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사하다는 짧은 인사와 함께 치료실을 빠져나온 성규의 팔에는 하얀 거즈가 말끔하게 감아져 있었다. 팔꿈치까지 올라간 소매를 잡아 내린 성규가 아까와 다르게 손목부분에서 헐렁이는 소매 끝을 몇 번 매만지다가 자신을 부르는 타인의 음성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상처 난 부위는 물 닿으면 덧나니까 당분간 조심해 주세요.”
“네.”
가식적이라기 보단 형식적이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법한 웃음을 짓는 간호사에게 고개를 살짝 숙인 성규가 건네받은 처방전을 반으로 접으며 병원을 빠져나왔다. 병원을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찬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목을 움츠리자 엉성하게 둘러져있던 목도리가 코밑까지 끌어올라와서는 바람이 통하지 않을 만큼 단단하게 메어졌다.
“이렇게 해야 감기가 안 걸리지.”
“........”
코 아래까지 올라왔던 목도리를 편하게 정리해준 우현이 성규를 보며 환하게 웃었고 성규는 그런 우현의 모습에 목도리 위로 솟아오른 코를 찡그리더니 앞에 서 있는 우현에게서 돌아섰다.
“처방전 받았잖아. 약 받아가야지.”
“.........”
“집 앞에 약국이 열었을까?”
“.........”
“그냥 여기서 받아가자.”
“.........”
“집 앞은 작아서 처방전에 적힌 약이 다 있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원래 처방받은 약은 치료받은 병원 근처로 가야....”
집으로 향하던 성규의 걸음이 우뚝 멈춰진 건 갑자기였고 같이 멈춰선 우현의 옆을 지나 방금 전 나온 병원으로 달려가는 성규는 순식간이었다. 예고도 없이 병원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성규를 바라보던 우현이 다시 성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을 땐 이미 성규가 간호사들의 부름을 뿌리치고 자신을 진료한 의사에 방을 막 들어섰을 때였다.
갑작스런 성규의 등장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던 의사는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성규를 바라보더니 뒤따라 들어오는 간호사들에게 괜찮다는 손짓을 하며 안경을 벗었다. 의사의 손짓에 문을 닫고 나가려는 찰나 간신히 성규를 뒤따라온 우현이 문 틈 사이로 빠르게 들어가려다 어깨를 부딪쳤고 그 바람에 문고리를 잡고 있던 간호사는 자신도 모르게 그만 문고리를 놓치고 말았다.
“하아, 갑자기 그렇게 뛰어가면 어떡해?”
“..........”
“근데 여기는 왜 다시 온 거야?”
의사를 쳐다보던 성규의 얼굴은 우현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가까워질수록 일그러졌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성규는 쓰러지다 시피 의사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의사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저 좀, 저 좀 도와주세요.”
“어디가 아프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자꾸 제 앞에 나타나요.”
“........”
성규의 말에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펜을 든 의사가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처방이 필요하지만 그 처방은 자신이 내릴 수 없다며 말하며 벗었던 안경을 주우려 손을 뻗었지만 안경에 손이 닿기도 전에 자신의 손을 잡아오는 성규의 손길에, 자신에게까지 전해오는 성규의 떨림에 웃음이 사라진 진지한 얼굴로 성규를 바라봤고 성규는 그런 의사에게서 시선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우현을 마주했다.
“분명, 죽었는데......”
“.........”
“제가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점점 그 사람의 존재가 뚜렷해져요. 죽었다는 사실이 잊혀 질만큼.”
**
미쳤다며 손가락질을 할 줄 알았던 의사는 성규의 예상과 다르게 한참이나 자판을 두드리더니 처방전을 받아가라 말했고 방을 빠져나가는 성규의 뒤로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오묘한 말을 덧붙였다. 그 덕에 식탁에 놓여 진 약봉지는 두 개였고 성규는 그 두 개의 약봉지를 뜯어 한 번에 입 안으로 털어버리고는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성규가 일어선 의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우현은 닫혀 진 방문을 열고 들어서서는 방문을 닫지 않고 살짝 열어두는 성규의 모습에 탁자에 놓여 진 약봉지를 바라봤다.
침대에서 성규가 눈을 떴을 땐 열어두었던 방문이 닫혀있었고 덮고 있지 않았던 이불이 몸 위를 덮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덮어진 이불을 손에 쥔 성규가 습관적으로 방 안을 둘러봤지만 방 안에는 고요한 정적만 있을 뿐 성규가 눈으로 찾는 우현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닫혀 진 문을 열고 나온 성규가 냉장고로 향하다 말고 식탁에 올려 진 죽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춰 섰다. 육안으로 봐도 식은 죽이 틀림없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중요한 거는 성규 눈에 보이는 죽의 존재였다. 먹기 좋게 그릇 옆에 놓아둔 숟가락을 집어든 성규가 죽을 휘저었다. 가지런히 다져진 야채가 보기 좋게 들어가 더욱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죽은 환상이 아니었다.
“말도 안 돼.”
“.........”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서 떨어진 숟가락은 듣기 싫은 굉음을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 덕에 숟가락에 붙어있던 불어난 밥풀은 성규의 발밑에서 보기 싫게 흩날렸지만 그 마저도 성규에 의해 성규의 하얀 발밑에서 으깨져 버렸다. 얼마 안 되는 밥풀이었지만 그래도 밟았다는 촉감정도는 충분히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규는 밥풀이 으깨진 발로 집 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성규가 지나친 마루에는 이미 성규의 발밑에 붙은 밥풀들로 인해 자국이 남기 시작했지만 그 자국을 닦기는커녕 오히려 더 빠르게 늘어났고 성규는 늘어나는 자국만큼이나 빠르게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그대로 주저 앉아버렸다. 마음대로 나타났다가 마음대로 사라지는 게 어디있냐며 숨죽여 울던 성규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열리는 현관 문 소리에 고개를 들어 현관을 바라봤고 눈물 때문에 흐릿했던 앞이 떨어지는 눈물방울과 함께 또렷해졌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성규의 앞은 흐릿해져 버렸다.
“오빠 울어?”
“........”
“뭐야, 진짜 왜 그래?”
“어디 갔었어?”
“나 지금 왔는데?”
계속해서 우는 성규의 모습에 신발도 벗지 않은 채 달려온 여자가 성규의 이마에 자신의 손을 대었지만 성규는 그런 여자의 행동에도 여전히 현관문을 바라봤고 그런 성규의 시선에는 현관 문 앞에 서서 성규를 바라보고 있는 우현이 있었다.
“다시 온 거야?”
“뭐?”
“너 돌아 온 거야?”
무슨 헛소리냐며 성규를 다그치는 여자가 미처 벗지 못했던 신발을 벗고는 주방으로 사라지자 성규는 여전히 현관 앞에 서 있는 우현에게 또 다시 물었고 우현은 그런 성규의 질문에 천천히 성규 앞으로 다가와서는 눈물로 젖은 성규의 뺨을 쓸어내렸다.
“대답해. 너 정말 돌아 온 거야?”
“성규야”
“돌아 온 거냐고!”
갑작스럽게 소리를 지르는 성규의 모습에 여자가 냉장고 앞에 서서 불안한 표정으로 성규를 바라봤고 우현이 그런 여자를 피해 성규의 손을 잡아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방 안으로 들어온 성규는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우현의 손길에, 방금 전 문을 열던 우현의 손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듯 입을 살짝 벌리고는 우현을 바라봤고 우현은 그런 성규의 모습에 고개를 떨궜다.
“우현아, 나 꿈을 꿨나봐.”
“......”
“니가 죽는 아주 지독하게 나쁜 꿈을 꿨나봐. 이렇게 멀쩡하게 내 앞에 있는데, 죽도 끓이고 문도 열고 이렇게 내 손도 잡을 수 있는 니가 내 앞에 있는데......진짜 무서운 꿈을 꿨어.”
“성규야.”
“너무 긴 꿈이었어. 정말 너무 긴.....”
“꿈이 아니야.”
“아니, 꿈이야.”
“성규야”
“아니면! 아니면 나 지금 널 어떻게 받아 드려야 되는 건데? 죽은 니가 이렇게 멀쩡하게 내 앞에 나타났는데 난 지금 이걸 어떻게.....”
불빛하나 없이 컴컴한 방 안에서 성규는 자신의 시선 속에 있는 우현의 앞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고 우현은 그런 성규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성규의 울음소리가 가득한 방 밖으로는 문 앞에 서서 성규에게 들리지 않게 입을 막고 눈물을 떨어트리는 여자의 울음소리가 반대로 가고 있는 시계 침 소리에 묻혀 지고 있었다.
사연 |
한자 너무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