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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열. 만약, 만약에 말이야 다 꿈이면 어떡할꺼야?”
“뭐가 다 꿈인데”
옆에 앉아 사탕을 입안에 넣어 또르르 굴리던 너의 시선이 내 얼굴에서 멈춘다. 너는 요즘따라 이상한 말이나 행동을 했다. 자기가 갑자기 죽어버리면 어떡할거냐, 홀연히 사라져버리면 어떡하냐며 쓸대없는 말을 늘어놓는다던가 불안한듯 손톱을 깨물거나 다리를 달달 떨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냥 나에게 대답이 듣고 싶은 건줄 알았다. 네가 없어지면 눈물을 흘리면서 찾아다닐꺼라고, 니가 없어지면 어떡하냐고 웃으면서 넘겼지만 그럴때마다 너는 아니, 진심으로 진짜로. 라며 말을 덧붙혔다. 소설이나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백혈병이나 불치병 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냐며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던져 물었다. 그런데 그렇게 물을때마다 넌 실실 웃으면서 장난인데 왜 그렇게 진지하게 묻냐며 내 팔을 툭툭 두드렸다. 내가 장난으로 받아드리면 왜 장난식으로 대답하냐며 표정을 잔뜩구기면서.
“우리 둘이가 만나서 이야기하고, 밥을 먹고, 손도 잡고 하는게 다 꿈이었으면 어떡할거냐고”
“꿈일리가 없잖아 봐, 때리면 아프지 않냐?”
나는 너의 허벅지를 찰싹 소리나게 때렸다. 입술을 씰룩거리며 다리를 슬슬 문지르던 넌 나의 볼을 쿡 찌른다. 거봐 꿈 아니지? 네가 웃는다.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의 잠금을 풀어 시간을 확인했다. 너는 옆에서 힐끔 보다가 배경화면을 본건지 씩씩 대며 휴대폰을 뺏어간다.
“아, 이 사진 싫다고 했잖아! 이상하게 나왔어”
“싫어 내가 잘나왔어”
너의 손에서 다시 휴대폰을 뺏어들어 주머니에 넣었다. 예쁘게 나왔는게 왜그래. 나는 엉덩이를 툴툴 털고 일어나 너의 손을 잡아 올려 몸을 일으켜준다. 낑낑거리며 눈꼬리를 축 내리는 너의 눈이 오늘따라 더욱 더 예뻐보인다. 항상 걸어왔던 길을 똑같이 걸어 들어가는건 어찌보면 매우 지겨운 일일수도 있지만 어쩐지 매일 감회가 새롭다. 너와 하는 이야기가 매일 달라서 그런지 아니면 무심코 하늘을 보았을때 매일 바뀌는 구름의 모양때문인지 나는 항상 이 길이 재미있었다. 적어도 네가 있을때는 말이다.
그리고 너는 봄처럼 활짝 핀 벚꽃처럼. 허무하게 하루 아침에 없어져 버렸다.
너의 말이 비단 농담이 아니었다. 허상이었나, 망상이었나, 아니면 정말로 한 낮의 꿈같이 달콤하게 아쉽게 끝나버린 꿈인가. 그것들도 아니라면, 어떤 이유로 너는? 천천히 어젯밤의 일을 곱씹어 보았다. 너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 너는 내 옆에 눕고 나는 네 옆에 눕고. 넓고 판판한 베개를 만져보았다. 네가 여기에 머리를 기대어 잠을 청했다. 내 옆에 누워서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잘 자라는 형식적인 인사 후 너는 아무말 없이 잠을 청했다. 집으로 오는 길 너와 나는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가.
“네 mp3 고장 났더라. 전원 버튼”
“아, 맞아 고치러 가야하는데. 그나저나 어떻게 알았냐?”
“저번에 노래 들으려고 켰는데 안되길래.”
mp3. 그래 너와 내가 자주 사용하던 mp3. 항상 이어폰 한 쪽씩 나누어 끼고 노래를 듣기도 했잖아. 다급하게 이불을 걷어치워 책상위롤 뒤적거렸다. 손 끝이 차갑게 식어있다. 손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바들바들 떨려온다. 항상 뒀던 곳. 씨디 케이스 옆에 책들이 가득 쌓인 곳에 항상 두었다. 너는 물건을 잘 잃어버리니까 쓰고 나서 바로바로 그 자리에 놔 두라고 했잖아. 검은색 mp3. 천천히 침을 삼켰다. 만약 너와 내가 있었던 모든 일들이 꿈이었다면 지금 이 mp3는 켜지지 않겠지 그렇겠지?
mp3의 전원버튼을 꾹 누른 후 잠시 눈을 감았다. 지금 이 상황이 파악이 되지 않는다. 잠에서 깨어 텅 빈 옆자리를 보니 이불이 가지런하게 펴져 있었다. 피식 웃으며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에 가보니 왠일인지 티비를 보며 나를 반길 네가 없다. 화장실에 갔나 문을 두드리고, 문을 열어보아도 너는 없다. 천천히 눈을 뜨니 mp3가 켜지지 않는다. 손에 축축하게 땀이 베인다. 휴대폰을 켜 잠금을 풀었다. 익숙한 버튼을 눌러 전화부에 들어갔다. 익숙한 전화번호를 찍어 천천히 귀에 가져다댔다. 신호음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초조해지고 입술은 바짝바짝 말라왔다. 끝내 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렇게 몇번 너에게 전화를 걸어도 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떡볶이 먹고 싶다.”
“이 밤에 무슨 떡볶이”
“그거! 학교다닐때 문구점 옆에서 팔던 떡볶이! 아줌마가 하던데 있잖아”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쇼파에 앉아서 말을 하던 네가 불현듯 떠오른다. 임신했냐며 킥킥 웃었더니 내 등을 퍽 쳤다. 다음에 먹으로 가자며 말을했는데. 황급히 옷을 챙겨입었다. 그래. 너무 성급하게 생각한건 아닌가 싶다. 요즘들어 너의 말이나 행동에 덜컥 겁을 먹어서 벌벌 떤다니. 이 모습을 네가 봤으면 아마 자지러질거다. 마음을 다스리자며 현관문을 나섰다. 그리고 뛰어간 모교는 분홍빛 벚꽃이 잔뜩 펴 흩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네가 말했던 학교 옆 문구점 옆에는 떡볶이집은 커녕 바로 도로였다.
점점 머릿속이 하얘진다.
막 집 안으로 들어와 휴대폰을 켰을 때 나는 침을 삼켰다. 배경화면이 너와 나의 사진이 아니다. 네가 마음에 안든다며 이상하게 나왔다며 툴툴 거리던 그 사진이 아닌 벚꽃. 처음 보는 벚꽃 사진이었다. 활짝 핀 벚꽃. 분홍빛이 연하게 도는. 네가 기어코 내 배경화면을 바꾼건줄 알았다. 급하게 갤러리에 들어가니 너의 사진과 폴더가 없다. 너와 내가 함께 찍은 사진들에는 네가 없었다. 머리가 아파온다. 아랫입술을 입 안으로 당겨 꾹꾹 씹었다. 네가 왜 그런말을 했는지 왜 그런행동을 했는지 하나하나 머릿속을 지워갔다.
너와 나 사이를 알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끝없이 긴 컬러링속에 달칵하며 전화를 받는 녀석의 목소리가 푹 잠겨있다.
“백현이, 백현 사진이 없어. 아니 백현이가 없어”
“백현이? 백연희 말하는거냐? 니가 웬일이냐 연희를 다 찾고”
“아니! 변백현 변백현! 나랑 사귀던. 알잖아 응? 종인아!”
아침부터 이상한 소리를 한다며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침이 끈끈하게 혀를 감아온다. 끈끈하게. 끈끈하게.
미친듯이 너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너의 신발과 옷들. 칫솔을 물론 속옷, 주변 친구들에게 다 전화도 해보고 네가 살던 동내에도 가보았는데 너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손을 잡고 밥을 먹고 잠을 자던 네가 왜? 이상한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너의 말과 행동. 주변사람들은 너를 모르지만 고장난 mp3. 끝끝내 받지 않은 신호음. 고등학교 2학년때 만나 현재 22살에 이르기를 너와 나는 함께 쭉 지내왔는데 왜 다른 사람들의 기억속에는 네가 없고 왜 나의 기억속에는 네가 있는가. 나는 그럼 망상과 함께 살아왔던건가. 아니면 지금 내가 살아 숨쉬는게 꿈인건가.
만약 봄의 신기루가 나에게 내렸던거라면 만약 내가 사랑했던 네가 봄 신기루였다면.
벚꽃잎이 바람에 날려 마구 창문을 때렸다. 신발 안에 가득한 벚꽃잎이 방금 따온 것 마냥 아름다웠다. 방 안 가득 벚꽃 냄새가 퍼진다. 크게 숨을 들이쉬니 몸 속까지 곳곳 까지 벚꽃향이 들어찬다. 너의 냄새가 가득 내 몸을 들어찬다. 변백현.
봄이 온지 별로 지난 것 같지 않은데 너는 벌써 가버렸다. 금방 피고 금방 져버리듯 너는 한낱 봄 신기루였고 나는 취해 비틀거렸다 그리고 벚꽃이 힘없이 바람에 날려 휘청거린다. 4년의 신기루가 이번 봄 깨끗하게 씻겨져 내려갔다. 그냥 모든게 다 꿈이었다면. 그렇게 끝날 꿈이었다면. 좋을텐데. 그러면 나는 마약쟁이로 이 곳에 있지 않을텐데.
나의 행복했던 삶들이, 가슴을 따뜻하게 녹여왔던 사람들과의 대화와 만남이 모든게 다 꿈이었다면, 하루아침에 없어질 그런 꿈이었다면.
만약 모든게 다 꿈이었다면.
*
와 진짜 오랜만이에요! 저 기억하세요..? 하ㅠㅠ
정리
변백현-실존인물 아님. 박찬열이 마약을 하면서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
박찬열-마약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