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환을 내게 주세요 !
04
질긴 장마철이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이 비가 내렸고, 빗소리는 쉬지 않고 교실을 가득 채웠다.
"문제는 김재환이 아니라 너한테 있었네."
내 핸드폰을 신경질적으로 책상 위로 툭 던진다.
오전 7:12 [재환아 오늘 오후에 비 와!]
오전 7:12 [우산 챙겨!!]
오전 7:12 [비 맞으면서 축구하지 마셈]
매일 심심할 때면 재환이에게 보내곤 했던 그동안의 내 카톡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와중에 선배한테 미안한 감정보단, 읽어놓고도 답장 하나 없는 김재환에게 문득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면 내가 진짜 나쁜 사람인걸까.
"무슨 말이라도 해. 표정 존나 뻔뻔한 거 개빡치니까."
"다 봤잖아. 내가 보낸 거 맞는데."
"허,"
그만할래.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선배 앞에 커플링 올려두며 교실에서 빠져나왔다. 도통 되는 일이 하나 없다.
그냥 처음부터 말할걸. 나한테 없어선 안 될 친구라고 처음부터 다 설명할걸. 하나밖에 없는 친구라고 진작 일러둘걸.
그 날 하루 있었던 일 다 털어놓을 재환이도,
필요할 때면 마법사처럼 나타나줄 재환이도,
귀찮게 굴고 장난치고 왕창 놀려줄 재환이가 필요하다, 나는.
복도 창 밖으로, 매점 앞에서 머리를 탈탈 털고있는 녀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 맞으면서 축구하지 말라니까 그새 했냐. 에라이, 망할 놈아.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여기저기 손가락질까지 해대며 떠들어대고 있다. 앞 친구 재환이 침으로 세수하겠는데.
"...맞다."
다들 석식 먹으러 간 사이 얼른 가방을 챙겼다. 아침에 급하게 나오느라 까먹고 신발장 위에 놓고 나온 우산은 그제야 생각이 나더라.
어떡하지. 비 맞으며 뛰어가기가 무서울만큼 쏟아지는 비를 멍하니 바라만 봤다.
잠깐 기다리면 좀 잦아들까.
"김여주."
"..."
"나한테 비 온다고 카톡할 시간에 본인 우산이나 챙기세요."
한 손으론 본인의 노란곰돌이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론 접이식 우산을 들고 서있는 김재환이었다.
언제였지, 갑자기 이 우산을 들고 나타났던 재환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귀여운 얼굴로 귀여운 곤도리 우산을 들고 뛰어와선 "늦어서 먄." 이라고 했었나.
"이거 쓰고 가."
"..."
"안 돌려줘도 돼."
"...아, 재환아!"
내가 우산을 받아 들자마자 후다닥 뛰어가버리는 녀석을 뒤늦게 불렀다.
받아든 우산을 재빠르게 피려고 만지작 거리다가, 마음만 급했는지 이미 저만치 멀어진 재환이의 뒷모습을 눈으로만 쫓았다.
다 변했고 나는 툭하면 기분도 오락가락해 죽겠는데 너 하나만 여전하게 모두 그대로인 것 같았다.
내가 비를 맞고 집에 가든, 비 맞고 집에 가서 죽을만큼 아프든 신경이라도 쓰질 말지.
그래야 어디가서 '김재환이랑 싸웠다'고 말할 수라도 있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면 내가 정말 차고 많은 니 친구들 중 하나가 되어버린 것 같지 않냐.
이게 뭐야,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기도 뭐하게.
"김재환!"
"...?"
"다시 돌려주기 귀찮아. 안 쓰고 갈래."
"..."
녀석을 쫓았다. 펴져있는 우산을 그대로 재환이 손에 쥐어줬다.
다른 이유는 없고, 또 뭐가 심술이 났냐며 예전처럼 너가 어르고 내 얘기를 들어주길 바랐다. 그냥, 예전엔 그랬잖아. 너 그거 잘하잖아.
"왜. 안 돌려줘도 된다니까."
"어차피 버스 타고 가면 금방인데, 뭘."
"..."
"빨리."
"그래, 그럼."
"..."
"아까 나한테 카톡할 시간에 본인이나 챙기라는 말은 진짜야. 나 말고 너 먼저 챙겨."
별 생각없이 내 우산을 받아드는 네가 얼마나 미웠는지.
내가 왜 우산을 다시 들고왔는지도 이미 다 알고 있을 네가 괜히 다 모르는 척, 고개를 끄덕이는 그 모습이 정말정말 미웠다.
"김재환 입에서 그런 말도 나오네."
"..."
"걱정 고마워."
"..."
"앞으로 카톡 안 할게. 신경 쓰이게 했다면 그건 미안."
"..."
내가 뭐 병신이야? 오늘 아침에 우산 한 번 까먹었다고 여태 내가 저한테 도움만 받고 사느라 그런 앞가림도 못 할줄 알고 저러나 봐.
별꼴이야 진짜. 오늘 비 왕창 맞고 내일 아파서 끙끙 앓아 눕기나 해라.
쿵쿵 걸을 때마다 일렁이는 눈물을 벅벅 닦았다.
18년 친구도 뭐, 별 거 없네. 그냥 이러고 끝 아니야? 이건 뭐 싸운 것도 아니고 그냥 인사만 하는 사이로 지내자는 거지.
진짜 개싫어. 개나쁜 개자식아.
김재환을 내게 주세요 !
"야 김재환 막아-!!"
일주일에 한 번, 김재환네 반하고 체육시간이 겹치는 날이면 가끔 축구나 피구로 같이 시간을 보내곤 했다.
여자애들이 덥다며 이미 스탠드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일어날 줄을 모르는 관계로, 자연스럽게 분위기는 남자애들의 축구 경기 관람으로 이어졌다.
헉헉대며 뛰어다녀도 좋다고 동분서주하게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는 김재환이 눈에 들어왔다.
"어, 하이!"
어쩌다 이쪽으로 와서는 우리반 아는 애한테 손을 번쩍 흔드는 모습에 얼른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우리 반 이겨라. 존나 이겨라 제발.
녀석과 정말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치는 게 익숙해졌다.
너는 밝은 성격과 꽤 생겨먹은 얼굴로 늘상 주변에 친구들이 많았다.
물론 정 반대의 나는 너 하나가 없어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혼자 지내는 걸 싫어하는 내가 혼자 지내는 걸 뻔히 알면서도 굳이 다가오지 않는 너에게, 점차 화가 났다기 보다는 정이 털렸다는 게 맞겠지.
"재환아, 마실래?"
"그거 우리 반 건데."
휘슬이 불리자마자 우르르 걸어와 파워에이드를 벌컥벌컥 마셔대는 우리반 남자애들 뒤로, 김재환에게 줄 파워에이드를 종이컵에 따르려는 반장을 쳐다봤다.
너는 미친년아, 그걸 왜 김재환한테 줘. 쟤는 챙겨줄 애들 많아.
"재환아 수고했어!"
"너 축구 진짜 잘한다~"
얼마 안 가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애들이 녀석의 주변으로 모인다. 수건이면 수건, 물이면 물. 존나 살아 움직이는 요술램프들이네.
경기가 끝나고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나는 보다 못 해 일어나 가장 먼저 교실로 향하곤 했다.
"이제 그럼 너네가 예제 3번 풀어 봐."
그러다 언젠가, 너에게도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소식이라기 보단 내가 학교 여기저기서 어쩌다 엿들은 쪽이 더 맞지만.
"김철수 너 5분 뒤에 나와서 풀어 보라고 시킨다, 얼른 풀어."
"에엥? 쌤 저 풀고있었어요-."
그냥 정말 그렇게 지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모든 시간을 뒤로 하고, 서로 딱히 신경쓰지도 않고 그렇게 지내는 게 맞았으면 좋겠다.
첫번째 과거 에피소드는 이걸로 끝이 났어요!
분 량 조 절 대 실 패
☆ 분 량 실 종 ☆
글 쓰면서 실제 제 고등학교 때 선생님과 친구들을 떠올리다 보니까 저도 급침울...
저번 편에서도 말했지만 얼른 학식 재환이를 보고싶어요 ㅠ3ㅠ
물론 스토리 진행 중에 가끔 과거 에피소드가 또 등장할 예정입니다 헤헤
계속해서 지켜봐 주세요!!
장꾸님♡
홀롤로님♡
슈슈님♡
째니짼님♡
김만두님♡
둥둥님♡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 옴뇸은 잊지않을꼬예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