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를 시작한 지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다. 책장이 빼곡히 찬 약간은 넓다 싶은 가게 한켠에 자리한 민석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가게를 요리조리 둘러본다. 몇 날 며칠을 죽치고 있어도 영 익숙치 않은 풍경이다. 손님은 다양했다. 전체 관람가 비디오를 빼꼼 내미는 귀여운 어린이부터 오래된 소설을 내미시는 어르신 분들까지. 이따금씩 여고생 무리가 들어와 한동안 시끌벅적한 하이톤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제 자신의 존재가 희미해질 때도 있었다. 물론 차라리 여고생 무리가 더 나은 경우도 있다. 가장 당황스러울 때는 빨간 딱지를 단 비디오와 소설을 내미는 19살 미만이 분명한 아이들을 마주할 때였다. 처음에는 식은땀을 빼던 민석도 며칠이 지나자 능숙하게 민증을 요구하며 대처했다. 너무 어려 보일 때는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하단 말로 못을 박았다.
그렇게 알바에 익숙해질 무렵, 사장님은 민석에게 이르셨다. 연체한 손님들 모두에게 독촉 전화를 한 번씩 해 주어야 한다고. 민석은 알았다고 답했다. 연체 목록을 주욱 보며 한 명, 한 명에게 문자를 하던 민석은 그로부터 5일이 지난 후에 다시 연체 목록을 조회했다. 50명 남짓이었던 목록이 10명 안팎을 나돌았다. 괜시리 뿌듯해진 민석이 목록에 남은 8명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징하다… 아마 이들은 분명 분실 및 이사일 것이다. 날짜가 모두 빌려간 지 2달은 넘었다. 아, 아니다. 그 중 한 명은 1달이다. 그 사람의 이름을 뻔히 보는 민석은 눈빛은 짐짓 범인을 체포하기 직전인 경찰의 눈빛과 흡사했다.
‘루한’
평범한 이름과는 상당한 갭을 가진 이름이었다. 애기인가 싶었지만 생년은 90년생, 자신과 동갑이었다. 성은 어디로 갔는지 이름 란에는 두 글자만이 덩그러니 자리했다. 아, 전에 알바하던 사람은 일을 얼마나 대충 한 거야. 괜히 투덜거린 민석은 계속 이름 란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루한? 아무리 생각해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름은 아니다. 그냥 인터넷 커뮤니티 닉네임을 마구잡이로 제 이름이라 댄 건가. 우리나라에 루 씨도 있나? 턱을 괸 채로 목록만 보던 민석이 이내 지루해진 듯 창을 끄고 책을 폈다. 과제철이었다. 머리를 헝클이며 짜증스레 과제를 해 나가던 민석의 머리에는 루한이란 이름은 아스라이 사라져갔다. 까짓 거, 알 게 뭐야. 나는 할 만큼 했어. 민석은 자기 합리화했다.
4연타 (사랑은 연체를 타고)
Written by. 혜안
과제철이 끝나자마자 기말고사까지 연타로 시달린 민석은 6월에 들어서자 넉다운 상태가 되었다. 알바를 한 지도 그새 2달 즈음이 되었고, 이제는 눈 감고도 가게 일을 다 알 수 있을 정도에 이르렀다. 그리고 민석은 깨달았다. 연체 목록은 아무리 해결하려 들어도 10명 안팎을 머무른다는 것을. 그래서 민석은 그 10명 남짓에 집착하지 않았다. 괜히 자신만 피곤한 것이었다. 허나 두 달 전에도 연체 목록에 자리했던 루한은 어제 조회한 목록에서도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 사람도 이사 갔나? 과제도 끝났겠다, 시험도 끝났겠다. 별 생각이 없이 캠퍼스를 가로지르던 민석은 곧 종강이다! 방학이다! 들떠 곧 루한에게 신경을 껐다.
“그러니까 루한 선배가…”
“미친년! 그 선배한테 밥을 얻어 먹었다구?”
“아무렴, 얘가 보통 년이니? 대단하다, 얘.”
“아, 망할년. 그 선배 내 거라고 했잖아!”
가히 가게에서 떠들던 여고생 무리와 대적할 만한 시끌벅적함에 인상을 찌푸리고 지나가던 민석이 몇 발짝 못 가 우뚝 섰다. 루한?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했더니, 그 연체 목록에서 나오질 않던 그 사람이 아닌가. 특이한 이름이어서 기억해 두고 있었는데. 이 학교에 다니나? 여러 생각을 동시에 하던 민석이 그 학생들 중 한 명을 붙잡았다.
“저‥ 혹시 루한이란 분, 몇 학번에 어디 과인가요?”
4명의 여학생들이 떠들다가 민석을 한 번 쳐다보고선 쑥덕대더니 아까 제일 큰 목소리로 떠들던 여학생이 입을 열었다.
“루한 오빠는 3학년이구요, 국통과예요.”
“국통과요?”
“국제통상학과요.”
“아, 감사합니다.”
여학생들 무리는 도도하게 넹, 하더니 어느새 캠퍼스 안쪽으로 사라져버렸다. 국제통상학과? 인문대학과 경영대학이라서 맞닥뜨린 적이 없었나보다. 같은 대학교에 다니다니, 연체료를 받을 수 있겠구나 싶어 신난 민석이 국통과, 국통과… 중얼거리며 제 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또 우뚝 섰다. 곧 종강인데, 방학인데. 내일 당장 만나지 않으면 개강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나지막이 한숨을 쉰 민석이 머리를 긁적였다. 어떻게 만나지. 찾아가야 되나? 아씨. 고민하는 와중에도 집에 기다리고 있을 고양이가 걱정 되어 민석은 걸음을 바삐 했다.
* * *
대망의 다음 날이었다. 민석은 경영대학 건물에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경영대학이라니. 법과대학보다 더 자신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지레 겁 먹은 민석이 그 앞을 계속 배회하다가 한 순간 몰려 나오는 인파에 눈을 부릅 뜨며 그를 찾았다. 하지만 고딩도 아니고, 명찰도 안 다는데 그를 찾을 수 있을까. 자포자기하던 민석이 제 옆을 지나가던 무리를 망연자실하게 쳐다보다가 이내 그 무리 중 한 명이 루, 하고 내뱉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헐, 저 중에 있나봐. 민석이 종종 걸음으로 그 무리 앞에 다가섰다. 잔뜩 겁 먹은 얼굴로 미소를 애써 지어 보였다.
“저, 루한이란 분이, 누구…”
“야, 루한.”
“너 찾는 모양인데?”
무리 중에 루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리가 루한의 친구들이었나보다. 무리의 시선을 따라간 곳은 옆에 있던 벤치. 친구의 부름을 듣지 못 했는지 루한으로 추측되는 사람은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헌데, 자세히 들어보니 우리나라 말이 아닌 것 같다. 쭈오티엔짜이스네이… 외국어와는 영 거리가 먼 민석도 바로 알아챘다. 저건 중국어가 틀림없다.
“야.”
친절하게 못 알아들은 루한의 어깨를 치며 다시금 일른 친구들이 루한이 쳐다보자 민석을 가리키고 이내 정문 쪽으로 사라진다. 루한과 얘기하던 친구도 그 무리 중 하나였는지 짜이찌엔! 경쾌하게 내뱉고 무리 속으로 사라진다. 루한이 너무 잘생겨 민석은 멍하니 눈만 껌벅이는 중이었다. 순정만화 주인공 같이 생겼어.
“아, 다름이 아니라…”
말을 이어가려던 민석이 곧 입을 다물었다. 이 사람, 중국인이었지. 루한이란 어쩐지 요상한 이름도 중국어였던 것이다. 아는 중국어란 니하오, 그리고 니취팔러마 뿐인 민석은 착잡해졌다. 말이 안단 것이지, 사실 니취팔러마는 뜻도 가물가물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니하오, 니취팔러마... 중얼거리던 민석이 순식간에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 영어! 만국 공용어!
“음, 헬로.”
“…”
“유, 어, 그니까… 빌리다가 뭐더라.”
아무 대답 없이 자신을 쳐다보기만 하는 루한 덕에 괜시리 애가 탄 민석이 입술을 앙 물고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음, 유, 보로우, 아니다. 렌트 어 북? 알 유 언더스탠드? 쏘, 아이 니드 더 북. 댓츠 마이 비지니스. 민석은 처음에 자신 있게 여러 문장을 내뱉었으나 점점 민망해지고 있었다. 교양 과목으로 영어 회화나 들을 걸… 이게 웬 개쪽이란 말인가. 루한인지 뭐시기는 알아들었는지, 마는지도 모르겠다. 연체료 받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괜히 루한을 찾아온 것 같다.
“아이 노우.”
헐, 나 알겠대. 내 영어가 통했어. 놀람과 동시에 뿌듯함을 느낀 민석이 들떠 오케이, 아이 원트 더 북. 플리즈 기브 미 더 북, 앤드… 썸… 머니. 민석은 쉽게 들뜨는 사람이었다. 루한은 한 쪽 입꼬리를 올려 웃더니 짧게 오케이, 내뱉는다. 내가 중국인한테 영어로 말을 했는데 중국인이 알아들었어.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새삼 제 만국 공용어에 감탄한 민석이 신나서 제 가게 이름을 대고 땡큐, 땡큐! 하더니 제 집 쪽으로 걸어간다. 그러다가 우뚝 서더니 다시 루한 쪽으로 몸을 틀어 짜, 짜이찌엔? 하고선 또 총총 걸어간다.
루한은 멀어지는 민석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아예 보이지 않을 무렵, 박장대소했다. 존나 귀엽네. 아, 연체료는 좀 아깝지만 존나 귀여우니까 패스. 킥킥대던 루한도 제 집 쪽으로 걸음을 뗐다. 한국말 못하는 척 해야지. 당분간 지루하진 않을 것 같다. 놀림감이 하나 생겼으니까.
* * *
민석은 종강을 하고 기분 좋은 상태로 가게에 도착했다. 요 근래 들어서 제일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전 타임 알바에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은 민석이 기쁨도 잠시 몰려오는 잠에 눈을 느릿느릿 깜박였다. 조금 전에 밥을 먹어서 그런지 잠이 솔솔 온다. 어차피 사람도 없을 시간이다. 또 자기 합리화한 민석이 고개 숙인 채로 졸았다. 가게 문이 열리며 딸랑대는 종소리도 못 들을 정도로 졸던 민석은 제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화들짝 놀라 깼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루, 뭐더라, 아, 루한이다.
“니쪈 커 아이.”
또 중국어다. 여기요 같은 말인가? 잠에서 깨 짜증이 났지만 그것도 잠시, 루한의 손에 들린 책들에 민석이 반색했다. 사실 루한과 만났던 날 밤에 민석은 야매로 중국어를 공부했다. 공부랄 것도 없이 그냥 인터넷 검색이었지만. 셰셰! 하고서 받은 민석이 바코드를 찍더니 연체료를 쳐다봤다. 23000원. 책값 다 합친 것보다 연체료가 더 비싼 것 같기도 하다. 헌데 루한은 쿨하게 3만원을 제게 내미는 것이었다. 민석은 놀라면서도 7000원을 거슬러 주었다. 루한은 멋들어지게 웃으며 카운터 위에 놓여있던 종이에 펜으로 무언가를 적더니 민석에게 보여줬다. 알바 언제 끝나요? 꽤 정갈한 글씨체에 민석이 속으로 감탄하며 손가락 열 개를 쫙 펴 보여 주었다. 10시.
루한이 손가락 열 개를 보더니 맘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린다. 너무 늦게 끝나서 그런가? 민석은 어리둥절하여 루한을 쳐다보고, 루한은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제 휴대폰을 꺼내 민석에게 내민다. 번호를 찍으란 거겠지? 루한과 휴대폰을 번갈아 보던 민석이 키패드 하나 하나 정성스레 눌렀다. 그리고 루한을 배려하여 김민석 3글자까지 눌러 저장했다. 루한은 제 휴대폰을 돌려 받더니 만족스레 웃고선 셰셰, 하고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민석이 급하게 저기! 외치더니 루한이 쳐다보자 웃으며 손을 흔든다. 짜이찌엔! 루한도 픽 웃더니 짜이찌엔, 하고서 나간다. 민석은 자신이 어쩐지 글로벌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제 최근 기록 맨 위에 찍혀 있는 저장이 되어 있지 않은 번호를 루한으로 마저 저장한 민석이 하품하며 도로 졸았다.
민석이 졸고 있을 때, 집에 가고 있던 루한은 미친놈 마냥 한 쪽 입꼬리를 올린 채로 웃는 중이었다. 니쪈 커 아이의 뜻을 알게 된다면 그 귀여운 얼굴은 무슨 표정을 지을까. 까똑! 크게 울리는 알림음에 미리보기를 흘깃 보았다. ‘선배저외로워요ㅜ’ ‘술사주세요~ㅎㅎ’ 얼마 전 자신이 줄기차게 꼬시던 예쁜 후배였다. 루한은 아이러니하게도 예쁜 후배의 C컵은 되어 보였던 가슴을 떠올리면서도 이제 아무렇지 않았다. 딱히 아랫도리에 피가 몰리는 것 같지도 않다. 너 귀여워를 듣는 민석의 표정이 궁금할 뿐이었다. 게이 되는 건 한순간이군. 카카오톡 새친구에 뜨는 민석의 볼살 빵빵한 셀카를 보며 실없이 웃어댄 루한이 민석, 민석 중얼거렸다. 친구에게 물으니 재깍 답이 온다. 문창과? 내 먹잇감.
* * *
민석은 연락처 교환이 있는 지 5일 즈음이 지난 후에야 방 청소를 하다가 루한을 떠올렸다. 그냥 만 원만 받을 걸 그랬나? 그것보다 루한의 웃음이 계속 생각났다. 세상에서 태어나서 그렇게 순정만화 남주인공처럼 생긴 사람은 처음 봤다.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잘생겼다. 이게 그, 뭐더라, 잘생쁨? 그건가. 침대에 벌러덩 누워서 루한을 떠올리던 민석이 카톡 알림 소리에 놀라며 화면을 확인했다. 타이밍 좋게도 루한이었다.
‘이따시간나요?’
이따도 알고 한국말 은근 잘한다. 놀란 민석이 괜히 자신에게 톡을 보내려 루한이 끙끙대며 한국말을 쓰진 않았을지 궁금해졌다. ‘네’만 보내기엔 많이 딱딱해 보여 웃는 이모티콘도 하나 날렸다. 루한도 덩달아 웃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학교정문앞에서봐요’
루한의 마지막 말에 오케이 이모티콘을 보낸 민석이 마저 침대에서 뒹굴다가 벌떡 일어났다. 어떻게 입고 나가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옷장을 스캔하던 민석이 에이, 대충 입자 하고선 하늘색 후드티를 꺼내 들었다. 추우니까 위에 조끼도 입어야지. 부랴부랴 지갑을 챙겨 집을 나선 민석은 학교 정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루한을 발견했다. 그리고 루한의 옆에는 몸매 좋은 여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다가가려다 짐짓 당황한 민석이 여자를 쳐다보는 사이에 루한이 민석을 발견했다. 옆에 있는 여자에게 손을 작게 흔들더니 민석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온다.
“인기 많네…”
민석은 루한이 못 알아들을 줄 알고 작게 중얼거렸으나 청각이 예민한 루한은 그 말을 들었다. 당장이라도 쟤는 남친 있는 내 불알 친구야, 라고 하고 싶었지만 한국말 못 하는 것이 컨셉인 루한은 이를 삼켰다. 씨발, 이 컨셉 존나 답답하네. 인기는 지랄. 마냥 모르는 척 해사하게 웃고 있던 루한에게 민석이 물었다. 밥 먹을까요? 루한은 밥?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뭐 좋아하는지 모르는데‥ 민석은 루한을 배려한답시고 중국집으로 이끌었다. 처음에는 민석이 끌고 가는 대로 따라가던 루한은 중국집 앞에 도착해서야 어금니를 꽉 물고 애써 웃었다. 옘병, 그 놈의 짱깨.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신을 어딘가로 이끄는 민석은 아, 다른 거 먹고 싶나보다 하며 또 질질 끌려갔다.
그리고 둘은 순대국밥 집 앞에 도착했다. 허름한 간판에 궁서체로 크게 순대국밥이 적혀있다. 민석은 설마 한국말을 잘못 읽어서 온 건가, 하고 루한을 쳐다보았으나 루한은 별 반응 없이 가게 안으로 민석을 이끌었다. 반반한 생김새와 상당히 이질적인 입맛이었다. 주, 중국에서 이런 거 많이 먹나보다… 민석이 당황스러워 하는 새에 순대국밥 두 개를 주문한 루한이 일부러 어눌하게 싫어해요? 하며 눈웃음을 지었다. 아, 아니에요! 저 다 잘 먹어요. 루한이 끄덕이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민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동갑인데.”
“…”
“그니까, 어, 쎄임 에이지.”
“트웬티 투.”
자신의 말에 잠자코 고개만 끄덕이던 루한을 바라보던 민석이 아니, 이게 아닌데... 하더니 또다시 고민했다. 말 놓아요가 영어로 뭐지. 반말이 영어로 뭐지. 멘붕에 빠진 민석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루한이 소리나게 웃었다. 놀란 민석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루한을 쳐다보자 루한이 입을 열었다.
“민석아.”
민석은 국물을 떠 마시다가 숟가락을 떨굴 뻔 했다.
“말 놓자, 이거지?”
영락없는 한국인 어조였다. 자신보다 한국말을 더 잘하는 것 같다.
“너 처음 봤을 때부터 귀여웠는데.”
“…”
“렌트 북? 렌트카도 아니고.”
민석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사레가 들렸는지 콜록, 콜록 기침을 해댔다.
“니쪈 커 아이가 뭔지 알아?”
“너 귀엽단 말이야.”
도대체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민석은 괜히 눈만 가열차게 굴렸다. 루한이 킥킥대더니 민석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 말 없이 밥을 코로 들어갈 것처럼 기계적으로 숟가락을 놀리던 민석이 이젠 아예 고개를 땅에 처박듯이 떨구었다. 속으로는 아씨, 아, 어떡해, 쪽팔려…만 연신 반복 중이었다.
“나 잘생겼지.”
민석은 입에 머금고 있던 국밥을 그대로 뿜을 뻔 했으나 가까스로 참아냈다. 내뱉은 말과 달리 루한은 온화한 표정이었다. 마치 밥 먹었어? 와 같이 일상적인 말을 내뱉은 표정이어서 민석은 또 사레가 들렸다. 기침하는 민석에게 물잔을 들이민 루한이 테이블에 놓여있던 휴지로 민석의 입가를 닦아 주었다.
“난 너 좋은데.”
“나랑 사귈래?”
민석은 루한의 3연타에 이미 넋을 놓은 상태였다. 얘가 지금 뭐라는 거지? 잔뜩 당황한 기색의 민석을 보며 자꾸 귀여워를 연발하던 루한이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네 가게 단골 할게.”
“콜?”
민석은 루한의 말에 푸하하, 아이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루한도 자신이 내뱉어놓고 민망한지 큼, 큼 헛기침을 한다. 내심 민석이 대답이 없어 불안하던 참에 민석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콜.”
연체된 책 받는 것도 내 비지니스고, 단골 만들어야 하는 것도 마땅한 내 비지니스니까. 그러니까, 뭐, 좋다고!
너무 오랜만에 글잡담에 찾아왔는데 망상이 아니어서 어색하네요. 독자님들 엄청 보고 싶었어요 TxT!!!
잘 지내셨는지 모르겠네요. 절 잊으셨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오늘도 제 모자란 작품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루민, 독자님들 모두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