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로디테 05
차 안에 앉아 핸드폰만 만지작 대는 게 영 병신이 따로 없다.
성규가 보스를 사랑하지않는다.
그럼 도대체 누굴?
핸드폰 화면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내려본다.
문득 어젯밤 그의 머릿결을 쓸어내린게 생각난다.
푸슬거리는 머릿결, 보들거리는 살결, 그리고 그의 얇은 허리.
성규야. 어째서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걸까.
그리고 너의 마음은 도대체 무엇일까.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가만히 핸드폰을 바라본다.
이제 더이상 피하지마 김성규.
이젠 더이상 뒷걸음질하고 회피할 공간은 남아있지 않아.
굳게 마음을 다짐하고선 핸드폰 잠금을 풀고 그에게 메신져를 보낸다.
[할 얘기있어. 보는데로 연락해.]
이제 이야기를 해야할 시간이다.
그의 진심과 나의 진심에 대해서.
익숙하게 계단을 올라 성규의 방쪽으로 몸을 틀어 걸음을 옮긴다.
그 날 저녁 나는 성규에게 답문을 받았었다.
[내일 오후 6시.]
그는 나에게 할 얘기가 무어냐고 묻지않았다.
그리고 나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잠정적으로 느끼고 있었던거다.
이젠 이야기해야할 때라는 것을.
끼이익- 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아니나다를까 그 특유의 향내가 훅- 끼쳐온다.
달달한, 살짝은 싸한 그만의 향.
요부의 완벽한 호르몬 향내.
한발짝 한발짝 방 안으로 들어가본다.
어제 아침 잠에서 깨어났던 곳이지만 이상하게 낮설게 느껴진다.
뭐.. 당연한걸까.
방 안을 슬쩍 한번 훑어보면 보이는,
커다란 방안, 그와 내가 뒹굴던 커다란 침대, 책들이 가득찬 커다란 책장들.
그리고 커다란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작은 너.
성규는 나나 보스와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언제나 책상에 허리를 꼿꼿히 펴고 앉아 독서를 하곤했다.
언제가 왜 그리 열심히 책을 읽냐는 말에 그는 푸스스 웃으며 말했었다.
"책으로 세상을 느끼고 배우는거야. 나는 이제 여기서 나갈수없으니깐."
그의 말대로 그는 팔년동안 한번도 저택을 떠나지않았다.
맨처음엔 농담이려니 싶었지만 나와 지내는 삼년동안에도 그는 한번도 밖에 나가지 않았고
내가 없었던 오년도 마찬가지였다.
보스가 나가지 못하게 하는 건 절대아니었다.
오히려 보스는 성규가 걱정되어 억지로라도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했지만
밖에 끌려가던 성규가 발작을 일으킨 이후로는 보스도 그를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는 그 스스로 저택 밖에 울타리를 쳐놓고 절대 넘으려 하지 않았다.
그가 만들어 낸 완벽한 감옥 인 셈이다.
"내가 만든 감옥에서 내가 형벌을 받고 있는거야. 나는 지은 죄가 많으니깐."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묻지 않았었다.
그러지 않아도 그의 표정은 이미 슬픔이 뚝뚝 흐르고 있어서 감히 내가 물을 자신이 없었다.
멀리 새어나간 정신을 부여잡고 다시 그의 꼿꼿한 허리를 바라본다.
이내 그는 내 인기척을 읽어냈는지 고개를 찬찬히 돌려 나를 바라본다.
"책, 읽고 있었어. 프랑스작가 쓴 책인데."
제목은 '신'이야.
낭랑한 그의 목소리에 이맛살이 살짝 찌푸려지는 걸 느낀다.
누가 물어봤어?
싸늘한 말과 어울리지 않게 투정대는 말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그의 앞에서 나는 어김없이 아이가 되버리는 것 같아.
"이 책에서 나와 아주 닮은 존재가 나온다 우현아?"
그는 책을 들고 팔랑이며 말한다.
그가 아는지 모르는지 팔랑이는 책보단 헐렁한 소매 속 팔랑이는 그의 팔목에 내 눈길이 쏠릴 뿐이다.
하얗고 가늘다란 그의 손목.
나의 욕정을 일으키는, 그의 하얀 손목.
정말 닮았어. 그 작가가 날 알고있는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라니깐?
그 답지 않은 새된 말투가 귓가에 종알종알 울려퍼진다.
우현아 그걸 알아?
그게 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여전히 툭툭대는 나의 말투에 아랑곳않고 그는 다시금 쫑알거린다.
무언가 이상하다. 그의 말투나 행동이나 모든게 이상하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 책에서 아프로디테가 나와."
아프로디테..? 내가 그에게 칭해줬던 이름 아프로디테.
"그은데...신화랑은 좀 많이 다르게나와."
어떻게 나오는데?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재촉하는 내 목소리에 푸흐. 웃음을 터트리며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빤히.
내 안에 모든걸 읽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빤히.
"모든 이에게 사랑을 일깨워주는, 하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그의 목소리가 나긋나긋 방안을 울린다.
"사랑의 여신이지만 사랑을 할 줄 모르는."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서글프게 느껴지는 건
"아무도 사랑하지 않지만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역설적인 존재."
내 착각일까.
너는 왜 그렇게 슬퍼보이는 걸까. 내가 잘 못 보고 있는 것일까.
"그게 너랑 닮았다고?"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우현아, 날 사랑해?"
내 질문을 회피하고선 도리어 그가 역으로 질문을 던져온다.
나는 왜 내 질문에 답하지 않냐는 물음보다는 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먼저 입에서 툭 튀어나온다.
당연하지.
모든게 확실하지 않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확신을 가질수 있는 게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이다.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은, 거짓투성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진실로 말할 수있는
그런 것.
그러나 그는 하얗게 웃으며 와장창 깨버린다.
"아니.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나를, 그리고 내 사랑을.
너가 어떻게 알아. 주체 할 수없을만큼 화가 차오른다. 너가 뭔데 내 사랑을 부정해버려.
삼년동안 내 사랑을 그렇게 의도적으로 외면해놓고서는,
너가 어떻게 그렇게 쉽게 내 사랑을 부정해버려.
다시 말해줄까?
싱긋 웃은 그의 얼굴이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진다.
"넌, 날 사랑하지 않아."
그만해, 가슴이 따끔거리면서 나를 짓눌러온다.
차라리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해.
내 사랑만은 부정하지 마. 제발.
야살스럽게 휘어진 그의 눈꼬리가 이상하게도 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무섭다. 그가 무섭고 두렵게 다가온다.
"..그만하자 김성규."
결국 내가 먼저 피해버린다. 도저히 더 이상 서있기 힘들 정도로 피곤이 꾹 내 온몸을 짓눌러온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 않고 다시 그 얄미운 입술을 종알종알 움직이기 시작한다.
"넌, 날 사랑하는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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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도대체 어디서 끊어야되는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은 모의고사라서 일찍 마쳐서 서둘러 한편 올립니다!!
내일도 5편 올라갈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
점점 갈수록 흥미진진해지는 아프로디테와 점점 글을 못쓰는 우연이었습니다..
아 팬픽표지 만들어주실 분 구해요...........발포샵이라서.............
관심있으시면 신작알림!!
그리고 댓글도 사랑합니다!!
댓글은 글쓰는 이에게 엄청난 힘이 됩니다...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