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먹을까 오늘은?"
고추장 냄새만 맡아도 벌써 몸에서 사리나올거 같다는 권유리 때문에 떡볶이 대신 라면이랑 주먹밥을 시키고 앉았다.
근데 망할, 김태연이 내 맞은편에 앉아있다. 아까부터 괜히 꽁한 마음에 상대도 안하고 있는데, 얘도 그걸 아는지 계속 내 눈치를 본다.
라면 몇가닥을 건져서 입에 넣으려다 후두두둑 하고 치마에 다 흘렸다.
애들 전부가 동시에 날 쳐다보고는 한마디씩 핀잔을 주면서 구박한다. 근데 김태연은 그냥 보고만 있다.
속으로 괜히 저 바보 욕 한마디를 몰래 할 때쯤 벌떡 일어나 휴지를 집어 나한테 준다.
근데 하필이면 황미영도 바로 옆에서 휴지를 준다. 0.1초 정도 고민을 하다가 황미영이 주는 휴지를 받아 들었다.
김태연이 휴지를 내려놓고 젓가락을 집어든다. 주먹밥을 깨작거린다.
속으로 또 김태연 욕을 했다.
멍충이.
-
다 먹고 집을 갈 채비를 하고는 분식집을 빠져나왔다.
최수영이랑 황미영이 집을 가는 교통편을 정하고 있다. 택시타자. 어쭈, 돈좀있냐? 하면서 티격거리더니,
옆에 있는 김태연한테 너는? 묻는다. 김태연은 모르겠다고 한다.
나를 보는 애들 눈초리에 야자하고 간다며 발을 뺐다. 애들이 동시에 모범생인척 하지 말라며 타박을 준다.
야자실로 터벅터벅 힘없는 발길로 몸을 옮겼다. 온 몸이 노곤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자꾸 신경쓰여 미치겠다. 어차피 이러면 안될거라는걸 알면서도 자꾸 심통부리게 된다.
혼자 땅만 보면서 걷고있는데 누가 옆으로 와서 스윽 선다. 속도를 맞추면서 같이 걷는다.
옘병할 김태연이다.
모르는 척 하고 계속 가던 길을 가는데 야자하려고? 하고 물어온다.
힘없이 고개를 대충 끄덕여주는데, 심장이 왜이리 발칵거리는지 모르겠다. 미쳤나보다.
"나도 할까?"
고개를 수그리고 있던 내 시야 안으로 허연 얼굴이 비쩍 들어와서 묻는다.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어깨를 한번 들썩이고 괜히 운동장을 한번 둘러봤다.
"근데 왜 이쪽으로 가?"
별관에서 하면 더 조용해서 집중 잘되니까 니 생각 안하려고 그런다 이년아. 하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관뒀다.
"별관이 편해."
"으음-."
이상한 감탄을 하고서는 아무 말 없던 김태연이 갑자기 내 손을 덥썩 잡아왔다. 그러고 우뚝 멈춰섰다.
나는 잔뜩 도끼눈을 하고 왜. 하면서 돌아봤다.
"본관 가서 하자."
"별관이 더 편해."
"감독이 너무 빡세단말야. 우리 아직 1학년인데."
"그럼 넌 본관 가."
정수연 는(은) 니 갈길 가라, 난 내 갈길 갈테니. 스킬 을(를) 시전하였다!
"자꾸 이럴래?"
"너 본관에서 하고싶다며. 가라니까?"
"야."
"뭐."
"같이 안하면 나 집 간다."
"가시던지."
"진짜?"
대답도 안하고 홱 돌아서 마저 걸었다. 이상하다. 이정도로 화가 난건 아니었는데.
왜 얼굴보니까 더 틱틱대게 되는지 모르겠다.
-
김태연이 나랑 말을 안한다.
눈이 마주쳐도 아무 표정 없이 고개를 돌려버린다. 저렇게 나한테 차갑게 대하는건 처음인거 같다.
얼떨떨하고 서운하고 슬프다. 금방이라도 울 수 있을것만 같았다.
애들도 눈치를 챘는지 자연스레 나한텐 권유리가, 김태연한텐 김효연이 파견됬다.
"왜그러는데?"
아무말도 못하겠다. 우울해 미치겠다. 그렇게 보기싫었던 그 웃음이 너무 보고싶다.
내가 부렸던 심통은 당연한 거였다. 김태연이 남자를 만날 수도 있겠지란 생각은 했어도,
이렇게 예고 없이 남의 입에서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생각했던것보다 좀 덤덤하게 반응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놀랬나 보다.
아무렇지도 않아야 한다는 괜한 자존심이 김태연 심기를 건드린 셈이다.
김태연은 애가 털털하고 장난기 많아서 가벼워 보여도, 한번 화가나면 진짜 무섭다.
김태연이 화가 나서 내 뒷담을 까거나 나한테 욕할까봐 무서운게 아니고,
내가 김태연을 화나게 했다는 게 더 큰 잘못으로 느껴져 차라리 욕이나 실컷 얻어먹고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화나게 했다는건 나 혼자서의 죄책감으로 너무 아파지는 일이다.
-
결국에는 체육시간에 한참 눈치를 보다가 농구공에 손가락을 맞고 양호실로 도망왔다.
여자애가 조심 좀 하지-. 하는 양호선생님의 타박을 받고 붕대를 감아놨다.
조금만 앉아있다 가도 되냐고 묻자 10분 정도만 쉬었다가 가라는 허락을 받고 침대 끝에 걸터 앉았다.
눈물이 비죽비죽 새어나왔다. 바보 김태연. 병신같은 정수연.
진짜 이 꼴을 내가 아는 누구에게 보이면 나는 창피해서 죽어버릴 거라고 생각하면서 더 많이 울고 있을 때.
진짜 누가 앞으로 다가왔다. 제발, 제발, 제발, 모르는 애였으면.
또 김태연이다.
아, 미치겠네.
-
김태연이 내 옆에 앉는다. 갑자기 마음이 너무 편안해진다.
노비문서 불태워진 노비마냥 내 속을 얽매던 뭔가가 소멸한 느낌이다.
시원해진 가슴을 붙잡고 쪽팔린 마음에 눈물을 짜내던 눈을 급히 가렸다.
"다치려면 오른손 다치던가."
김태연 목소리다. 너무 좋다. 너무 편하다. 엄마같아. 좋다.
"수업시간에 어떻게 써먹지도 못하겠네."
손가락 다쳐서 필기 안해보려는 잔머리 굴려도 좋아. 그냥 좋다.
"불편하기만 겁-나 불편하겠다."
다쳐서 울고있는애한테 비꼬듯이 잔소리해도 좋아. 그냥 좋다.
"나한테 심통부린 벌 받은거야."
괜히 끼워맞춰서 타박해도 좋아. 그냥 좋다.
"뭐 들어달라고 하거나, 도와달란 말 하기만 해봐."
그래놓고 밥 받아다 준다. 그래달란 말 하지도 않았는데,
체육 끝나자 마자 운동장에서 튀어와 이른시간이라서 빈자리 투성이인 급식실에 나 꾹꾹 눌러 앉혀놓고.
밥 받아다 줬다. 밥을 산처럼 쌓아왔다. 나는 오이 못먹는데, 알면서도 오이무침도 산처럼 쌓아왔다.
그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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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젬 계속 똑같은거 울궈먹어서 죄송해요..ㅎㅎ 바꿔볼게요..
반응 보고 또 올리던가 할게요!