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환의 주인은 거문고를 잘타는 유명한 음악가였다. 조선의 궁궐에서 그를 모르는 이는 없었고, 그의 용모또한 수려해서 많은 낭인들의 사랑을 받고있는 자였다.
그는 특히 정환의 목소리를 좋아했다. 자신의 거문고에 잘 어울리는 정환의 목소리라서 천한 몸종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옆에두고 정환에게 많은 관심을 주었다.
진영이 거문고를 타고 정환이 옆에서 가락을 읊으면 지나가던 사람들 조차 발걸음을 멈추고 듣게된다는 소문또한 자자했다.
_ 여기까지가 일단 설정._
졸졸,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가 청량했다. 정환이 물장구를 치다가 가락을 흥얼거렸다. 상수리 나무 아래에서 진영은 모처럼의 휴식을 갖고있었다. 7월의 따가운 햇살이 진영과 정환을 내리쬐고 있었다.
"환아. 이리오렴."
정환은 물에젖은 발로 자국을 남기며 진영에게 다가갔다. 진영은 다가오는 정환을 보고 거문고를 가져오라 일렀다. 정환은 자신이 가져온 짐 꾸러미에서 거문고를 가져와 진영이 앉고있는 바위 위로 올렸다. 정환은 거문고를 키는 진영의 모습을 봤다. 정말 입이 떡 벌어질만큼 연주가 우수했다.
"가락을 읊어라."
진영이 명령했다. 연주가 시작됨과 동시에 정환의 목소리가 숲 주위를 울렸다. 잘 꺾어 내려가는 정환의 목소리가 진영의 거문고를 키는 소리에 잘 스며들어 듣는이가 하던일을 멈출만큼 아름다웠다.
"악!"
정환이 뒤에서 선우가 갑자기 정환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머리카락을 잡은채 뒤로 밀어버려서 정환은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체격이 좋은 선우를 정환은 무서워 했다.
무신중 최고라 불리는 선우는 틈만나면 정환을 괴롭혔다. 오늘도 여김없이 휴식을 즐기고 있는 전영을 찾아와 선우는 훼방을 놓았다.
"왜 내게 말도없이 놀러왔는가."
"환아 괜찮니?"
선우를 무시한 진영의 물음에 뒤늦게 바닥에서 일어난 정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는 정환을 째려보았다. 일종의 질투심을 갖고있는 선우는 진영과 정환이 붙어만 있으면 떼어놓으려 악을썼다. 옷이 더러워진 정환은 조용히 자신의 주인 옆으로 다가갔다. 보호받으려 정환이 진영에게 붙으면 붙을수록 선우는 더욱 정환을 괴롭혔고 그 사이에서의 진영은 나날이 골머리만 썩혀갈 뿐이었다.
"왜 자꾸 나를 따라오는가?"
"그대가 좋다했다."
"난 싫다."
진영은 선우의 마음을 무시했다. 어떻게 남자와 남자끼리 그렇고 그런사이가 될수 있는것인지. 이해조차 되질 않았다. 그리고 틈만나면 자신의 몸종인 정환이를 괴롭히는 선우때문에 석연치 않았다.
"환아, 채비를 하자."
몇안돼는 휴식을 방해받아 진영의 신경은 날카로워 졌다. 정환은 눈치를 채고 짐을 꾸렸다. 단시간 내에 채비를 마쳐 진영과 함께 계곡을 내려가기를 기다렸다. 진영이 자신을 빤히 노려보는 선우를 지나쳐 바위를 내려왔다.
"내가, 내가 없을때 도대체 저놈과 무얼하길래 내가 방해하는걸 싫어하는가?"
진영은 기가찼다. 나와 정환이의 사이에 대해 무슨생각을 하고있는건지. 진영은 자신의 날카로운 눈으로 선우를 째려봤다.
"그일은 은밀하여 말할수 없다."
선우를 애태우며 진영과 정환은 계곡을 내려갔다. 정환이 흘끗 뒤를 돌아보자 자신을 노려보고있는 선우가 눈에 익었다. 새가슴인 정환은 진영의 옆에 꼭 붙어서 걸었다. 그럴수록 선우의 속은 다시 저 둘을 떼어놓을 생각을 하고있었다.
"어디 보자."
정환이 아우성을 쳤다. 아까 바닥을 굴러 살집이 까진 정환의 몸을 보며 된장을 발랐다. 진영은 정환에게 죄책감을 갖으며 선우를 피해다니라고 일렀다. 정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까진 무릎을 보호하려 바지를 허벅지 까지 걷어붙힌채 마을의 우물로 나갔다. 양동이안을 물로 가득채우며 주위를 흘끗거렸다. 무시무시한 선우를 의식해서가 아니라 옆집의 아가씨 꽃분이를 마음에 놓아두고 있는이유에서 였다.
꽃분이는 정환이 좋아하는 여인이었다. 달에서 온 미인처럼 아름다웠고 수를 잘놓는다는 그녀가 만든 손수건을 갖고다니는것이 정환의 꿈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양반집의 규수라서 우물가에서 흘끗 한번 몰래 쳐다보고 마는 사이였다. 정환은 오늘따라 물을 느리게 퍼면서 다시 우물가 주위를 흘끗거렸다.
기어이 꽃분이는 오늘 오지않는 모양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채 물을 걷어올린 양동이를 들어올리며 자신의 주인에게로 가고있었다. 반대쪽에 무리로 오는 아낙네들의 재잘거리는 말들이 정환의 귓속을 후벼팠다.
"꽃분아가씨가 시집을 간다하지?"
"꽃분네 양반님이 전하가 아끼는 집안이라 던데."
"전하와 결혼을 하는것이야?"
정환은 바닥을 구른 상처가 다시 아파왔다. 표정에서 그의 슬픔이 다 들어났다. 전하가 누구길래 결혼을 한다는것인가. 정환은 입술을 앙 물었다. 지나쳐 가는 아낙네들은 다 드러난 정환의 다리를 보면서 수근거렸다. 자신의 하얀다리가 주목을 받는다는것을 인지하지 못한채 물양동이를 설렁설렁 들으며 주인에게로 갔다.
오후부터 삐쳐있는 정환을 보며 진영은 의아해 했다. 가뜩이나 옆집네 규수 꽃분아가씨가 전하와 결혼을 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돌아 마을은 잔치분위기 인데 정환만 혼자 꿍해있었다. 진영은 마당 한쪽에 쭈구려 앉아 불어 터져있는 정환을 불렀다.
"환아. 이리오렴."
정환은 주인에게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얼굴엔 심술이 가득해 입술이 부루퉁 나와있었다. 진영은 그러한 정환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봤다. 허벅지 까지 걷어부친 바지덕에 하얀 다리가 내비쳤다. 얼굴도 하얗고 볼이 통통해서 진영은 자신에게 다가온 정환의 볼을 쭉 늘렸다. 아기 피부처럼 말랑말랑 해서인지 진영은 살풋 웃었다.
"무엇이 맘에 안드니. 내일은 우리 동네에 전하가 오시는가 본데."
정환을 달래려는 진영의 말에 정환의 눈이 반짝였다. 정환은 그 조그마한 입으로 진영에게 재잘댔다.
"주인님, 전하가 누구에요? 꽃분아가씨랑 결혼한다던 전하가 누구에요? 주인님도 전하가 좋아요? 아까 물깃는중에 아낙네들이 막 설레발 치던데 그리 훌륭한 사람이래요?"
세상의 물정을 모르고 그저 순하게 살아온 정환을 그대로 보는것만 같아 진영이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 나라를 통치하는 전하의 개념을 모르다니. 진영은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줄듯 정환을 달래었다.
"전하는 아주 유명한 분이시란다. 어린나이에 왕좌에 오르셨어. 또 재능도 탁월해서 믿는사람이 줄은 선단다."
"왕좌가 뭐에요 주인님? 주인님 보다 더 훌륭한 사람인가요?"
눈에 불을 키며 물어오는 정환이 귀여워 진영은 재차 볼을 쭉 늘렸다. 세상물정을 모르는것이 너무 모르는거 같아 걱정이 되었지만 뭐 아무렴 어때 하면서 진영은 이나라의 왕이라고 정환은 이해시킨뒤 저녁을 내오라 일렀다. 진영의 저녁을 내오러 부엌에 가는동안의 정환은 왕좌에 전하에 아직 모르는것이 많았지만 일단은 꽃분이가 왕이랑 결혼한다는것을 이해했다. 왕이라면 엄청나게 큰분이신데. 중얼거리면서 역시 꽃분이와 자신은 이루어 질수없다는 사실에 정환의 입은 재차 댓발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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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부터 옆집은 부산스러웠다. 손님이 오신다나 뭐라나. 아직까지 쓰라리기만한 상처에 더 관심가는 정환이었다. 바지를 재차 허벅지까지 접어올린뒤 아침밥을 짓는데 필요한 물을뜨러 물 양동이를 잡아쥐고 우물가로 걸어갔다.
허리를 굽힌뒤 물을 길으면서 양동이를 채우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옆에 낯선 사람이 와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정환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모습을 보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딱봐도 귀티나는 생김새에 정환은 양반인가 보다 깨달으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에게 인사를 해오는 정환을 마주한 남자는 정환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말을 걸었다.
"어느집 몸종인가?"
"...네?"
지금 자신에게 물은것인가 정환은 헷갈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둘밖에 없었고 정환은 잘생긴 남자가 나에게 질문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애락 정진영을 모시는 몸종입니다."
"정진영 이라."
낯선남자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무언가 떠올란듯 다시 정환을 쳐다보았다. 하얗고 통통한 볼살을 보면서 허벅지 까지 걷어올린 그의 하얀다리까지 보았다. 물을 깃는데 열심인 정환에게 남자는 다시 물었다.
"이름이 무언가?"
"정환이요, 성은 몰라요."
양동이가 가득찬것인지 정환은 두 양동이를 번쩍들어 낯선남자에게 인사를 꾸벅했다. 정환의 멀어져가는 뒷통수를 보는 낯선남자는 정환을 끈질기게 끝가지 주시했다. 멀어져가는 그를 보면서 낯선남자는 자신을 찾는 소리에 정신이 들어 우물가를 떠났다.
"전하. 꽃분아가씨가 기다리십니다."
"곧 간다 전하게."
남자는 벌써사라진 몸종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무언가 부족한것인지 그의 두 눈은 무언가를 찾고있었다.
옆집에서 들려오는 가락과 음식냄새에도 정환은 행복하지 않았다. 저 냄새와 가락은 꽃분이가 나에게 보내는 마지막 매세지라고 생각한 정환은 또다시 우울해졌다. 옆집에 놀러간 저의 주인님도 자신을 위로해주지않아 다시 구석에 앉아 불어 터지고있는 중이었다. 어쩜 이렇게 하늘이 파란건지. 정환은 시선을 자신의 무릎에 나있는 상처로 옮기었다.이제거의 아물어서 딱지가 지고있는 다리를 뚫어져라 주시하고있다가 자신의 위로 오는 검은 그림자에 고개를 들었다. 다름이 아닌 자신의 무릎에 상처를 낸 선우였다.
"악!!"
또다시 자신의 머리채를 붙잡는 선우에 정환은 비명을질렀다. 이번엔 내치지않아 다치는것은 안심이었지만 자신의 머리채를 붙들고 어디론가 데려가는선우가 무서웠다.
머리를잡아당기는 선우가 미워서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 이대로 가면 자신의 주인님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것 같았다. 등뒤에서 벌써부터 자신의 이름을 주인님이 부르는것 같았다. 주인님의 악기연주소리에 자신이 가락을 더하는 놀이가 재미있었는데, 정환은 울기직전이었다.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는것인지 정환은 알수없었다.
(쑥스)
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