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환을 내게 주세요 !
01
"..."
"..."
아, 시발.
이수근도 울고 갈 듯한 삭막함에 탄식했다.
가족 외식이라는 게 쟤네 집과 함께하는 외식이라는 걸 진작 알았다면 따라 나서지 않았을 거다.
둘이 먼저 가서 앉아있으라는 말에 최대한 굼뜨게 움직인 보람도 없었다.
뻘쭘하게 마주보고 앉아있는 나와 김재환의 모습은 꼭 돌하르방 두 개를 가져다 놓은 것만 같았다. 뭐, 나는 생긴 것도 약간 그렇고.
"둘이 뭐 해?"
"식전 기도 드리니?"
"맨날 붙어다니던 김여주 김재환은 어디갔는지 볼 때마다 신기해."
부모님들이 들어서자마자 보고있던 핸드폰을 마치 둘이 짠 듯이 집어넣었다.
둘이 있을 때보다 더 어색할 순 없다고 생각했는데, '맨날 붙어다니던 김여주 김재환' 단어 하나에 그 생각이 무색해졌다.
제발 밥이나 먹죠, 엄마아빠.
"재환이는 대학생활 어때? 인기 많겠어."
"저야 뭐 늘 많죠."
"여주야, 얘 학교에서 너 만나면 인사는 하니? 먼저 좀 하라고 이모가 매일 잔소리하는데."
다행히 음식이 나오고 젓가락질이라는 할 일이 생기니 어색함은 온데간데 없다.
어디서 인기가 많다는 건지 손을 번쩍 들어 질문하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녀석을 말리며 나를 쳐다보는 이모께 상냥하고도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여느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소꿉친구 같은 건 그냥 정말 드라마일 뿐.
양 부모님이 산후조리원에서 만나, 분유맛을 알기도 전에 알고 지낸 나와 김재환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아는 애' 정도?
나름 초중딩 땐 피카츄 하나 사서 귀 하나씩 나눠 먹고, 슬러쉬를 빨대 하나로 먹으면서 서로의 혈액형을 묻기도 했다.
심지어 고2 여름방학 전까지도 서로 기다렸다가 같이 등하교도 하고, 맨날 붙어다니던 사이였는데, 현재는 추억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아무런 교류가 없다.
"얘도 똑같아-, 우리가 백 번 말해도 소용 없다니까."
"애들이 다 그렇지 뭐."
나와 김재환의 관계를 우리보다 더 아쉬워하던 부모님들의 화제는 금세 다른 쪽으로 흘러갔다.
역시 불편한 자리야.
다시는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이 친목에 참석하지 않으리, 속으로 굳게 다짐을 하며 맛있는 고기 한 점을 쌈장에 콕 찍어...
"..."
"...?"
원래 밥 먹는 사람을 그렇게 유심히 쳐다보는 편?
뜻 밖의 눈맞음에 깜짝 놀라 튀어나온 밥알과 함께 나올 뻔한 한 마디를 간신히 꾹 삼켰다.
"아, 미안미안. 되게 맛있게 먹길래."
"맛있어."
맛있는 걸 맛없게 먹을 순 없잖아. 작게 흘린 내 마지막 문장에 녀석은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뭐지. 여전히 서로 자식 얘기, 고민 얘기에 바쁘신 부모님들과는 다른 차원의 공간에서 뜻 밖의 토요미식회가 열렸다.
네. 저는 역시 아직 소고기보다는 양념이 된 돼지고기가 좋은데요, 재환씨는요?
병신같은 큐앤에이를 속으로만 주고 받으며 입에 남아있는 고기를 마저 씹었다.
"너가 세계회무..."
"세무회계."
"아아, 미안. 헷갈린 거야."
"응."
"진짠데."
밥을 먹다 말고 김재환이 또 입을 연다. 우리과 이름을 갑자기 글로벌하게 바꿔버리는 녀석에 웃음이 터질 뻔했다.
"너는 실음과지?"
김재환이 또 한 번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솔직히 존심은 좀 상하는데 학교 다니면서 김재환 이름을 못 들어 봤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워너원에 김재한인가 김조한인가를 닮았다고 입학식 때부터 시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물론 학식 먹으면서, 셔틀 타면서, 그냥 캠퍼스 돌아다니면서 마주칠 때마다 개무시하긴 했지만 너가 실음과라는 거 정도는 알고 있었어.
어릴 때부터 노래에 소질있는 것 같다고 주구장창 숫자송, 당근송을 알앤비로 부르더니 기어코 실음과를 갔구나.
"지금도 노래 잘 해?"
"야야, 말도 마."
나름 '나는 아직 너에 대해 기억하는 게 있음'을 강조했다. 대답은 못 들은 척. 그게 최선.
대화를 나눌수록 자연스럽게 머리 한 쪽에 과거의 김재환과 내 모습이 자리했다.
그냥, 여전하구나.
능글맞게 웃어보이며 고기 한 점을 입에 가져가는 김재한을 빤히 쳐다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만나면 인사해도 돼?"
그간의 공백이 무색하게 이 대화가 편안했다.
"인사해 주라."
인사해달라고 앞니를 보이며 웃는 네가,
"그래."
17살 때의 김재환과 똑같은 20살의 김재환이.
01이자 프롤로그라 분량이...
반응 없으면 짜게 식고 바람처럼 사라질게요 T^T
옴뇸이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