다는 종현의 가치관에도 부합하지 않는 이치였기 때문에, 늘상 그렇듯 꽃향기를 맡기가 무섭게 종현은 반사적으로 꽃밭을 향해 움직였다. 이쯤일텐데. 제 특유의 후각과 직감으로 꽃밭의 근처에 다다랐음을 눈치 챈 종현이 이제는 제 머리 위로 금빛 털을 자랑하는 강아지 특유의 귀를 드러내더니, 직감적으로 꽃밭이 숲의 안쪽에 있음을 알아채고선 더욱 깊숙한 곳을 향해 파고들었다. 얼마 안 가 펼쳐진 것은 다름 아닌 꽃밭. 정말로, 종현의 머릿속으로 떠올랐던 그 모습과 똑같은 모습의 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우와!"
유채꽃이 만발한 꽃밭은 그야말로 종현의 천국이었다.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은 종현이 제 모습이 서서히 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건 자각도 하지 못한 것인지, 주저없이 노란 꽃잎의 물결로 빠져들어 킁킁거리며 꽃향기를 맡았다. 이미 꽃을 본 순간 개의 형상으로 돌아간 지 오래다. 본격적으로 꽃놀이를 시작한 종현의 발걸음이 바삐 움직였다. 여전히 노란 꽃잎을 제 입으로 물어 톡 하고 따내기도 하고, 따낸 꽃잎을 입으로 아삭아삭 씹어내기도 하며 저 혼자서도 즐겁게 노닐었다. 금빛 털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바람과, 코끝을 아찔하게 자극하는 그 유채꽃 향이, 좋은 일이 곧 생길 것이라는 종현의 직감을 건드리고 있었다. 좋아, 좋아, 진짜 좋아! 아무도 없는 포근한 꽃밭, 강아지 한 마리만이 헥헥거리며 노닐 뿐이었다.
2.쥐(鼠), 기범
귀가 가렵다. 남우현이 내 욕하나. 항상 저와 충돌이 잦아 제가 없는 자리에서 제 흉을 보곤 한다던 마신(馬神) 우현을 생각하며 귀를 후비적거린 기범이 별안간 뒹굴거리던 제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제 발길이 닿는 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꾹 닫힌 입술 새로 작게 흘러나오는 허밍음을 여과없이 뱉어낸 기범이 옷장에 걸려있던 옷들을 집어들었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밖에 나가고 싶었다. 그럴 만도 하지. 일주일째 계속 집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본디 음습한 곳을 좋아하는 서신(鼠神)답게 필요성을 느끼지 아니할 때면 언제나 집 안에서만 활동하는 기범인지라, 실로 오랜만의 외출이 아닐 수 없었다. 오랜만에 남우현 찾아갈까? 아니면 민호? 태민이? 저와 친하던 지신들을 생각하며 작게 웃은 기범이 마지막으로 푸른빛 가디건을 걸치고선, 조용히 제 발을 신발에 꿰어넣었다. 움직이는 발걸음이 솜털마냥 가벼웠다.
밝은 빛은 오랜만이다. 창문 사이로 투과하던 빛들만 쬐어오던 눈이 갑작스레 밀려오는 봄햇살에 적응을 못한 것인지 한참을 깜빡이고서야 눈의 통증이 사라졌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주르륵 늘어서 있는 주택들이 그제서야 보여, 함박 웃음을 짓고선 기범이 한걸음씩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럼 어디 한 번 봐볼까. 씨익 웃는 얼굴 위로, 장난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역대의 서신들은 대개 조용하고 무거웠다. 또한 십이지신들을 제외한 사람이나, 혹은 다른 생물체들을 만나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기범은 그 반대였다. 비록 제가 음습한 것을 찾는 본능때문에 집에 머물러서 그렇지, 이미 제가 지신으로 임명을 받았을 때부터, 아니 그 전부터, 기범은 사람을 만나는 것, 혹은 사람에게 '장난'을 치는 것을 그다지도 좋아했다. 그 탓에 이렇게 어쩌다 한 번 외출하는 날이면 관례와도 같이 행하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에이. 이 집은 아무도 없네."
제 투시 능력을 이용한, '관찰'이었다.
그 관찰이라 함은 그다지 유용한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장난이 심해지면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이었으나, 그저 기범은 사람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아서, 이렇게 해맑은 얼굴로 제 집 근처의 사람들을 지켜보곤 했다. 오늘 또한 마찬가지로 그렇게 주변 관찰을 하던 기범이 느적지근하게 하품을 내뱉고선 쭈욱, 기지개를 켰다. 잠 온다. 다시 자러 가야지. 느긋한 오후의 봄날, 십이지신의 낮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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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안녕하세요. 슾!입니다! 글잡에서 만나뵙는건 처음이네요. 허허허. (수줍) 아무쪼록 제 썰, 비록 똥손이지만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저 부르실 땐 편하게 슾, 혹은 스프라고 불러주세요! 원래 스프링랜드로 하려고 했는데 너무 길어서..☆★ 아무튼! 내용에 대해 조금 말씀 드리자면 처음 2~3화는 이런 식으로 샤이니 십이지신들을 소개하고, 그 다음편부터는 옴니버스 식으로 에피소드가 나갈 예정입니다. 그다지 긴 연재가 될 것 같진 않은데, 아무래도 편들 사이에 텀이 길어서(...)아마 몇개월 붙잡고 있을 것 같습니다...상당히 느리게 굴러가요..ㄸㄹㄹ.. 아무쪼록 잘 부탁 드립니다ㅎㅎ! |
십이지신 소개 |
김종현-인간 나이로는 18살. 십이지신으로서는 683살. 초능력은 뛰어난 직감 김기범-인간 나이로는 23살. 십이지신으로서는 683살. 초능력은 투시 능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