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연구소_00
아, 이야길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까. 일단 지금부터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주려는 말은 그 어떤 픽션이나 상상력도 가미되지 않은, 그러니까 내가 지금 겪은 일들을 상당히 사실적이고 그체적으로 설명해주려고 하는데, 그래. 일단 내 소개부터 하자면 나는 25살 여성이고, 성남수면센터에서 일을 한다. 어떤 일을 하느냐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수면연구. 사실이게 말이야 간단하지, 인간이 자면서 몸에서 일어나는 근육, 뇌파, 심전도 등의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 연구하는 상당히 미세하고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하려면 머리가 상당히 좋아야겠다고 말하지만 그건 정말 당연한 말이고. 뭐 하여튼, 내 일상은 남들보다는 조금 늦은 시간에 시작된다. 오후 7시, 저녁식사를 마치고 수면 센터에 출근. 전날 검사한 표본들을 수치화된 통계자료로 정리한다. 오후 8시. 통계자료를 연구, 분석하고 그를 또 정리한다. 오후 10시. 다시 수면센터를 방문한 실험자, 그러니까 환자들의 수면 패턴을 연구하고 관찰한다. 그러면 다음날 6시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그를 연구한다. 그리고 오전 7시, 퇴근. 명색이 수면 센터 직원이지만 정작 나는 그닥 건강한 수면 패턴을 가지지 못했다. 모두가 알고 있듯 수면, 그러니까 잠은 9시~10시에 자는 것이 가장 좋다. 인간의 신체는 빛이 있으면 잠을 잘 시간이 아니라 활동을 해야하는 시기로 인지해 숙면을 방해하기 때문인데, 나는 이제 막 해가 뜨고 빛이 여기저기를 도사릴 그 시기에 잠에 빠지기 때문에 상당히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 하는 이유는 단지 '인간'을 관찰하고 수치를 통계화시키는것. 그것에서 얻는 일종의 짜릿함이랄까, 그런거. 서론이 너무 길었다. 하여튼, 지금 내가 여기 있게 된 이유를 설명해주자면 상당히 간단하다. 오늘 아침, 그러니까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였다. 아마 오전 7시 30분경이였을거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깔끔하게 차려입은 검정 슈트의 키가 큰 남자였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분명 그의 머리통에선 빛이 났다. 정확히 말하면 그 뒤통수에서. 하여튼 나는 꽤 피곤한 상태였으므로 그 남자에게 줄 일말의 관심이라거나 그런 것은 없었다. 단지 '아 시x 눈부셔' 이 정도로 끝났었던 듯 싶다. 뭔가 문제가 생겼던걸 직감한 것은 그 남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나를 잡아섰다는것? 길을 가다가 폰팔이도 아닌 멀쩡한 (사실 그리 멀쩡한 건 아니였다. 아 완전 아니지) 남정네에게 대낮부터 팔을 붙잡힌 건 처음이라 심히 당황스러웠다. 그 상황은 뭐랄까 드라마 같았달까, 내가 학창시절 공부만 하느라 드라마를 잘 못 보기는 했으나 아마 그래. 본격 서스팬스 드라마가 있었다면 분명 나의 상황은 그 드라마의 한장면 같았을거다. 내가 남자에게 팔이 붙들리는 순간 초록색 불은 곧 빨간불을 띄었고 저 멀리서는 트럭이 달려왔다. 비명을 지를 새는 없었다. 단지 눈을 꾹 감았...다가 떴을 땐 세상이 하얬다. "밤새 일만 쳐 하다가 이렇게 허무하게 뒤진거야 지금...?" 너무나도 당황스럽고 황당한 마음은 내 입을 거칠어지게 만들기엔 충붕했으며 사실 직접적인 묘사는 하지 않겠지만 저 말 이후에도 나는 몇가지 속어를 더 뱉어냈다. 그리고 점차 하얀 빛을 내뿜던 세상이 형체를 갖추어가며 굉장히 거대한 사무실로 변했다. 천장은 너무 높아 있는지 없는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고 평수는 한...축구장 절반정도 크기였던 것 같다. 한쪽 벽면은 모두 유리창으로 된. 그러니까, 꼭 어디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그런 사무실이였달까. 그리고 그 창 앞엔 상당히 사무적이고 세련된 책상과 그에 어울리는 쿠션감있는 사무용 의자, 그리고...어...꼬마애? 내가 상확파악을 찬찬히 하고 있을 때 내 앞에 나타난건 아까 그 남자였다. "엥? 당신 뭐야...아니 아니 이게 아니고. 여기 뭐야? 어디야?" 그 누구라도 나를 차에 치이게 한 남자를 이렇게나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다시 마주한다면 나와 같이 물었을거다. 그에 남자의 대답은 간단했다. 씨익- 웃어? 웃은거야 방금? 나 지금 어디 천국인지 지옥인지 거기 있을지도 모르는데? 정확히 그 남자를 한대 칠 뻔한 그 상황을 구제한건 다행스럽게도 그 꼬마였다. (유감스럽게도 실제 꼬마는 아니였다. 그냥 체구가 작은...성인 남성...) "김...칠봉씨. 반가워요. 천상 꿈 연구소 사장입니다. 편하게 우지라고 불러요." 서류 비슷한걸 찬찬히 읽다가 안경을 낀 그 상태로 나를 올려다 보며 말하는 본새를 보아하니, 뭐랄까 면접 보러 온 기분이였달까. 아니, 그보다 뭐? 천상? 꿈 연구소? 헛참, 기가 찼다. 내가 지금 꿈을 꾸나, 이렇게나 상상력이 풍부했던가 내가. 그렇게 생각할 즈음, 그 사장이라는 남자가 다시 한번 말해왔다. "여기가 꿈 연구소는 맞지만 지금 이게 칠봉씨 꿈은 아닐거예요 아마. 생각하고 계신대로 칠봉씨 상상력이 그리 좋은 편도 아닐 뿐더러. 뭐, 하여튼 이 장소나 상황에 대해 상당히 의문이 많으실겁니다. 여기가 어디고, 내가 누구고, 뭐 그런거요. 일단 겸아 넌 나가 있고" 그 말에 내 옆에 흥미로운 듯 내 표정을 살피며 이 상황을 지켜보던 겸이라는 남자가 예예~ 하며 그냥 사라졌다. 온데간데 없이. "...뭐...?" '하하, 꿈이구나, 맞네. 맞아. 꿈이네. 근데 뭐야 자각몽도 아니고 이게 뭐야 하하' 한창 이게 꿈이라는 결론을 도출 할 때 즈음 다시 시작된 우지라는 남자의 설명이다. "통성명이 늦어졌죠? 일단 저는 신입니다." "예...퍽도..." 안타깝게도 입 밖으로 내뱉어버린 마음 한켠의 진심은 아마 그 사장에게 미움을 받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뭐 여하튼 "크흠, 아까 걔도 신이구요. 여기, 이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들 모두 신입니다. 그리고 여긴 인간들의 꿈을 연구하는 연구솝니다. 칠봉씨가 살아생전 하셨던 일이랑 뭐 그냥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살아...생전요...? 저 죽었다고요?" "몰랐어요? 아까 분명 버스에 치이셨을텐데" "트럭이요" "뭐든 네 뭐 하여튼 그거.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일단 본론으로 들어가죠. 지금 저희 회사에서 하고 있는 연구에 칠봉씨의 지식이 상당부분 필요해서요. 아무래도 저희가 신이다보니, 인간에 대한 정보나 뭐 그런게 좀 부족하기도 하고..." "아뇨아뇨, 잠깐만, 신이면 뭐 전지전능한거 아니예요? 그냥 뭐 초능력으로 독심술 이런거 하고 해서 연구하면 안되나...? 어짜피 인간은 신이 만든거람서요. 것도 못해요?" "안타깝게도 더 이상 인간이라는 창조물이 신의 영역을 벗어나버려서. 이런걸 일종의 변수? 라고 하죠 인간들 사이에선. 뭐 이것도 설명이 길어질 테니까 나중에 하도록 하구요.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칠봉씨가 우리 회사에 영입됐다는 겁니다. 오늘부터 출근하세요." 뭐 이딴 회사가 다 있어. 머리가 살짝 복잡해졌다. 나 죽어서도 일하는건가. 여기서 일하다가 과로사 하는건 아닐까. 아니 여기가 천상인데 또 죽을 수가 있나. 월급은 주나. 월급을 받아서는 어디다가 쓰지. 이외에도 약 72가지의 질문들이 머릿 속에 나열되었었으나 곧 우리 둘 사이에 나타난 한 사람, 아니 신 덕분에 그 고민은 종결이났다. "어 버논아 왔어?" 그래 동료얼굴이 저 얼굴이면 노동 착취 당하고 일할만 하네. "지금 출근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